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했던 거야? -(1) >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화장실 다시 문이 열렸다.
성윤은 전략기획위원장의 대포폰이 든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하지만 전략기획위원장은 아직 화장실에 있다.
망부석처럼 성윤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이윽고 성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온다.
그리고 ‘털썩’ 물기 젖은 화장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잠시 그렇게 있던 전략기획위원장의 충혈된 눈동자가 번득였다.
“씨발......”
그는 치아가 부서질 듯 입을 다문 채 양 주먹으로 바닥을 쾅쾅 내려치기 시작했다.
“씨바아알!”
전략기획위원장은 화를 참지 못했다.
하지만 분노의 원흉인 성윤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화를 풀 수도 없다.
“씨발! 씨발!”
급기야 분노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핏덩이 같은 놈에게 약점을 잡힌 채 병신처럼 휘둘릴 인생이 서글퍼서다.
그 시각, 성윤은 차에 도착해 운전석을 열었다.
정우가 새우잠을 자고 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점점 초췌해져 가는 모습이 느낌만은 아니다.
“정우야, 일어 나.”
정우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끝났어요?”
“응.”
“위원장이 뭐래요? 왜 뒤통수치는 거래요?”
하품을 하면서도 궁금한 것을 먼저 묻는다.
“일단 조수석으로 가. 운전은 내가 할 게.”
“옙!”
정우는 운전석에서 나와 익숙하게 조수석으로 향한다.
분명 성윤은 국회의원이었고 그는 보좌관이었지만 익숙한 모습이다.
성윤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제대로 대답은 안 했어. 당황했는지 입술만 떨더라. 그런데, 말을 종합해 보면 백형욱 의원의 자리를 탐내는 것 같아. 백형욱 의원이 사라지면 그 자리룰 차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야.”
“멍청하네요.”
“권력은 눈을 멀게 하니까. 똑똑한 사람도 바보가 되나 봐.”
“시시해요.”
“시시해?”
정우가 쭉 기지개를 켜며 답한다.
“그릇이 작은 것은 알았는데 노리고 있던 게 고작 백형욱 의원 자리가 뭐예요? 이왕이면 더 큰 꿈을 꿔야지.”
성윤이 픽 웃었다.
“큰 꿈인 뭐야?”
“형님이 꾸는 꿈 정도? 그 정도면 남자로서 품어볼만하죠.”
“내 꿈이 뭔데?”
“국가 전복.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
“꺼져.”
차가 출발했다.
정우가 피곤을 이기기 위해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입을 연다.
“그런데, 형님. 백형욱 의원을 믿는 것은 아니죠?”
뜬금없는 말에 성윤이 힐끗 정우를 향했다.
“왜?”
“백형욱 의원은 덩치도 좋고 인물도 좋잖아요. 대법관 출신이라는 스펙도 괜찮고 이미지도 나쁘지 않죠. 줄을 댈 수 있다면 꽤 괜찮기는 해요.”
“그런데?”
“동전도 양면이 있듯이 이 바닥 사람들은 모두 뒷모습이 있잖아요. 가장 충신이라 생각했던 위원장이 뒤통수를 쳤다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백형욱 의원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면 위원장은 배신할 생각조차 못했을 걸요.”
성윤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정우의 말이 없었어도 백형욱 의원에게 의심 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오해가 풀렸는데 왜 은퇴했을까?’다.
정치하는 사람의 멘탈은 보통과 다르다.
갖은 욕을 다 처먹고도 웃을 수 있는 게 정치인이다.
그런데, 백형욱 의원은 사채업자와 관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만나 본 백형욱 의원을 보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 벌어져도 정면 돌파할 인물 같았는데......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한계를 정해두지 말고 모든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정치라는 이름의 살얼음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와, 삼겹살 가게가 지금도 열었네요?”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정우는 불 켜진 가게를 멍하니 보고 있다.
“먹고 갈까?”
“안 드시려고 했어요? 고사 지내던 것 이어서 해야죠?”
