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45화 (45/300)

< 비일비재. - (1) >

***

다음 날, 성윤은 안재열 전 대통령을 찾아 작은 포구에 도착했다.

어부로 전직한 사람답게 배 위에서 손 흔드는 안재열 전 대통령이 보인다.

“올라와.”

성윤과 정우는 공손히 허리를 굽힌 뒤 배 위로 올라섰다.

길이가 12m쯤 되는 작은 어선이다.

“날이 좋아서 바다도 예쁘지?”

비록 포구에 묶인 어선이었지만 드넓은 바다가 시원하게 보였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흥미로운 눈으로 정우를 향했다.

“이 놈은 보좌관?”

정우가 다시 허리를 굽혔다.

“박정우라고 합니다.”

“고놈 참, 사납게도 생겼네. 허허허.”

성윤과 정우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안재열 전 대통령은 막 잡았다는 광어를 능숙하게 회 치기 시작했다.

“광어 좋아하나?”

성윤과 정우가 동시에 ‘네.’라고 답하자 안재열 전 대통령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참치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입맛에는 광어가 제일이야. 식감이 좋거든.”

큼직한 회가 접시에 놓였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곧장 소주를 깠다.

정우는 운전을 해야 한다며 받기만 했고 성윤은 받은 소주를 마셨다.

회를 집어 입에 넣자 안재열 전 대통령이 즐거운 표정으로 본다.

“맛있지?”

“말씀하신대로 식감이 좋습니다.”

“그럼, 진짜 자연산인데. 하하하.”

잠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흘렀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빙빙 돌리는 말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회도 신선했지만 바다가 좋았고 바람이 시원했으며 안재열 전 대통령이 좋았다.

그리고 안재열 전 대통령의 눈빛이 점차 진지해진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다.

“불법체류자를 쓸었다고?”

“네.”

“세상은 자네를 주목하기 시작했어.”

성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이성윤이라는 이름만 쳐도 기사가 빽빽하게 나온다.

불법체류자의 흉악한 범죄로 여론이 들끓던 가운데 터진 사건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았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좋은 게 아니야. 우리가 반은 연예인처럼 사니까 인기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너무 일찍 주목받았어. 난 자네가 재선 아니 3선 이후에 주목받기를 원했거든.”

안재열 전 대통령은 악마들과의 경쟁 끝에 대한민국의 정상에 섰던 사람이다.

그런 자의 조언은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성윤이 귀를 기울이자 안재열 전 대통령이 묻는다.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가 몇 살이지?”

“이번 국회는 55.5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균 나이가 55.5세. 그럼, 초선 의원의 평균 연령은 몇 세지?”

“초선은 53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씁쓸하게 웃기 시작했다.

“초선이 53세라...일반 직장 같으면 은퇴를 고민해야 할 나이에 신입이라니, 그러니까 중진을 세워두면 양로원이라는 말을 듣는 거야. 국회는 너무 늙었어. 선거 때만 되면 각 당은 젊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세대교체를 외치지. 하지만 말뿐이야.”

각 당은 총선만 되면 새로운 인물을 뽑는답시고 난리법석을 떨며 많은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떨어뜨린다.

그리고 젊은 세대를 뽑아야 한다며 선택한 초선 의원의 평균 나이가 53세.

새롭지 않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계속 말했다.

“왜 그런지 알고 있나?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원하기 때문이야. 주인이 오면 꼬리를 흔들고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개를 원하지. 호랑이를 키우려는 사람은 없어.”

“......”

“자네같이 젊은 사람은 뭐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지. 그래서 놈들의 눈에 걸리적거릴 거야. 싹을 밟으려 하겠지. 그것은 민국당은 당연하고 대한당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성윤을 보는 시선은 1년짜리 계약직 직원이었다.

어린 애가 골목대장 놀이를 하는 것처럼 여길 뿐이었다.

