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트 타임. - (1) >
***
성윤은 시끄러운 알람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창밖은 아직 어둑어둑하다.
샤워를 마친 성윤은 입에 빵을 물고 소파 앉아 신문을 펼쳤다.
휴대폰이 울린다.
어머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우리 아들은 이 시간이 아니면 전화 받기 힘들잖아.
그건 아니다.
전화 정도야 언제나 받을 수 있는데 어머니가 낮 시간을 피하는 거다.
아들의 일이 바쁜데 혹시나 방해될까봐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성윤이 먼저 전화하면 된다.
하지만 ‘최근 복잡한 일이 많아서......’라고 핑계를 대는 불효자다.
-어제 혜민이 왔다 갔거든? 너 국회의원 됐다고 하니까 난리더라. 대통령이랑도 친하냐고 하면서.
“하하, 제가 아직 대통령과 대면할 급은 아니라 서요.”
-나중에 자기 학교에 와 달라고 하던데? 친구들한테 자랑한다고.
어머니는 낮게 웃으셨다.
혜민이는 여덟 살짜리 친척 조카다.
국회의원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방방 뛰는 모습이 그려진다.
잠시 근황을 전하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걱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백형욱인가 그 사람 큰 일 났던데, 너는 괜찮은 거지?
“괜찮아요. 저랑은 아무 상관없어요.”
그 일을 만들어 낸 사람이 성윤이다.
하지만 ‘제가 그랬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걱정하실 게 분명하다.
-그럼, 다행이고. 어쨌든 너는 그런 일 하지 마. 그게 뭐니?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불쌍한 애들 데리고......
어머니는 한참 동안 백형욱 의원에 대한 욕을 하셨다.
판사 출신의 백형욱 의원이 더러운 일을 했다는 게 충격이셨나 보다.
그때, 출근 준비를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랏일 하느라 바쁜 애한테 아침부터 전화하고 뭐하는 거야? 끊어!
-아니, 내가 아들한테 전화할 수도 있는 거지.
-성윤이는 이제 우리 아들이 아니야. 나랏일 하는 의원님이야.
“아, 전 부모님 아들이고 싶은데요.”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급하게 말씀하신다.
-밥 꼭 챙겨 먹고. 차 조심 하고.
아버지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겸손해야 해! 국민 위에 국회의원 있는 거 아니야. 국민 위해 국회의원이 있는 거지. 항상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착실하게 행동해.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네.’하고 대답할 뿐이다.
정신없는 통화가 끝났다.
냉장고로 가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신 후 다시 신문을 손에 들었다.
[대한당, 백형욱 의원 제명]
이틀이 지났지만 신문은 여전히 백형욱 의원으로 가득하다.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다.
더스트 대표 구속, 백형욱 의원 수사 등등등.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면 세상 끔찍한 욕이 다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백형욱 의원의 가계도’라는 제목과 함께 가족들의 사진까지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성윤은 신문을 접었다.
‘미래가 바뀌어 가네......’
꿈속에서 봤던 미래는 변하고 있었다.
쏟아진 빗줄기로 새로운 물고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거침없이 변하는 중이다.
백형욱 의원의 사건으로 대한당의 지지도가 큰 폭으로 떨어졌고 숨어 있던 잠룡들이 꿈틀댄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 성윤이 바꾸고 있었다.
성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위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당장의 목적은 생존.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다음 국회에서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전략기획위원장 김대성은 손에 넣었다.
김대성 의원을 어떻게 주무르느냐에 따라 성윤의 생존 확률도 높아질 거다.
‘그런데, 김대성 의원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김대성 의원은 자신의 주군이나 마찬가지였던 백형욱의 목을 쳤다.
덕분에 민국당 쪽에서는 매우 큰 응원을 받고 있지만 대한당에서는 역적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에 대한 복안은 생각해뒀다.
하지만 미래가 휙휙 바뀌는 중이라......
‘불안하네.’
지이이잉.
전화가 왔다. 정우다.
“응, 정우야.”
-커피 사가려고 하는데요, 어떤 것 드시겠어요?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넵. 3분 후 도착하니까 내려오세요.
잠시 후, 성윤은 정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국회로 향했다.
정우가 말한다.
“파트타임 뽑았어요. 성함이 정효순.”
