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36화 (36/300)

< 흔했던 거야? -(5) >

시의원의 말을 들으며 성윤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의 속마음을 알고 있어서다.

-씨발, 어린 새끼가 현실을 모르니까 이 지랄이지. 공장 사장들과 관계가 나빠지면 다음 총선에서 낙마할 수 있어! 서안시의 공단 공장 사장들은 전통적으로 이 지역의 유지라고! 그러니까 말귀 좀 알아들어라 제발!

불법체류자 문제, 물론 공장의 열악한 상황도 이유가 됐지만 시의원에게 그런 것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선거, 선거, 선거!

이 시의원은 권력의 단 맛을 본 개새끼일 뿐이다.

“그러니까,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공장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 다물고 있었다는 거네요?”

“네?”

“시의원이라는 분이 불법을 눈감고 있으면 나라가 참 잘 돌아 갈 것 같아요. 그렇죠?”

시의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성윤의 얼굴에서 노골적인 분노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느리지만 낮고 음습하게......

“그 공장 사장님들 좀 만나고 싶네요. 지금 시간이 네 시 삼십 분이니까 여섯 시에 식사하면 되겠네요.”

“공장 사장들도 스케줄이 있어서......”

“안 나오면 신고할 거라고 하세요.”

대책 없는 지시에 시의원의 얼굴은 있는 대로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국회의원의 앞이라는 걸 잊었는지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나온다.

“...전쟁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전쟁?”

성윤이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전쟁 거리라도 됩니까? 제가 합법적인 것을 뒤집자고 했어요? 불법을 잡자는 거잖아요. 거주지가 불분명한 불법체류자 때문에 밤 길 무섭다는 국민이 있어요. 난 국민의 손에 뽑힌 사람이고 세금은 이런 곳에 써야 하잖아요?”

“그래도 그건 의원님이 현장을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외국인이 없으면 공단이 안 돌아간다니까요. 정말이에요.”

탕!

성윤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리고 무서운 눈으로 시의원을 노려본다.

“미치겠네,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 주려고 애 쓰시네. 계속 그러시니까 전 의원님이 뭘 받아 잡수셨나 의심이 들어요.”

마른 침을 삼키는 시의원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씨, 씨발. 티 났나?

성윤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시민의 가장 옆에 서 있어야 할 기초의원부터 이러고 있으니 정치인이 썩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하지만 이 시의원만 욕할 수는 없다.

돈 써서 한 자리 차지하고 나면 본전 뽑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

흔하고 흔한 일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뒤집어야 하는 거야?’

먼 미래, 혹은 가까운 미래,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성윤은 썩어 있는 정치판을 뒤집어 버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썩어 있다.

곰팡이 가득한 썩은 나무를 드러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바퀴벌레가 숨어 있을지 예상조차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오후 여섯 시, 어제와 같은 고기 집.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의 냄새는 같았지만 느껴지는 공기가 달랐다.

성윤을 노려보는 아홉 명의 공장 사장들, 눈빛만으로 살인을 저지를 기세다.

따라온 의장과 시의원은 구석에 앉아 물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장비처럼 턱수염을 기른 사십 대 중반의 사장이 비아냥대며 입을 열었다.

“바쁘신 의원님이 선거철도 아닌데 저희를 다 만나주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자기들 회사에서 일하는 대리보다 어린 성윤이 사장들을 모아놓고 직원 문제를 거론하려고 하니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런데, 나이가 어리다고 하지만 성윤은 국회의원이다.

작은 공장 따위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공무원들이 달려가 쑥대밭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성윤이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들,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고요?”

장비처럼 생긴 사장이 빠르게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 답한다.

“의원님, 우리도 말 통하는 한국 사람을 고용하고 싶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우리 같은 영세한 곳에서 일을 안 하려고 해요. 고용해도 하루 이틀 일하다가 도망가고 이틀 치 월급 안 줬다고 노동부에 신고하고.”

다른 사장들은 ‘그렇지, 그래.’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맞아, 맞아.’ 추임새를 던져주고 있다.

성윤이 말없이 듣고 있자 의기양양해진 장비 같은 사장이 계속 지껄인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개나 소나 대학 나왔다고 안정적이고 편한 일만 하려고 하잖아요? 그럼,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은 누가해요? 이것도 다 우리나라 산업에 필요한 것들인데요. 그래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지금 본질을 흐리시는데, 제가 외국인 고용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성윤이 말을 끊었다.

