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일비재. - (2) >
***
성윤과 정우는 서안시에 도착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복도에서부터 맛있는 기름 냄새가 풍겨온다.
냄새는 사무실로 다가갈수록 더 진해졌다.
“뭐야?”
정우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잔치가 열렸다.
당원 여섯 명이 좁은 사무실에 모여 파전을 먹는 중이다.
파전 붙이는 사람은 정효순 주임이고.
“의원님, 오셨어요?”
성윤은 정효순 주임의 인사를 들으며 당원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아무리 국회의원이라 해도 당원들의 나이가 훨씬 많다.
게다가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열성 당원, 지역구 민심은 이들로부터 시작이다.
잘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이 파전을 찢으며 만족한 듯 웃는다.
“내가 당원이 된 지 이십 년인데, 이렇게 지역 관리를 잘하는 의원님은 처음 봤어요. 하하하하.”
다른 당원들도 같이 웃는다.
정효순 의원이 참 살갑게 굴었나 보다.
성윤은 정효순 의원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사무실이 동네 사랑방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무 공간을 최소화한 후 나머지를 편안한 휴게실처럼 꾸며 ‘사랑방’이라는 간판을 크게 걸어둔 의원도 있다.
또 어떤 의원은 주민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고.
어떻게든 지역 주민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가벼운 대화 중에 놓칠 법한 민원을 들을 수 있고 주민 친화적인 사무실은 재선을 위한 씨앗이다.
그런 점에서 정효순 주임은 제격이었다.
노인이 파전을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낮에 윤채아 의원이 시청을 돌았다고 해요. 이쪽에 집을 계약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정치인이 집을 알아본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노인이 아니다.
그런데 정보를 준 것은 성윤의 편에 서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
고마운 분이다.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인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사실 난 젊은 의원님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이 있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파전에 막걸리 맛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파전이 맛있네요. 하하하하.”
“맞아요. 파전 먹고 싶어서라도 의원님을 지지해야겠어요.”
다른 당원들도 인정한다는 듯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뒤에 서 있던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윤채아는 대놓고 서안시를 공략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선거법을 알기 때문에 ‘나를 뽑아주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틈만 나면 지역을 돌며 자신의 인지도를 넓혀 갈 게 분명하다.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는데 이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떻게 보면 똥줄이 탄다는 것이지만 달리 보면 성윤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우가 턱을 매만진다.
‘안 되겠네.’
당원들이 돌아간 후 성윤은 사무실에 앉았다.
머릿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윤채아가 떠올랐다.
‘어떻게 씹어 죽여야 할까?’
윤채아는 꿈속에서부터 이를 갈았던 사람이다.
그녀의 악랄한 공격으로 인해 꿈속의 아내는 건강이 악화하여 사망했다.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다 보면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엄연히 예지몽.
일어날 수도 있는 미래였다.
그런데 그 윤채아가 현실에서 지역구를 빼앗으려 한다.
‘뺏기면 등신이지......’
성윤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빠졌다.
비리를 찾아 교도소 구경 좀 시켜줄까 했지만 당장 드러난 비리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있었다면 김미선 기자가 먼저 터뜨렸을 거다.
윤채아는 보좌진에게 더러운 성깔을 내보인다는 것 외에는 얌전히 있는 중이다.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더니 정우가 들어온다.
“손님 오셨어요.”
“손님?”
정우의 뒤에서 삼십 대 중반의 낯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잠시 후, 성윤과 남자는 마주 앉았고 정우는 문 앞에 섰다.
남자가 내려 둔 명함에는 성종 전자라고 적혀 있다.
‘성종 전자?’
대한민국에는 여러 대기업이 존재한다.
유통망을 틀어쥔 제종 그룹이 있고 자동차를 대표하는 대정 그룹 등등.
그 중에 탑은 누가 뭐라 해도 성종 그룹이다.
