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44화 (44/300)

< 파트 타임. - (2) >

“우리의 생계 수단을 보장하라! 외국인을 내보내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냐! 대책 없는 탁상 행정 중단하라! 생존 보장! 단속 중단!”

“생존 보장! 단속 중단!”

성윤은 외국인을 내보내라고 한 적이 없다.

불법체류자를 말했을 뿐이다.

게다가 단속을 한 적도 없는데 단속을 중단하라니......

‘어이없네.’

불법체류자는 말 그대로 불법이다.

불법을 저지르며 불법을 잡지 말라는 것은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것.

얼마나 우습게보면 이러는지 모르겠다.

시위대의 눈에 성윤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마이크 맨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단속을 중단하라.......”

급기야 그의 목소리가 멎었다.

지금껏 많은 시위를 나갔다.

그런데 타깃 대상이 다가오는 걸 본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당당한 모습으로.

‘저 새끼는 뭐야?’

시위대에 모인 사람은 약 오백 명.

공장 직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돈 받고 온 단체였다.

시위에는 닳고 닳은 사람들......

그들 역시 이런 모습은 처음 봤는지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성윤이 이쪽으로 오는 거 맞지?”

“왜 오지?”

“우리한테 욕하려고 그러나?”

멍하니 있던 기자들이 다급히 카메라를 들고 성윤을 향했다.

“역시 이성윤! 나이가 어리니까 패기가 있어.”

“그림 좀 나오겠는데!”

셔터 소리가 바삐 들렸다.

기자들은 성윤이 당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머뭇거리던 마이크 맨은 기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힘차게 외쳤다.

“이성윤 의원은 산업 현장을 무시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 앞에 성윤이 섰다.

마이크 맨과 시위대의 목소리는 더 거세지고 있었다.

“생존 보장!”

“단속 중단!”

성윤은 말없이 시위대를 슥 살핀다.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 그들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더워.

-일당 3만원 받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타 죽겠네.

-언제 끝나지?

성윤이 사람들의 마음을 듣던 중, 턱수염의 공장 사장이 마이크 맨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속삭였다.

“뭐해요? 기회잖아. 더 자극적으로 해요. 계란 준비하고.”

“계란은 차에 던지려고 했는데요.”

“씨발, 저 새끼 얼굴에 던져야 시민의 분노 어쩌고 하면서 기사 나가는 거 몰라요? 기자한테 돈 준 게 얼만데, 이 정도는 해야 안 아깝지. 전문이라며 그런 것도 몰라요?”

마이크 맨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계란을 던질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면 해주는 게 서비스.

“알겠습니다.”

마이크 맨이 다시 큰 목소리로 외친다.

“뻔뻔하게 얼굴 들지 마! 넌 국민을 기망했어!”

그러자 다른 시위대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망했다! 기망했다!”

‘기망’이라는 단어가 신호였나 보다.

계란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팍! 소리를 내며 성윤의 옷에 맞은 계란이 깨졌다.

주르륵 흰자와 노른자가 흘러내린다.

계속해서 던져지는 계란에 성윤의 옷이 처참하게 변한다.

그런데, 성윤은 어깨를 폈다.

날카로운 시선은 당당하게 앞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마치 거인처럼 느껴진다.

셔터를 누르던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장 사장들이 요구한 것은 이성윤의 비참한 모습이다.

그래서 계란을 맞는 걸 보며 ‘됐어! 요구한 걸 찍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전혀 달랐다.

‘왜 이러지? 이거 멋있잖아?’

시위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란을 던지던 행동이 점차 느려진다.

던지면 던질수록 뭔가 잘 못되었다는 걸 느낀 거다.

‘이, 이건 아니잖아? 애초에 불법 체류자는 범죄고 이성윤이 잘 못한 것은 없잖아! 이게 언론에 나가면 우리만 병신되는 거야!’

마이크 맨은 입술을 꽉 깨문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아무리 상대가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단 한 명에게 물러서면 면이 안 서기 때문이다.

“이성윤을 뽑은 새끼들은 손가락을 잘라 버려야 해!”

그때, 저벅!

성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동시에 지금껏 대치하던 시위대 오백 여 명이 뒤로 물러선다.

기세에 밀린 거다.

그리고 마이크 맨의 입 역시 닫혔다.

그 앞에 선 성윤은 느긋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땀을 뻘뻘 흘리는 청년이 보였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아 더워. 일당 삼만 원에 이게 뭔 짓이야. 열정패이도 아니고.

성윤은 그 청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청년은 순간 움찔한다.

그런데, 들리는 다정한 목소리.

“덥죠?”

“네?”

“물이라도 좀 마시지. 물도 안 주나?”

