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48화 (48/300)

< 비일비재. - (4) >

아이들과 뛰어논 지 한 시간.

성윤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운동장에서 벗어났다.

박무혁 의원이 직접 다가와 수건을 건넨다.

“재밌지?”

보통은 ‘고생했어.’ 또는 ‘수고했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의 말은 다르다.

“아, 네. 재밌었습니다.”

성윤이 땀 닦는 걸 보며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열었다.

“사우나 하고 술이나 한잔할까? 어때?”

해가 떨어지고 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이어졌던 봉사활동의 끝이 보인다.

기자들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카메라를 챙기던 기자가 성윤의 옆으로 슬쩍 다가온다.

“의원님, 오늘 멋졌어요. 제대로 된 기사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기자는 인사를 전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박무혁 의원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우리도 가지.”

그런데, 아이들이 달려와 성윤의 다리에 달라붙는다.

정말 잠깐 놀았을 뿐인데 아쉬웠나보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어눌한 목소리로......

“가지이마아요.”

아이들의 얼굴만 봐도 미안했다.

그런데, 성윤은 아이들의 속마음까지 듣던 중이다.

함께 있어달라는 간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성윤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에 또 올 게. 약속할 게.”

“시러요. 시러!”

성윤이 애써 아이들을 달래던 중 ‘찰칵’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틀자 방금 떠났던 기자가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고 있다.

잠시 후, 성윤은 주차장으로 나왔다.

정우가 무척 피곤한 얼굴로 차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고생하셨어요.”

봉사활동을 하던 중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은 내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성윤은 혼자였다.

보좌진이 정우 한 명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바쁜데 봉사 시간까지 함께하기는 어려웠다.

정우가 슬쩍 웃으며 캔 커피를 내민다.

노동 후 마시는 달짝지근한 캔 커피는 정말 꿀맛이다.

“땡큐.”

“어디로 가면 될까요?”

성윤은 박무혁 의원과 술자리가 잡혔다는 것을 아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우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대답을 기다린다.

“성종 호텔.”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며 정우가 물었다.

“뭐 있었나요?”

초선 의원과 보좌관의 처음 업무 능력은 비슷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능력의 차이는 벌어지기 마련이다.

국회의원은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보좌관은 주변 일을 처리하기도 급급하기 때문에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소한 것도 공유해야 보좌관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성종 호텔의 VIP 실이었다.

스무 평정도 되는 공간의 중앙에 놓인 원목 테이블, 성윤과 박무혁 의원이 마주 앉았다.

“봉사활동 어땠어?”

“즐거웠습니다. 보람도 되고요.”

“아이들을 잘 다루던데?”

성윤이 슬쩍 웃었다.

“의원님 따라가려면 먼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의원님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야 오래 해서 익숙하니까 그런 거지.”

“자주 가시나요?”

박무혁 의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만 있으면 가고 있어. 그런데, 처음은 선거 때문이었어.”

잠시 옛 생각에 잠겼던 박무혁 의원이 성윤을 보며 묻는다.

“처음 갔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아나?”

“글쎄요. 신기했을까요?”

최대한 재벌의 감성을 떠올려 답한 거다.

하지만......

“더러웠어.”

“......!”

그의 목소리가 느리게 이어졌다.

“이런 말하면 뭐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빈자의 냄새가 있어.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그 특유의 냄새가 있지. 생선을 파는 시장에서도 참을 수 있었는데 거기선 그 냄새가 코를 쑤시더라고.”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그 이야기 알지? 내가 핫도그를 모른다고 했던 거.”

박무혁 의원의 흑역사다.

선거 토론을 할 때 상대 후보가 박무혁 의원에게 물었었다.

“서민의 음식을 압니까? 핫도그는 먹어 봤습니까!”

“미국에서 먹어봤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실제 핫도그를 보여줬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은 처음 보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었다는 일화.

성윤이 조심스레 답했다.

“...워낙 유명하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거 원본 봤어?”

“아뇨, 원본까지는 못 찾아봤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원본 찾아 봐. 난 핫도그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상대 후보가 내민 것을 보고 콘도그라고 했지. 미국에서도 일반적으로 핫도그라고 하지만 난 국회의원 토론이니까 전문적으로 대답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건 엄연히 옥수숫가루 반죽으로......”

