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확의 계절. - (2) >
***
벤처 사업가 신중석이 공장을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잠을 못 잤는지 다크서클이 폐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표정은 밝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나 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성윤이 사장을 소개했다.
“이영호 사장님이세요.”
신중석과 사장이 악수를 했다.
사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신중석이 벤처 사업이란 말을 들어서다.
‘벤처라......’
벤처붐이 일었던 때가 있다.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고 튀어나왔었다.
하지만 벤처 정신은 없었다.
기업을 사고파는 기법만 발전했을 뿐이다.
벤처 사업가들은 누가 더 비싼 값에 회사를 넘기느냐에 혈안이었다.
성공한 사람은 돈을 긁어모았고 하룻밤 술값으로 몇천만 원씩 흥청망청 뿌려댔다.
하지만 공장들은 어려워졌다.
바뀐 주인이 헐값을 요구하며 목을 조여 왔다.
거부하면 계약이 해지됐다.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했지만 새로운 계약을 따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계에 먼지만 쌓여갔다.
사장이 생각한 벤처는 딱 거기까지였다.
회사를 팔아 돈 버는 사람들......
그 속마음을 성윤이 듣고 있었다.
“제가 보증할게요.”
“네?”
“벤처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실 필요는 없어요. 똑같은 기업인으로 봐주세요.”
“아, 네.”
사장의 목소리가 떨떠름하다.
입으로 하는 보증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중석 대표 회사의 지분을 10%나 가진 사람을 알고 있어요.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거예요.”
“아, 그래요?”
사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10%는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이다.
완벽히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안전망은 있다는 거다.
생산 시설을 둘러봤다.
휴대폰 부품을 만들던 공장이라 그런지 연관되는 것이 있나 보다.
다시 사장실로 돌아온 신중석은 계약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성윤과 정우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 일은 성윤의 손을 떠났다.
두 사람의 몫이다.
흡연 구역으로 향하며 정우가 묻는다.
“그런데, 다른 공장은 어떻게 할 거예요? 신중석 대표 회사로 모든 공장을 책임질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신생 업체들 조사해봐. 그중에 서안시로 데려올 만한 것 있는지 찾아보게.”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예요.”
“그거라도 해봐야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가장 좋은 방법은 사장이 언급했던 구조를 바꾸는 거다.
정당한 돈을 받고 하청을 받는 것.
하지만 수십 년간 만들어진 세상을 바꾸기엔 성윤의 힘이 부족했다.
법안을 만든다고 해도 통과될 리 없다.
아직은......
정우는 담배를 피웠고 성윤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이것저것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봤던 기업들을 찾는 거다.
성윤이 비서관을 할 때 박대철 의원은 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있었다.
그래서 어느 회사가 성공했는지 대략 기억한다.
성공 사례도 봤고 성공한 것도 봤으니까.
문제는 회사의 이름만 알고 있다는 거다.
이들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검색에 검색을 이어가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 이건 지금 있네.’
가방을 만드는 회사다.
사장이 예술가 병에 걸려서 독특한 디자인을 고수한다.
성윤이 처음 그 가방을 봤을 때 떠올린 모양은 과자 부스러기였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팔리지 않다가 어떤 연예인이 들고나온 후로 폭발적으로 팔렸다.
개성이 있다나 뭐라나 하면서......
‘대박난 시기가 언제였지?’
머릿속을 짜내봤다.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하고 짜내서 겨우겨우 떠올렸다.
‘올해 말.’
몇 달 남지 않았다.
그전에 서안시의 공장과 연결해야 한다.
성윤이 정우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이 회사부터 알아봐.”
“이게 뭐예요?”
“가방 회사야.”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게 가방이라고요? 건빵인형 같은데......”
그 마음 이해한다.
성윤은 과자부스러기로 봤었으니까.
건빵인형이면 후한 점수다.
“무슨 감정인지 알겠으니까 더 묻지 말고 알아봐.”
정우는 미심쩍은 눈으로 성윤을 보면서 가방 회사의 이름을 수첩에 적는다.
그러던 중 신중석과 공장 사장이 주차장으로 나왔다.
다가온 사장이 말했다.
“의원님 덕에 좋은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요. 그저 두 분이 승승장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사실 저희는 벤처를 좋아하지 않아요. 초도 수량도 적고......”
