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했던 거야? -(4) >
정우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고 성윤은 방금 신중석과 계약한 계약서를 펼쳤다.
‘10%......’
현재 시장가치를 4억으로 평가해 10%의 지분을 얻었다.
매출도 없고 제품도 완성되지 않은 회사지만 미래 가치만 보고 한 엔젤 투자.
이런 경우 창업자의 자금 부족을 이용해 20% 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창업자의 의욕을 꺾는 일이다.
투자 받은 곳이 성윤 한 명이 아닐 테니 지분 20%를 빼앗아 가면 제품을 완성해도 손가락만 빠는 최악의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작은 것을 노리다가 큰 것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적어도 수십 배는 뛸 테니 상관없기도 했고.
지이이잉.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모르는 번호.
“네, 이성윤입니다.”
-주진만이네.
주진만 의원은 지난 번 성윤의 당선 축하 다과회에서 만난 점집 매니아다.
원내 대표를 노리는 잠룡 중 하나.
“안녕하십니까?”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는 무겁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쁘지 않다면 한번 봤으면 좋겠어.
한번 볼 생각은 했다.
그 역시 원내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니까.
“언제가 괜찮으십니까?”
-다음 주 월요일 어떤 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정우가 입을 연다.
“누구예요?”
“주진만 의원.”
“아......”
정우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주진만 의원, 그렇게 안 봤는데 눈이 좋네요.”
원내 대표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내 대표 선거는 당내 국회의원들이 투표한 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 선거와 다를 게 없다.
하늘을 찌를 듯 거만하던 사람의 한없이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잡히지 않은 물고기에게 더 굽실댄다.
중도 표의 움직임이 선거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주진만 의원처럼 세력이 빈약한 경우에는 중도 표에 대한 갈망이 더욱 크다.
그래서 정우는 주진만 의원이 눈을 좋게 평가한 거다.
보통은 성윤을 당대표 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백형욱 의원을 도운 적도 있지만 그보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공천을 준 것이 당대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나자고 한 것은 성윤을 잡히지 않은 물고기로 봤다는 것이다.
‘눈이 좋다?’
정치 세계에서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은 대단한 능력이다.
하지만, 성윤의 머릿속에는 그가 했던 헛소리만 맴돌았다.
“경기도 안산에 용한 점쟁이가 있어.”
그러면 안 되는데 선입견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다.
성윤을 만나자고 한 것도 점쟁이의 지시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
어쨌든 만나보면 알 일이다.
서안시로 돌아온 성윤은 고기 집으로 향했다.
시의원들의 당선 축하 자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대한당과 민국당 기초 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윤의 당선을 축하해주는 이상한 모습.
민국당 의원들은 보육원 토지 문제로 목줄이 걸려 나온 것이지만.
성윤이 상석에 앉았다.
양 옆으로 시의원과 대한당의 대의원 그리고 당원 몇 명의 얼굴이 보인다.
성윤의 옆으로 한 명씩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미소를 짓는 등 잘 보이기 위한 인사가 이어졌다.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고기가 지글지글 익기 시작할 때 시의회 의장이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의장이 큰 소리로 말을 잇는다.
“서안시 동구에 다시 한 번 대한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쁜 것은 이 자리에 민국당 의원님들이 자리해줬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이성윤 의원님의 인덕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양 당이 협치하여 서안시를 잘 이끌어 나가라는......”
국회의원은 소속 지역 기초의원의 공천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윤을 향한 용비어천가가 흘러나오는 거다.
아부, 아첨, 감언이설.
그런데, 좀 길다.
성윤이 엷게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의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고기가 다 타겠어요.”
사람들도 의장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나 보다.
입에 함박웃음이 폈다.
그 중 한 시의원이 말했다.
“의장님, 이성윤 의원님 시장하실 텐데 이만 건배 하시죠.”
의장은 준비했던 용비어천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멋쩍은 표정으로 술잔을 들어 올린다.
“이성윤 의원님을 위하여!”