얼마 전 지역구 사무실에서 일 할 사람을 뽑으라고 말했었다.
민원을 받고 찾아오는 당원들을 챙길 사람.
그런데, 성함이라면 나이가 많다는 뜻인데......
“마흔 여섯 살이고요.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어요. 동글동글한 외모에 뽀글뽀글 장정구 파마를 했는데요. 조금 푼수기가 있지만 주민들이 찾아왔을 때 누구보다 사근사근 친절하게 대할 것 같아요.”
국회의원 보좌진의 인사는 보좌관이 도맡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의원이 ‘넌 합격.’ ‘넌 짤렸어.’라는 말을 하면 격 떨어지니까.
정우가 계속 말한다.
“결혼 전에 한동 일보 정치부 기자 생활하셨더라고요.”
“한동 일보? 그런 스펙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무실에서 파트 타임을 한다고?”
“얼마 전까지 마트에서 캐셔 봤대요.”
여성의 경력 단절이다.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던 여성이 다시 사회에 나가려고 계획하는 시기는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 지 이미 7~8년.
업무의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쉽지 않은 세월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취업난인데 경력 단절된 사람을 뽑아 주는 경우 역시 거의 없다.
일류 대학을 나와 메이저 언론사에서 일하던 정효순도 마찬가지였다.
정우가 계속 말했다.
“예전부터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었대요. 그런데, 이쪽 업무가 퇴근 시간이 애매하잖아요. 게다가 일을 놓은 것도 오래 되서 받아 주는 곳도 없었나 봐요. 그런데 우리는 출퇴근 시간도 좋고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일은 잘 하시겠지?”
“잠깐 지켜봤는데 완벽.”
“호칭은 주임님이라 부르자. 정효순 씨라고 할 수는 없잖아.”
“옙!”
국회에 도착한 성윤은 곧장 김대성 의원의 사무실로 향했다.
연락을 해뒀기에 김대성 의원은 얌전히 성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동안 대한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역적 취급을 당해서 그런지 표정이 참 가관이다.
입술은 몇 번을 씹었는지 너덜너덜했고 눈동자의 흰자에는 핏줄이 죽죽 가 있었다.
그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성윤을 노려본다.
“너 때문에!”
꾹 다문 입에서 분노를 참는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성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망했어. 씨발! 망했다고!”
‘탕!’ 김대성 의원이 양 손으로 테이블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성윤을 노려보며 낮게 입을 연다.
“지도부는 나를 욕하고 있어. 지지자들은 배신자라 손가락질 하지!”
“예상 했잖아요? 설마...‘나쁜 놈 잡은 용기 있는 국회의원’이란 타이틀을 얻고 싶었던 거예요?”
김대성 의원이 움찔한다.
그냥 찔러 본 말인데 ‘용기 있는 국회의원’이란 소리를 기대했나 보다.
성윤이 픽 웃었다.
“작은 회사에서도 내부 고발 자는 역적 취급을 당하는데 쪼잔한 국회의원들이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하죠.”
김대성 의원은 화가 났지만 참았다.
상대가 이런 식으로 여유 있을 때는 다음 대책을 준비해 뒀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이 있나?”
“주진만 의원의 아래에 들어간다고 선언하세요.”
점집 매니아이자 알콜 중독자 주진만 의원.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참가했지만 비주류이기 때문에 당선이 희박한 사람이다.
하지만 김대성 의원과 똘마니들이 우르르 주진만 의원을 지지한다고 나서면 결과는 혼돈으로 치달을 거다.
“주진만......”
“대한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전 원내대표에서 이번 백형욱까지. 비리 종합세트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국민은 쇄신은 물론이고 새로운 인물을 원해요.”
“그게 주진만 의원이다?”
“지금껏 언론에 나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미지가 나쁘지 않고 외모도 친근한 아저씨 같잖아요. 괜찮을 것 같은데요.”
김대성 의원의 눈빛이 생각에 잠겨갔다.
사람들은 정치 업적 보다 선한 이미지를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면 주진만 의원은 그 역할에 제격이다.
성윤은 설명을 이었다.
“주진만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지도부는 의원님을 욕할 수 없을 거예요. 의원님은 주진만 의원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될 거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거기에 주진만 의원이 원내대표로서 잘해주기까지 한다면 의원님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의 눈빛 역시 변할 거예요.”
