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40화 (40/300)

< 관찰하는. - (1) >

그때, 김대성 의원의 옆으로 백형욱 의원이 섰다.

“식사는 잘 했나?”

아무것도 모르는 백형욱 의원은 평소처럼 묻는다.

“아, 네. 의원님은 어떻게......”

김대성 의원 역시 평소처럼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긴장된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는지 백형욱 의원이 그의 얼굴을 살핀다.

“목소리가 왜 그래?”

김대성 의원이 마른 침을 삼키며 목울대가 움직인다.

백형욱 의원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김대성 의원이 손을 대고 있는 서류를 향했다.

지나칠 정도로 힘이 꽉 들어가 있다.

“그건 뭐지?”

“네?”

“...그거.”

백형욱 의원이 낮은 음성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서류를 가리켰다.

김대성 의원은 타들어가는 속을 숨기며 애써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이 사람아, 내가 한번 봐도 될까?”

백형욱 의원의 손이 천천히 자료를 향해 갔다.

김대성 의원은 입을 꽉 다문다.

그가 자료를 보면 모든 일은 끝장이다.

백형욱 계파의 상당수가 김대성에게 돌아섰다 해도 아직 진짜 충신들이 남아 있다.

백형욱 의원이 이 자료를 본다면 충신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김대성 의원을 박살 낼 거다.

그럼, 국회 발표는 물 건너가고 오히려 역풍을 맞아 역적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김대성 의원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때......

“오늘도 신수가 훤하십니다.”

주진만 의원이 백형욱 의원의 앞에 섰다.

백형욱 의원도 그의 인사를 받는다.

“아이고 오늘은 술을 안 드셨나 봐요?”

“술을 끊은 지가 이틀이나 됐어요. 하하하.”

주진만 의원이 백형욱 의원의 팔을 가볍게 잡아끌며 말한다.

“시작하기 전에 커피나 한잔 하죠.”

“좋습니다.”

백형욱 의원과 함께 밖으로 나가던 주진만 의원이 힐끗 성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내려둔다.

그의 휴대폰에는 주진만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백형욱 의원의 시선을 돌려주세요.

잠시 후, 의장이 앞에 섰다.

“자유 발언 신청이 있습니다. 김대성 의원 나와서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성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국회의원들은 딴 짓을 하고 있을 뿐 누구도 김대성 의원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앞으로 나간 김대성 의원이 마이크를 조절한 뒤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내뱉어졌다.

저격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권력은 얻고 싶지만 저격수라는 위험 부담을 얻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판은 벌어졌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님과 동료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충격적인 발표를 위해 섰습니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이어지는 말에 딴 짓을 하던 국회의원들의 시선이 김대성 의원에게 향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묘하게 긴장되어 있고 들떠 있다.

얼마 전 이 자리에서 대한당 원내 대표를 보내버린 민국당 의원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민국당 의원들의 표정은 일제히 굳어졌다.

‘씨발, 저 새끼가 설마?’

공격은 되돌아오는 법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듯 대한당 원내 대표를 보냈던 똑같은 방법으로 민국당의 누구 하나가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

민국당 의원들은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 김대성 의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대한당 백형욱 의원은 더스트 매니지먼트라는 악덕 기업과 손을 잡고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느긋하게 앉아 있던 백형욱 의원의 표정이 지랄 맞아지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었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가 하면 곧이어 허옇게 핏기가 쑥 빠져 나가고 있다.

동시에 바위처럼 굳어진 몸에서 손만 파르르 떨리는 중이다.

백형욱 의원의 충성파들이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섰다.

그들이 김대성 의원을 향해 삿대질한다.

“김대성! 지금 뭐하는 짓이야! 어디서 거짓을 지껄이고 있어!”

김대성 의원은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물론 그 표정과 말투는 모두 가식적인 연기다.

“거짓이라고요?”

화면에 증거 사진이 떴다.

호텔 객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여자들.

동일한 객실에서 머리가 젖은 채 나오는 백형욱 의원.

이어서 그 여자들의 신상이 뜬다.

미성년자다.

“저는 이 자료를 검찰에 넘길 것이며 국회에서 밝히는 이유는 백형욱 의원이 불체포 특권 뒤에 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뒤는 개판이었다.

민국당 의원들이 대한당을 응원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백형욱의 충신들이 김대성 의원을 찢어 죽이려고 난리 피우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때.......

“이 개새끼가!”

백형욱 의원이 눈을 번뜩 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미친 듯이 김대성 의원을 향해 달려간다.

주변 의원들이 백형욱 의원을 잡는다.

그러자 백형욱 의원의 핏발 서린 목소리가 국회를 울렸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끝까지 자기 잘못에 대한 뉘우침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잘못을 폭로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중이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성윤은 주변을 둘러봤다.

재벌 출신 박무혁 의원을 찾기 위해서다.

꿈속처럼 진행되었다면 박무혁 의원이 백형욱 의원을 조용히 은퇴시켰을 거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의 의도는 틀어졌다.

현실은 시끄러웠고 백형욱 의원은 은퇴 대신 감옥행 티켓을 손에 얻게 되었다.

의도와 달리 펼쳐진 현실을 박무혁 의원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성윤은 박무혁 의원을 찾았다.

그는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재밌어.

성윤의 눈빛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뭐야?’

국회 밖에서는 언론이 들끓고 있었다.

[김대성 의원 폭로! 대한당 백형욱 의원 미성년자 성접대!]

