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 - (2) >
김대성 의원이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입을 연다.
“무슨 말이야? 논란을 더 키우자는 거야?”
“네.”
김대성 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잘못이 없으니까 진실이 밝혀지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건 진실을 가리는 게임이 아니야! 이유 없는 살생부야! 죄목은 배신한 죄! 씨발......”
김대성 의원이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이미 헝클어진 머리는 자다 깬 것처럼 변한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한숨을 푹 내뱉으며 물었다.
“이성윤 의원,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뭔가?”
성윤은 잠시 입을 닫고 김대성 의원과 주진만 원내대표를 바라봤다.
둘 다 좋은 정치가는 아니다.
권력욕만 있는 김대성 의원.
민생은 뒤로하고 술만 마시는 주진만 원내대표.
하지만 지금 성윤에게는 필요한 자들.
정치는 머릿수 싸움이다.
사소한 법안 하나 통과시키려 해도 동의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게다가 다가올 공천.
이 두 사람의 역할은 크다.
“백형욱 의원은 기자 회견을 연다고 했어요.”
김대성 의원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보며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한다.
“알아.”
“연다고만 했어요. 일정은 잡지 않았고요.”
“어?”
김대성 의원의 자세가 다급히 바뀌었다.
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더니 기사를 찾아본다.
사실 확인을 위해서다.
“진짜 그러네?”
“복수하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여요.”
주진만 원내대표와 김대성 의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똥이 튀는 곳에 있다 보니 마음이 급해서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
김대성 의원이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원하는 것을 해주면 해결되는 거겠네. 원하는 것은......”
“무죄겠죠. 또는 집행유예.”
안도해 있던 김대성 의원이 또다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씨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판사와 검사를 포섭할 수도 없지만 포섭해도 문제가 된다.
다시 조용해졌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백형욱의 의도는 알겠어.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백형욱 의원의 살생부에 들어갈 이름을 우리가 적을 수 있으면 어떨까요?”
주진만 원내대표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가 살생부를 적는다?”
“논란이 분노가 되고 사람들이 치를 떨 때......백형욱 의원의 입에서 원내대표님의 정적 이름이 쏟아져 나온다면......”
당권을 쥘 수도 있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김대성 의원의 눈에는 욕망이 깃들고 있다.
두 사람은 앞길에 놓인 돌덩이를 생각하는 중이다.
주진만 대표가 마른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백형욱의 입을 마음대로 움직일 복안이 있다는 건가?”
“네.”
“그게 뭐지?”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정보가 있기는 한데 말씀드리기에는 시기상조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성윤은 이곳에 오기 전 ‘리얼팩트’의 대표가 될 우명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었다.
“대한당 의원 중에 연루된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요?”
-그렇지는 않은데요. 거기까지 까발려지면 백형욱은 한국에서 못 살아요.
한국에서 못 살 정도로 큰 죄.
우명진 기자가 갖고 있다.
주진만 원내대표와 김대성 의원은 정보의 출처를 캐묻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인지 언질만 주게.”
하지만 성윤은 입을 꾹 닫았다.
이들이 알게 되면 우명진 기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것.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물론 이 두 사람이 그렇게 악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인의 정점이라는 국회의원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기자 하나 생매장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성윤이 가만히 있자 주진만 원내대표가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논란을 분노로, 치가 떨릴 정도의 분노로......”
주진만 원내대표의 눈에 살생부에 담을 여러 이름이 스치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를 박살 낼 수는 없을 거다.
연루된 사람이 많았지만 대한당의 도덕성은 쓰레기가 되고 정말 대물당이 된다.
그럼, 지지율이 콘크리트를 깨고 지하에 처박힐 수도 있다.
적당히, 당의 지지율에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거슬리는 인간들을 치워야 했다.
‘민국당 이름을 좀 넣어서 균형을 맞춰볼까?’
주진만 원내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어려운 일이다.
백형욱 의원은 민국당 사람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김대성 의원이 입을 열었다.
“위험부담이 커. 잘못되었을 경우에 백형욱이 회까닥 돌아버리면......”
성윤이 픽 웃었다.
“회까닥 돌아버리지 않아도 의원님의 이름은 1번으로 거론할 거예요. 이 방법이 의원님께는 가장 안전할 것 같은데요.”
“젠장.”
김대성 의원이 시선을 피했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윤 의원, 김대성 의원과 나는 불씨를 키우지. 어떤 소방관이 와도 끌 수 없이 거대한 불,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큰불이 될 거야.”
