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47화 (47/300)

< 비일비재. - (3) >

***

“그러니까, 보좌관 한 명, 아줌마 한 명? 그 둘로 일을 한다고?”

국회 의원회관, 윤채아 의원의 사무실.

윤채아 의원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싸늘한 눈으로 보좌관을 쏘아 본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 미친 새끼.”

그녀는 성윤의 상황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적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이니까.

윤채아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말한다.

“말이 안 되잖아!”

보좌관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답했다.

“...이성윤 의원은 선거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선거?”

“선거란 게 그렇잖아요. 법안 잘 쓰고 일 잘 했다고 당선되는 게 아니니까요.”

슬픈 현실이다.

국회의원은 일을 잘했다고 당선되지 않는다.

국민은 누가 어떤 법안을 올렸고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말을 잇는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이성윤 의원은 1년짜리 시한부 임기였잖습니까? 애초에 이번 1년을 다음 총선을 위한 선거 운동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윤채아가 서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지.”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특권을 벗어던지라고 하면서 보좌진이 너무 많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성윤이 딱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줬다는 거지?”

“현실을 모르는 국민은 박수를 보내겠죠. ‘젊은 사람이니까 특권을 내려뒀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라는 말을 하겠죠.”

윤채아는 성윤에 대해 보고된 서류를 착착착 넘겨봤다.

자동차는 준중형 차, 내년이면 연식이 10년이다.

집은 빌라에서 월세를 산다.

월세가 100, 200하면 이해를 하겠지만 30이다.

“거지새끼도 아니고......”

물론 성윤은 있던 돈도 벤처 회사에 투자했다.

진짜 돈이 없어서 궁핍하게 사는 중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윤채아가 알 수는 없었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서민 코스프레잖아! 이걸 믿는다고?”

사무실의 분위기가 점차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코스프레라고 해도 이성윤 의원은 보육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해당 보육원에 매 달 일정의 기부도 하는 중이고요. 유권자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가식이야.”

“가식이든 진심이든 유권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팩트입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 여성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지이이잉.

적막한 공간을 휴대폰 진동 소리가 깼다.

그녀가 못마땅한 표정과 함께 통화 버튼을 누른다.

“윤채아예요.”

-나야.

“아, 상무님.”

장형곤, 성종 전자 상무다.

그녀는 언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냐는 듯 활짝 웃기 시작한다.

간지러운 웃음도 간간히 흘려주면서.

보좌관은 통화를 이어가는 윤채아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이성윤이 가식이라고? 그럼 너는?’

그의 입에서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하는 한숨이 내뱉어진다.

윤채아의 전화는 이어졌다.

“어떻게 됐어요?”

-미안하게 됐어. 이성윤 그놈이 눈치가 빠른 놈인 것 같아. 돈을 받지 않았어.

윤채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성윤에게 불법정치 자금을 넘기고 당에 고발하려 했다.

지금 대한당은 시끄럽다.

그래서 고발한다고 해도 조용히 처리할 게 분명하다.

구설수를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그녀가 뒤에서 공작 질을 했다는 게 드러날 리가 없다.

자연스레 성윤의 공천은 물 건너가게 되는 거다.

어린 새끼가 돈이나 받아먹고 있다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실패했다.

전화를 끊는 윤채아의 차가운 표정을 보며 보좌관은 마른침을 삼켰다.

‘씨발, 또 어떤 히스테리를 부리려고!’

그런데, 조용하다.

한 겨울의 참혹한 냉기가 윤채아의 눈동자에 서릴 뿐이다.

그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보좌관에게서 멎는다.

폭풍전야.

욕이 한 바가지 나올 게 분명하다.

‘씨발!’

보좌관은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일단 혼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보좌관.”

“네, 의원님.”

윤채아가 목소리와는 다른 얼음장 같은 눈으로 보좌관을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연다.

“이성윤, 이거 안 되겠어.”

***

며칠 후, 성윤은 박무혁 의원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봉사활동과 등산이다.

대외 이미지도 쌓아야 하고 지역 유지들과도 잘 지내야 하니까.

장소는 해안로에 위치한 장애인 시설이다.

박무혁 의원의 대정 그룹에서 지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부지가 15만평, 각 건물의 면적 합이 5만 평이 넘는데 사회재활교육을 담당하는 건물도 있고 편의공간도 잘 되어 있다.

