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56화 (56/300)

< 가치. - (4) >

주진만 원내대표가 그녀를 소개한다.

“룸살롱의 마담이야.”

“설미혜라고 합니다.”

“이성윤입니다.”

조금 의아했다.

그녀의 나이는 어리다.

그런데 정재계의 정보를 주무르는 룸살롱의 마담이라니.

인테리어비만 해도 수억은 들었을 것 같은데......

설미혜가 성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익숙하게 잔을 놓더니 양주를 채운다.

그리고 얼음을 넣어 성윤의 앞에 놓는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제 나이에 이런 가게의 마담이란 것보다 의원님이 훨씬 신기하니까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소파를 치며 웃는다.

“그렇지. 이 의원이 더 신기하지. 이십 대에 지역구 의원이라니. 하하하하.”

웃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웃나 했더니 술이 나오니까 즐거운 거다.

술이 놓이자 기다렸다는 듯 홀짝이기 시작했다.

설미혜가 성윤을 보며 묻는다.

“백형욱 의원과 손을 잡은 사람이 궁금해서 오셨다고요?”

“네.”

“아쉽네요. 웃음을 사거나 꽃을 꺾으러 오셨다면 아가씨들도 좋아했을 텐데.”

“꽃을 꺾어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성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조용히 말했다.

“2차.”

“아......”

그걸 꽃을 꺾는다고 표현하다니.

잔인하게 느껴졌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그건 됐습니다. 정보나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영웅호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발목 잡힌 사람들을 숱하게 봤다.

비록 남자 국회의원들끼리는 쉬쉬하는 관례가 있지만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게 바지 벗은 이야기다.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고.

성윤이 관심 없다는 뜻을 보이자 설미혜가 다리를 외로 꼬았다.

“우리는 접대문화의 최상층에 있어요. 당장 매출을 올리는데 급급해하지 않아요. 고객의 만족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고객의 정보를 이유 없이 팔지 않죠. 술에 취해 한 말도 지켜진다는 신뢰, 그게 우리 가게가 유지되는 바탕이니까요.”

성윤은 피식 웃었다.

정보가 있다는 걸 미끼로 불렀으면서 신뢰 어쩌고저쩌고 개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웃기기만 했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본론으로 가죠.”

성윤은 그녀의 속마음을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을 주면 정보를 내놓을 것인지, 그 진심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이성윤은 거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 지금 잡아둬야 해.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55.5세.

3선 이상 의원들만 놓고 보면 그 연령은 더 올라간다.

그래서 국회의사당을 노인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언제 병들어 누울지 모를 의원들.

그런 점에서 성윤은 매력적이다.

낙선하지 않고 승승장구한다면 권력의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른다.

설미혜는 성윤의 옆에 붙어 그 시간만큼 꿀을 빨 계획인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한다.

“계약하고 싶어요.”

“계약?”

“우리 가게는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검사장, 국정원 및 고위 관료, 지방경찰청장과 대기업 임원 등이 드나드는 곳이에요.”

“그래서요?”

“인사 문제로 고민하는 관료도 있고 법안 문제로 골머리 썩는 기업인이 있기도 하죠.”

성윤은 헛웃음을 지었다.

‘청탁이야?’

기본 술값만 천만 원이 되는 가게.

이런 곳에 어떤 놈들이 오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술집 여자의 치마폭에 쌓여 청탁이나 하는 놈들이었다.

“그래서요?”

삐딱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설미혜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테이블의 벨을 눌렀다.

곧 웨이터가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온다.

서류봉투는 설미혜에게 건네졌다.

그녀가 주진만 원내대표를 향한다.

“대표님, 젊은 사람들끼리 조용히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죄송해요.”

간드러진 목소리에 주진만 원내대표는 고개를 끄덕인다.

“술만 준다면야 뭐. 흐흐.”

그는 웨이터를 따라 다른 방으로 이동한다.

그러자 그녀가 들고 있던 서류 봉투가 성윤의 앞에 놓였다.

성윤은 서류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회원 가입 신청서?’

룸살롱 회원 가입 신청서다.

VVIP라고 적혀 있다.

아래에는 멤버십 카드가 붙어 있고...

신기한 점은 가입할 때 돈을 내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돈을 준다.

그것도 1억 원.

“성함을 적거나 사인하실 필요는 없어요. 서류 아래 있는 카드가 약속이니까요. 보통 VVIP는 정당의 지도부 이상에만 적용되는 것인데......”

이 돈을 받는 대가로 청탁을 들어 달라는 것이다.

“가입해야 백형욱 의원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려주겠다는 뜻인가요?”

“네, 우리도 얻는 게 있어야 하죠.”

그녀는 생긋 웃었고 성윤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거래를 거절하면?’

불이익은 없다.

국회의원이 술집 마담에게 휘둘리면 병신이다.