“무, 물이요?”

“잠깐만 기다려요. 내 보좌관이 가지고 오기로 했으니까.”

청년은 눈을 깜빡일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청년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 많았어요.”

성윤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앞에 다가가 악수를 했다.

“금방 끝날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성윤의 예상 밖 행동에 시위대는 얼어붙었다.

모두 멍할 뿐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들이 잠잠해지자 성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좀 맞춰 주세요! 여기서도 돈 아끼고 있습니까!”

찬바람보다 더 서릿발 같은 호통!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사장들을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 서 있는 턱수염의 사장.

그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성윤을 노려본다.

“하, 씨발! 누가 알바생이야!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탁상 행정에 불만을 갖고 모인 거야!”

성윤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았으니까, 물이라도 챙겨 주지 그랬어요? 사장님은 선풍기까지 들고 계시네, 혼자만 시원하면 미안하지 않나요?”

턱수염 사장은 ‘끔’ 소리와 함께 손에 든 선풍기를 조용히 뒤로 숨겼다.

창피하기는 했나 보다.

그러자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저 사장이 밀린 것 맞지?”

“대박.”

성윤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벼락같이 내리쳤다.

“불법체류자는 명백히 범죄입니다! 사장님들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여 적은 임금을 주며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어요!”

“부당한 이득이라고?”

조용히 지켜보던 백발 사장의 입술이 씰룩였다.

하지만 성윤은 멈추지 않는다.

“불법체류자가 일으키는 범죄를 모릅니까? 연쇄살인에 토막살인!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애초에 불법으로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법 따위는 무시하니까!”

공장 사장들과 성윤의 사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전 불법은 용납 못 합니다.”

“이, 이 새끼가......”

사장들의 눈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성윤을 죽일 기세다.

그때, 백발 사장이 낮게 웃기 시작했다.

“이성윤 의원님, 우리 같이 힘없는 시민을 핍박해서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핍박이요?”

“우린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겁니다.”

성윤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알아봤더니 재산이 30억이 넘던데, 그게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라면 저 같은 놈은 굶어 죽어야겠네요. 임금 아껴 더 벌어서 뭐하시려고요? 법부터 지키세요.”

백발 사장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성윤 의원님, 그래 내 재산이 30억이 넘는다고 칩시다. 그런데, 안 무서우세요? 난 이 서안시에서 평생을 살아왔어요. 호락호락 당할 사람이 아니에요.”

자신이 서안시의 유지라는 걸 말하는 거다.

그런데, 성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정말 어이없다는 웃음이다.

한참을 웃던 성윤이 뚝 웃음을 그치며 말한다.

“안 무섭냐고요?”

“네.”

“그럼, 국회의원은 안 무섭나요? 국회의원이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아요?”

“뭐요?”

“됐습니다. 예의 끝. 배려 끝. 단속 시작.”

동시에 사장들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불안하게 들린다.

사장들이 떨리는 눈동자로 성윤을 본다.

성윤이 어서 받으라는 표시로 손을 흔든다.

그들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다, 단속이에요. 애들 다 끌려가고.......

백발 사장이 휴대폰을 내려두며 성윤을 노려봤다.

성윤이 빙긋 웃는다.

“세무조사도 들어갈 거니까 기대하세요.”

백발 사장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경찰에 돈을 먹였는데......’

이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동안 돈을 먹인 경찰, 단속이 오면 연락을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상대는 국회의원이다.

경찰청장도 마음에 안 들면 상시 청문회에 불러서 갈굴 수 있는데 서안시의 서장 따위야 우습지도 않다.

머리채를 잡고 흔들 수도 있다.

이게 권력이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가지는 권력은 상상할 수 없다.

백발 사장의 눈빛이 누그러진다.

그동안 그는 많은 국회의원들을 상대했다.

그가 본 국회의원들은 돈만 주면 좋아하는 병신 호구였고 술 취한 채 여자를 더듬는 변태였다.

그런 놈들만 상대하다보니 무서움을 몰랐다.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이제야 이해했다.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연다.

“따, 따로 말씀드릴 게 있는데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백발 사장의 항복 선언.

시위대는 물론이고 이 공간 자체가 적막했다.

모두의 시선이 성윤에게 집중되었다.

침 넘어가는 소리도 안 들리는 속에서 성윤이 그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말한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성윤은 몸을 돌렸다.

기회는 끝났다.

그리고 기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분명 공장 사장들이 돈을 주고 부른 기자들인데......

-이성윤 의원, 어떤 경우에도 불법은 용납 못 해.

-이성윤 의원, 서안시에서 불법체류자를 없애겠다.

-이성윤 의원 계란 봉변. 불법을 용인해 달라는 공장 사장들에게 맞서다.

