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찰하는. - (3) >
성윤이 정우에게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다음 총선을 생각하면 피하는 게 좋겠죠. 하지만......”
“하지만?”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말을 들어주면 다음에는 더 큰 것을 요구할 테니까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계속 가자.”
차는 그대로 우종 아파트를 향했다.
우종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다.
재산이 2억 4천 4백만 원 이하, 자동차 평가액 2545만 원 이하, 3인 가족 기준 월 소득 350만 원 이하의 가정이 사는 곳.
그래서 초등학생들은 우종 거지, ‘우거’라고 부르며 조롱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부모가 많다.
아니, 방치를 넘어 임대 아파트 아이들과 못 놀게 하는 사례도 종종 나온다.
도서관 때문에 우종 아파트와 대치하는 로얄 아파트 주민들이 딱 그 주인공들이다.
수십억 원의 아파트에 사는 강남 사람들이 계층을 나눠도 꼴불견.
그런데 5억 넘는 아파트도 흔치 않은 서안시 사람들이 이러고 있다는 게......
못난 부모 인증하는 거다.
잠시 후, 차가 멈춰선 곳은 골프 연습장이 지어질 넓은 공터였다.
이곳에 지상 3층, 140타석의 골프 연습장이 계획되어 있다.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 여 일찍 도착했기에 우종 아파트 입주민 대표는 아직 없었다.
차에서 내린 성윤은 주변을 둘러봤다.
옆으로 우종 아파트가 보인다.
거리는 100여 미터도 되지 않는다.
골프장이 들어온 다면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딱딱’ 공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골프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우종 아파트에 골프를 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주민들은 이용하지도 않는 시설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되는 거다.
“법적인 문제는?”
“없죠. 사유재산권이라......”
“합법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먼저 소음 문제. 낮에는 몰라도 밤에는 문제가 될 것 같아요.”
“또?”
“하수관 설치를 걸고넘어질 수 있어요. 일단 우종 아파트로 지나는 배수 시설은 주민들이 반대할 게 분명하고 남은 것은 도로를 우회하는 것인데......”
성윤이 손을 저었다.
“복잡해. 소음 문제로 가자.”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우종 아파트 입주민 대표를 만나 자세한 상황을 들어 보면 된다.
성윤이 손목시계를 봤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10여 분이 더 남았다.
담배를 입에 물며 물었다.
“불법 체류자는 어떻게 되고 있어?”
성윤은 공장 사장들에게 불법에서 정상화로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안 바뀐다니까요.”
정우의 말은 단 한 문장이었지만 공장 사장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경고를 무시하고 불법을 이어가고 있다는 거다.
멀리서 우종 아파트 입주민 대표와 각 동 대표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성윤이 담배를 비벼 끈 후 차에 있는 재떨이에 놓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걸었다.
“이성윤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주민 대표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간다.
“여기가 문제가 되는 게......”
성윤은 진지한 눈빛과 함께 그의 말을 경청했다.
국회의원의 임기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총선이라는 말이 있다.
선거에 떨어지면 누리고 있던 수 백 가지의 특권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잉여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원이 들어오면 무엇보다 우선한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릴 수 있고 미처 파악하지 못한 지역의 일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각 지역에 있는 국회의원은 지역민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성윤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정우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이 만남에 불만을 갖는 2천 세대 로얄 아파트 입주민 대표다.
-만나지 말라니까요!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중년 여성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에서 지켜보는 모양이다.
“저희가 오늘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곳에 골프장이......”
-지금 그렇게 나온다는 거죠?
“대표님...... 이번 일에 도서관은 없습니다. 도서관 문제는 추후에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확인? 저기요 보좌관님, 우리 아파트가 2천 세대예요. 초등학생이 몇 명인 줄 알아요? 확인하고 자시고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사용자가 많은 곳에 짓는 게 당연 하잖아요. 그리고 우종 아파트에서 도서관 사용할 수준 되는 애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책이나 안 훔치면 다행이지.
말을 더 듣고 있으면 암이 걸릴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정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가 한숨을 돌릴 때 성윤이 옆으로 다가왔다.
정우는 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를 맞이한다.
이런 쓸데없는 일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성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도서관이라...... 해결 방법이 없나?’
잠시 생각하던 성윤이 모른 척 입을 열었다.
“여기 지어질 골프장과 비슷한 규모를 찾아봐. 거기서 소음 측정하고 구청으로 가자.”
현장 확인은 끝났다.
성윤과 정우가 차에 오른다.
차 옆에 선 우종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다시 한 번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바로 앞에 있으면 넌지시 이야기할 법도 한데......
차가 출발하며 성윤이 말했다.
“잠깐만, 여기 문제 중에 도서관도 있다고 했지?”
“네.”
“로얄 아파트 도서관 부지로 가봐.”
“로얄 아파트 부지요? 저기에요.”
가보고 할 필요도 없었다.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바로 부지가 보였으니까.
“생각보다도 훨씬 가깝네.”
“걸어서 5분 거리니까요.”
성윤이 다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공터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시에서는 어디에 지을 거래? 여기야 아니면 우종이야?”
“현재는 로얄 아파트가 유력한 것 같아요. 시장도 다음 지방 선거를 고민해야 하잖아요. 2천 세대를 포기하기는 아깝겠죠.”
성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성윤은 어느 쪽의 편을 들 생각도 없었다.