그런 놈은 배지 반납하고 은퇴해야 한다.

생각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꿈속에서 이런 곳이 있었나?’

없다.

꿈속의 성윤은 꽤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갔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양아치가 주변에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럼, 사라졌다는 거지?’

성윤은 눈동자만 움직여 가입 신청서를 향했다.

그리고 신청서에 적힌 내용을 쭉 읽으며 묻는다.

“카드를 뜯으면 가입이 되는 건가요?”

“네.”

“뜯지 않으면?”

“글쎄요.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아서요.”

확신에 찬 목소리.

1억이란 돈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나 보다.

어쩌면 그동안의 남자들이 그녀의 미소에 홀렸을 수도 있고.

성윤이 신청서를 들며 말했다.

“공기가 안 좋아서 코가 막히네.”

“네?”

종이를 코에 대고 코를 풀어버렸다.

그리고 콱콱 구겼다.

예상하지 못한 성윤의 행동에 설미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의원님?”

“1억? 날 매수하려면 턱없이 부족하네요.”

그녀가 억지로 미소 지으며 묻는다.

“얼마를 더 원하시는 거죠?”

“글쎄요. 해외에서 뛰는 우리나라 축구 선수 연봉이 60억이랍니다. 내가 그 정도 국위 선양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1억이 뭐예요? 적어도 30억은 가져와야 고민이라도 해보지.”

30억이라니......

분명한 거절이다.

설미혜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화를 참는지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윤은 손에 쥐고 있던 구겨져 공처럼 말린 종이를 툭 테이블에 던졌다.

데구루루 나뒹굴던 종이가 그대로 멈췄다.

적막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내 가치를 이렇게 계산하다니 우습지도 않네.”

“...예의가 아니지 않나요?”

“예의?”

성윤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살벌하게 들렸다.

뚝 웃음을 멈춘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국회의원 앞에 두고 정보 팔아 청탁하는 것은 참 예의 있는 행동이네요?”

“......”

“접대 문화의 최상층에서는 이런 게 예의인가 봐요? 예의 두 번 있다가는 큰일 나겠네.”

설미혜의 얼굴은 붉게 변해 있었다.

“지, 지금 그 말씀은 이 일을 무시하는 건가요?”

성윤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룸살롱에서 뇌물 주고 청탁하는 것도 일인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아서 말하는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건 피땀 흘려 일한 분들이 할 수 있는 말이지 당신처럼 쉽게 사는 사람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그저 돈과 권력의 노예지.”

“의원님!”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성윤은 손을 흔들며 룸을 벗어난다.

“앞으로는 보지 맙시다.”

“백, 백형욱 의원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됐습니다. 알아서 해결할게요.”

성윤은 룸을 벗어났다.

문 앞에 서 있던 웨이터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안에서 일어났던 소리를 들었는지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일하는 직원에게까지 짜증 부릴 생각은 없었다.

성윤이 엷게 웃으며 물었다.

“원내대표님 어디 계세요?”

“옆방에 계십니다.”

성윤은 웨이터가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다.

술이 좋았는지 상당히 만족한 표정으로......

“야기 끝났어?”

“죄송합니다. 거절했습니다.”

“아, 응, 뭐......”

거절했다는 말에 주진만 원내대표는 당황한 듯했다.

말끝을 흐린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술은 나중에 제가 사겠습니다.”

“아, 아냐. 나도 갈 거야. 같이 나가지.”

성윤은 몸을 돌렸다.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고급 인테리어를 해도 담배 찌든 내는 사라지지 않는다.

각 방에 앉아 있을 사람들이 역겹다.

성윤의 뒤를 쫓으며 주진만 원내대표가 말한다.

“백형욱 뒤에 누가 있는지는 확인해야 하지 않아?”

“그것 때문에 결탁하고 싶지는 않아요. 뒤에 있는 사람은 제가 알아내겠습니다.”

“어?”

“보고 드릴게요.”

성윤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주진만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이런 말 하면 민망하지만, 난 자네가 저 회원권을 거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자네는 자네의 정치를 위해 발을 들이지 않았으면 해서......”

“이해합니다.”

정치는 돈이 많이 든다.

정보도 필요하다.

성윤도 꿈속에서 본 미래와 속마음을 듣는 능력이 없었다면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핑계다.

뇌물을 받은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복도를 빠져 나가는 성윤의 뒷모습을 설미혜가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완벽히 사라지자 그녀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거절당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낮고 음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마음에 들어요. 손님으로서는 재수 없지만 국회의원으로서는 괜찮네요.”

-허허, 설 마담의 마음에 들다니 대단한 놈이네.

“제가 물장사하는 년이지만 나라 걱정은 하니까요.”

그 시각, 차에 오른 성윤은 정우에게 룸살롱에서 있었던 일을 가볍게 전했다.

정우의 눈이 쓸데없이 커진다.