두 사람은 삼겹살 가게로 들어갔다.
삼겹살 3인분에 소주 두 병 그리고 냉면 하나 씩.
정우의 아재 개그를 들으며 든든하게 먹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대리운전을 기다리며 정우가 입을 연다.
“그래도 백형욱 의원의 눈에 확실히 들었고 전략기획위원장도 앞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고. 꽤 괜찮은 이득이네요.”
“글쎄.......”
겉으로만 따지면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백형욱 의원이 왜 은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성윤은 집 앞에서 내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정우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들어가세요.”
정우는 대리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성윤은 몸을 돌렸다.
“어?”
앞집에 사는 미래의 가수가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니까 앞집에 살며 보육원에서 안내해줬던 그녀다.
“이제 들어가나 봐요?”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아직 이사 안 가셨어요?”
“이사?”
“그... 당선 되셨으니까 좋은 집으로 가셔야죠.”
“글쎄요. 전 여기가 좋아서.”
돈 없어서 못 간다.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지는 않으니까.
물론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사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만약 재선에 실패하면 독촉의 압박은 상상 이상이다.
그리고 혼자 지내는데 이 정도 크기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있었고.
성윤은 슬쩍 웃으며 계단을 걸었다.
그녀가 뒤를 쫓으며 묻는다.
“이제 좋은 차 안 타세요?”
“네?”
“그 전에 다른 국회의원 아래서 일하실 때는 좋은 차 타셨잖아요. 반짝 반짝한 검은 차.”
“그 분은 돈이 많았지만 전 없어서요.”
많은 사람이 국회의원에게 관용차가 지급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 없다.
개인비용이나 후원을 통해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거다.
성윤이 힐끗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따라 말이 많다.
뒤를 졸졸졸 쫓아오며 선거에서 성윤을 찍었다느니 공부 못 하게 생겼는데 한국 대학교 졸업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느니 재잘거리고 있다.
어찌 보면 예의 없는 말이지만 그런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옅게 술 냄새가 난다.
“기분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
“아... 좋은 일. 있어요. 제 노래가 데뷔할 것 같아요.”
성윤이 활짝 웃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꿈속에서도 좋아했던 노래니까 현실에서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백형욱 의원의 사무실에서 배신과 통수를 보며 기분이 어두워졌었는데 하루의 마지막을 좋은 소식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진심으로.
“언제요? 연습생부터 하는 건가요? 아니면 바로 데뷔? 제가 그쪽을 잘 몰라서요.”
“바로 할 것 같아요.”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칙칙했다.
평소 성윤을 경계하기는 했지만 항상 밝은 눈빛을 보였던 그녀다,
하지만 지금은 칡넝쿨처럼 얽힌 고민이 눈동자를 흔들고 있다.
기쁜 일을 말하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고민.
성윤은 잠시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일반 사람의 마음을 듣는 것은 오랜만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어서 주로 의원들을 상대할 때만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귀를 열고 다녀도 주로 듣는 것은 ‘배고파’ ‘퇴근하고 싶어’ 등등의 쓸데없는 것이지만 종종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도 들려온다.
친한 척 인사하며 ‘쓰레기 같은 놈’이라 욕하는 사람.
울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며 ‘개꿀잼!’이라 즐거워하는 사람.
그런 속마음을 듣고 있으면 불신 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남의 생활을 엿보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가수 지망생의 마음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고민에 휩싸인 눈빛을 보이며 억지로 웃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들려왔다.
-내 노래는 데뷔하지만 나는......
성윤은 그녀가 했던 말을 기억해봤다.
그녀는 ‘제 노래가 데뷔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었다.
그것도 참 우울한 표정으로.
‘노래만 데뷔한다고?’
성윤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곡만 계약된 거예요? 작곡가로?”
