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58화 (58/300)

< 가장 중요한 것. - (2) >

***

회의가 시작됐다.

백형욱 의원이 입에서 호명될 사람을 고르는 거다.

인원은 총 세 명.

당대표 계파에서 한 명, 민국당에서 한 명, 회의를 통해 한 명.

아쉽게도 더 많은 사람을 넣을 수는 없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이빨을 드러낸다.

자칫 당대표와 민국당이 손을 잡고 역공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한 의원이 입을 열었다.

“민국당에는 강영준 의원, 어때요? 경찰들 진급시켜준다고 뒷돈을 받은 모양인데...... 경찰을 이용해서 우리 정보를 캐기도 하고요.”

다른 의원이 손을 든다.

“강영준보다는 이차민이 더 쓰레기죠. 이놈이 성종 그룹에서 몰래몰래 용돈 좀 받는 것 같아요. 상임위에서 심의를 볼 때 성종 그룹과 관련된 것이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거든요.”

살생부에 오를 이름은 적절한 명분과 각자의 이득에 따라 발언됐다.

이들은 방금만 해도 백형욱 의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될까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처지가 바뀌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그러자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표정을 보면 백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 같다.

그렇게 세 사람이 결정됐다.

그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곧 피눈물을 쏟을 거다.

다음은 박무혁 의원의 둘째 형이자 대정그룹 본부장인 박채준에 대한 처분 문제였다.

주진만 의원이 말한다.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에요. 박채준이가 우리 당을 우습게 본 것이죠. 본보기를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세무조사 받게 할까요?”

“본보기를 보이려면 검찰까지 동원해서 먼지 한번 털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그런데, 정작 백형욱을 섭외한 성윤은 조용히 앉아 듣기만 했다.

그냥 앉아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관찰하고 있다.

태도를 보고 성향을 읽어 나중에 쓰기 위해서다.

그렇게 아침 일찍 시작된 회의는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났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일어서며 말한다.

“그동안 백형욱 때문에 식사 제대로 못 하셨죠? 오늘 제대로 드시죠.”

“점심부터 술인가요?”

“나야 좋죠. 허허허허.”

주진만 원내대표가 손으로 술잔 쥐는 시늉을 했다.

회의실에 웃음이 번진다.

아침에는 어두웠던 분위기인데 지금은 화기애애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회의실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괜찮은 한우 전문점이 있어요. 입맛에 맞을 겁니다.”

한우 전문점.

의원과 보좌관,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앉았다.

고기가 맛있게 익었고 의원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보통 이렇게 낮술을 즐기는 의원은 많지 않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중심이었고 고민이 해결된 날이다.

그래서 부어라 마셔라 한다.

“이성윤 의원! 이쪽으로 와봐.”

한 의원이 성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성윤이 앞에 앉았다.

그러자 의원은 자신이 먹던 잔에 술을 채우더니 성윤에게 건넨다.

성윤은 예의 있게 몸을 틀어 마셨고 다시 그 잔에 술을 채웠다.

의원은 잘 싼 쌈을 성윤의 입에 넣었다.

성윤은 입을 가리고 쌈을 먹은 후 말했다.

“감사합니다.”

의원이 성윤의 어깨를 가볍게 쥔다.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의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성윤 의원! 내 잔도 받아야지?”

시작이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성윤을 찾는다.

“이성윤!”

자리를 옮겨 다니며 소주와 맥주 그리고 폭탄주까지 가리지 않고 입에 털어 넣었다.

소모임 가입 권유도 받았다.

“들어 놓은 것 없지?”

“네.”

“초선 모임도 안 들어갔어?”

초선 의원들이 모여 만드는 모임이 있다.

동기 모임 비슷한 것인데 그들은 이미 3년을 같이 했다.

재보궐로 당선된 성윤을 받아 주기는 힘들다.

“정치판의 반은 사람으로 해결되는데......우리 모임에 들어올래? 경제 공부를 하는 모임이거든?”