“설미혜를 만났다고요. 설미혜요?”

“누군지 알아?”

“모르는 의원님이 더 이상한 거 몰라요?”

정우는 휴대폰을 들고 뭔가를 검색하더니 성윤에게 내밀었다.

스무 살 초반의 설미혜가 보인다.

룸살롱에서 봤을 때는 청순과 섹시가 어울러져 보였는데 해맑은 어린 모습은 때묻지 않아 보였다.

“뭐하던 사람인데?”

“십년 전인가? 청순가련으로 떴던 여배우예요. 갑자기 사라져서 뭐하나 했더니 룸살롱하고 있었네요.”

정우의 입에서 설미혜의 필모그래피가 줄줄 읊어졌다.

그런데, 들어도 몰르겠다.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서......

“예쁘긴 하더라.”

“싸인이라도 받아 오시지.”

“미안.”

“나중에는 저도 데리고 들어가 주세요. 꼭.”

“볼 일 있겠냐. 악담을 퍼붓고 왔는데.”

“악담이요?”

“그런 거 있어.”

정우는 시동을 걸었고 성윤은 팔을 머리에 대며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정우가 핸들을 틀며 물었다.

“백형욱 뒤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찾을 거예요?”

“글쎄.”

성윤은 설미혜의 속마음을 들었다.

그래서 백형욱의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재벌 출신 박무혁 의원의 형 박채준 본부장과 민국당.

‘박무혁 의원의 형이라......’

처음 백형욱 의원이 입을 뻥끗한다고 했을 때는 위기로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전화위복.

기회가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정우야, 백형욱 의원이 정말 고마워.”

“네?”

“지은 죄가 크잖아. 그만 괴롭히고 보내줘야지.”

정우는 이해 못 할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말은 고맙다고 하는데 끝장내버리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

백형욱 의원의 집.

65평의 아파트.

거실은 넓지만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었다.

개수대에는 설거지하지 않은 식기가 가득했다.

백형욱 의원은 식탁에 앉아 땅콩을 까먹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지금은 실업자가 된 그의 보좌관이다.

“오늘 연락 몇 개 왔어?”

“송 의원이랑 석 의원에게 왔습니다.”

“뭐래?”

“다른 말 하겠어요? 제발 한번 만나자고 하죠.”

백형욱 의원이 킬킬킬 웃는다.

“오금이 저리는 구만. 연락할 때는 피하더니 개새끼들.”

백형욱 의원은 휴대폰을 들어 화면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미간을 찌푸린다.

“보좌관아, 기자 새끼들 연락해. 뭐 하는 거야? 기사 안올리고.”

이미 기사는 많이 뿌려졌다.

어뷰징 기사까지 생각하면 하루에 몇백 개가 오르내리는 중이다.

하지만 부족한가 보다.

“기자 연락할까요? 더 뿌리라고?”

“해야지!”

보좌관이 기자들에게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손에 든다.

그런데 그의 휴대폰이 부르르 떨린다.

“잠시만요. 민국당 측에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뭐래?”

보좌관이 화면을 슥슥 만지더니 말을 이었다.

“어? 폭로할 이름이 들어왔는데요. 두 명......”

“두 명?”

“네, 그 두 사람이 의원님과 함께 있는 사진이 필요하대요.”

백형욱 의원이 땅콩을 아그작 씹었다.

“아주 작살을 내려 하는구만.”

세상의 시선은 백형욱 의원에게 박혀 있다.

누가 연루됐는지 궁금한 거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백형욱 의원과 찍힌 사진이 돌면 헤드샷이다.

“말해. 그 두 명이 누구야?”

“박무혁 의원과 이성윤 의원이요.”

“이성윤?”

박무혁을 공격할 것은 예상했다.

그는 박채준 본부장의 동생.

재벌들의 재산 싸움은 살벌하니까.

백형욱 의원이 땅콩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성윤은 왜? 피라미 새끼가지 건드려야 하나? 뭐, 돈만 준다면야......”

지이이잉.

백형욱 의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쥔다.

발신 번호를 보더니 픽 웃는다.

“양반은 아니야.”

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이성윤입니다.

그는 방금 이성윤을 타깃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모른 척 태연히 말하고 있다.

차분히 친절하게.

“어, 그래.”

-힘든 시간 보내시는데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마음 알아. 지금은 눈치를 봐야 할 때고.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요.

“이상한 소문?”

-의원님이 법관 시절에......

백형욱 의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전화기를 잡은 손은 초조하게 떨린다.

이어지는 성윤의 목소리는 신문 기사를 읽듯이 건조했다.

-...피고인의 가족을 그런 식으로 건들었네요.

“너, 너 뭐야? 뭔데 그걸 알아! 뭐냐고 이 개새끼야!”

백형욱 의원은 성윤을 피라민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점을 뜯어 먹는 피라냐였다.

< 가치.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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