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57화 (57/300)

< 가장 중요한 것. - (1) >

백형욱 의원이 손을 꽉 쥐었다.

그 손이 부들부들 흔들린다.

수화기너머에서는 여유로운 목소리가 느리게 들려왔다.

-개새끼는 내가 아니라 그쪽이고요. 법원에 있을 때도 국회에 있을 때도 똑같이 발정난 개새끼였네요.

“이, 이 새끼야......”

-피고인이었던 가족들,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피해자들, 부끄러워서 쉬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궁금해지네. 맞아 죽을지, 칼에 찔려 죽을지.

백형욱 의원의 얼굴에 핏기가 쭉 빠져 나갔다.

그는 법관으로 있을 때 피고인들의 가족 중 젊고 예쁜 여자를 찾아 접근했다.

문제는 그 여자들의 가족이 범죄자라는 것.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은 눈이 돌면 법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 아내 또는 여동생이 당했다는 걸 알면......

돌아버릴 거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법관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법부의 추악한 악마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세상 모두가 욕을 할 것이고 기억할 거다.

대한민국에 발을 디딜 수 없다.

백형욱 의원이 입을 연다.

최대한 부드럽게.

“...원하는 게 뭐지?”

수화기 너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는 느낌.

재수 없었지만 참아야 했다.

칼자루를 쥔 것은 성윤이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성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의 입. 제가 움직일 수 있을까요?

“......!”

통화가 종료됐다.

백형욱 의원은 허물어지듯 의자에 앉는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점차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가 거칠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씨발......”

***

성윤이 통화를 종료했다.

정우가 묻는다.

“뭐래요?”

“뭐......잘 됐어.”

“원내대표에게 보고할 거예요?”

“응. 해야지.”

“아깝지 않나요? 마음에 안 드는 놈 두세 명은 골로 보낼 수 있는데......”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건들 수준이 아니야.”

욕심을 내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아직은 초선 의원이다.

힘이 없다.

주변에 사람부터 만들어야 한다.

성윤은 휴대폰을 툭, 건드렸다.

검게 죽어 있던 화면이 밝게 변한다.

연락처를 검색해 찾은 것은 박무혁 의원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평소처럼 느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이성윤 의원.

“퇴근하셨습니까?”

-아니야, 아직 사무실이야. 왜?

“지금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흘렀다.

-오도록 해. 기다리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박무혁 의원님 사무실로 가자.”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

재벌 출신 국회의원답지 않게 소박하다.

천만 원이 넘을 것 같은 고가구가 배치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에게는 성윤이 인터넷에서 사는 사무용 가구와 같은 느낌일 거다.

“무슨 일이지?”

박무혁 의원이 깍지를 끼며 흥미로운 눈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성윤은 찻잔을 들어 마른 입술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말해.”

“그...”

성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백형욱 의원과 손을 잡은 사람 중에는 박무혁 의원의 둘째 형 박채준 본부장이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목표는 박무혁 의원이다.

아무래도 가족 간의 일이니 말하기 껄끄러웠다.

“...백형욱 의원과 손을 잡은 사람이 그룹의 박채준 본부장님과 민국당이었습니다. 의원님을...공격할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

박무혁 의원의 입술이 기분 좋게 휘어진다.

가족이 적이었다는 걸 알면 보통은 당황하거나 화를 낼 거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즐거워 보였다.

그가 소파에 등을 기댄다.

“그래? 우리 형이 민국당하고 손을 잡았다는 거지? 정치적인 일은 민국당이 하고 물주는 우리 형이 하고.”

“네.”

“그리고?”

“그리고 백형욱 의원을 포섭했는데......”

박무혁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포섭했어?”

“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박채준 본부장님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무혁 의원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내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해. 난 재계와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니까.”

박무혁 의원을 만나면 항상 묘한 위화감을 받는다.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재벌이라 하지만, 그래서 재산 등을 놓고 상상할 수 없는 싸움을 한다고 하지만 이 사람의 행동은 항상 예측에서 벗어났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피곤하다는 듯 쭉 기지개를 켰다.

피곤한지 목덜미를 주무르며 다시 성윤을 바라봤다.

“나를 살려줬다는 거지? 그리고 우리 가족을 건들기 전에 물어보러 온 거고.”

“......”

“고마운데, 그냥 보낼 수는 없고. 뭐가 좋을까...필요한 거 없어?”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박무혁 의원이 성윤을 살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그의 시선이 성윤의 손목으로 향한다.

2만 원짜리 카시오 시계가 보였다.

“시계 하나 사줄까?”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생각에 빠졌던 박무혁 의원이 짝 손뼉을 친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그의 보좌관이 들어왔다.

“이성윤 의원이 지금 타고 다니는 차가 뭐지?”

앞에 선 보좌관이 답한다.

“준중형 승용차입니다.”

“개인적으로 타는 건가?”

“아뇨, 업무용으로도 쓰고 있습니다.”

“업무용으로 준중형을 탄다고? 그런 의원이 또 있나?”

“없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성윤은 등줄기가 싸해졌다.

‘뭐야? 내 뒷조사한 거야?’

물론 차량의 종류야 뒷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공공연하게 타고 다니니까.

하지만 꼭 뒷조사한 것처럼 여겨진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이 바닥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 차 줘.”