회사가 성장하기 전까지, 특히 수량이 적을 때는 공장이 갑이다.
적은 수량으로 공장을 찾았다가 쫓겨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게다가 사장은 벤처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았다.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의원님을 믿었고 신 대표의 진중한 눈에 신뢰를 느꼈습니다. 그게 이 계약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신중석도 성윤을 향했다.
“언제나 도움만 받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성공해도 서울 가지 말고 서안시에 있어주세요.”
“그럼요. 여기에 뼈를 묻을 생각이에요. 하하하.”
모두 크게 웃었다.
성윤은 신중석 그리고 사장과 악수를 한 후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려던 정우가 멈칫한다.
메시지가 왔는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화면을 물끄러미 보던 정우가 입을 열었다.
“오대민 의원 등산모임 멤버 조사하라고 지시하셨잖아요?”
“응.”
“여기요.”
성윤이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화면을 확인하는데......
‘어?’
등산모임의 멤버는 예상대로 화려했다.
거대 로펌의 변호사와 명문대의 교수들 등등.
여기까지는 놀랍지 않았다.
엘리트 중심의 오대민 의원이 사람을 평가하는 첫 번째 기준이 학벌.
어울리는 사람들의 가방 끈이 긴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경기도당 위원장과 만난다고?’
대한당의 경기도당 위원장은 꽤 큰 권력자다.
당에서의 위치가 탄탄한 것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
물론 꿈속을 기억하면 대선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지만......
어쨌든 오대민 의원이 경기도당 위원장과 어울린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의 오대민 의원을 철저한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멤버 어때요?”
“괜찮네.”
“그럼, 들어가는 것 확정?”
“응.”
성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대민 의원이 했던 속마음이 떠올랐다.
-제 발로 기어왔네?
한껏 협박적인 목소리......
그가 소모임 가입을 권유한 의도는 정확히 모른다.
좋지 않다는 것만 예상할 뿐이다.
하지만 들어가려 한다.
성윤은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어설픈 음모 따위야 오히려 이용할 수 있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우는 곧장 정효순 주임에게 다가갔다.
“주임 님, 이거 기사로 써줄 수 있을까요?”
“어떤 거요?”
정우는 휴대폰의 화면을 보였다.
성윤이 공장 생산 시설을 둘러보는 사진이다.
“의원님이 오늘 공장과 벤처 회사를 연결해줬어요. 공장과 벤처 회사의 상생을 돕는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기사 안 쓴지가 오래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정효순 주임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의욕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탁탁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효순 주임이 작성한 기사는 한동 일보 김미선 기자에게 갈 예정이다.
그럼 김미선 기자는 오타수정 정도만 한 후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를 올릴 거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언젠가 어느 정치인이 했던 말이 있다.
“홍보 기사가 선거 때의 한 표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는 보좌진 중 한 명에게 이런 일만 하라고 지시했다.
그 보좌진은 종일 기사를 쓰고 댓글을 달고 의원을 향한 찬양만 이어갔다.
보좌진의 월급은 혈세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는 모시는 국회의원의 홍보를 위해 일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권력자가 아니면 메이저 언론사에 이름 한 번 올리기 힘들다.
기껏해야 인터넷 작은 언론사나 SNS에 올릴 뿐이다.
한동 일보에 성윤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은 김미선 기자와 상부상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윤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서류를 손에 쥐었다.
아침에 정우가 가져온 지지율 조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의 지지율이다.
성윤이 이 지역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부차적인 것.
선거는 당의 지지율이 좌우한다.
다행인 것은 서안시 동구는 대한당이 강세다.
그럼, 성윤만 잘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다.
물론 변수는 존재한다.
우선은 공천.
정말 재수 없게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주진만 원내대표가 성윤에게 우호적이다.
게다가 전략기획위원장인 김대성 의원도 있고 사무총장인 박무혁 의원도 호의적이다.
더럽게 꼬이지만 않으면 공천은 걱정할 필요 없다.
다음은 민국당이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민국당은 서안시 동구를 먹기 위해 5선 의원이라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성윤에게 처참하게 깨졌다.
그야 말로 대망신.
분노한 민국당이 대선 급 전국구 정치 거물을 전략적으로 공천할 수도 있다.
그럼 진짜 코너에 몰리는 거다.
물론 확률은 희박하다.
