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4) >
***
성윤은 조수석에 앉았다.
“그럼, 출발할 게요.”
“그건 뭐야?”
“배가 고파서......”
정우는 슬쩍 웃으며 접시 채 가져 온 머리고기를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하긴 밤 아홉시가 가까웠다.
지금껏 먹은 게 없으니 배고플 것은 당연하다.
정우는 머리고기를 씹으며 엑셀을 꾹 밟는다.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그리고 성윤은 창밖을 보며 꿈속에서 봤던 미래를 되짚기 시작했다.
‘백형욱 의원......’
강직한 이미지를 가진 백형욱 의원이 수십억의 뒷돈을 받고 일본인 사채업자의 세력 확장을 도왔다는 스캔들.
물론 사실이 아니라 정치적 공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어.”
“다 똑같은 놈들이지.”
국민은 정치인을 불신했고 커진 의혹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백형욱 의원이 권력을 사용해서 기자들의 입을 막았다는 등, 사채업자를 밀항 시키려 했다는 등, 그리고 검사와 판사를 장악해 무혐의로 종결했다는 등등등.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물론 나중에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밝혀졌지만 진실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백형욱 의원의 강직한 이미지는 이미 산산이 조각난 후였다.
결국 백형욱 의원은 정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모습을 감추게 된다.
대한당 차기 대권주자라 불렸던 사람치고는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성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건을 해결할 자신은 있다.
꿈속에서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문제는 백형욱 의원에게 헤드샷을 날린 저격수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굴까?’
머릿속에 많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한다.
차기 대권 주자를 꿈꾸는 당대표. 비주류의 점집 매니아 주진만......
모두가 백형욱 의원이 사라졌으면 하는 인물들이고 백형욱 의원이 사라지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자들이다.
‘미치겠네.’
답은 알고 있지만 풀이 과정을 모르는 상태.
이럴 경우 오히려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네가 범인이지! 범인이 아니면 알 수가 없잖아!’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의심.
그렇다고 나 몰라라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의심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권력자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것은 바보니까.
기회는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하는 법이다.
“의원님, 여기 맞아요?”
이곳은 경기도에 있는 공업 도시의 유흥가, 늦은 시간이었지만 불빛이 번쩍이는 곳.
명함을 돌리는 나이트클럽 웨이터가 보였고 술에 취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성윤과 정우가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에요?”
“백 의원이 돈 받았다고 뻥친 놈 있는 곳.”
성윤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정우는 그 옆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외국인 정말 많네요.”
성윤도 고개를 들어 정우의 시선을 쫓았다.
공업 도시라 그런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보인다.
가게의 간판도 한글이 아니라 한문이나 영어로 적인 게 꽤 많다.
한국인지 외국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
순간, 한동 일보에 갔을 때 김미선 기자가 들고 있던 서류가 떠올랐다.
성윤이 물끄러미 보자 ‘탁!’ 뒤집어 놓았던 것.
그 서류의 타이틀은 ‘불법체류자’였다.
“정우야, 불법체류자 실태 조사 좀 해줘. 단순 기록도 좋지만 현실 반영 사례가 많았으면 좋겠어.”
“알았어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윤은 다시 휴대폰에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꾹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디에 전화하세요?”
“경찰.”
“경찰은 왜요?”
“사채업자 잡아야 하는데, 너 싸움 못 하잖아.”
“전 비폭력주의자라......”
정우는 먼 산을 본다.
성윤은 픽 웃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지금 만나러 가는 놈은 단단히 굴러먹은 사채업자다.
백형욱 의원을 상대로 입을 터는 놈에게 초선 의원인 성윤이 맨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
그래서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이왕이면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서 휴대폰을 들고 경찰 서장의 전화번호를 찾은 것이다.
“조봉진 서장님이시죠? 서안시 동구 국회의원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의 사채업자 문제로 전화 드렸습니다. 조용히 해결하고 싶은데요. 여기 주소가......”
통화를 종료한 성윤은 상가 건물의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올랐다.
사채업자의 사무실은 불법 도박 등을 하는 놈들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영업 중이다.
삐걱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당히 불량하게 생긴 여섯 명의 인물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성윤을 노려본다.
“돈 빌리러 왔어요?”
“그건 아니고 사장이 누구?”
창가 아래에 있는 책상에 발을 걸치고 누워 있듯 앉아 있던 남자가 시큰둥한 눈으로 성윤을 본다.
“사장은 난데, 무슨 일이요? 아는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백형욱 의원에게 돈 찔러줬다고 거짓말한 사람이 그쪽? 한국인이면서 일본인 코스프레하는 이상한 사람 맞죠?”
성윤의 말에 사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라는 표정과 함께 당황한 눈빛이 역력하다.
“씨, 씨발...”
“하나만 물어 봅시다. 사주한 사람이 누구예요?”
“모, 몰라 이 새끼야.”
사장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책상 서랍을 열어젖힌다.
그 안에 시퍼런 칼날이 번뜩이는 회칼이 보인다.
그가 손을 뻗어 칼을 잡으려 할 때, 성윤이 말했다.
“그거 꺼내면 가중처벌 되요.”
“가중처벌? 너 경찰이야?”
“아뇨.”
“그럼 넌 뭐야 이 새끼야!”
성윤이 고개를 휘휘 저은 후 정우를 향했다.
