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5) >
큰 소리로 인사했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모든 사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윤을 찌르고 있다.
하지만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느긋한 표정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머리가 헝클어진 전략기획위원장, 수심이 가득한 최고 위원 그리고 굳어진 얼굴로 앉아 있는 다른 의원들.
성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백형욱 의원에게서 멎었다.
과연 차기 대선 주자답게 이런 상황에도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마음고생을 하는지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옆에 선 사람은 누군가?”
성윤은 대답대신 옆에 선 남자를 슥 바라봤다.
손목을 잡아 질질 끌고 온 남자, 사채업자였다.
그는 영혼이 가출한 눈동자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아홉 명의 국회의원들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권력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홉 명의 국회의원은 사람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괴물들.
특히 백형욱 의원을 보고 있으면 조선 시대 장군이 떠오를 정도다.
이런 기세는 서민의 등에 빨대 꽂고 살던 일개 사채업자가 감당할 수 없었다.
“흐흐흡.”
사채업자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된 숨을 들이마셨다.
그 모습이 꼭 단두대에 서서 목이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탕! 백형욱 의원이 책상을 치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는지,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물었잖아!”
이번에도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사채업자를 던지다시피 앞으로 밀어 넣었다.
회의 테이블 앞으로 힘없이 쓰러진 사채업자는 일어나기 위해 양 손으로 땅을 짚었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지는 못한다.
성윤이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사채업자입니다. 백형욱 의원님께 돈을 건넸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이죠.”
“뭐...뭐!”
아홉 명의 국회의원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이 새끼가 그 새끼라고?”
“이런 개새끼......”
빠득 이 갈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당장 갈아 마시겠다는 살벌한 눈빛에 사채업자의 몸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전략기획위원장은 분노를 이기지 못했는지 사채업자를 향해 거친 걸음으로 다가왔다.
“네가 그놈이라고?”
“죄, 죄송합니다!”
퍽!
전략기획위원장이 축구공을 차 듯 사채업자의 배를 가격한다.
“끄헙!”
“이런 미친 새끼가 감히!”
퍽! 퍽! 퍽!
사채업자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전략기획위원장의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사채업자의 코와 입술에서 피가 터지며 회의실 바닥에는 핏물이 번진다.
하지만 전략기획위원장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는다.
깡패도 아니고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참 양아치 같다.
전략기획위원장을 보며 성윤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선거를 치를 때 당사에 끌려 간 적이 있다.
그때 전략기획위원장이 했던 말이......
“이성윤 후보와 당대표 사이에 커미션이 있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이 후보, 자네가 대답해 봐. 어떻게 박대철의 가방을 들던 자네가 공천된 거지?”
전략기획위원장은 성윤을 빌미로 삼아 어떻게든 당대표를 깎아 내리려던 자다.
그는 백형욱 의원의 충신이니까.
그런데......
‘이거 골 때리는 새끼네.’
성윤은 회의실에 들어오면서부터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듣고 있었다.
그 중에 전략기획위원장의 속마음은 참 지랄 맞다.
-이 개새끼! 설마 내가 지시한 걸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 씨발, 그냥 기절해라 새끼야! 좀, 죽으라고!
전략기획위원장이 범인이었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사채업자의 입을 막기 위해 몸소 나선 거다.
‘도대체 뭘 꾸미는 거지?’
전략기획위원장은 백형욱 의원의 충신이다.
그런 그가 이 악물고 백형욱 의원의 뒤통수를 후려 친 거다.
‘도대체 왜?’
‘탕! 탕! 탕!’ 책상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형욱 의원이 세차게 책상을 내려치고 있다.
“그만!”
전략기획위원장의 폭력이 멈췄다.
회의실에는 전략기획위원장의 숨 고르는 소리와 사채업자의 신음 소리만 들려왔다.
백형욱 의원이 정말 짜증난다는 눈빛으로 전략기획위원장을 노려봤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죄, 죄송합니다. 욱 하는 마음에 그만......”
전략기획위원장은 굽실 거렸고 백형욱 의원은 어금니를 꽉 씹으며 싸늘하게 입을 연다.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어!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저놈에게 배후를 묻는 거야!”
“죄송합니다.”
백형욱 의원의 서슬 퍼런 호통에 전략기획위원장은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백형욱 의원의 시선이 사채업자에게 향한다.
“네 뒤에 누가 있지? 네까짓 놈이 혼자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쿨럭.”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사채업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던 전략기획위원장의 입에서 안심된 한숨이 내뱉어진다.
‘정신을 못 차려서 다행이야.’
전략기획위원장은 자신이 행사한 폭력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었다.
어차피 상대는 쓰레기 같은 사채업자였고 이 정도 폭력은 자신의 힘으로 쉽게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백형욱 의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이성윤 의원, 들은 것 없나?”
전략기획위원장의 얼굴이 갑자기 팍 일그러졌다.
‘씨, 씨발!’
사채업자를 보고 당황한 나머지 성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성윤은 사채업자를 데리고 온 사람.
여기까지 오면서 충분한 대화를 나눴을 거다.
‘설마, 아는 것은 아니지?’
전략기획위원장이 마른침을 삼킬 때, 성윤의 시선이 스르륵 그를 향했다.
눈이 마주친다.
성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빙긋이 미소를 그린다.