“아...네. 아직 계약은 안 했지만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제 노래는 별로래요. 얼굴도 평범하고......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갑작스레 폴더 인사를 한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오늘 쓸데없는 말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인사와 동시에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술을 먹고 횡설수설 말한 게 부끄러웠나 보다.
성윤은 잠시 닫힌 문을 바라봤다.
‘곡만 데뷔한다고?’
꿈속에서 듣던 노래가 그녀가 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부른 것인지는 모른다.
옥상에서 봤던 그녀는 기타를 쳤을 뿐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노래는 다른 사람이 부른 건가?
여기까지 생각하던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꿈속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한 것을 본 적이 있잖아?’
하지만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그녀가 어떤 방송에 나왔는지 그 노래를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꿈속에서도 지금도 텔레비전은 거의 뉴스만 보니까.
‘어쨌든, 더스트 엔터테인먼트라고?’
그녀의 속마음을 통해 해당 소속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더스트의 뜻은 먼지 티끌이다.
이름부터 수상하다. 수상해.
성윤은 한숨을 내뱉으며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앞집의 문이 살짝 열리며 그녀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조금 밝은 곳에서 보니 양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술을 좀 마시기는 했나 보다.
상당히 귀염상인데 소속사에서는 왜 평범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전 전소희라고 해요. 제 이름 아직 말씀 안 드린 것 같아서......”
“이성윤이에요.”
“의원님 성함은 알아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다시 앞집의 문이 닫혔다.
성윤은 픽 웃으며 ‘전소희, 전소희.’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려 본다.
***
다음 날.
눈을 뜬 성윤은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빵을 입에 물었다.
‘지겹네.’
아침마다 빵을 먹는 것도 이제 물린다.
퍽퍽하니 느글느글 거릴 정도.
문득 꿈속의 결혼 생활이 떠올랐다.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항상 아침을 차려줬었다.
그리고 성윤의 앞에 앉아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물었었다.
“맛있어요?”
그럼, 성윤은 언제나 메마른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된장국이 참 맛있었던 것 같은데...... 난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지, 안 돼.’
꿈속에서 아내였던 사람과의 마지막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결혼은커녕 여자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원대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갈 뿐이다.
성윤은 싱크대 한 쪽에 놓인 밥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냉장고를 열어봤다.
생수만 보인다.
컵에 물을 따른 후 시선을 다시 밥통으로 옮겼다.
이제는 밥을 좀 해먹어야겠다.
마트에 가면 반찬도 잘 나와 있으니 밥만 하면 식사는 무리 없을 거다.
반쯤 먹은 빵을 내려둔 뒤 현관으로 이동해 신문을 집어 들었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치자 간밤에 축구를 했는지 ‘졌어도 잘 싸웠다.’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1면에 올라와 있었다.
몇 장을 넘기자 백형욱 의원의 사채업자 스캔들이 작게 실려 있다.
그렇게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고 있는데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어, 정우야.”
-의원님, 오늘 급하게 인터뷰 잡혔거든요? 바로 진행할 게요.
초선 의원에게 인터뷰가 들어왔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 한다.
작게나마 인지도를 높이는 게 다음 공천에서 중요하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됐어. 귀찮아.”
-네, 진행할게요. 한동 일보고요. 김미선 기자예요. 백형욱 의원이 형님 인지도 높여준다고 인터뷰 잡아 준 모양이에요.
정우는 참 말을 듣지 않는 보좌관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먼저 와 있던 김미선 기자가 정우와 한창 대화중에 있었다.
얼마나 재밌게 대화를 하는지 깔깔깔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와 정치인은 공생관계라더니 뻗대던 그녀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좋은 아침입니다.”
성윤의 인사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미선 기자가 밝은 모습으로 성윤을 보며 입을 연다.
“오셨어요?”
성윤과 김미선 기자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막 질문을 시작할 때, 성윤이 손을 저었다.
“잠깐만요. 인터뷰 전에 제가 먼저 질문해도 될까요?”
“의원님이요? 좋아요. 뭐든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혹시...더스트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 흔했던 거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