장비 같은 사장이 분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윤을 말을 잇는다.

“제가 말하는 것은 불법체류자, 사장님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일! 최저임금보다 안 되는 돈으로 쓰기 위한 사람들! 그거 불법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기 나라가서 우리나라 칭찬할 것 같나요? 칭찬은커녕 쌍욕을 해요.”

사전에 조사한 이 사장들의 공장은 꽤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를 쓰는 게 아니다.

자린고비처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려고 한다.

복지나 안전도 마찬가지.

심지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화장실도 더럽게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얻은 이득을 자신들의 뱃속으로 탐욕스럽게 집어넣을 뿐이다.

장비 같은 사장의 입에서 고압적인 목소리가 흘렀다.

“의원님.......”

하지만 이번엔 성윤도 밀리지 않는다.

“제가 지금 사장님들과 대화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배려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배려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성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동시에 장비 같은 사장의 입이 굳어 버린다.

맞받아 쏘아보는 눈빛에 고개까지 숙이면서.......

그때, 가장 끝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흰 머리의 노인이 ‘클클클’ 웃기 시작했다.

모든 시선이 노인을 향해 돌아간다.

노인은 성윤을 보고 있었다.

입 끝은 웃고 있지만 눈은 부라리면서.

반면에 목소리는 상당히 친근했다.

“의원님의 임기가 얼마나 남았지요? 한 11개월 남았나요?”

“그런데요?”

“그 안에 대한민국에 있는 불법체류자를 모두 고국으로 보낼 생각인가요?”

성윤이 픽 웃었다.

“제 힘으로 무슨...... 하지만 서안시만큼은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불법체류자로 공장을 가동했어요.”

아......이제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게 참 당당하게 내뱉어지고 있다.

국회의원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정말 쪽팔릴 정도였다.

노인이 계속 말한다.

“의원님의 전임자인 박대철 의원도 모른 척 했고 그 전임자였던 사람도 마찬가지였고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불법체류자가 없으면 공장이 멈춰요. 그럼 우리를 쥐어짜서 돈을 버는 대기업도 힘들어져요. 대한민국의 경제가 무너지는 거죠.”

“안 무너집니다.”

성윤의 말에 노인의 입술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멎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한 사람은 모르는 법입니다.”

“공장 몇 개 멈췄다고 무너지면 그게 웃긴 거죠.”

“의원님께서 모른 척 넘어간다면 우리는 다음 총선에서 의원님을 지지할 겁니다. 잘 모르실 수 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지하면 꽤 많은 표를 확보하는 거예요.”

“그 전에 여기 계신 사장님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이사요?”

“젊은 사람들이 영혼까지 털어 버린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그거 저한테는 어렵지 않거든요. 못 버티고 이사 가실 수도 있어요.”

노인은 영혼을 털어 버린다는 말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략적인 뜻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가 입술을 잘근 씹는다.

성윤이 손뼉을 짝 치며 입을 연다.

“불법체류자 모두 내보내세요. 그 뒤에 외국인을 고용하든 뭘 하든 그것은 마음대로 하시고 제발 합법적으로 일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경고다.

얼음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장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성윤은 이미 타 버린 검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우악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경고를 듣지 않으면 다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듯이.......

성윤과 사장들의 만남은 찬바람만 남겨 놓은 채 끝났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중에 정우가 묻는다.

“바로 쓸어 버렸어도 됐잖아요? 왜 경고를 하세요? 안 들을 것 같던데.”

“안 들을 거 알아.”

“그러니까 왜......”

“중소기업이나 공장,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로 기피하는 이유가 뭔지 알지?”

열악한 환경, 미래에 대한 불안감, 쓸데없는 직업의 귀천 의식 등등이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윤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싸워야 할 게 많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지. 그래야 그 소문이 다른 공장에도 들어갈 테니까.”

신호 때문에 차가 멈췄을 때 정우는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봤다.

정우의 예상대로라면 성윤은 거물이 되어 이름을 떨칠 거다.

대한민국에는 혼돈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역사를 보면 때마다 영웅이 탄생했다.

정우의 생각에 성윤은 그 영웅에 가장 가까웠다.