그렇게 한참 더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좀 쉬나 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건든다.

뒤를 돌아보자 김대성 의원이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킨다.

“나와 봐.”

야외에 있는 흡연실.

김대성 의원도 짧은 시간에 술을 많이 마셨나 보다.

얼굴이 붉다.

그가 담배를 꺼내 성윤에게 건넨다.

“피워.”

“감사합니다.”

성윤과 김대성 의원은 입에 담배를 물었다.

뿌연 연기가 흐를 때 김대성 의원이 말한다.

“자네는 우군이 있나?”

사이좋은 국회의원을 묻는 게 아니다.

정치 기반의 중심이 되어줄 사람, 또는 뒷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있는지 묻는 거다.

보통의 국회의원은 그런 우군을 손에 쥐고 배지를 단다.

적어도 정치 기반의 중심이 되어줄 사람은 주변에 존재한다.

하지만 성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바빴다.

아직 후원회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아직은 없습니다.”

김대성 의원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괜찮은 사람이 한 명 있어. 정보통으로 쓰기는 괜찮을 거야. 소개해주지.”

“정보통이요?”

“보답이야.”

김대성 의원은 몸을 돌려 가게로 향했다.

그가 성윤을 좋아하기는 어렵다.

성윤의 손에는 자신의 약점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졌다.

성윤은 김대성 의원의 끝장날 뻔했던 정치 생명을 연장 시켜줬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성윤에게 마음이 가는 모양이다.

잠시 후, 서안시로 돌아가는 길.

정우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신이 모시는 의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아서다.

그래서 그런지 헛소리를 하고 있다.

“인수가 화나면 뭔 줄 아세요?”

“뭔데?”

“인수분해. 흐흐흐.”

“제발......”

“우유가 넘어지면 뭘까요?”

“몰라.”

정우의 시시껄렁한 말을 듣다가 성윤이 입을 열었다.

“시민단체 중에 ‘엄마 손’이라고 있어.”

“엄마 손?”

“알아봐.”

“가입하게요?”

“응.”

엄마 손은 결식아동을 돕는 시민단체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을 찾아 아침, 저녁으로 도시락을 배달하고 돈도 후원한다.

사람들이 시민단체에 들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진짜 봉사를 위해 참여하는 사람도 많지만 야망이 있는 경우도 있다.

야망이 있는 사람은 ‘나 이렇게 착한 사람이에요.’라는 이미지를 쌓고자 한다.

그러니까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시민단체는 정치권과 손을 잡고 처음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그렇게 정치인과 시민단체의 공생이 시작되는 거다.

시민단체는 정치인의 선거를 돕는다.

선거 운동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을 설득해 투표하게 한다.

정치인에게는 큰 힘이다.

하지만 퇴색된 시민단체가 공짜로 도와줄 리 없다.

그것은 빚이다.

갚아야 하는 빚.

그 빚이 쌓이면 족쇄가 된다.

시민단체의 장은 당선된 정치인을 찾아간다.

내가 이만큼 도와줬으니까 어떤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 요구한다.

그리고 인사 청탁도 한다.

거절하기는 어렵다.

선거는 4년마다 돌아오니까.

하지만 ‘엄마 손’은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을 거다.

꿈속에서 본 그들은 끝까지 정치권과 결탁하지 않고 순수하게 봉사를 이어갔으니까.

그들이 우군이 되어 준다면 그들은 순수한 시민단체로서 성윤을 응원할 게 분명하다.

정효순 주임의 인사를 받으며 성윤과 정우는 사무실에 들어갔다.

성윤은 방으로 들어가 넥타이를 풀고 의자에 앉았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대한당의 공천이 시작된다.

지랄 맞은 변수만 터지지 않으면 공천은 확실하다.

다음은 선거다.

재선에 성공하면 4년 생존권이 보장받는다.

‘이제 내 정치를 해야지.’

성윤은 의자에 몸을 푹 뉘였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눈이 저절로 감긴다.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후 구태의연한 정치를 따랐다.

