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41화 (41/300)

< 관찰하는. - (2) >

지도부는 백형욱 의원의 뒤처리로 날이 선 상태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은 사무총장.

술을 마실 때가 아닌데......

재벌 출신이라는 뒷배가 든든해서 배짱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노래가 끝났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가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조심스레 입을 연다.

“...어때요?”

“좋아요.”

“정말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좋아요. 이런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부르라고 하다니, 더스트 대표가 천벌을 받았나 봐요.”

그녀의 어깨가 작게 흔들린다.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기타를 가방에 넣은 후 몸을 돌려 성윤과 마주봤다.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또 힘내서 오디션 보러 다닐게요.”

“응원할게요.”

“그리고...... 혹시 제가 유명한 가수가 된다면 의원님 선거를 돕고 싶어요. 그동안 도와주신 것도 많고 보육원 일을 생각해보면 의원님은......”

성윤이 손을 저었다.

“연예인이 정치와 관련되면 소문 안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응원하는 것처럼 소희 씨도 거기서 응원해 주세요. 마음만 받을게요.”

“아...”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나 보다.

성윤이 쭉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내려갈까요?”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

잠시 후.

성윤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서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의 바였다.

수염이 북실북실 난 사장이 컵을 닦으며 성윤을 반긴다.

“어서 오세요.”

손님은 박무혁 의원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이 이런 바에 앉아 있는 게 참 어색하다.

박무혁 의원은 사십대 초반의 나이로 상당히 스마트 하게 생겼다.

입고 있는 옷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블랙 수트였고 소매 끝에 살짝 보이는 시계는 수천만 원이다.

편견이지만 칙칙한 카우보이 모자 인테리어와 어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비싼 옷과 시계는 박무혁 의원에겐 검소한 편이지만.

스트레이트 잔에 술을 채우던 박무혁 의원이 가볍게 손을 든다.

“여기.”

성윤이 박무혁 의원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사장은 장사가 끝난 것도 아닌데 문을 잠그고 간판 불도 꺼버린다.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었다.

“오늘 하루 빌렸어. 이성윤 의원하고 허심탄회하게 마시고 싶어서. 그리고 전화도 꺼놔야겠지?”

박무혁 의원은 정말 휴대폰의 전원도 꺼버렸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문 안 잠가도 손님 안 온다니까요. 평일에 오는 손님은 의원님뿐이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박무혁 의원이 성윤의 잔을 채웠다.

성윤이 공손히 술을 받으며 물었다.

“자주 오시나 봐요.”

“아, 여기 사장이랑 친하거든.”

두 사람은 유학 중에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이다.

사장은 누가 봐도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히피처럼 보였고 박무혁 의원은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며 인텔리 중의 인텔리니까.

박무혁 의원이 잔을 들며 무심한 목소리로 묻는다.

“백형욱 보내 버린 것, 이성윤 의원 솜씨야?”

비싼 술을 뿜어 버릴 뻔 했다.

“네?”

“미안, 관찰 좀 했거든. 국회 내에서 모두가 동요하고 있을 때, 이성윤 의원 혼자만 침착했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성윤이 박무혁 의원을 관찰하고 있던 것처럼 그 역시 성윤을 관찰하고 있었다.

성윤은 애써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뇨, 침착한 게 아니었는데요. 전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

“네.”

박무혁 의원의 눈빛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성윤을 보고는 있는데 지금 이게 의심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르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속마음을 들어봐도 마찬가지.

-즐거운 시간이야.

도대체 뭐가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박무혁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마신 후 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사실 내가 하려던 일이야. 백형욱, 그 양반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그런 위선자라서.”

기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박무혁 의원이 계속 말한다.

“물론 내가 했다면 폭로하지는 않았을 거야. 조용히 은퇴시켰겠지.”

궁금하던 거다.

성윤은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박무혁 의원은 조용히 마무리 하려고 했다.

그래서 조용히 그의 뒷말을 기다렸는데 나온 말은 의외였다.

“국민을 위해서야. 국민은 항상 정치인에게 배신을 당하지. 믿었다가 발등 찍히고. 마지막으로 믿어보자 했는데 또 배신당하고. 그렇게 상처 입은 마음이 불신으로 이어졌고. 그런데 백형욱 의원씩이나 되는 사람이 미성년자를 안았다면 국민이 받을 상처와 충격은 얼마나 클까?”

박무혁 의원은 휴대폰을 켜서 인터넷에 접속하더니 성윤에게 화면을 보였다.

백형욱 의원의 기사다.

댓글이 무시무시하게 달리고 있었다.

세상 모든 욕이 한 자리에 모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그가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알콜이 들어간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뜩이나 세상이 혼란스럽잖아. 조용히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어.”

박무혁 의원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채웠다.

성윤은 의문의 시선으로 그를 본다.

‘도대체 뭐지?’

그는 대정 그룹 박 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왕자의 난에 끼고 싶지 않아 정치 노선을 선택했다고 한다.

꿈속의 미래처럼 흘러간다면 3년 후에는 당권을 손에 쥐고 조금 더 뒤에는 대권까지 노리게 된다.

하지만 지금 만난 박무혁 의원에게 권력욕은 없어 보였다.

‘이 바닥에서 권력욕이 없는 사람은 없어.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둘 중 하나지. 그럼, 때를 기다리는 건가?’

박무혁 의원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재벌 출신이라는 후광과 여유로운 성격에 반한 사람들.