“그럼 저는 백형욱 의원의 입을 꿰매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실과 바늘을 구해오겠습니다.”
침울하게 시작됐던 회의는 기회를 찾으며 끝났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테이블에 두 손을 짚고 일어서며 말한다.
“그럼, 이제 술 마실 시간인가?”
이 와중에 술이라니......
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콜의 신이 있다면 천국행 티켓을 끊어줄 것 같다.
겨우겨우 거절한 후 차에 올랐다.
서안시로 가는 동안 정우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끝난 것은 톨게이트에 접어들 때였다.
조용히 듣던 정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다 의원님이 생각한 거예요?”
“뭐...그렇지.”
“죄송하네요. 제가 생각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정우의 표정은 착잡하다.
병풍 역할을 하는 게 답답한 것 같다.
“지금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으니까 힘 빠지지 마.”
신호에 걸렸다.
정우가 머리를 쓸어 넘긴다.
“제가 잘하는 것은 아는데요. 모시는 국회의원이 사기 캐릭 같아서 힘드네요.”
“사기 캐릭은 무슨......”
“힘내야 하니까 오늘 밤에는 햄 볶음밥 먹고 자야겠어요.”
“힘내는 것이랑 햄 볶음밥이랑 무슨 상관이야?”
“햄과 힘, 비슷하지 않아요?”
“전혀.”
쓸데없는 말을 들으며 집 앞에 도착했다.
정우가 떠나고 성윤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목에서부터 등, 허리까지 우두둑 시원한 소리가 들린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몸이 다 쑤셔온다.
집에 들어가기 전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멀리 휘청휘청 오는 사람이 보였다.
슬쩍 보면 파김치 같다.
가수 지망생에서 연습생이 된 전소희다.
성윤을 발견한 그녀가 꾸벅 허리를 굽힌다.
“안녕하세요.”
“힘들어 보이네요? 연습생 생활이 쉽지 않은가 봐요?”
“아, 많이 혼났어요. 춤 못 춘다고... 전 노래를 하고 싶은데 춤은 왜 춰야 하는지......”
처음에는 성윤을 피하던 그녀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상당히 친숙하게 반응한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기 의원님...정말 죄송한데요. 맥주 한 잔 사주시면 안 될까요?”
“맥주?”
“...배가 고파서요.”
“식사 안 했어요?”
“회사에서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교통카드만 남기고 다 뺏어갔어요.”
성윤은 크게 웃었다.
“지금도 말랐잖아요. 다이어트할 곳은 없어 보이는데요?”
“그쵸? 그런데, 제가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텔레비전에 나오면 부해 보인다고......오늘만 딱 마지막으로 먹을 테니까......”
정말 배고파 보였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고 눈도 쑥 들어가 있다.
성윤이 골목 끝에 있는 편의점을 보며 말했다.
“가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연신 허리를 굽혀댔다.
성윤은 걸었고 그녀는 뒤에서 쫓아온다.
성윤이 걸음을 멈추면 그녀도 멈춘다.
꼭 오랜만에 주인을 본 강아지 같다.
그렇게 편의점에 도착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밤 10시라 그런지 학원이 끝난 학생들이 꽤 많이 보인다.
그녀가 학생들 사이에 있으니 분간이 안 된다.
‘연예인 될 사람이라 그런지 동안이기는 하네.’
그녀가 바구니를 들며 묻는다.
“비싼 거 골라도 되나요?”
“뭐든.”
편의점에서는 성윤도 재벌이다.
하지만 그녀가 고른 것은 견과류였다.
맥주 앞에서는 고민한다.
손에 쥐었다가 놓았다가......
그러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을 쥔다.
아무래도 다이어트가 걱정되기는 한가 보다.
그래서 성윤은 또 육포를 골랐다.
치즈 스틱도 쥐고 삼각 김밥도 넣었다.
열량 높은 음식은 하나하나 바구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맥주와 탄산음료.
그녀가 성윤을 흘겨본다.
“이런 말 하면 죄송하지만 악마 같아요.”
“자주 들어요. 하하하하.”
놀리는 맛이 쏠쏠하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았다.
바람이 분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요. 곧 추워지려나 봐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사람들의 복장도 시시각각 변한다.
전소희가 견과류를 뜯으며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다.
“제가 이 동네 2년 살았거든요?”
“오래 살았네요?”
“집에 오는 길에 불이 켜진 아파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아파트는 정말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요.”
“......”
“1년 전에는 나중에 살 집을 정해놓고 가격을 알아본 적도 있어요. 그때 저 아파트 가격이 2억 4천이었는데요. 올해는 2억 8천이에요. 제가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은 돈이 2천인데......”
