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39화 (39/300)

< 병 주고 약 주고. - (3) >

‘기자? 기자라고?’

성윤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정보의 근원지 중 하나로 기자를 꼽기는 했지만 후순위였다.

기자는 얻은 정보를 폭로하는 직업, 백형욱 의원이 조용히 은퇴하게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산삼을 찾은 심마니처럼 세상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특종이다!’를 외치는 게 기자들이니까.

‘그럼......’

성윤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기자가 누군가에게 정보를 팔았을 거야. 그 누군가는 백형욱 의원을 협박했고. 은퇴한 거지.’

여기서 생긴 또 하나의 의문.

‘정보를 산 사람은 누구지?’

정치인은 이득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길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도 티를 내는 게 그들이다.

정보를 산 사람은 이득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였을 거다.

성윤은 눈을 감고 이 시기에 일어났던 꿈속의 일을 헤집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당대표는 물론 점집 매니아 주진만 의원 그리고 전략기획위원장 김대성 의원도 의심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권력자 중 하나가 사라지며 너도나도 왕좌에 앉겠다고 지랄들을 했었으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그놈인 것 같다.

‘에이.......’

범인 찾기는 그만.

꿈과 현실은 다른 법, 지금은 이 판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정보를 손에 넣어야 한다.

성윤은 다시 통화에 집중했다.

“김미선 기자님?”

-네.

“그 기자님이요. 혹시 다른 정치인과 접촉 중인가요? 그러니까 정보 제공 같은 것으로요.”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요.

“혹시 제가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 정보 제가 사고 싶습니다.”

-의원님이요?

김미선 기자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조용히 입을 연다.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성윤은 전화를 끊었다.

정우가 묻는다.

“뭐래요?”

“아까 말했던 백형욱 의원 스캔들 있잖아?”

하지만 성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휴대폰이 다시 진동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미선 기자다.

“네, 기자님.”

-지금 어디세요? 아직 여의도죠?

“네.”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조건만 맞으면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잠시 후.

성윤은 정우와 함께 빌딩의 8층에 있는 한정식 집에 도착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에는 김미선 기자와 또 다른 기자가 서 있었다.

‘어, 저 사람은?’

5:5 가르마를 탄 남자, 올챙이처럼 배가 불룩 나왔는데 각진 턱이 참 고집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꿈속에서 봤던 낯익은 얼굴이다.

그러니까......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그가 쑥 명함을 내밀었다.

“우명진이라고 합니다.”

기억났다.

몇 년 안에 나타날 ‘리얼팩트’라는 정치 전문 언론사 대표다.

‘시원하게 까발리자!’라는 사훈에 걸맞게 한쪽에 편향되지 않고 성역 없이 모든 정치인을 깠다.

그래서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지독한 비난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정치인의 뒷모습을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성윤과는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어쨌든, 팩트를 외치던 우상진 대표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언론사 짓밟기가 취미인 대통령이 취임하며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권력 아래 평등했다.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인사 뒤에 성윤과 정우가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에 김미선 기자와 우명진 기자가 앉았다.

성윤이 찻잔을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조건이 맞으면 정보를 제공해 주신다고요?”

“네.”

우명진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조건이라고 하면 돈인가요?”

“이성윤 의원님이 돈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흐흐.”

“그럼?”

“맞춰보세요.”

우명진 기자는 팔짱을 끼며 벽에 등을 기댄 채 묘하게 웃는다.

성윤을 시험해 보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속마음이 들려왔다.

-어차피 이 기사는 내가 터뜨리지 못해. 터뜨려봤자 나만 병신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둘 중 하나야. 돈 아니면 승진할 수 있는 특종!

성윤이 픽 웃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을 뒤 흔들 언론사 대표가 될 사람이 고작 승진을 원하고 있다니.

“우명진 기자님.”

“말씀하세요.”

“특종을 교환하시겠습니까?”

“네?”

마음이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우명진 기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백형욱 의원이 사채업자 스캔들로 곤욕을 치뤘잖아요? 그 배후를 알고 있는데.......”

우명진 기자는 물론이고 김미선 기자의 눈빛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누...누구죠?”

“지금 말해도 되나요?”

성윤의 눈동자가 김미선 기자를 스친 후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우명진 기자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충분히 알았습니다.”

우명진 기자는 목이 타는지 물을 홀짝이며 힐끗 성윤을 본다.

완벽히 성윤의 페이스에 말려 버린 거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기자님이 그 자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위험을 감수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정보에 대한 물질적 대가는 반드시 치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제가 돈이 없어서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요.”

우명진 기자의 눈동자가 서서히 성윤에게 향했다.

-요놈 봐라?

성윤의 나이는 어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윤을 보며 운이 좋아 국회의원이 됐을 뿐, 무엇 하나 모를 것이란 편견을 갖는다.

우명진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성윤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것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서른도 안 된 지역구 의원.......’

정치판에 무서운 신인이 들어왔다.