그리고 꿈속의 성윤이 사망한 곳이 성종 병원이었다.
“성종 전자 홍보팀에서 대관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대관담당자, 이들은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공무원을 만나 회사의 이익을 대변한다.
좋게 말하면 정부와 회사를 연결하는 소통창구였고 나쁘게 말하면 로비스트였다.
이들의 직업상 상대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등 대한민국의 갑이다.
그래서 더러운 일도 많이 겪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그 더러움이 인맥이 된다고 한다.
그 인맥을 동아줄로 삼아 임원까지 오르는 경우도 많다.
성윤이 다리를 외로 꼬며 대관담당자를 바라봤다.
지금껏 성윤을 찾아 온 대관담당자는 없었다.
임기가 1년이고 다음 총선을 기대할 수 없는 파리 목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력이 국정원 버금간다는 성종에서 찾아왔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는 안재열 전 대통령이 했던 말처럼 세상이 성윤을 주시하기 시작한 것.
기업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1원도 쓰지 않고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떤 지뢰가 도사릴 수도 있다는 것.
성윤은 지뢰에 무게를 두고 엷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성종 전자에서 절 찾아올 이유가 있나요? 전 기업 쪽 상임위가 아닌데요.”
“인사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의원님께서 지금은 관례상 전 의원의 상임위에 종사하고 계시지만 다음에는 자주 얼굴을 뵐 수도 있으니까요.”
쓸데없는 이야기가 이어질 때, 성윤은 속마음을 듣기 시작했다.
-이런 새끼도 영감이라고......
대관담당자라고 하더니 참 탈이 좋다.
존경의 눈빛을 가득 보이면서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으니까.
성윤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서안시까지 찾아오셨는데, 죄송하지만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본론을 듣고 싶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전화도 드리지 않고 방문한 제가 잘못이죠. 조금이라도 일찍 찾아 뵙고 싶어서 예의없이 행동했네요.”
“앞으로는 연락 주세요. 연락 주신다고 피하거나 그러지 않으니까요. 혹시 제가 없었다면 헛걸음하셨을 텐데, 얼마나 죄송할 뻔 했습니까? 하하하.”
대관담당자 역시 따라 웃는다.
하지만 드러난 표정과 속마음은 다르다.
-헛걸음은 무슨...... 사무실에 있는 것 알고 찾아왔는데.
알고 찾아왔다는 것은 어디선가 정보를 들었다는 거다.
하지만 성윤이 사무실에 들어온 것을 아는 사람은 정우와 정효순 주임 그리고 찾아왔던 당원들.
그들 중 성윤의 위치를 알린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성윤은 상대의 속마음을 들으며 조용히 입을 닫았다.
대관담당자는 그 태도가 본론을 꺼내라는 것인 줄 알았나 보다.
돈이 든 봉투를 예의 있게 테이블 위에 올렸다.
“회사에서는 의원님께서 좋은 정치를 하실 분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윤이 픽 웃었다.
“좋은 정치...성종 전자에 친화적인 정치를 말하는 것인가요?”
“네? 하하.”
대관담당자는 억지로 웃으며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이 새끼가?
젋은 사람은 이런 로비활동에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극도로 혐오하거나 탐욕스럽게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차라리 탐욕스러웠으면 좋겠는데......
방금 성윤의 말은 혐오 쪽에 가까웠다.
그는 긴장된 눈빛으로 성윤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하지만 성윤은 봉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입을 연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절 좋게 봐준 분이 누구죠?”
“네?”
“성종 전자에서 관리 중인 의원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년 계약직 의원까지 챙길 거로 생각하긴 어렵잖아요.”
“비록 1년이시지만 의원님은 앞으로......”
성윤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절 좋게 생각하시는 분이 없다면 힘든 일이죠. 그분이 누군지 알고 싶은데요.”
“아... 그건......”
대관담당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닫는다.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장형곤 상무가 보냈다. 왜?