“내가 아직 안 유명한 가봐.”
“그러게요. 노력해야겠어요.”
정우가 시선을 손목시계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5분 됐습니다. 슬슬 올 것 같아요.”
그 말과 동시에 ‘쾅!’ 문이 열렸고 경찰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한 두 명이 아니라 수 십 명.
‘어라?’
이건 성윤도 예상하지 못한 거다.
분명 조용히 은밀히 움직이고 싶어서 경찰 서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인데 말 그대로 병력이 움직였다.
경찰 버스 두 대, 경찰차 여섯 대 등등등......
사채업자들은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한 순간에 쓸려 버렸다.
정말 찍 소리도 못하고 수갑이 채워진 채 질질 끌려 다닌다.
국회의원이 경찰 서장의 영혼을 털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
사채업자 하나 잡겠다고 경찰 병력이 건물을 에워싸는 걸 보며 정우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국회의원 파워 죽이네요.”
“그, 그러게.”
꿈속에서는 몇 번이나 국회의원의 힘을 경험했지만 현실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놀란 눈으로 있던 성윤과 정우의 앞으로 경찰 한 명이 다가왔다.
가볍게 경례를 한 그가 입을 연다.
“서른 두 대의 오토바이 불법 개조 및 법정 이자 초과 등에 관한 죄로 체포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잠시만 1층으로 내려가서 기다려주세요.”
경찰들은 사무실을 벗어났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해졌다.
성윤은 사채업자의 사무실을 둘러봤다.
엎어진 의자와 나뒹구는 잡동사니.
성윤의 시선은 책꽂이에서 멎는다.
사채업자는 직업의 특성상 기록하고 계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정치인에게 사주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 흔적을 어디에 남겨놨을 가능성이 크다.
성윤이 툭 서류 하나를 뽑아 손에 들었다.
그 시각, 백형욱 의원의 사무실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특히 안 쪽의 회의실은 그 무게감으로 숨도 쉬기 힘들다.
긴 책상에 앉은 아홉 명의 의원들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시작된 백형욱 의원에 관한 지라시가 기자들의 주머니에 속속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백형욱 의원의 라인이다.
백형욱 의원이 무너지면 이들의 미래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당장 1년 후에 있을 총선에서 공천조차 위태롭다.
눈치를 보던 전략기획위원장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의, 의원님. 외람된 질문이지만 돈을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백형욱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만난 적도 없어.”
전략기획위원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전략기획위원장은 호전적인 성격으로 백형욱 의원의 충신중 하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꽉꽉 깨물고 있다.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난 최고 위원이 냉정한 눈으로 백형욱 의원을 향했다.
“의원님, 아무래도 정치공작인 것 같아요. 의심 가는 사람이 없습니까?”
백형욱 의원이 픽 웃는다.
벼랑 끝으로 몰리는 중인데도 그는 아직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의심 가는 사람이 한 둘 이겠습니까?”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백형욱 의원의 보좌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매우 빠른 목소리로 입을 연다.
“메이저 언론사는 모두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소규모 업체에서는 냄새를 맡고 기사를 내는 중입니다.”
앉아 있던 의원들이 다급한 표정과 함께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검색했다.
-국회의원 A씨 사채업자에게 뒷돈 받아.
판사 출신의 강직하고 청렴한 국회의원 A가 일본의 사채업자에게 뒷돈을 받고 세력 확장을 도왔다는 정황이......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A씨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노골적으로 판사 출신과 강직한 이미지를 부각 시켰으니까.
게다가 그림자로 처리한 사진 역시 백형욱 의원이다.
스르륵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했다.
역시......
-백형욱이네.
-졸라 깨끗한 척 하더니 사채업자 ㅋㅋㅋㅋ
-판사 출신이잖아? 어차피 무죄. 씨발.
휴대폰을 보던 의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마를 손으로 짚고 ‘끄음’ 신음을 터뜨렸다.
소규모 언론이 꿈틀대기 시작하면 메이저 업체 역시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정치권의 눈치를 본다는 등 어쨌다는 등 손가락질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팔을 걷어 부친 후 더 자세하고 상세한 루머를 만들어 백형욱 죽이기에 들어갈 거다.
전략기획위원장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백형욱 의원의 보좌관을 노려본다.
“병신 새끼야! 막아야지! 당장 전화해서 기사 내리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고 해!”
“그, 그게......”
“그게 뭐!”
“중국 쪽 업체라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쾅!
전략기획위원장이 책상을 두 손으로 치며 일어섰다.
“중국이면 뭐? 그거 다 변명이야! 무조건 막아, 무조건!”
“네!”
백형욱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만.”
그제야 조용해진다.
전략기획위원장은 입술을 꽉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백형욱 의원이 보좌관을 향한다.
“지라시의 시작은 찾았나?”
“사채업자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구멍이 난 댐을 손바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기사를 막을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뒷돈을 줬다는 사채업자부터 찾아 봐.”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일단 대답했지만 가진 단서라고는 사채업자라는 것뿐이다.
세상 천지에 돈놀이 하는 인간은 무수히 많다.
차라리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게 더 쉬운 일이다.
그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문을 열었는데......
“어?”
낯선 남자의 팔을 잡은 성윤이 보였다.
성윤이 보좌관을 스쳐 회의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안녕하십니까!”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