우명진 기자는 이 무서운 신인이 어디까지 커 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예상한대로 성윤이 거물이 된다면 지금 넘기는 자료는 훗날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게 분명하다.

정치인의 신변잡기를 기사로 쓰는 게 아니라 더 큰 일을 휘갈길 수도 있다.

우명진 기자가 천천히 입을 연다.

“정치인의 약속은 안 믿어요. 하지만 궁금한 게 생겼네요.”

우명진 기자는 자료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고 성윤이 공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드린 자료는 백형욱 의원의 것만 추려 온 거예요. 나머지가 더 있지만......”

우명진 기자가 조사한 자료에는 재벌 그리고 각 기관장과 감독, 방송국 PD 등 오십여 명의 비리가 더 있었다.

하지만 공개하기는 어려웠다.

오십여 명의 이름이 한꺼번에 공개되면 그들은 힘을 합칠 것이다.

그럼, 진실은 거짓으로 포장되고 검찰이 칼을 뽑아 휘둘러도 흐지부지 종결 될 게 뻔하다.

이 사건을 조사한 우명진 기자 역시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고.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그의 마음을 들은 성윤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나중에 제가 힘이 생기면 그때 주세요.”

“기다리죠.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성윤이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정우에게 넘기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말씀드릴게요.”

“자료가 제 손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기자님께서 원래 넘기려 했던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요. 누구죠?”

“죄송합니다. 그건 영업비밀이라......”

우명진 기자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컵을 들어 입에 댄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속마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박무혁 의원보다는 이성윤 의원이 괜찮지. 지금 선택은 잘한 일이야.

박무혁 의원은 재벌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대한당 사무총장, 그리고 우리나라 핫도그를 모르던 사람이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었다.

꿈속을 기억하면 박무혁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얻는 게 없었다.

그는 철저히 방관자였다.

이득 없이 움직이는 국회의원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박무혁 의원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떠오를 뿐이었다.

성윤과 정우는 한정식 집에서 나왔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성윤은 우명진 기자에게 받은 자료를 꺼냈다.

두툼한 서류는 사진이 반 이상이었다.

호텔 앞에서 멈춰서는 승합차.

거기서 내리는 여자들.

여자들이 들어가는 객실.

그 객실에서 나오는 백형욱 의원.

젖은 머리카락.

쭉쭉 넘기자 그 여자들이 더스트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연습생들이며 미성년자인 것을 알리는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게 터지면 백형욱 의원은 끝이다.

툭, 툭, 서류를 둥글게 말아 손에 들고 흔들던 성윤이 입을 열었다.

“미안, 차 좀 돌리자.”

“어디로 갈까요?”

“전략기획위원장 김대성 의원 사무실.”

그 시각, 김대성 의원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성윤에게 계파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명분이 부족했다.

‘소문만 믿고 저격할 수는 없잖아! 씨발, 내가 멍청했지.’

권력에 눈이 멀어 앞뒤 생각 없이 움직이려 한 게 잘 못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겠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약점을 쥔 성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 새끼는 날 이용하려는 거야. 악마같은 새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이성윤 의원이 왔습니다.”

“이성윤? 또 왜?”

그가 눈을 깜빡일 때, 성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보좌관이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자 성윤이 성큼성큼 그의 책상 앞에 선다.

“왜? 할 얘기가 남아 있어?”

“교환하고 싶은 게 생겨서요.”

“교환? 뭘?”

“의원님의 또 다른 비리와 제가 가진 백형욱 의원의 비리.”

“내 비리? 내 비리는 왜?”

성윤은 휴대폰을 꺼내 책상에 놓았다.

백형욱 의원이 여자들과 호텔에서 나오는 장면이 보인다.

김대성 의원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걸 어떻게?”

그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쥐려 할 때 성윤이 가볍게 빼앗아 들었다.

김대성 의원이 허공을 쥔 손을 허망하게 쥐었다 편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성윤이 가진 휴대폰을 바라봤다.

‘저것만 있으면......’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침몰하는 배에 계속 타고 있을 의원들은 없다.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니까.

‘지금보다 큰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어.’

그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물들 때 성윤이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

“고민하지 마세요. 이미 의원님은 제게 잡힌 약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비리를 한 게 더 넘겨서 약점이 두 개가 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 더 넘기고 제가 가진 백형욱 의원의 자료와 교환하죠.”

목줄은 하나보다 두 개를 걸어 놓는 게 좋은 거다.

그렇게 줄이 하나하나 걸리다 보면 관절마다 끈이 매달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성윤의 손가락에서 놀아날 테니까.

***

그리고 국회가 열렸다.

김대성 의원은 긴장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의원들이 인사하지만 어색하게 답할 뿐이다.

그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테이블에 놓인 서류에 손을 올린다.

백형욱 의원을 끝장 낼 자료.

시린 칼날처럼 서늘하게 느껴진다.

< 병 주고 약 주고. - (3)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