박무혁 의원은 억울했는지 핫도그와 콘도그의 차이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걸 가지고 ‘핫도그를 모른다. 어쩐다.’ 한 거야.”

언론의 비틀기가 심하다는 것을 알지만 찾아볼 생각까지는 못했다.

박무혁 의원이 계속 말한다.

“중요한 것은 난 한국에서 칭하는 핫도그가 뭔지 몰랐던 거야. 그만큼 이 사회의 문화와 동떨어져 있었으니까.”

당시의 박무혁 의원은 정말 억지로 선거 운동을 했다고 한다.

더러운 시장 거리.

거지 같은 길거리.

그리고 돈이나 주면 되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봉사활동.

“그 과정에서 난 충격을 받았어. 가난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미디어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까. 당시 내 주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2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비서였거든.”

“......”

“특히 장애인 시설은 더 충격적이었어. 지적 장애인, 언어 장애인, 팔과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어. 눈으로 보면서도 내셔널지오그래피를 보는 줄 알았다니까.”

박무혁 의원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런데, 한 장애 아동이 병원비가 없어서 죽어 간다는 거야. 그 아이는 내가 그렇게 싫다고 말해도 달라붙는 껌딱지였어.”

“......”

“어쨌든, 난 병원비가 없다고 하기에 1억, 2억 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고작 천이백만 원이더라고.”

“...어떻게 됐나요?”

“천 이백이면 당시 내 하룻밤 술값보다 안 되는 돈인데 줬지. 하지만...죽었어.”

‘죽었어’라는 말의 목소리가 지나칠 정도로 건조하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때부터 이 나라의 정치, 그리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어.”

박무혁 의원은 술을 입에 댄 뒤 물끄러미 성윤을 본다.

“난 내 이야기를 했어. 이제 자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왜 정치를 하지?”

박무혁 의원의 눈빛은 평소와 달라졌다.

성윤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고 싶어 한다.

속마음을 들어봤자 소용없는 인물.

‘왜 정치를 하냐고?’

작게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서다.

이대로 가면 총 맞아 죽는 결말이니까.

물론, 정치가 아닌 다른 일에 뛰어들면 총 맞아 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것 역시 행복한 미래는 아닐 게 분명했다.

꿈에서 봤던 미래, 대한민국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악용된 자본주의는 계급을 만들고 사람들은 돈에 시달렸다.

재산이 있고 없고를 떠나 모든 사람이 돈이란 신앙의 광신도와 같았다.

이성과 감성이 변질하여 혐오 문화를 꽃피우고 국가는 국제 질서, 세계화라는 이름 앞에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눈앞에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데도 권력에 빠져 여자의 젖가슴이나 주물러댔다.

그딴 것들의 하찮은 권력 싸움에 희생되기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꿈속에서 봤던 미래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그걸 바꾸고 싶었다.

꿈을 통해 미래를 봤기에 어떤 정책이 어떤 나비효과를 만들어내는지 알고 있다.

그게 정치를 해서 권력을 손에 쥐려는 이유다.

성윤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당연히 진실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럼, 미친놈 된다.

그렇다고 세상을 뒤엎겠다는 말도 할 수 없다.

박무혁 의원은 기득권 중에서도 최강의 포식자.

그는 재벌이며 국회의원이다.

성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국민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웃는 모습?”

“요즘 너무 웃지 않잖아요. 모두 굳은 얼굴로 인상을 쓰고 다니죠.”

박무혁 의원이 ‘쿡쿡쿡’ 웃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렇다 치고. 왜 대한당을 선택했지? 사실 나는 민국당도 상관없었어. 기업가 집안에서는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 줄을 대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꿈속의 성윤은 대한당에 있다가 민국당으로 옮겨 배지를 달았었다.

하지만 대한당을 선택한 것은 현 시점에서 대한당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대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합격한 곳이 대한당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이었거든요.”

박무혁 의원이 픽 웃었다.

“탈이 좋아.”

박무혁 의원은 성윤이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표정은 없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이 들어왔다.

“낮에 조사하라고 하신 것 가지고 왔습니다.”