민생보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4년이 보장되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 상부와 결탁한 정치인 중 오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래 가는 정치인은 국민과 가까이 있는 사람, 그게 정석이니까.

‘회색...합리주의......’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상식에 기초한 합리적인 정치인.

나에게도 남에게도 공평한 세상.

성윤이 바라는 세상 중 하나다.

“의원님?”

“어?”

잠깐 졸았나 보다.

정우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김대성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 왔어요.”

“어, 뭐래?”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의원님 시간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괜찮다고 말했어요.”

“잘했어.”

김대성 의원이 정보통을 소개해준다고 했다.

그 일인가 보다.

“그리고......”

“그리고?”

정우가 성윤의 앞에 테블릿 PC를 놓았다.

기사가 보인다.

[대정그룹 박채준 본부장 비자금, 탈세. 피의자 소환.]

‘어?’

성윤은 서둘러 테블릿PC를 손에 들었다.

회의를 열어 박채준 본부장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게 오늘이다.

이렇게 빨리 진행됐을 리가 없다.

정치적으로 움직이면 꽤 긴 시간이 필요했을 거니까.

그런데, 피의자 소환이라니.

혐의가 입증되는 즉시 구속될 가능성이 크다.

성윤은 다급히 기사를 읽었다.

[대정그룹 박채준 본부장은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있다.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피의자로 소환 조사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렇게 빨리 움직였다는 것은 내부고발자가 있었다는 뜻.

자료가 있으니까 가능한 속도다.

순간 성윤의 머릿속에 박무혁 의원이 스쳤다.

‘설마?’

헛웃음이 흘렀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세네.’

***

다음 날.

사무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벤처사업가 신중석과 유하나였다.

신중석과 유하나는 연인사이며 동업자이기도 하다.

“제품 나왔어요. 의원님께 가장 먼저 드리고 싶어서요.”

신중석의 스마트 워치가 완성됐다.

위기 상황이 오면 카메라가 작동되어 녹화한 영상을 부모에게 보내는 등의 아이들을 위한 기능이 다양했다.

물론 이들이 생각과 달리 노인들에게 대박이 나지만......

“예쁜데요?”

정말 깔끔하게 생겼다.

꿈속에서 봤던 물건을 현실에서 보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성윤이 시계를 꼼꼼히 살피며 물었다.

“출시가 언제예요?”

“11월 중순이에요.”

“11월...대박날 거예요.”

유하나가 앓는 소리를 한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제 점심에 삼각 김밥이 아니라 도시락이라도 사 먹고 싶어요.”

성윤이 시계를 내려두며 슬쩍 웃는다.

“점심에 도시락 사드릴까요? 제가 그 정도 살 능력은 있거든요. 하하하.”

이런저런 즐거운 대화를 이어졌다.

그런데,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성윤은 미래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심하게 뒤틀리는 중이다.

그래서 이 스마트 워치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서안시에서 만들어질 게 아니라 중국 공장으로 향했어야 하니까.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다.

찝찝할 이유가 없다.

순간......

“출시가 언제라고요?”

“네? 11월 중순이요.”

꿈속을 기억하면 신중석의 스마트 워치는 출시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대박을 터뜨린다.

그게 얼마나 걸렸는지까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거 전에 대박이 난다면 성윤이 가진 10% 지분의 가치가 드러날 수도 있다.

‘이거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잖아?’

국회의원의 재산 변동을 보면 불경기 속에서도 85.4%인 245명의 재산이 전년보다 늘었다.

게다가 1억 원 이상 재산을 늘린 사람만 해도 166명.

투자했던 주식이 상승해 수천억의 수익을 본 의원도 있다.

그들이 부정적으로 재산을 증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은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나랏일 하라고 뽑아놨는데 자기 재산 증식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의원 당선 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성윤의 재산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면 좋지 않은 눈으로 볼 것이 당연하다.

성윤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좋은 일 해야겠네.’

< 가장 중요한 것.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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