‘젠장, 젠장, 젠장!’
이제 모든 게 끝이다.
전략기획위원장은 콱 눈을 감고 성윤의 사형 선고를 기다렸다.
그런데......
“저도 오면서 계속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상대는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해 지시를 내렸고 이놈은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전략기획위원장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새까맣게 타버린 속을 진정시켰다.
입술은 웃음을 참기 위해 씰룩거린다.
‘이 새끼 모르는 구나!’
침착하게 생각하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성윤의 말처럼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했으니까.
그것도 한국에서 구한 게 아니라 중국을 통해 손에 넣었으니 검찰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알아 낼 수 없다.
전략기획위원장은 쾌재를 부르며 표정 관리를 시작했다.
백형욱 의원이 계속 묻는다.
“이성윤 의원, 하나 더 물어봐도 되겠나? 저놈이 그 사채업자인 것은 어떻게 알았지?”
이런 질문이 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성윤은 준비했던 대답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대부업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 사채업자가 최근 돈 줄이 말랐으면서도......”
성윤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백형욱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고맙네.”
성윤은 예의 있게 그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백형욱 의원이 말을 잇는다.
“뭔가 더 좋은 말을 하고 싶은데 고맙다는 말 뿐이 생각나지가 않아.”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원수는 잊어도 은혜는 확실히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 잊지 않을 테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 올 수 있도록 해.”
백형욱 의원이 성윤의 어깨를 격려하듯 토닥였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끝낸 백형욱 의원이 몸을 돌렸다.
“보좌관, 바로 보도자료 뿌리도록 해!”
보좌관은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꿈속에서 백형욱 의원을 은퇴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대형 언론사를 통해 보도 자료가 올라갔다.
-사채업자 검거.
-사채업자, 백형욱 의원이 이미지를 생각해 돈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협박에 흔들리지 않은 백형욱 의원, 협박범에게 합의는 없다. 엄벌을 받아야 할 것.
-백형욱 의원, 사실 관계 확인 않고 가짜 뉴스 올린 언론사들 고소 예정.
대한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댓글도 빠르게 올라갔다.
-역시 백호랑이 백형욱.
-보통 정치인이었다면 합의했을 걸? 돈 주고 입 막는 게 특기니까.
-사채업자 골로 가겠네. 백형욱 의원이 판사 출신인 것 몰랐나?
-가짜 뉴스 뿌린 기레기들 발발 떨고 있을 듯.
-사형 가자!!!!!
성윤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연기를 내뱉으며 휴대폰으로 기사와 댓글을 확인한다.
대충 확인해 보니 여론은 나쁘지 않다.
‘괜찮네.’
더 볼 것이 없는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입에서 뿌연 연기가 뱉어진다.
고개를 틀어 백형욱 의원의 사무실을 보니 창문으로 사람들이 다급히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사건은 끝났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가 보다.
성윤의 옆으로 정우가 다가왔다.
피곤한지 뒷목을 꾹꾹 누르며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건넨다.
안에는 십 년은 넘어 보이는 구형 폴더 폰이 들어 있다.
“이거야?”
“네. 발신번호 확인해 보세요.”
정우는 성윤에게 일회용 비닐장갑을 건넸다.
성윤이 장갑을 끼고 휴대폰을 확인하며 물었다.
“어디 있었어?”
“멍청하게 뒷좌석에 던져 놨던데요?”
성윤은 전략기획위원장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정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략기획위원장의 차를 뒤져서 대포폰이나 대포통장 등의 증거를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정우가 건넨 휴대폰이 그 대포폰이다.
비닐봉지에 넣은 것은 지문관리 때문이고.
“땡큐.”
“전 그럼 차에서 쉬고 있겠습니다.”
성윤은 정우를 뒤로하고 다시 백형욱 의원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두운 계단에 뚜벅뚜벅 성윤의 발소리만 들린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끝낸 최고 위원이 성윤을 보며 말한다.
“고생했어.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어.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까.”
말투와 목소리가 참 호의적이다.
“혹시 전략기획위원장은 어디에 있나요? 들어갔나요?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깜빡해서요.”
“전략기획위원장? 잠깐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의원이 앉아서 업무를 보는 비서를 툭 친다.
“혹시 전략기획위원장 못 봤어?”
“화장실 가신 것 같은데요.”
전략기획위원장은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혈뇨가 나오는 것 같았다.
“하, 새끼.”
계획대로였다면 백형욱 의원은 큰 타격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고작 해프닝.
“들어간 돈이 얼만데......”
돈만 쓰고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세면대로 이동한 그가 수도꼭지를 들어 올렸다.
쏴아아아.
물이 쏟아졌고 그는 손을 꼼꼼하게 닦는다.
끼릭. 문이 열렸다.
고개를 틀어 보자 성윤이다.
전략기획위원장은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못하고 성윤을 노려봤다.
모두 성윤 때문에 망쳐 먹었다.
씹어 죽여도 시원하지 않을 놈.
하지만 백형욱 의원의 충신 코스프레를 하려면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전략기획위원장은 쏘아 보던 눈빛을 숨긴 채 인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집에 안 가?”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
“해야 할 일?”
“네.”
성윤은 끼이이익 화장실 문을 닫고 딸칵 문을 잠근다.
그 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는지 전략기획위원장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