“아......”

성종 전자 정형곤 상무에 관한 정보다.

박무혁 의원은 서류를 쭉 훑어보다가 성윤의 앞에 툭 던졌다.

“읽어봐.”

정형곤 상무는 대관 담당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다.

국가 고위직의 연줄을 타고 전략기획팀에 들어갔다가 임원이 된 케이스.

여자와 술을 좋아하고 또 폭력, 갑질, 성추행 등등등......

성종 그룹 회장님의 눈에 띄지 않을 것 빼고는 다 하고 있다.

진짜 더러운 놈이다.

필요 없는 더러운 부분은 빠르게 넘겼다.

마지막 부분에 최근 정형곤 상무가 자주 연락하는 국회의원과 고위직의 전화번호가 보인다.

역시 윤채아와 자주 연락하는 중이다.

성윤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왔던 성종 전자 대관담당자와 윤채아가 엮였고 그 주변으로 정형곤 상무와 연락하는 의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성윤을 상대할 쓰레기 같은 전략이 탁탁탁 정리되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던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이성윤 의원.”

지금껏 박무혁 의원은 ‘자네’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성윤 의원이라니......

고개를 들어 보자 박무혁 의원은 처음과 같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권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까?”

“네?”

“그 정형곤 상무, 마음에 안 드는 것 아니야?”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걸리는 게 있어서요.”

“걸리는 게 있으면 조용히 해결해야지.”

성윤은 물끄러미 박무혁 의원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박무혁 의원은 백형욱 의원을 조용히 해결했던 사람이다.

박무혁 의원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성윤이 든 서류에서 멎는다.

“보니까 정형곤 그 사람 몹쓸 놈이던데, 그런 놈이 어깨에 힘주고 있으면 안 되지.”

그 말을 끝으로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손에 든다.

“아, 범성이 형. 나야.”

성윤의 눈썹이 꿈틀댄다.

‘범성? 오범성?’

성종 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현 부회장.

박무혁 의원은 그런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형이라 부르고 있다.

***

얼음을 넣은 술잔이 흔들렸다.

한입에 쭉 넣는 남자.

돼지처럼 생긴 성종 전자 정형곤 상무였다.

그가 술이 흐르는 입을 슥 닦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씨발, 이 정도 했으면 한 번 할 때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요. 윤채아 그게 살살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정형곤 상무는 룸살롱에 앉아 홍보팀 팀장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형곤 상무가 잔에 술을 채우며 말한다.

“일단, 이성윤 그놈한테 페이퍼 컴퍼니 이름으로 2억 정도 보내.”

“부회장님 허락 없이 특별비를 쓰기에는 좀 크지 않나요?”

정형곤 상무가 손을 저었다.

“나중에 대한당 당대표와 합 맞춘 거라고 보고하면 신경 안 쓸 거야. 20억도 아니고 2억인데 뭘.”

홍보팀장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정형곤 상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신고해.”

“네?”

“이성윤이 딱 상자 받는 순간 뇌물 받았다고 신고하라고. 기자든 뭐든 쫙 불러서 망신 한번 줘. 돈을 받았는데 어쩔 거야? 아니라고 언론플레이해도 믿을 사람 없을걸?”

“그건 좀......”

“새끼야, 하라면 해!”

홍보팀장은 한심한 눈으로 정형곤 상무를 바라봤다.

‘이 새끼 머릿속에는 여자밖에 없지?’

이런 1차원 적인 전략의 목표는 오직 윤채아와의 잠자리다.

‘미친 새끼.’

홍보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잔을 손에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까라면 까야지......

그때, 쾅!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얼굴은 피곤에 절은 남자들.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검찰입니다. 정형곤 씨가 누구죠?”

***

“아, 고마워.”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내려뒀다.

그리고 성윤을 본다.

“해결됐어.”

“아, 감사합니다.”

성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들어 밥을 씹었다.

분명 최고급 호텔에서 하는 식사다.

하지만 퍼석퍼석하니 모래알처럼 느껴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잡아넣다니......

박무혁 의원은 애초에 생각이 다른 사람이다.

‘이거 또라이도 아니고.’

박무혁 의원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재밌네.

< 비일비재.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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