어떤 거물도 성윤과 싸울 생각은 없을 거다.
성윤은 햇병아리지만 5선 의원을 물어뜯고 기어 올라온 사람.
그들은 성윤을 피할 거다.
햇병아리한테 지면 개쪽이니까.
성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재선을 향해 가는 길이 펼쳐지는 중이다.
길 위에 작은 돌멩이는 보이지만 걷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가볍게 밟아주며 산책하듯 갈 수 있다.
‘변수만 없다면......지금과 같다면......’
똑똑.
문이 열렸다.
정우가 들어온다.
“오늘 공장 갔던 거요. 기사 넘겼어요. 김미선 기자가 바로 올려준대요.”
성윤이 손에 든 서류를 책상에 놓으며 답했다.
“감사하다는 말은 했지?”
“당연하죠. 그리고 김미선 기자에게 제의한 게 있어요.”
“뭘?”
“의원님이 하시는 일이 상당히 의미 있잖아요? 활로를 못 찾는 공장과 신생회사의 만남. 그래서 이걸 특집 형식으로 구성하면 어떨까 해서요.”
“아까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잇는다.
“사람들이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특집 형식으로 이어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꽤 괜찮은 땔감이 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불씨가 죽었다 싶었을 때 의원님이 방송에 출연해서 기름을 부어주면 계속해서 활활 타오르는 거죠.”
성윤이 픽 웃었다.
“방송 출연은 기름을 붓는 게 아니라 찬물을 쏟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럼 애써 만든 불씨 다 죽어.”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흐흐.”
그때, 정우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김미선 기자요. 전화 왔어요.”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며 귀에 댔다.
“네, 국회의원 이성윤 보좌관 박정우입니다. 네, 기자님. 특집 하자고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정우가 성윤을 향했다.
“일단 오늘 보낸 기사 올라갔다고 하고요. 특집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대요. 일정 조율하고 다시 보고 드릴게요.”
“땡큐.”
특집기사가 몇 회에 걸쳐 올라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성윤의 인지도가 올라갈 것은 분명하다.
임기 1년짜리 초선 의원, 이제 그 짧은 계약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인지도를 높인 후 재선에 성공하면 굵직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도 있을 거다.
성윤이 휴대폰을 들어 기사를 찾아봤다.
‘어?’
특집 기사를 준비하는 한동 일보의 입김이 들어갔는지 성윤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떠 있다.
-이성윤 의원의 경제 살리기, 신생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정효순 주임이 쓴 기사다.
오랜만에 쓴 기사라고 했는데 참 맛깔나게 잘 썼다.
덕분에 댓글도 벌써 여섯 개나 달렸다.
-도와준 대가로 저 국개의원은 뭘 받았을까?
ㄴ 그래도 저런 거 하는 국회의원이 어딨냐?
-이 의원 불법체류자 문제로 싸웠던 장판교 장비 아님?
ㄴ 맞음.
-세금은 이렇게 쓰는 법.
-멋있네.
“반응 좋네요. 내일 아침이면 댓글이 백 개는 달려 있을 것 같은데요?”
정우도 기사를 보고 있었다.
성윤이 슬쩍 웃었다.
“댓글에 공감 잘 박아라.”
“옙.”
지이이잉.
책상 위에 놓인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짧은 진동, 메시지가 왔다는 거다.
이어서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언제 기사를 봤는지 시 의원들과 당원들의 응원 메시지였다.
이번엔 전화가 울린다.
발신번호는 전략기획위원장 김대성 의원.
“네, 이성윤입니다.”
-봐, 봤어?
...응원 전화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보다니요?”
-텔레비전 봐봐!
성윤이 눈짓을 보내자 정우가 리모컨을 들었다.
삑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에 켜진다.
속보라는 단어가 불길하게 보였다.
속보 : 백형욱 의원, 다 폭로할 것. 기자회견 예정.
“아, 아니 저게......”
정우가 말을 더듬는다.
백형욱 의원은 미성년자와의 스캔들로 불구속 수사를 받는 중이다.
그는 살기 위해 동료 의원에게 연락했었다.
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마지막 발악은 물귀신이다.
수화기 너머로 김대성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개새끼가 미성년자를 만난 게 자기만이 아니었다고 전부 폭로하겠대!
< 수확의 계절.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