성윤은 잠시 성종 전자 장형곤 상무를 떠올려봤다.
‘장형곤?’
모르는 이름이다.
그건 차차 알아보면 되는 일.
일단 성윤은 테이블에 놓인 봉투를 손에 들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대관담당자의 눈빛이 반짝인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구나! 그래, 성종과 친해서 나쁠 것은 없어! 받아!
그런데, 이어진 성윤의 행동은 낯설었다.
보통 정치인은 침을 흘릴 정도로 돈을 좋아하면서 아닌 척 체면을 차린다.
봉투를 받으면 바로 보좌관에게 건네거나 슥 숨기거나 한다.
그런데, 성윤은 당당히 수표를 빼 들었다.
두 장.
“이천만 원이네요?”
“저, 적나요?”
“아뇨, 너무 많아서요.”
성윤은 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정우에게 건넸다.
“이분 이름으로 입금하고 오백만 원 거슬러 와.”
정우는 수표를 손에 들더니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은행을 다녀왔는지 오백만 원을 들고 나타났다.
그 돈이 테이블에 놓인다.
성윤은 남겨진 천만 원 수표와 오백만 원을 대관담당자 앞으로 슥 밀었다.
대관담당자가 황당한 눈빛으로 돈을 바라본다.
“후원금은 오백만 원만 받을 수 있거든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정해진 돈만 받겠습니다.”
“아...네...”
“그리고 기대하시는 것만큼 제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관담당자는 눈을 깜빡였다.
성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다.
-도대체 뭐야? 돈은 받겠는데 정해진 돈만 받는다고? 이걸 뭐라고 보고해야 하지? 설마, 직원 이름을 돌려서 오백씩 꽂으라는 건가? 합법적으로?
그 마음을 읽은 성윤이 대답한다.
“다른 직원의 이름으로 분산해서 후원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성종 전자의 마음은 느꼈으니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던 대관담당자는 종종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성윤은 바로 정우와 정효순 주임을 불러 마주 앉았다.
“방금 나간 사람이 성종 전자 대관담당자였어요.”
정효순이 눈을 반짝인다.
정치 기자를 해서 그런지 이런 내용의 대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성윤이 계속 말했다.
“저 사람은 제가 사무실에 있을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국회 사무실로 찾아왔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곳은 서안시다.
성윤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면서 무턱대고 찾아올 곳은 아니다.
정효순 주임은 자신을 의심한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흔들었다.
“저, 저는 아니에요.”
“알아요.”
가만히 있던 정우가 입을 연다.
“성종에서 의원님을 사찰하고 있다는 건가요?”
“아니.”
“그럼요?”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블라인드를 젖혔다.
“정효순 주임님, 부군께서 이쪽 부동산에 발이 넓다고 들었는데요.”
“네, 공인중개사 협회 서안시 지부장이니까요.”
“윤채아 의원이 계약했다는 집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차명을 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윤채아는 영악하다.
집을 계약한 것이 민심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시기에 대관담당자가 찾아와 2천만 원을 건넨 것부터 윤채아의 냄새가 나고 있었으니까.
정효순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어볼게요.”
성윤의 시선이 정우에게 향했다.
“박 보좌관은 성종 전자 장형곤 상무에 대해 알아봐.”
“장형곤이요?”
“아니다. 이건 내가 알아보는 게 빠르겠다.”
주변에 대기업 임원의 정보를 쉽게 알려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재벌 출신 박무혁 의원이다.
성윤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 음이 몇 번 이어지지도 않았는데 바로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성윤 의원. 반가워.
언제나 여유로운 목소리.
잠시 이런저런 인사말을 이어간 후 성윤이 본론을 꺼냈다.
“찾아뵙고 싶습니다. 편한 시간을 말씀해 주시면......”
-목요일 괜찮나? 봉사활동 가는 날인데, 괜찮으면 같이 가지.
< 비일비재.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