[검찰, 더스트 매니지먼트 대표 소환! 성역 없이 수사할 것]

[대한당 백형욱 의원의 미성년자 성접대, 성폭력 사건으로 수사하라]

댓글도 난리가 났다.

-대한당 수준 ㅋㅋㅋㅋ

-진짜 기사 읽는 내내 더러워서.

-철저히 수사해라.

-그동안 백형욱이 정의를 외쳤다는 게 진짜.......

-백형욱은 판사 친구 아닌가요? 조용히 덮어질 듯.

-변태 사기꾼.

가끔 백형욱 의원의 지지자들이 옹호하는 댓글을 적었지만 물량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순식간에 알바 취급당하며 묻힐 뿐이다.

서안시로 돌아가며 기사와 댓글을 읽던 성윤은 휴대폰을 덮었다.

그러자 운전을 하던 정우가 힐끗 성윤을 본다.

“사람들이 원내대표하고 백형욱을 보내버린 게 의원님이라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요?”

“큰일 나지.”

같은 당을 저격하는 사람을 좋아할 지지자는 없다.

축구에서 자살골이나 마찬가지니까.

특히 성윤처럼 힘없는 자의 저격은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 날뛰는 관종으로 보일 뿐이다.

물론 몇몇 매니아는 모두 까기 인형이라며 지지해줄 수도 있겠지만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저격수 이미지를 갖게 되면 적이 많아진다.

꿈속에서 성윤은 저격수를 넘어서 미친개라는 별명을 얻었었고 그만큼 수많은 적과 함께해야 했었다.

그 결과는 모든 걸 잃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노인이었을 뿐이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벌써 두 명을 보냈다는 걸 생각하면......

성윤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어야 해.”

“쓰레기들을 보내 버린 게 우리 이성윤 의원님이다! 외치고 싶지만 입에 자크 채우고 살게요. 흐흐.”

성윤은 집에 도착했다.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큰 기타를 어깨에 걸친 가수 지망생이었다.

이름이 전소희였다.

그녀가 성윤을 보더니 꾸벅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계약한 곳이 더스트라고 하지 않았어요?”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에는 계약하기로 되어 있던 매니지먼트의 대표가 박살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계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것이 해결되었다는 홀가분한 표정이다.

“맞아요. 더스트.”

“잘 된 거죠?”

“네, 계약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노래가 좋으니까 직접 부르셔도 뜰 거예요. 믿어요.”

진심이었다.

꿈속의 성윤은 그 노래를 좋아했으니까.

가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노래 자체를.......

그녀가 눈을 말똥말똥 뜨더니 조금은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완성했는데, 한 번 들어봐 주실래요? 다른 사람한테는 부끄러워서.”

성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 제 뒤에 있어 주시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앞에 있으면 좀......”

성윤은 픽 웃었다.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서 어떻게 많은 관객 앞에 설지 의문이다.

그녀는 평상에 앉았고 성윤은 벽에 등을 기댔다.

그녀가 기타를 조율하며 말한다.

“더스트 대표가 저한테 배우나 하라고 했어요. 얼굴이 조연으로 성공하기 딱 좋다고.....”

“하하,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서 어제는 예명까지 지어주더라고요.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요. 웃기지도 않죠?”

“예명이 뭐예요?”

“오예린이요. 전 제 이름이 좋은데......”

‘오예린?’

그녀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악귀처럼 변해버린 성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뉴스를 보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성윤이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던 이유.

오예린은 성 접대로 세상을 떠났던 사람이다.

예전에 연예계에서 이런 문제가 있었다가 쉬쉬 덮어졌던 적이 있다.

그런데 또 그런 문제가 터졌고 오예린이 죽었었다.

그녀의 유서에 적힌 개새끼들의 이름만 칠십 명.

하지만 세상은 떠들썩해졌을 뿐이다.

또 조용히 덮였다.

다른 이슈에 묻혀 조각조각 흩어졌다.

‘정말 다행이네. 다행이야.’

성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그녀에게 그런 비극적인 미래는 없다.

성윤은 그녀가 꿈을 꿀 수 있는 대학생으로 남아서 좋았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되어서 보람을 느꼈다.

국회의원이라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니까.

성윤의 머릿속에 우명진 기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형욱 의원의 자료 이외에 나머지가 더 있다는 말.

그 나머지 안에는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이 있을 거다.

힘없는 연습생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데뷔를 시켜준다는 조건을 내뱉는 쓰레기들.

백형욱 의원은 죗값을 받을 테지만 그들은 앞으로도 떵떵 거리고 잘 살 거다.

더러운 세상.

성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확인해 봐야겠네.’

성 접대, 뇌물 등등등.

사회의 악이다.

공평한 기회를 빼앗고 사람을 추악함으로 밀어 넣는 괴물의 아가리와 같다.

지금당장 그 새끼들을 잡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힘이 없었다.

날뛰다가 칼에 베이고 총에 맞아 죽기만 하겠지......

더러우면 성공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반드시 힘을 키워서 모두 박살내 버릴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더스트 대표가 그녀의 어디를 보고 실력이 없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저녁노을과 잘 어울리는 서정적인 곡.

꿈속에서 들었던 가수의 목소리보다 더 잘 어울린다.

노래를 감상하고 있던 중 성윤은 품속에서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어?’

재벌 출신 박무혁 의원의 메시지다.

-시간 괜찮으면 술 한잔 할까?

< 관찰하는.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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