-서안시 경찰 특별단속 결과 불법체류자 무더기 적발!

잠시 후, 성윤은 정우와 함께 사무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기사를 확인하던 정우가 성윤의 재킷을 보며 혀를 찬다.

“맞은 계란으로 계란말이해도 될 정도네요.”

“이런 것 맡기면 세탁소 사장님이 화내겠지?”

“아마도요?”

“에이......”

성윤이 재킷을 벗어 팔에 둘둘 말았다.

정우는 다시 휴대폰을 보며 기사를 확인한다.

“그래도 기사 반응이 괜찮은데요? 제대로 언론 탔어요.”

“그래?”

“어......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재밌네요. 흐흐.”

정우가 휴대폰을 건넸다.

[나 오늘 이성윤 시위대 알바 다녀옴.

안 믿는 사람 있을까봐 인증은 거기서 찍은 셀카로 대신함.

얼굴은 지웠음.

난 군대 제대하고 복학 기다리며 빈둥대는 잉여 인생임.

편한 알바가 있다는 말에 속아서 갔음.

속은 내가 잘 못임. 병신임.

일단 거기 모인 사람 절반은 알바였음.

14시간 서 있고 3만원.

오늘 개 더웠는데 땡볕에 서서 3만원이라니.

최저임금은 개나 줘라!

도망칠까 생각도 했지만 시위대 대빵이 백발인데 깡패 할아버지 같이 생겨서 무서웠음.

ㅆㅂㅆㅂ 하고 있는데 이성윤 의원이 나타났어.

계란 던지래서 던지는데 무쌍찍고 완전 멋있게 걸어오더라.

장판교 장비인 줄 알았음.

다 이김.

그리;고 점쟁이가 빙의됐는지 아르바이트만 딱딱 지목해서 손잡아 줬다.

“덥죠?” 하면서.

나중에 보좌관이 낑낑대고 물가지고 와서 물도 줌.

자기 욕하는 시위대 물주는 국회의원 봤음?

처음엔 침 뱉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원한 물마시니까 진짜 오아시스 생각나더라.

그리고 이성윤 의원이 ‘최저임금은 좀 줘라.’ 라고 말하는데 반했다.

난 다음 선거에서 이성윤 의원 나오면 찍을 거다.

뭐 그렇다고.

요약 : 이성윤은 장판교 장비.]

정우가 휴대폰을 건네받으며 말한다.

“사무실 들어가면 바로 각 사이트에 뿌릴 게요.”

젊은 사람들은 언론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사보다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게시 글은 젊은 층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정우는 그걸 잘 아는 보좌관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새로운 인물이 두 사람을 반겼다.

파트 타임으로 고용한 정효순이었다.

정우가 묘사했던 대로 장정구 파마에 서글서글한 외모다.

그녀가 활짝 웃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 옷이 왜 이래요? 앞에서 시위하던데 시위대랑 부딪친 거예요?”

“하하, 계란 좀 맞아봐야 국회의원이죠.”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옷을 의자에 걸쳤다.

그리고 정효순 주임과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았다.

정우는 노트북 앞에 앉는다.

방금 봤던 인터넷 게시 글을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서다.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말 한 번 나눠보지 않은 대한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네, 이성윤입니다.”

-이성윤 의원, 한 건 했어.

칭찬 받을 일도 아닌데 칭찬을 하고 있다.

술 한잔 하자는 말과 함께.

그런 전화가 수십 통이 걸려왔다.

성윤의 기사가 심상치 않았는지 인기에 편승하려는 거다.

하지만 성윤은 모든 전화를 예의 있게 받았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정효순 주임이 힐끗 정우를 본다.

“뭔 일 있었어요?”

시위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세한 것은 모르는 눈치였다.

정우는 대답대신 휴대폰을 넘겼다.

기사를 본 정효순 주임이 깜짝 놀란다.

“의원님, 젊으신 분이 대단하네요. 시위대 앞에 서는 것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한동 일보에 전화를 걸었다.

“나야.”

은퇴한지가 꽤 되었지만 그래도 아는 기자가 있나 보다.

“이성윤 의원님 기사 지금 핫한데, 한동 일보는 안올리네? 나 이성윤 의원님 사무실에 있어. 어뷰징 업체에도 연락해서 뿌려 봐. 응, 부탁할 게.”

그녀가 전화를 끊으며 다시 정우를 본다.

정우가 그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좋은 기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주임 님, 최고예요.”

“이 정도는 해야죠.”

성윤은 막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또 전화가 걸려온다.

“어?”

이번엔 국회의원이 아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다.

“네, 대통령님.”

< 파트 타임.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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