주민들이 날선 대립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 걸음으로도 5분 거리.
도서관 부지 선정은 어른들의 문제일 뿐 아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손해 보는 것도 아이들이고.
“도서관은 여기에 짓는 게 좋겠네. 시장님께 전화해서 나도 이쪽을 지지한다고 전해. 최대한 도울 거니까 애들 책 볼 수 있게 빠르게 진행해 달라고 하고.”
“네?”
정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로얄 아파트 입주민 대표가 했던 말투를 기억하면 떡 하나 주기도 싫었으니까.
성윤이 말을 잇는다.
“이쪽은 도서관 가져가고 우종 아파트는 어린이 수영장 같은 거 추진하면 어때?”
정우가 눈을 반짝인다.
“어린이 수영장이요?”
“응. 좋잖아? 남는 부지라 뭐라도 지어야 한다며. 애들 수영하고 놀면 좋지.”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로얄 아파트에는 도서관을 주고 우종 아파트에는 어린이 수영장을 주고. 멍청하게 한 쪽이 먹으면 다른 쪽은 손해라고 생각했어요. 의원님이 예산만 많이 당겨오면 다 해결인데.”
정우는 곧바로 로얄 아파트 주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원님과 부지를 보면서 상의해 봤습니다. 저희도 도서관은 로얄 아파트 옆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로얄 아파트 입주민 대표는 예민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참 사근사근하다.
-감사해요. 아파트 카페에 이성윤 의원님이 우리를 지지한다고 올릴 게요. 호호호호.
정우는 픽 웃었다.
도서관과 어린이 수영장.
로얄 아파트 입주민 대표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면 어린이 수영장에 표를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물 건너갔다.
수영장이 추진될 쯤에는 이미 도서관이 올라가는 중일 테니까.
정우는 어린이 수영장이 결정되었을 때 로얄 아파트 대표가 지을 표정이 궁금했다.
잠시 후, 성윤과 정우는 비슷한 크기의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그리고 골프장에서 아파트 거리만큼 떨어진 곳을 찾아 소음측정을 했다.
야간 기준 소음인 55 데시벨을 넘어서는 60데시벨이 나왔다.
이제 이 근거 자료를 구청에 제시하면 골프장 허가는 취소 될 거다.
모든 일을 끝내고 운전석에 앉던 정우가 힐끗 성윤을 바라봤다.
세상에 완벽한 정책이란 없다.
단순히 도서관 하나 짓는 문제도 두 아파트가 쌍심지를 켜고 일어나는 세상이다.
한 사람을 만족 시키면 다른 한 쪽은 불만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그런데 성윤은 달랐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가시 밭길이 펼쳐 질 게 분명하다.
정우는 성윤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고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윤에게도 칼 같은 점은 있었다.
바로 법에 어긋나는 짓.
물론 모든 사람들이 착실히 법을 지키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몰래 몰래 딴짓도 하는 게 세상이니까.
하지만 법을 어기면서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 그것은 불법체류자 문제였다.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던 성윤이 고개를 틀어 정우를 향했다.
“공장 사장들이 슬슬 움직일 것 같지 않아?”
***
소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는 한우 전문 가게.
이곳에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공장 사장들이 모여 있었다.
턱수염 사장이 입을 열었다.
“동구에 어린이 도서관이 들어온다고 하거든요?”
백발의 공장 사장이 붉은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그리고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턱수염 사장을 향한다.
“도서관은 갑자기 왜?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
“들어 보세요. 도서관을 두고 임대 아파트하고 로얄 아파트가 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이성윤이가 임대 아파트 대표를 만났대요.”
백발의 사장이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 새끼가 임대 아파트 편을 들어줬나? 하, 씨발. 세금 많이 내는 곳은 로얄 아파트잖아? 이래서 세상 물정 모르고 감성만 앞서는 새끼가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되는 건데......”
“아뇨.”
아니라는 말에 젓가락을 움직이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턱수염 사장이 계속 말을 잇는다.
“임대 아파트는 5백 세대가 안 되는 곳, 하지만 로얄 아파트는 2천 세대. 착하고 정의로운 척 하던 이성윤 이 새끼는 로얄 아파트의 손을 잡았네요. 크크크크.”
“로얄 아파트의 손을 들어줬다고?”
“네!”
힘찬 대답을 들으며 백발 사장의 눈에 퍼런 기운이 돌았다.
2천 세대 아파트를 지지했다는 것은 약자가 아닌 숫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은 아니었지만.....
개 돼지 눈에는 개 돼지만 보인다고 이들은 성윤이 이득에 눈이 먼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공장 사장들이 낄낄대며 웃는다.
“개새끼, 총선이 가까워지니까 두근두근하는구만?”
“우리가 너무 얌전히 행동해서 우리 힘을 모르나?”
턱수염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러니까 힘을 보여주자고요. 우리가 비록 열 명도 안 되지만 수백 명, 수천 명을 만들어 낼 수 있잖아요.”
그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백발의 사장이 풋고추를 집어 쌈장에 푹 찍은 후 으적으적 씹기 시작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야 아는 새끼. 그런 새끼에게는 직접 처먹여줘야 해. 그래야 알거야. 서안시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백발의 사장이 잔을 들었다.
모두 그를 따라 잔을 든다.
‘클클클클’ 낮은 웃음소리가 그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 관찰하는.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