복도를 걸으며 박무혁 의원이 묻는다.

“찾아오겠다던 이유는?”

“혹시 성종 전자의 장형곤 상무를 알고 계십니까?”

“장형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보좌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보좌관, 성종 전자 장형곤 상무에 대해 알아봐줘.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까지.”

“네.”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향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묻는다.

“애들 목욕 시켜봤어?”

“네, 조카를 제가 키우다시피 해서요. 어릴 때부터 목욕은 곧잘 시켜봤습니다.”

“다행이네. 그런데, 조금 각오해야 할 거야. 한 명을 시키는 게 아니니까.”

박무혁 의원은 어깨를 꾹꾹 주무르며 목욕탕으로 향했다.

성윤도 아침마다 운동을 해서 탄탄한 몸이지만 박무혁 의원도 만만치 않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인데 얇은 티셔츠에 등 근육이 희미하게 보일정도다.

첫 번째 일은 장애 아동의 목욕이었다.

박무혁 의원이 아이를 씻기기 시작하자 소리 소문 없이 와 있던 기자 네 명이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그들이 셔터를 누르려 할 때 박무혁 의원이 엷게 웃으며 말한다.

“기자님, 이 아이도 창피해요. 다른 것 찍을 때 포즈 잘 취할 테니까 지금은 참으시고 비누나 좀 가져다주세요. 하하하.”

기분 나쁘지 않은 거절에 기자는 멋쩍게 웃으며 뒤로 물러선다.

“의원님, 애들 목욕 시키는 게 수준급입니다.”

기자의 말처럼 박무혁 의원은 능숙했다.

이미지를 쌓기 위해 몇 번 깔짝거렸던 솜씨가 아니다.

이후의 일은 빨래를 하고 아이들 식판에 밥을 떠주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박무혁 의원은 익숙했다.

세탁기도 잘 돌린다.

사실, 세탁기야 누구나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재벌이었으니까......

기자들은 박무혁 의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만 찍을 뿐, 성윤에게는 카메라를 돌리지 않았다.

밥을 떠주던 박무혁 의원이 옆에 선 성윤을 향했다.

열심히 반찬을 담고 있다.

어떻게든 카메라에 찍히고 싶어 하는 의원들과 다른 모습.

성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

진짜 봉사를 하는 모습이다.

박무혁 의원이 픽 웃으며 성윤의 옷깃을 잡아 자신의 옆으로 끌었다.

“가까이서 하자고.”

“의원님 옆에 있으면 제가 팔 움직이기 힘든데요.”

“왜? 젊은 사람이라 남자랑 붙어 있는 게 싫은가? 난 딱 붙어 있으니까 좋은데?”

기자들에게 성윤도 찍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기자가 빙긋이 웃는다.

“키 큰 두 분이 그렇게 계시니까 연예인 못지않습니다.”

“그럼요. 우리 이성윤 의원은 배우를 했어도 잘 했을 거예요. 꽃미남이잖아?”

성윤이 크게 웃었다.

“꽃미남은 아닌데요.”

기자도 웃는다.

“저도 이성윤 의원님이 꽃미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성파 배우로 하죠. 하하하하.”

찰칵 찰칵, 셔터가 눌러졌다.

박무혁 의원과 나란히 찍은 사진은 도움이 된다.

재벌이라는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은 어떤 계파에 속해 있지 않다.

따라서 같이 있어도 어느 쪽에 붙었느니 어쨌느니 의심받을 일이 없다.

그렇게 배식이 끝났다.

식당은 난장판이었다.

아무래도 장애 아동들이기 때문에 먹는 것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성윤은 테이블을 치우며 박무혁 의원을 바라봤다.

테이블에 떨어진 김치 등의 잔반을 개의치 않고 손으로 쥐고 있다.

성윤이 알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봉사활동은 이미지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은 카메라가 없을 때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재벌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신기하기만 했다.

속마음을 들어봐도......

-덥네.

여전히 별 생각이 없었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되었다.

박무혁 의원과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위치다.

그런데, 성윤에게도 한 명의 기자가 붙었다.

사실 성윤에게 오고 싶은 기자는 없었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이 눈치를 줘서 그나마 한 명이 온 거다.

카메라를 만지작대는 기자의 표정엔 실망이 역력했다.