순식간에 거대한 계파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껏 법안을 밀어 붙이거나 계파를 만들려 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제대로 된 속마음을 듣지 못했기에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었지만 꿈속의 미래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그는 조용히 웅크린 채 먹이를 기다리는 사자 같았다.

지이이잉.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사장의 것이다.

그가 전화를 든다.

“네, 웨스턴 바입니......”

사장의 표정은 한순간에 난처해진다.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전화 번호 바꾸라니까.”

“내일 당장 바꾸겠습니다. 하하.”

사장은 멋쩍은 표정으로 박무혁 의원에게 전화를 건넸다.

박무혁 의원이 전화를 받는다.

“박무혁입니다. 베터리가 없었나 봐요. 지금 가겠습니다.”

그가 전화를 끊으며 미안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당에서 온 전화야.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불러놓고......”

“괜찮습니다.”

“미안, 술 한잔 하고 들어가. 여기 사장 입담이 좋으니까 즐거울 거야.”

“아, 네.”

밖으로 나가던 박무혁 의원이 몸을 돌려 성윤을 향했다.

“골프 좀 치나?”

“배우는 중입니다.”

“나중에 같이 가지. 나도 잘 치지는 못하지만 가르쳐 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네, 알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은 빙긋이 웃으며 바를 떠났다.

성윤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사장이 말한다.

“유비 같지 않아요?”

“네?”

“박무혁 의원님이요. 보고 있으면 삼국지의 유비 같아요. 물론 유비는 돗자리 장수였고 박무혁 의원님은 재벌이지만......”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장이 박무혁 의원이 나간 문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재벌이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주변에 사람이 모이잖아요. 진짜로 서민을 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요.”

사실 성윤이 보기엔 유비는 아니었다.

일본 전국 시대의 장수 중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렸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떠올랐다.

사장이 계속 말했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님이 먼저 전화해서 약속을 잡은 것은 이성윤 의원님이 처음이에요. 계속 즐거운 표정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국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등장했다면서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는 이 나라를 바꿀지도 모른다고요. 그렇게까지 칭찬한 사람도 의원님이 처음이네요.”

“듣기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뵐 게요.”

성윤은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가게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대리 운전을 기다리던 중 사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박무혁 의원이 먼저 약속을 잡은 것은 처음이라고?’

성윤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흘렀다.

‘나를 만난 이유가 관찰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모르겠네.’

박무혁 의원의 의도를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다.

순수하게 칭찬으로만 받아들이면 편하겠지만 이 바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순수하게 있다가는 코 베이는 곳, 호의도 의심해 봐야 한다.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다.

***

다음 날.

성윤은 정우와 함께 민원이 들어온 아파트로 향하고 있었다.

골프장 건설 민원이다.

국회의원은 임기 4년 동안 재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성윤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몇 개월뿐, 이를 악물고 지역구의 민심을 올려야 한다.

성윤은 정우에게 어제 박무혁 의원과 만났던 이야기를 전했다.

한참 듣던 정우가 말한다.

“선민의식이네요.”

선민의식, 자기들만이 우월하다는 생각이다.

“자기가 재벌이니까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그 특별함 속에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갖는 거고요.”

어찌 보면 좋은 것.

하지만 선민의식은 차별을 만들어 낸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을 띄기 때문이다.

정우의 말을 들으며 잠시 박무혁 의원을 기억해 봤다.

그의 속마음을 들었을 때 거의 대부분은......

-재밌네.

높낮이 없는 말투만 기억하면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 다른 사람을 무시했는지는 모른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국회의원들이 보인 행동은 정말 최악이었으니까.

“잠시만요.”

말을 이어가던 정우가 귀에 꼽은 무선 이어폰에 손을 댔다.

어디선가 전화가 온 모양이다.

“네, 이성윤 국회의원의 보좌관 박정우입니다. 네, 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잇더니 차가 신호에 멈췄을 때 성윤을 향했다.

“의원님, 협박 전화 왔어요.”

성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농담이라고 보기에는 정우의 얼굴이 너무 진지하다.

“뭔데?”

“지금 가는 곳이 우종 아파트잖아요. 임대 아파트 470세대.”

“그런데?”

“방금 온 전화는 로얄 아파트 입주민 대표예요. 거기는 2000세대.”

정우가 어떤 말을 할지 대략 예상이 된다.

성윤의 눈빛엔 짜증이 섞였다.

“쉽게 말해봐.”

“의원님이 우종 아파트에 가면 로얄 아파트 2천 세대는 다음 총선에서 의원님을 지지하지 않을 거래요.”

“이유는?”

“어린이 도서관이요.”

서안시 동구에 도서관이 계획되어 있었다.

예상 부지는 우종 아파트 앞과 로얄 아파트 옆이다.

두 지역의 거리는 걸어서 5분.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인데 두 아파트는 서로 자기 집 앞에 도서관이 지어져야 한다며 들고 일어났다.

좋지 않은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서로 미룰게 분명하지만 도서관은 좋은 시설이다.

로얄 아파트 입장에서는 집값에 도움도 되고 자식이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아름다운 상상도 할 수 있다.

“5분 거리잖아. 어디에 짓든 상관없지 않아?”

“찻길을 두 번 건너야 한대요.”

“아니, 그 전에 지금 내가 가는 이유는 골프 연습장 때문이잖아?”

“의원님이 우종 아파트에 가는 것조차 싫은 것 같아요.”

세대 수가 많은 아파트의 대표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납작 기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서로 경쟁하는 도서관 부지도 아니고 단순한 민원조차 못 가게 갑질을 하다니......

< 관찰하는.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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