5선 의원을 씹어 먹고 당선됐지만 그게 다음 선거까지 이어지리라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언론이 주목하고 있으니까.

밥그릇을 빼앗기기 싫은 악마들은 눈을 크게 뜨고 성윤을 살피기 시작할 거다.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새로운 인물은 어느 곳도 원하지 않는다.

그것도 어린놈이라면 더더욱.

“이성윤 의원, 자네는 지금 스타가 될 기회를 얻었어. 하지만 잠시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몸을 숙이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 아직은 놈들도 경계만 하는 정도일 거야. 며칠만 조용히 있으면 잊어 먹겠지. 그리고 나중에 힘을 얻을 때 날개를 펴도록 해. 자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거야.”

안재열 전 대통령은 이 말을 위해 성윤을 부른 거다.

살얼음판 같은 정치세계에서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진심으로 성윤을 걱정하고 있었다.

성윤은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젊은 정치인의 기를 꺾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가 바다를 보며 소주를 입에 댄다.

“빌어먹을 권위주의 때문이야.”

하지만 그는 바다를 보고 있어서 성윤의 눈을 보지 못했다.

성윤의 눈에는 드넓은 바다만큼 거대한 야망이 담겨 있었다.

국회의원,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일반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도 할 수 없는 일을 단 몇 마디로 끝낼 수 있다.

어딜 가도 고개 숙이지 않는 고위 공직자들이 바짝 엎드려 발발 긴다.

그게 권력이다.

성윤이 그 힘을 가진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다.

평균 나이 55세의 국회의원들, 그들의 경륜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보통의 회사였다면 퇴직을 기다리고 있을 나이.

그들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권력을 보존하고 싶어 할 뿐이니까.

서안시로 돌아가는 길.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정우가 물었다.

“조용히 있을 거예요?”

“말씀처럼 3선까지 조용히 있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공천까지는 얌전히 있어야겠지?”

아직은 힘이 없다.

튀어 올랐다가 망치에 때려 맞을 후도 있다.

다만 언론에만 얼굴을 비추지 않는 다는 뜻이다.

힘을 얻기 위한 물밑 작업은 계속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조용히 있으려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멈췄다.

차는 이동했고 성윤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는 중이다.

그의 귀에는 지금도 정치권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각 당에는 그의 눈과 귀가 되어 줄 사람들이 속속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현직에 있는 성윤보다 더 방대한 정보일 거다.

그런 안재열 전 대통령이 위험성을 말했다면......

‘누군가가 나를 언급했다는 것인데.’

머릿속에 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쳐갔다.

대한당은 물론이고 민국당의 인물까지.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성윤이 정우를 향해 툭 던지 듯 물었다.

“정우야, 내가 왜 이렇게 서둘러서 국회의원이 된 줄 알아?”

“사십대에 대통령되려고요.”

“잘 아네. 도와줘.”

“그럼, 그때 저는 뭐가 되어 있을까요?”

“사십대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어 있겠지.”

“그거 괜찮네요. 흐흐.”

농담처럼 가벼운 대화였지만 뜻은 무거웠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사십대에 대통령이 된다면 세상은 요동칠 게 분명하니까.

그때, 성윤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한동일보 김미선 기자다.

“네, 이성윤입니다.”

-김미선 기자예요. 정효순 선배가 의원님 사무실로 들어갔다고요?

지역구 살림을 도와주는 정효순 주임 역시 한동일보 출신이다.

김미선 기자와 알고 지낸 것 같다.

그녀는 잠시 정효순 주임의 칭찬을 이어갔다.

보기에는 털털해도 상당히 꼼꼼한 사람이고 어쩌고.

그리고......

-윤채아 의원 일로 말씀드릴게 있어서요.

“윤 의원이요?”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성윤은 통화를 종료하며 정우에게 말했다.

“여의도로 가자.”

잠시 후, 한정식 집에서 김미선 기자와 마주 앉았다.

그녀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한다.

