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51화 (51/300)

< 수확의 계절. - (1) >

자, 이제 생각은 그만.

김미선 기자가 가져왔다는 정보를 들을 시간이다.

“윤채아 의원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죠?”

“그러니까요......”

김미선 기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서안시에 집을 계약했다느니, 공무원을 만나고 다닌다느니, 당 지도부에 손을 비비고 다닌다느니......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나중에도 정보를 물어다 준다.

김미선 기자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명백한 도전이잖아요.”

그녀는 진심으로 성윤을 걱정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윤이 자기가 싫어하는 윤채아에게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 거다.

성윤이 가만히 있자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복안은 있으신 거죠?”

“글쎄요. 윤채아 의원을 보면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나요?”

김미선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채아는 내년에도 이 바닥에 남아 있으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스스로 무너질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놔두려고요.”

“가만히 놔둔다고요? 지금 당 지도부를 만나고 다니는데......”

성윤이 손을 저었다.

“건물도 무너지면 먼지 날려요. 하물며 사람이면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지겠죠.”

계획은 있다.

다만 그 계획을 김미선 기자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녀는 기자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 해도 조심해야 한다.

성윤이 다리를 외로 꼬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저도 정보가 하나 있는데요.”

김미선 기자의 눈이 반짝였다.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는 특종에 가깝다.

“성종 전자에 정형곤 상무라고 있어요. 지금 검찰에서 수사를 받는 중이죠.”

정형곤 상무는 윤채아와 손을 잡았던 사람이다.

김미선 기자가 캐다 보면 빌미를 잡을 수도 있다.

그럼,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다.

“그 사람이 윤채아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이 정도만 말해도 김미선 기자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성종 전자와 정치인?’

연관되는 단어는 ‘정치자금’이다.

‘만약에 정말로 정치자금이라면 윤채아는 끝이야......이게 이성윤 의원의 복안이었던 건가? 자신은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

김미선 기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한다.

성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잔인하게 보였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킨다.

성윤이 윤채아를 대하는 태도는 배부른 사자가 쥐새끼를 앞에 두고 노는 것처럼 보여서다.

김미선 기자가 떠났다.

성윤과 정우는 업무를 마친 후 서안시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성윤이 슬쩍 국회의사당을 바라봤다.

주진만 의원은 월등한 표 차로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적절히 당대표를 견제하며 대한당은 안정세에 들어갈 거다.

이제 마음 놓고 선거를 준비할 수 있다.

“아, 정우야. 너 배지 달고 싶어?”

“네? 갑자기 무슨......”

김대성 의원은 주진만 의원이 스물네 표 차로 당선될 경우 뭐든지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성윤은 그에게 비례대표 공천권 하나를 얻어낼 생각이다.

“말해 봐.”

정우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앞으로도 배지 달 생각은 절대 없어요.”

“왜?”

“전 의원님 뒤에 숨어 있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저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해주세요.”

성윤은 더 권하지 않았다.

정우가 함께 배지를 달고 있으면 더없이 든든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저렇게 싫어하는데 뭐......

‘국회 내에서 내 편에 설 사람을 찾아야 해.’

생각을 마친 성윤이 정우에게 말했다.

“아까 말한 오대민 의원 있잖아?”

“네.”

오대민 의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이다.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한 국회의원.

성윤에게 등산 모임을 권했다.

“보좌관에게 연락해서 모임의 참여 멤버 좀 알아봐.”

“들어가시게요? 속이는 것 같다면서요?”

“이유를 알았으니 상관없어. 그걸 반대로 이용하면 오히려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유를 알았다니요?”

“오대민 의원은......”

성윤이 정우에게 설명을 이어가던 중 어느새 서안시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온 성윤은 정효순 주임과 정우를 불러 모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선거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곧 있으면 찬 바람이 불어올 거다.

눈이 쌓였다 녹으면 봄.

곧바로 선거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주임님은 민원이 들어오면 가벼운 것도 지나치지 말고 전해주세요.”

“네.”

“정우는 동구에서 지난 선거의 투표율하고 최근 지지율 확인해서 약한 곳을 찾아봐줘.”

“약한 쪽부터 가려고요?”

“가장 먼저 찾아왔다는 이미지를 줘야지.”