불법체류자 문제로 이슈가 된 성윤이지만 박무혁 의원의 이름에 비하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은 아이를 잘 다뤄서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반면에 성윤은 아이의 얼굴만 보고 있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저 쪽이 기사 거리도 쓸 게 많은데......’

아동 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놀아주기다.

아빠 미소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성윤은 여전히 가만히 있다.

‘정말 쓸 장면 없네. 가만히 있을 거면 웃기라도 하라고!’

기자의 시선이 아동에게 향했다.

아동도 말똥말똥 성윤을 보고 있다.

‘지적 장애에 언어 장애도 있다고 했나?’

한 가지 장애만 있어도 어렵다.

그런데 두 가지면 오늘 취재는 끝난 거다.

그때, 성윤이 직원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 아이스크림 있나요?”

“아이스크림이요?”

“네, 민호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데요.”

분명 민호는 언어 장애.

그런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니......

직원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쑈에 필요한가 보네.’

그녀는 십 수 년을 이곳에서 일했다.

진정성 있는 봉사를 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쑈였을 뿐......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달라는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쑈를 한다고 해도 상대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줬다.

“여기요.”

성윤이 민호를 보고 활짝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이거 나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인데, 특별히 양보할 게.”

민호가 아이스크림을 받아든다.

그러더니 꺄르르 웃는다.

진짜 먹고 싶었다는 듯이......

“맛있어?”

민호는 고개를 끄덕끄덕.

성윤은 다시 지켜본다.

그러다가 휴지로 손을 닦아 주는 등 필요한 부분을 척척 해준다.

정말 능숙하게......

어떻게 보면 이 시설의 직원보다 더 완벽하다.

성윤은 민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언어 장애가 있어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말을......

성윤이 민호의 입을 닦으며 말했다.

“선생님, 민호는 이렇게 흘리면서 먹기 싫대요. 그때마다 닦아 달래요. 그리고 축구하고 싶어 하는데 괜찮을까요?”

직원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의원님, 민호는 축구 싫어해요.”

성윤은 직원을 신경 쓰지 않고 민호를 본다.

“축구 할래?”

놀랍게도 끄덕끄덕.

밖에 나가자고 하면 온 힘을 다해 때를 부리던 아이가 축구를 한다니......

게다가 민호의 성향은 낯선 사람을 극히 경계한다.

그런데, 성윤의 옆으로 다가와 탁 앉는다.

그러더니 성윤의 큰 손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까지 한다.

직원은 기적을 본 것처럼 눈이 커졌다.

성윤은 이어서 방 안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같이 축구 사람?”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저요! 저요!’를 외치더니 성윤의 옆으로 다가왔다.

놀라운 장면.

봉사자가 강제로 아이를 끌어 앉힌 게 아니다.

자연스레 성윤의 주변으로 몰린다.

성윤은 손을 잡아주고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때마다 해주는 중이다.

직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툴툴대던 기자는 신나는 표정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잠시 후, 성윤은 아이들과 밖으로 나왔다.

체육 창고를 뒤지더니 공을 세 개 꺼낸다.

직원이 물었다.

“공 세 개로 축구를 하려고요?”

“쟤들은 그냥 공을 차보고 싶대요. 민호만 해도 축구를 좋아하는데 다른 아이들 보다 못하니까, 그래서 공을 못 만졌잖아요. 그게 싫었던 모양이에요. 룰이 무슨 상관이에요. 재밌으면 되는 거지.”

성윤은 슬쩍 웃으며 운동장에 공을 던졌다.

아이들은 눈밭에 풀어 둔 강아지처럼 뛰어논다.

공만 쫓는 게 아니다.

달리다가 성윤의 다리를 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직원은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을 한 게 십 수 년이다.

그런데, 자신이 몰라줬던 아이들의 마음을 성윤이 알아차렸다.

“내 인기 다 뺏겼네. 저것들 다 배신자야. 자주 왔던 나는 찬밥이고 이성윤에게 붙다니. 다음부터 목욕 안 시켜준다고 전해.”

느릿한 목소리에 직원이 고개를 틀었다.

박무혁 의원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옆에 서 있다.

직원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연다.

“처음 봤어요. 진짜 국회의원 같아요.”

“그래? 그럼, 나는?”

“의원님은 대통령감이죠.”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네.”

“죄송해요.”

박무혁 의원이 팔짱을 끼며 성윤을 지켜본다.

“내가 키워보려고 해......”

< 비일비재.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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