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34화 (34/300)

< 흔했던 거야? -(3) >

“햄, 햄버거요? 아직 식사는 안 했지만......”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남자를 대신해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어쩐 일로...?”

“두 분이 계획 중인 시계에 관심이 있어서요.”

“네?”

이번엔 여자도 당황했다.

출시는커녕 완성도 안 된 제품을 국회의원이 찾아왔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잠시 후, 성윤은 여자가 안내한 테이블에 앉았다.

다섯 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는 알 수 없는 부품으로 가득하다.

남자가 다가와 묻는다.

“커피하고 녹차 있는데, 어떤 것 드시겠어요?”

성윤이 햄버거 봉투를 들어 보였다.

“세트 메뉴, 콜라 있어요.”

성윤은 콜라와 햄버거 그리고 감자튀김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자 여자와 남자가 성윤의 앞에 마주 앉는다.

“이성윤입니다.”

“신중석이에요.”

“유하나예요.”

잠시 신중석을 바라봤다.

성윤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얼굴인데 오랜 시간 면도를 못했는지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 있다.

마음고생이 심한지 눈은 횅하고.

성윤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목공 동호회에 가입했다.

지금은 빌빌거리고 있지만 조만간 확 뜰 인물,

자연스레 만나 인간적인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지만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먼저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두 분의 물건을 봤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서둘러 오게 됐어요. 증강? GPS? 그런 기술을 사용한다고요?”

이 회사의 이름은 아이가드 워치, 말 그대로 시계를 만든다.

어린이를 위한 스마트 워치의 일종으로 사용자의 행동, 심박 수 등 갑작스런 변화가 감지되면 장착된 카메라가 작동되어 촬영된 영상을 부모에게 보내준다.

재밌는 점은 어린이를 위해 만든 제품인데 대박은 다른 곳에서 터진다는 거다.

제품이 괜찮다는 소문이 돌자 지병이 있는 부모를 위해 자식들이 선물하기 시작한 것.

물론 성윤만 아는 미래의 일이었다.

잠시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유하나가 입을 연다.

“그런데, 어쩐 일로......”

성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의 속마음을 듣지는 않았지만 어떤 것을 원하는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난데없이 찾아온 국회의원을 보며 정부 투자를 기대하는 중이다.

성윤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부 차원의 투자를 약속할 수는 없어요. 제가 그쪽 상임위가 아니어서요.”

“아, 네......”

실망한 얼굴이 고스란히 표정에 드러난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투자하고 싶어서요.”

“개인 투자요?”

“자금이 필요하잖아요. 그 돈 제가 투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돈이 많지 않아서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는 없어요. 일단 얼마가 필요한지 듣고 싶은데요.”

신중석이 힐끗 옆에 앉은 유하나를 향했다.

유하나가 솔직히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3천만 원이요. 당장 급한 돈이 그 정도라 서요.”

“3천......”

준비한 돈은 4천만 원이다.

쿨하게 천만 원을 더 얹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성윤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뜸을 들인다.

사람들이 국회의원에게 오해하는 게 있다.

돈이 많을 것이라는 오해.

그래서 쉽게 돈을 주면 별 것 아닌 돈을 적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거기에 애초에 계획했던 인간적인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 새끼가 어디서 뒷돈을 받았나?’라는 말을 들을 수 도 있다.

돈 주고 욕먹는 것은 사양이다.

성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먼저 신중석의 속마음은......

-너무 큰돈인가?

그리고 유하나의 속마음은......

-제발, 제발, 제발.......

성윤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었다.

돈을 턱 주면 쉽게 볼 것이라 생각해서 정우와 우스운 시나리오까지 짜뒀었다.

성윤이 통장에 있는 돈을 다 가져오라고 전화하면 정우는 2천만 원만 가지고 오는 시나리오.

나머지 2천만 원은 며칠 뒤에 지원하기로 계획.

힘들게 마련한 돈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짓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들은 그 이상으로 간절하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돈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제품이 반드시 시장에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유하나의 인사를 들으며 성윤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정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의원님.

“일단 통장에 있는 돈 다 꺼내 와.”

-넵.

“진짜로 다 꺼내와.”

-2천이 아니라요? 전부?

“응.”

잠시 후, 정우가 나타났다.

테이블로 다가온 그가 들고 온 봉투를 테이블에 올린다.

“4천입니다.”

신중석과 유하나는 마른 침을 삼킨다.

성윤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부족하죠?”

“아뇨, 아뇨. 충분해요. 필요한 돈보다도 많아서......”

성윤이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공짜로 드릴 수는 없어요. 아시겠지만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대가 없는 돈이에요.”

“아, 어떻게 할까요? 지분을 드리면 될까요?”

성윤이 고개를 틀어 뒤에 선 정우를 향했다.

그러자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윤의 옆에 앉는다.

“이성윤 의원님은 국회의원입니다. 그래서 투자 전 몇 가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번 투자는 직무 관련성에 따른 백지신탁의무가 없습니다.”

백지신탁의무, 국회의원은 마음만 먹으면 거대한 자본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기업의 정보를 얻는 것은 식은 죽 먹기고 투자한 회사를 밀어주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니까.

그래서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상임위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예전에 어떤 사업가 출신 국회의원이 주식 처분을 피하기 위해 알짜라 불리는 정무위원회를 기피해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다.