지지율이 높은 곳은 뻘짓만 하지 않으면 쉽게 폭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한 곳은 다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리소문없이 무너져 버린다.

사전에 약을 쳐야 한다.

국민들이 선거에 관심이 없을 때부터 물밑 작업을 해야 본격적인 선거가 들어갔을 때 도움이 된다.

물론 선거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살살 피해야 했다.

다음 날.

정우가 성윤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어제 말씀하신 가장 지지율이 약한 곳이요.”

“땡큐.”

서류를 착착 펼쳐 보는데......

폭락한 곳이 있다.

바로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다.

“불법체류자 문제로 지지율이 이상해졌어요. 원래 공장 근로자들이 의원님을 지지했었는데 이번 일로 철회를 하는 중이고요. 도심지역이나 여성들은 의원님을 지지하기 시작했어요.”

성윤은 서류에 집중했다.

대적했던 공장 사장들이 다른 공장을 선동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공단에는 1200개에 가까운 공장이 존재한다.

그들 전부를 움직일 수는 없다.

성윤이 턱을 매만졌다.

“여긴 가봐야겠네.”

정우가 자동차 키를 흔든다.

“바로 갈까요?”

***

탁탁탁, 복도를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한다.

그가 문 앞에 서더니 숨을 고르며 똑똑똑 문을 두드린다.

“들어와.”

낮은 목소리에 남자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사장님, 지금......”

“뭔데?”

“국회의원이 우리 공장에 온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누구?”

“그...이성윤 의원이요.”

사장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개새끼.”

“어, 어쩌죠?”

“뭘 어떻게? 오지 말라고 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갔다.

사장은 거칠게 책상 서랍을 열었다.

내지 못한 공과금 봉투가 어지럽게 보인다.

뒤적이며 담배를 찾았다.

한 개비를 꺼내 콱 입에 물었다.

뿌연 연기가 사무실을 채울 때 다시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2시에 온다고 합니다.”

“씨발, 그렇게 뽑아 달라고 아양 떨던 새끼가......”

중얼대던 사장이 날카롭게 남자를 노려보며 묻는다.

“너 누구 뽑았어?”

“전 투표 안 했는데요.”

“씨발, 난 이성윤 그 새끼 뽑았어. 그래서 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어. 어린 새끼라 다를 줄 알았더니만......”

남자가 씁쓸하게 웃는다.

“어차피 다 똑같죠. 국회의원들은 가난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잖아요. 들리지도 않을 테고요.”

“투표도 안 한 새끼가 말은......”

잠시 후, 성윤의 차가 공장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장과 남자가 성윤을 맞이한다.

사무실에서는 쌍욕을 하던 사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최고의 미소를 보인다.

“누추한 곳까지 오시고......”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라고요?”

“아, 네. 저희가 만드는 부품이......”

사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성윤은 공장을 슥 둘러봤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익히 알고 있던 외형과 다르지 않았다.

사장이 손으로 안을 가리킨다.

“들어가실까요? 어떻게 생산시설 견학이라도......”

“아뇨, 일하시는데 번잡하잖아요. 사장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저한테요?”

“네.”

정우가 조사한 것에 따르면 이 공장의 상황은 위태롭다.

전기세가 밀리고 있다.

가까스로 낸다는 느낌이다.

인건비 역시 마찬가지다.

밀리지는 않지만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한다.

모든 게 불법체류자를 쓸어버린 이후였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5평 정도의 공간.

책상 위에는 서류가 번잡하게 놓여 있다.

소파 역시 오래되어 낡아 보인다.

자리에 앉자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커피를 담아 가져왔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식어갔다.

성윤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장은 불편한 표정으로 성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못 참고 먼저 묻는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솔직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 예. 그럼요.”

“지금 이 공장에서 문제 되는 게 뭔가요?”

“네?”

성윤이 가져온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서안시의 불법체류자는 전국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요.”

경찰들이 쥐 잡듯이 쑤시고 있다.

정말 뿌리를 뽑을 기세다.

불법체류자들은 자기 국가로 떠나거나 서안시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외국인이 많은 동네조차 밤길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어요. 범죄율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낮아졌으니까요.”

“아, 네.”