“네? 그거 일주일 전에 출고한 건데......”

박무혁 의원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공짜로 줬다고 알려지면 골치 아프니까 그 부분은 알아서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더 묻지 않고 밖으로 떠났다.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됐다고 말하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 내 옆에 두고 싶으니까.”

지옥같이 어두운 눈빛이었다.

***

잠시 후, 성윤이 떠난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

박무혁 의원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온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틀어 보좌관을 향했다.

“계획하고 있던 것 접어.”

“네?”

소파에서 일어난 박무혁 의원이 성큼성큼 책상으로 걸어갔다.

서랍을 드르륵 연다.

그 안에는 백형욱 의원과 박채준 본부장의 자료가 가득했다.

박무혁 의원이 자료를 꺼내 쓰레기통으로 ‘툭’ 버렸다.

“쓰레기는 치우고.”

***

다음 날.

주진만 원내대표의 사무실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원내대표의 호출을 받아 계파의 주요 인물 아홉 명이 모였기 때문이다.

보좌관들이 회의를 준비하는 동안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이어갔다.

하지만 소란할 뿐 분위기가 좋지 않다.

백형욱 의원 때문에 정치 인생이 박살 날 수도 있어서다.

의원들은 백형욱 의원을 거론하며 쑥덕댄다.

“백형욱 그 새끼가 우리까지 쑤시지는 않겠지?”

“우리한테는 악감정 없잖아? 아무래도 저쪽 아니겠어?”

“그랬으면 좋겠네. 괜히 같이 있다가 불똥 튀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

그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반대편을 슬쩍 봤다.

그곳엔 김대성 의원과 그를 둘러싼 네 명의 의원이 있었다.

그러니까 원래 백형욱 의원의 계파였다가 배신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며 한 의원이 입술을 움직였다.

“씨발, 저 새끼들만 오지 않았어도.”

주진만 의원을 원내대표로 만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오자 분열된다.

급하게 만들어진 계파의 결속력은 모래성 같았다.

백혁욱 의원을 배신하고 온 사람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백형욱 그 새끼가 몇 명이나 말할까?”

“적어도 다섯 명은 말하지 않겠어?”

“하......이름 불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별수 있나? 죽어야지.”

죽어야 한다는 말에 모두 입이 닫혔다.

잠깐의 침묵.

그 속에서 한 의원이 김대성 의원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의원님, 혹시 백형욱 쪽 소식 들어온 것 없나요?”

“없어.”

김대성 의원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더 묻지 말라는 뜻으로 담배를 물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게 김대성 의원이다.

그는 직접 총을 들고 백형욱 의원을 저격했으니까.

한 의원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한다.

“하, 씨발. 백형욱. 남자다운 척은 다 하더니 뒤끝이......”

백형욱 의원에 관한 뒷말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러던 중 한 의원이 목소리를 낮추며 묻는다.

“그런데, 저놈은 왜 온 거야?”

“누구?”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

벽에 기대고 서서 휴대폰을 보는 성윤이 있었다.

의원들이 수군댔다.

“저놈 백형욱한테 붙었었잖아?”

“그러네? 왜 온 거지?”

주진만 원내대표의 계파 주요 인물이 모인 자리다.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무명의 초선 의원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백형욱한테 붙었다가 원내대표한테 붙었다가, 초선 새끼가 참......”

“저런 새끼들이 오래 가는 것 봤어? 오래 못 가.”

혀를 끌끌 차며 성윤을 욕하는데 한 의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저놈이 백형욱에게 붙었다고 생각하는 게 이유가 있잖아.”

“어?”

성윤은 백형욱이 위기였을 때 사채업자를 잡아서 해결해줬었다.

그 일을 기억하며 의원들이 눈을 깜빡였다.

“혹시 이번에도......”

“설마, 해결사도 아니고.”

하지만 기대는 된다.

속닥대던 그들의 시선이 모두 성윤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성윤은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성윤은 다시 휴대폰에 집중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성윤에게 꽂혀 있다.

그들 모두는 당장 달려가서 성윤의 어깨를 흔들며 묻고 싶었다.

‘혹시 이번에도 방법이 있어? 그래서 온 거야?’

하지만 참는다.

보는 눈이 많아 체면을 차리느라......

그리고 물었다가 ‘방법 없는데요.’라는 절망적인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똑같았다.

-제발, 이번에도 해결을 해줬으면......

그때, 주진만 원내대표가 들어왔다.

의원들이 주진만 원내대표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그런데, 주진만 원내대표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빠르게 걷는다.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주진만 의원을 쫓았다.

‘인사를 저렇게 대충 받는 사람이 아닌데. 뭐지?’

주진만 의원이 다가간 곳은 성윤의 앞이었다.

그러자 백형욱 의원을 배신하고 온 의원들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설마? 설마? 설마!

주진만 원내대표가 크게 웃으며 성윤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고생했어. 하룻밤 만에 해결할 줄은 몰랐어.”

주진만 원내대표가 다른 의원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백형욱 문제, 해결됐습니다! 이성윤 의원이 해결했습니다!”

우울했던 분위기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뀐 것은 잠깐이었다.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은 현장, 상기된 얼굴로 성윤을 끌어안는 의원도 있었다.

< 가장 중요한 것.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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