“위하여!”
술잔이 부딪치고 접시에 고기가 올라온다.
웃고 떠들며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우는 입에 대지 않았다.
구석에 앉아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성윤의 옆에 둘 사람을 찾는 중이다.
성윤이 지역 일만 할 수 없기에 수족이 되어 지역 관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적절히 시장의 정책을 가로 막고 저격수가 되어 줄 사람이......
하지만 모두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개처럼 꼬리만 살랑거릴 뿐이다.
이 자리에 사람은 없다.
개만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민국당 의원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는 거다.
이제 그만 토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다.
민국당 의원이 성윤의 술잔을 채우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의원님,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때 저희끼리 주고받은 메시지 있잖아요? 지워주실 수 없을까요?”
보육원 부지를 낙찰받기 전 기초 의원들은 채팅방을 만들어 낄낄 거렸었다.
누가 얼마를 투자했고 기대하는 수익률이 얼마고.
그런데 그 채팅방을 스캔한 것이 성윤의 손에 있다.
“아......그 메시지요?”
성윤의 말에 민국당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없어도 저희는 언제나 의원님 편이 될 거거든요. 그러니까 믿고 지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휴대폰에서는 지웠어요.”
“저, 정말요?”
“네.”
민국당 의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동시에 그의 기쁜 속마음도 들려온다.
-자, 자유. 자유다! 어린 국회의원에게 고개 숙일 일도 이제는 없어!
성윤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클라우드에 저장됐을 걸요?”
“크, 클라우드?”
민국당 의원은 클라우드라는 말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친절히 설명해줬다.
인터넷에 저장되었고 기기와 상관없이 언제든 볼 수 있다고.
민국당 의원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속마음으로 성윤을 욕하는 중이다.
-악마 같은 새끼.
그러거나 말거나 성윤은 느긋하게 웃는다.
잡은 약점을 놓아주지 마라.
인생관 중 하나였다.
그렇게 술자리가 끝났다.
성윤이 가게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무는데 옆으로 의장이 다가 온다.
성윤이 위라고 해도 의장의 나이가 훨씬 많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위해 물었던 담배를 집어넣는데 의장이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여성 의원 및 당원을 피해 성윤의 귀에 속삭인다.
“2차는 어디로 갈까요? 잘 아시겠지만 박대철 전 의원이 자주 가던 룸살롱이 있는데......”
“2차는 됐어요.”
“네? 혹시 저희가 오늘 불편하게 한 게 있나요?”
의장의 얼굴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2차를 가서 여자를 끼고 노래를 불러야 잘 대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박대철 의원이 그랬으니까.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고기 맛있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2차는 없을 거예요.”
“아......”
“그건 그렇고 의장님, 말씀드릴 것과 여쭤볼 게 있는데요. 먼저 대한당 시의원들께 이야기할 내년에 있을 공천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공천이라는 말이 나오자 의장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누가 듣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성윤을 향한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나이가 어리잖아요.”
“나이는 어리시지만 견문은 넓으시죠.”
훅 하고 아부성 발언이 들어온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유권자 분들이 저를 뽑아준 이유는 나이가 어린만큼 기존 정치와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는 준엄한 명령이었다고 생각해요.”
“아, 네...”
“그런데 제가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기초의원님들이 잘 해주셔야 하잖아요?”
“...그렇죠?”
성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탁탁 튕기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불꽃이 팍팍 일어난다.
의장은 성윤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다음 공천은 시민들을 얼마나 웃게 했는지에 따라 결정할 겁니다.”
“...웃게요?”
“네, 보육원 문제처럼 시민들을 울게 하는 게 아니라 웃게.”
집값을 올려라.
국회의원의 이름을 앞세워 공원하나 만들어라.
시장의 발목을 잡아라. 등등의 지시는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웃게 하라니.
몇 시간 전만해도 용비어천가를 말하던 의장은 속마음으로 성윤을 향한 욕을 저주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어린 새끼가 쥐뿔도 모르면서. 웃게 하라니. 말이야 막걸리야. 씨발!