“......”
“저 사람들은 뭘 해서 몇억씩 되는 집에 살까 부럽기도 해요. 데뷔해서 성공하면 저도 저런 곳에 살 수 있겠죠?”
서울에 비하면 오른 것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크게 오른 것처럼 여겨졌다.
성윤은 조용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
“있잖아, 장판교 장비.”
“장비? 아, 그......”
“맞아, 맞아.”
“진짜 리얼하게 소리 잘 지르게 생겼네.”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면 귀가 더 쫑긋해진다.
‘그런데 리얼하게 소리 잘 지르게 생긴 것은 뭐야? 무섭게 생긴 것인가?’
무섭게 생긴 것은 정우다.
눈이 쭉 찢어지고 상당히 날카롭게 보이니까.
성윤은 자신의 외모가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호감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 눈에는 아닌가 보다.
용기를 낸 학생 한 명이 다가왔다.
우물쭈물 입을 연다.
“국회의원 장비 맞죠? 아, 아니 이성윤 국회의원님 맞죠?”
“맞아. 알아 봐줘서 땡큐.”
“맞대! 맞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학생 세 명이 우르르 다가왔다.
꺅꺅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아이돌의 기분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요즘에 되게 핫하세요. 아세요?”
“핫해?”
학생이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한다.
검색어는 장판교 이성윤 분노.
성윤이 시위대 앞에서 소리 지르던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 나온다.
얼굴만 확대해서 목젖이 보일 정도다.
쭉쭉 내리자 여러 합성장면이 보였다.
득점에 실패한 축구선수 앞에서 소리 지르기.
병역비리 연예인에게 소리 지르기.
갑질 논란을 빚었던 재벌 앞에서 소리 지르기 등등등.
“이게 뭐야?”
“장판교 장비요! 우리 나이 때 애들은 다 알아요.”
인지도가 이상한 곳에서 올라가고 있다.
한 학생이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터치터치하더니 새로운 사진을 보인다.
“전 이 사진을 제일 좋아해요.”
제목은 ‘이것이 샤우팅’
성윤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에 대고 소리 지르는 합성 사진이다.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저희가 선거할 수 있으면 의원님을 꼭 뽑을 거예요. 꼭꼭”
“아, 고마워. 무럭무럭 자라서 꼭 투표해라. 놀러 가지 말고.”
“네!”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
학생 하나가 휴대폰을 들고 다가온다.
사진 찍어주는 거야 뭐......
성윤이 학생들과 나란히 섰다.
졸지에 전소희가 카메라맨이 됐고.
한 학생이 말한다.
“소리 질러 주세요.”
“그건 좀........”
“제발요!”
“네가 질러.”
“제가 지르면 안 예쁘게 나오잖아요.”
“그럼, 난 예쁘게 나오냐?”
사진을 찍고 학생들에게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물었다.
이제 고등학생들, 아직 어리다.
그래서 시험 없는 세상이나 대학 없는 세상을 말할 줄 알았는데......
“공평한 세상이요.”
“맞아, 맞아. 불공평해.”
“공부 죽어라 하면 뭐해요. 어떤 연예인은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좋은 대학 합격하던데.......”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또?”
“취직 잘 되는 세상이요. 돈도 많이 벌고.”
“응?”
아직 고등학생들이다.
한창 꿈을 꿔도 모자라다.
그런데, 취직과 돈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조금 슬펐다.
잠시 꺅꺅거리던 학생들이 나중에 꼭 투표하겠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전소희가 부러운 눈으로 성윤을 본다.
“저도 의원님처럼 누가 알아볼 날이 올까요?”
“당연하죠. 유명해질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잠시 물을 만지작대던 그녀가 뭔가 떠오른 듯 입을 연다.
“아, 아까 회사에서요. 기자들 다니면서 하는 말 들었거든요?”
“기자들?”
“네, 오늘 아이돌 가수 촬영이 있어서 방송국 사람들하고 기자들이 많이 왔었거든요.”
“그런데요?”
기억을 떠올리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올라간다.
“연습 때문에 복도를 오가는데 기자 두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백형욱 맞죠? 요즘 난리 난 사람.”
백형욱의 이름이 왜 나왔는지 모른다.
성윤은 눈을 가늘게 하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 맞아요. 백형욱.”
“의원님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몰래 들었어요. 거리가 멀어서 확실하지는 않은데 ‘꼭두각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꼭두각시?”
< 가치.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