사장의 표정이 찝찝하게 변한다.

성윤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전 불법체류자의 근절을 장점으로 보고만 있거든요. 그런데, 사장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

사장은 망설인다.

성윤이 재촉했다.

“말씀해 주세요. 말씀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어요. 어제와 똑같은 내일이 올 거예요.”

사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연다.

“먼저 지난 번 의원님께 까불었던 아니 대들었던 그 공장 사장들은 문제가 심했어요. 대놓고 불법체류자를 고용했으니까요.”

“그런데요?”

“구조를 아셔야 합니다.”

업체마다 규모 등에 따라 외국인 고용 비율이 있다.

일정이상을 고용할 수 없다는 거다.

“외국인의 인건비를 줄여서 한국인의 월급을 주고 있어요. 그래,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대기업에서 단가를 후려쳐요.”

“후려치다뇨?”

“헐값을 주면서 물건을 만들라는 거예요. 씨발, 그렇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협박해요. 물건을 만들어도 계속 하자가 있다며 빠꾸시켜요. 그런데 버틸 장사가 있나요?”

처음에는 예의 있게 말하던 사장이다.

그런데, 점차 흥분하더니 찰지게 욕을 담아 말한다.

그렇다고 성윤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잠자코 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품을 만들려면 자제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자제 값을 아낄 수는 없어요. 그건 다 돈 주고 사야 하니까요. 그럼, 우리도 이득을 남겨야 하는데, 어디서 남기겠어요?”

“......”

“처음에는 식비부터 시작해요. 좋지 않은 음식을 주는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화장실에서 쓰는 화장지까지 아껴야 해요. 직원들이 똥 싸고 똥 못 닦는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어떤지 알아요?”

그렇게 아끼고 아낀 다음은 결국 인건비다.

사장이 한숨을 푹 내쉰다.

“누가 자기 직원들 병신처럼 만들고 싶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열악한 환경이 조성됐고요. 이런 환경에서 한국 사람은 일 안 하려고 하고요.”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를 써야 했다는 거네요?”

“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기계는 돌려야 하니까요.”

우리는 동화 속에서 사는 게 아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피엔딩이란 자막이 내려오지 않는다.

해결된 문제에서 나타난 또 다른 문제를 지켜보며 살아가야 한다.

성윤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회 구조의 문제......대기업의 이기심을 뽑아버려야 하나?’

하지만 전체를 뒤바꾸기에는 아직 힘이 없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결해 가야 한다.

다행히 성윤은 꿈속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대기업 하청은 계속 받으실 겁니까?”

사장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동네는 대기업에 찍혔어요. 안 줘요.”

“그럼, 새로운 계약을 주선해 드릴까요? 그게 해결 방법의 하나가 될 것 같은데요.”

“새로운 계약이요?”

“물론 주선뿐이에요. 서로가 잘 맞아야 계약이 진행되는 거니까요.”

성윤은 휴대폰을 들었다.

“신중석 대표님? 이성윤 의원입니다.”

스마트 워치를 만드는 벤처 사업가 신중석이다.

-네, 의원님!

전화를 참 반갑게 받는다.

“사무실은 괜찮나요?”

성윤은 신중석의 사무실을 서안시로 옮기게 했다.

최고의 환경은 아니었지만 지하실에서 일하던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인사말을 하다가 성윤이 물었다.

“진행은 어디까지 됐어요?”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부품 공장 찾아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하하하하.

“부품 공장 찾는 중이라고 하셨죠?”

-네.

“바쁘지 않으면 이쪽 한 번 와주시겠어요? 여기가......”

대기업의 이기심으로 공장이 힘들어졌다면 벤처 기업과 연결해주면 된다.

성윤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성공할 벤처 기업이 정리되어 있었으니까.

이 공장을 시작으로 많은 공장과 벤처 기업이 상생하게 될 거다.

물론 이것만으로 본질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재벌 대기업의 탐욕을 박살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만으로도 서늘해진다.

성윤이 통화가 종료된 전화를 내려두며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사장은 눈을 깜빡거리며 성윤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속마음이 성윤에게 들려왔다.

-아까 욕한 거 취소. 뽑은 게 다행이네.

< 수확의 계절. -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