하지만 드러난 표정은 난처하기만 하다.
“그걸 어떻게......”
“그건 숙제입니다. 노력하세요. 기간은 1년.”
의장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렀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어떻게든 시민을 웃게 해야 한다.
그런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
-젠장. 개그맨이라도 돼야 하는 거야?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성윤이 말을 이었다.
“다음은 궁금한 거요. 서안시에 불법체류자가 대략 어느 정도 되나요?”
성윤은 정우에게 보고 받은 정보가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묻는다.
올해 전국 기준, 상반기에만 불법체류자가 8천351명 적발됐다.
지난해보다 13.5% 늘어난 규모.
불법체류자들은 난민 신청까지 하며 국내에서 버티려 한다.
난민 신청만 해도 체류 기간이 6개월 연장되는 맹점 때문이다.
정말 어려운 사람을 위한 난민 제도.
종교적, 정치적 박해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이들이 한국의 법을 악용하고 비웃으며 교묘히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행법은 난민 신청과 동시에 절차가 끝날 때 까지 국내 체류가 가능하며 강제 추방도 힘들다.
게다가 소송 횟수는 물론이며 기간 제한도 없다.
심지어 불허처분을 받아도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이게 다 합법.
그래서 불법체류자들 사이에는 ‘난민 신청을 안 하는 새끼가 병신이지.’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성윤의 질문에 의장은 눈만 깜빡거렸다.
이런 일에 관심도 없었고 외우고 다니는 게 이상한 거다.
그가 멍하니 있자 성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성폭행을 하려던 불법체류자가 잡힌 뉴스 보셨죠?”
“아, 네.”
“그럼, 숙소에서 흉기를 휘두른 불법체류자가 검거되었다는 뉴스는요?”
“봐, 봤습니다.”
“그럼, 서안시는 공단이 있고 건설도 활발히 진행되는 중이니까 여기도 불법체류자가 많을 거다. 그러니까 조사 좀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의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성윤이 말을 잇는다.
“내일까지 서안시 불법체류자에 대한 보고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 추정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주 자세히 보고해 주세요.”
“내, 내일까지요?”
“2차 갈 시간에 시민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게 더 보람되지 않을까요? 그러려고 의원 된 거잖아요?”
그 말을 끝으로 성윤은 의장의 옆을 스쳐 정우가 기다리는 차로 향했다.
뒤에서 의장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밤 11시인데 내일까지 어떻게 하라고 이 나쁜 놈아!
성윤이 몸을 돌렸다.
의장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힌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내일 오후 5시까지. 이 정도면 시간 괜찮죠?”
“아, 네. 충분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들어가세요.”
***
다음 날.
성윤의 사무실에 시의원이 한 명 찾아왔다.
시의원은 소파에 앉았고 성윤은 의자를 끌어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석이 뒤바뀐 느낌에 시의원은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렵게 입을 연다.
“의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법체류자 문제를 고민하신다고요?”
“네.”
“그...외람된 말씀이지만 서안시에서 불법체류자 문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성윤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외로 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성윤의 눈빛은 차갑다.
한순간에 사무실이 쩍쩍 얼어붙는 기분이다.
시의원이 마른침을 삼킨다.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먼저 이 불법체류자들이 조직을 만들었어요.”
“조직? 우리나라에 와서 조직을 만들었다고요?”
“네, 규모도 상당하고 폭력적인 성향도 커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서안시의 시의원이 불법체류자가 만든 조직이 무서워서 처리를 못한다는 겁니까!”
성윤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시의원은 다급히 고개를 흔든다.
“그, 그게 아니고요. 놈들이 연락망을 만들어서 숨어 버리면 공장 가동이 멈춰버려요. 그 있잖아요. 알면서 불법체류자를 쓰는 사장님들, 그게 한 두 곳이 아니라 만약에 불법체류자가 사라지면 공단 경기가.......”
< 흔했던 거야?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