“대한당은 지금 원내대표 선거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3선 이상 중진들과 초, 재선 의원들이 바라보는 선거가 다른 것은 아시나요?”

3선 이상은 계파를 위한다.

하지만 초, 재선 의원들은 다르다.

어느 쪽에 붙어야 공천에 유리할지 고민하며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중이다.

원내대표 선거가 끝나면 대한당은 곧장 총선 태세로 들어간다.

그럼, 그동안 떵떵 거리며 권력의 단 맛을 맛본 초, 재선 의원들은 실업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들에겐 원내대표고 나발이고 강한 자에게 붙어 얻어 낼 공천이 더 중요했다.

김미선 기자가 찻잔을 내려두며 조용히 말한다.

“윤채아 의원 역시 다르지 않거든요.”

윤채아 의원은 비례대표, 공천에서 비례대표가 받는 스트레스는 끔찍할 수준이었다.

일단 지역구가 없으니 인지도에서 크게 밀린다.

그렇다고 출마하고 싶은 지역구에 숟가락을 올리면 전문성을 발휘하라고 번호를 줬는데, 지역구를 탐낸다고 쌍 욕을 처먹을 수 있다.

염치없이 다시 번호를 받아 비례대표를 하는 것도 어렵다.

연속으로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드문 일이니까.

지역구를 가진 초선 의원의 생존율이 4~50%라고 했을 때 비례 대표의 생존율은 10~15%였다.

김미선 기자가 또렷한 시선으로 성윤을 보며 말한다.

“의원님과 윤채아 의원의 이미지가 겹치는 것은 아시죠?”

둘 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국회에 입성했다.

표면적인 역할은 청년을 대변하기 위해서다.

“대한당에서 똑같은 카드를 두 개나 들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둘 중 하나는 공천에서 탈락 시키고 청년 당원 대표 정도를 시키려 하겠죠.”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예상하던 일이니까.

“그래서요?”

“그런데, 어제 의원님이 불법체류자 사건으로 언론을 탔잖아요?”

여기까지 들었을 때 성윤은 이해했다는 듯 픽 웃었다.

윤채아는 업적을 남긴 것도 없고 인지도 역시 희미하다.

그런데 성윤이 툭 튀어나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윤채아는 피가 마르고 있을 거다.

“윤채아 의원은 다음 공천에서 자기가 유력하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의원님은 지역구지만 1년 임기. 자기는 4년 동안 대한당에 충성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윤채아 의원은 스텐포드를 졸업했고......”

성윤이 손을 저었다.

“윤채아 의원이 잘 난 것은 잘 알고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부르신 것은 아니잖아요?”

김미선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님의 기사가 나간 후 윤채아 의원의 사무실 모니터가 부서졌고 유리로 된 화병이 모두 박살났대요.”

“하하, 윤채아 의원이 집어 던졌나요?”

“인턴이 청소하다가 그랬다고 변명하지만 믿을 사람은 없죠.”

성윤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방금 안재열 전 대통령을 만나 고위 인사들에게 찍힐 걸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왔다.

그런데, 윤채아에게 찍혔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김미선 기자가 계속 말한다.

“윤채아 의원은 집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그리고 일단 하나 알고 있는 게 있어요. 윤 의원이 서안시를 노리고 있어요. 서울에서도 가깝고......”

성윤이 5선 의원을 꺾고 당선되며 대한당의 알짜 텃밭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대한당의 촌스러운 점퍼를 입고 깃발을 들어 올리면 개나 소나 당선될 줄 안다.

윤채아도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미선 기자가 조금 의아한 얼굴로 성윤을 본다.

보통 누군가가 공작을 펼치면 불안해야 하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성윤은 지나칠 정도로 여유롭게 보였다.

어찌 보면 기분도 좋아 보인다.

“안 불안하세요?”

“불안하다라......”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감사하다.

짓밟고 싶었는데 먼저 다가와주니까.

< 비일비재.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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