김대성 의원은 성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성윤이 무겁게 말한다.
“사람들은 의원님을 배신자가 아니라 킹메이커라 생각할 겁니다.”
“킹메이커......”
김대성 의원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그가 정치 생활을 하며 배운 게 딱 하나 있다.
-사건은 사건으로 덮어라. 사람들은 뒤에 생긴 사건만 기억한다.
주진만 의원이 원내 대표가 되면 그것만으로도 대한당의 큰 사건이나 마찬가지다.
비주류가 주류를 엎어 버린 거니까.
그럼, 김대성 의원의 배신은 소리 소문 없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거다.
거기에 ‘킹메이커’라는 칭호.
사실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가적으로 따라온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윤은 곧장 주진만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직접 전화를 거는 이유는 하나다.
입으로 꺼내지는 않겠지만 ‘당신을 원내 대표로 만드는 사람은 나다.’라는 걸 알리기 위해.
스피커 버튼을 누른 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통화 연결음이 울린다.
-술 한잔 하겠나?
전화를 받자마자 술타령이라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술이 아니고?
“네.”
-에잉, 뭔데?
“잠시만요.”
성윤은 김대성 의원을 바라봤다.
김대성 의원이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연다.
“김대성 의원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주진만 의원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침묵 후에 어렵게 입을 연다.
-아, 김대성 의원, 어쩐 일이에요?
“주진만 의원님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제 뜻을 따라 줄 의원들이 스무 명이 넘습니다. 의원님의 목표에 힘을 더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주진만 의원으로서는 땡 잡은 거다.
그런데......
-이성윤 의원?
“네, 의원님.”
-자네 생각인가?
“네.”
-원하는 게 뭐지?
이 사람 역시 닳고 닳은 인물이다.
하지만 성윤 역시 수백, 수천 번이나 정치 생활을 해왔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알콜 중독자 칭호를 넘겨주세요. 하하하.”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더 큰 요구나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이정도 언질만 해도 주진만 의원은 성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니까.
-그러지. 그리고 김대성 의원, 우리 술 한잔 할까요?
“알겠습니다. 지금 찾아가도 괜찮겠습니까?”
-기다리겠습니다. 담근 술이 있는데 오늘 풀어야겠어요. 하하하.
통화가 종료됐다.
성윤은 김대성 의원을 바라본다.
분노와 좌절로 가득했던 그의 눈빛은 다시 설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이제 원내 대표 선거는 박빙으로 치달을 거다.
성윤은 김대성 의원과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주차장으로 향하며 김대성 의원이 말한다.
“날이 더워졌어.”
어느새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시원시원해졌고.
김대성 의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곧 추워질 거야. 세상도 국회도 대한당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시 보지.”
김대성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성윤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가올 미래가 혼란하다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주진만 의원에게 향했고 성윤과 정우는 서안시로 출발했다.
서안시의 지역구 사무실이 가까워졌을 때 성윤이 물었다.
“정효순이라고 했지?”
“네.”
지역구 사무실을 지켜줄 사람, 이름을 모르면 섭섭한 법이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런데,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묘하다.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성윤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사무실 앞에서 시위대가 도로를 매우고 있었다.
그 숫자가 오백여 명.
그 안에는 공장 사장들 그리고 기자들도 보였다.
정우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저 새끼들이 날도 더운데......”
성윤이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그리고 시위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
정우가 커진 눈으로 따라 내리며 외쳤다.
“의, 의원님! 위험해요!”
성윤이 시위대 앞에 서면 자칫 폭력 사태 어쩌면 그 이상의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우가 말렸지만......
“정우야, 편의점 가서 물 좀 사와. 한 백 개 정도.”
“위험하다니까요!”
“그리고 경찰서장한테 연락해. 오늘 공단에서 불법체류자 쓸어버리라고. 안 쓸어버리면......”
“알았으니까 이리 오세요!”
“걱정 마.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외면하면 국회의원이 아니지.”
“네? 목소리요?”
“난 국회의원이야. 협박에 물러서면 병신되는 거지.”
성윤은 뚜벅뚜벅 시위대를 향해 걸었다.
< 파트 타임.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