과거를 생각하면 성윤은 거침이 없었고 약자에겐 약했으며 강자에게는 한없이 강했으니까.

문제는 역사가 이성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지다.

악한 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악마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어렵네.’

***

주말이 지나고 성윤은 점집 매니아 주진만 의원과 만나고 있었다.

1인당 이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성종 호텔 차이나 레스토랑이다.

옆 평정도 되는 공간의 가운데에는 원형 테이블이 있었는데 빙글빙글 돌리며 원하는 음식을 집어 먹게 되어 있다.

붉은 커튼을 걷자 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데 멋지다는 느낌보다는 미세 먼지 때문에 탁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들이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올 때 주진만 의원이 입을 열었다.

“술 한 잔 하겠나?”

점심시간이다.

직장인들은 바삐 밥을 먹고 들어가야 하는 시간에 주진만 의원은 태연히 술을 권하고 있다.

만취해도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어서다.

너무 취해서 집에 가기 싫으면 호텔에서 자면 되는 거고.

“네, 좋습니다.”

낮술은 피하고 싶었지만 성윤도 주진만 의원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다.

“이게 한 병에 삼십만 원짜리 술이야. 흐흐흐.”

주진만 의원은 입맛을 다시며 술이 담긴 도자기 병을 들어 성윤의 잔을 채웠다.

주진만 의원은 술이 상당히 강했다.

대한당의 알콜중독자라는 표현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계속해서 부어라 마신다.

비싼 술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어서 소주와 맥주가 뒤섞였다.

성윤도 술이 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취기가 어질어질 돌 정도였다.

그때, 성윤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잠시만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성윤은 핸드폰을 들고 방을 벗어나 복도로 나갔다.

“네, 이성윤입니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나?

익숙한 음성, 백형욱 의원이었다.

-아...젊음이 좋아. 내 나이가 되면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은 힘들거든.

낮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성윤은 힐끗 닫힌 문을 바라봤다.

저 안에는 주진만 의원이 술을 들이 붓고 있었다.

낮술과 나이는 상관없는 것 같다.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말씀하십시오.”

-지금 윤채아 의원이 맡은 중앙 청년 위원회 위원장, 자네가 했으면 해서.

윤채아의 자리를 빼앗는 것.

당연히 좋다.

하지만 명분이 없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 버리는 것만큼 다른 의원들의 눈에 좋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자칫 뒷말만 들을 수 있는 일.

그 마음을 알았는지 백형욱 의원이 말한다.

-다른 사람 시선은 걱정할 것 없어. 윤채아는 적절히 다른 곳으로 옮길 테니까.

지금 제안은 자신의 라인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좋은 기회이기는 하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술을 한 상태라, 조금 생각해 본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통화가 종료됐다.

‘중앙 청년 위원회 위원장?’

성윤은 잠시 고민했다.

머릿속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의 청사진이 그려진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세 개 세력의 ‘중심’에 서는 목표와는 멀어진다.

‘어떤 선택이 더 이득 되려나......’

잠시 고민하던 성윤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원탁에 앉았다.

주진만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 본론을 꺼낸다.

“자네 누구를 뽑을 건가?”

원내대표 선거에 대해 묻는 거다.

솔직히 누굴 뽑아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기도 했고 출마한 주진만 의원 앞에서 왈가왈부하기도 어려웠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날 뽑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당대표 측은 뽑지 마. 당대표의 지시에 따라 합의문이나 발표하는 원내대표는 인형일 뿐이지. 대한당이 당대표의 일인 독재당이 되는 걸 바라는 가?”

대답은 침묵으로 대신했다.

주진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백형욱 의원 측......”

다른 출마자들을 욕하며 자신을 뽑아 달라고 말하는 중이다.

성윤은 조용히 주진만 의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쪽도 백형욱의 꼭두각시가 될 것은 똑같지만 당대표와는 다른 게 있지. 백형욱은 오래 가지 못할 거야.”

“오래 가지 못한다니요?”

꿈속에서 대한당의 차기 대권주자라 불리던 백형욱 의원은 사채업자 문제로 은퇴를 선언했었다.

물러나는 것은 돈을 받았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

받지도 않은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뭔가 다른 게 있었다는 것인데......

주진만 의원이 입을 연다.

“그 새끼, 여자 문제가 복잡해.”

< 흔했던 거야?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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