성윤은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이다.

이런 경우 전임자가 소속했던 상임위에 배정되는데 박대철은 이 회사의 투자와는 관계없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속해 있었다.

정우가 계속 말한다.

“비상장회사라고 해도 자산 총액이 120억을 넘으면 외감대상 기업이 되어 실적을 공시해야 하는 것 아시죠?”

“아, 네.”

“그래서 자산 총액 100억이 넘었을 때 지분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물론 그 전까지 경영에 관해서는 어떤 행사도 하지 않을 것이고 지분 역시 두 분에게 우선 매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중석과 유하나는 얼굴을 마주본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

신중석이 성윤과 정우를 번갈아 보며 입을 연다.

“괜찮습니다. 그런데...지분을 공시 전에 처분하신다는 것은 알려지면 안 된다는 건가요?”

“네. 하지만 법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단지 시끄러워지는 게 귀찮아서 그런 거니까요.”

4천만 원 중 천만 원은 박 노인과 이덕근 사장에게 받은 정치 후원금이다.

두 사람은 편안하게 쓰라고 준 돈이지만 법적으로 후원금 사용 내역은 정기적으로 회계보고 하도록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다.

어느 국회의원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휴대폰 비용과 마트에서 장 본 비용까지 후원금으로 내버리며 임기 내내 1원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탁을 잘 했는지 법적으로 하자는 없었다.

성윤은 슬쩍 정우를 봤다.

오랫동안 보좌관을 했던 것처럼 상당히 노련한 모습을 보인다.

이놈도 미래에 꿈을 꿨나 할 정도로......

신중석과 유하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 게요.”

이번엔 성윤이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하나 더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사무실을 서안시로 옮겨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서안시에도 벤처 사업을 키우기 위한 건물이 많아요. 제가 좋은 조건으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여기 지하보다는 나을 거예요.”

성윤이 내세우는 조건은 두 사람에겐 과할 정도로 좋은 일이었다.

당연히 끄덕.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제품을 조립할 회사는 한국인가요?”

“아뇨, 인건비 때문에 중국을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서안시에도 두 분과 함께 할 공장이 많아요. 공장 사장님들이 일거리 없다고 문 닫겠다고 하시는데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생산 할 수는 없을까요?”

신중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면 단가가 30퍼센트 정도 올라간다.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윤은 미래를 알고 있다.

이 제품은 훗날 한국 공장에서 만들어지며 매출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저도 다른 제품이었다면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위한 제품이잖아요. 가성비를 생각했다면 백만 원이 넘는 유모차가 팔릴 수 없죠.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메이드인 코리아가 주는 신뢰도가 클 것 같은데요.”

성윤은 햄버거를 손에 들며 말을 잇는다.

식어버린 햄버거지만 배가 고파 그런지 맛있게 보인다.

“생각할 시간 드릴게요. 제가 햄버거를 다 먹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답해 주세요.”

성윤은 더 말하지 않고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다.

유하나의 시선이 신중석에게 향한다.

“의원님 말씀도 일리가 있는데? 게다가 사무실까지 알아봐 주신다고 하면.......”

신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성윤이 씩 웃었다.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저도 햄버거가 먹고 싶었거든요. 하하하.”

신중석은 기쁘게 웃으며 햄버거 포장지를 뜯었다.

목공 동호회에서 만나지 않았지만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좋은 관계로 발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잠시 후, 차에 오른 성윤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비상장 회사, 특히 벤처 기업의 투자는 성공만 하면 대박이다.

그런데 신중석의 회사는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

4천만 원으로 얼마를 먹을지 벌써 기대된다.

정치와 돈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돈을 손에 쥐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탐욕스러운 침을 질질 흘린다.

하지만 신중석의 회사가 성공하면 성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목표했던 것도 더 빨라질 수 있고.

“제품이 괜찮아 보이기는 하네요. 그런데, 위험한 투자 아니에요? 의원님이 하겠다고 하니까 생각이 있으신 것 같아서 말리지는 않았는데......”

정우의 말에 성윤은 문득 장난기가 솟았다.

“정우야, 지금 한 투자가 얼마가 되는지 내기할까? 기간은 1년.”

“내기요?”

“근사치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것.”

“십만 원 내기?”

“이십만 원 가자.”

정우는 핸들을 틀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아무리 상대가 성윤이라고 하지만 통찰력에서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기업 평가와 앞으로 팔릴 매출이 계산되고 있다.

‘범위를 어린이집에서 초등학생까지 잡고 최근 판매된 어린이용 스마트폰과 스마트 시계를 대상으로 좁히면, 단 기간에 백억을 찍기는 힘들 것 같은데.......’

아무리 정우라 해도 저 제품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불티나게 팔릴 것이란 것은 예측하지 못하나 보다.

그가 눈에 힘을 주며 성윤을 향했다.

“1억이요. 4천 투자해서 1억이면 괜찮죠.”

성윤이 슬쩍 웃었다.

“2억 이하면 네가 이기는 거고 그 이상이면 내가 이기는 것. 어때?”

“좋아요. 그럼 내기 금액을 삼십만 원으로 올리는 것 어때요?”

“콜.”

“후회하지 마세요. 흐흐.”

정우는 다가올 패배의 악몽은 모른 채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 흔했던 거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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