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화 (29/300)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3) >

두 사람은 한동 일보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한동 일보는 5대 메이저 언론사 중 하나로 ‘사회 정의’와 ‘정치적 중립’을 편집 기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제목을 쓰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래서 적으로 삼으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정치인과 기자의 관계는 참 묘하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지만 어떤 경우에는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한다.

기자가 휘갈긴 기사 한 줄에 박살나는 국회의원이 존재했고 국회의원이 찌푸린 인상 때문에 저 멀리 한직으로 밀려나는 기자도 존재했으니까.

물론 성윤은 기자와 공생 관계가 아니라 을일 뿐이다.

인상을 찌푸려서 골로 보낼 파워는 없지만 잘못된 기사로 떨어져 죽을 가능성은 존재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십 여 명의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직급 높아 보이는 기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저희 회사를 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환대.

성윤은 5선 의원을 잡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선거 중 밝혀낸 갑질 사건은 지금도 이슈가 되는 중이었다.

아무리 초선이라 해도 이 바닥은 인지도가 힘이다.

그래서 한동 일보 정치부 기자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계속 오르 내리는 성윤을 홀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거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뒤에 서 있던 김미선 기자도 고개를 살짝 숙인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바쁜 와중에 불려 나왔는지 손에는 못 다한 일거리가 잔뜩 들려 있었다.

직급 높은 기자가 김미선 기자를 향한다.

“의원님, 편안하게 모셔.”

“네.”

그녀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 지난번과는 다른 상당히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쪽으로 오세요.”

성윤과 정우는 김미선 기자를 쫓아 가장 구석에 있는 인터뷰룸으로 들어갔다.

김미선 기자가 티테이블에 서서 인스턴트커피 봉투를 뜯는다.

툭툭 커피를 털고 쪼르르 물을 따른 후 커피를 타던 그녀가 입을 연다.

“...그런데, 무슨 일로?”

“지난번에 좋은 기사 써주신 것 감사 인사드리러 왔어요.”

사실, 그녀가 쓴 기사를 네 글자로 말하면 무미건조, 감사 인사까지 받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기자다.

피곤한 얼굴로 생긋 웃으며 성윤과 정우의 앞에 커피를 놓는다.

“지난번에는 후보님이셨는데 며칠 만에 의원님이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그리고 그녀가 맞은편에 앉아 성윤을 조용히 바라봤다.

할 일이 많으니 본론이나 말하고 꺼지라는 뜻.

상대가 국회의원이니 노골적으로 말은 못하고 이렇게 보기만 하는 거다.

사실 그녀는 성윤이 불편했다.

윤채아를 통해 안 좋은 기사를 쓰려 했던 적도 있고 성윤 때문에 특종 중의 특종인 갑질 사건을 놓친 기분도 들어서다.

성윤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느긋이 그녀를 살핀다.

그녀의 눈동자와 표정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그녀가 계속해서 들고 있던 서류 뭉치다.

성윤의 눈길을 알아챈 그녀가 재빨리 뒤집는다.

하지만 이미 타이틀은 성윤의 눈에 박힌 후였다.

‘불법 체류자? 정치부 기자와 무슨 상관이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미선 기자가 입을 연다.

“기사에 대한 인사를 하러 오신 것이라면......”

“윤채아 의원이 어떤 말을 언급했죠?”

“네?”

“따지러 온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요.”

김미선 기자의 얼굴이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민망할 정도로 새빨개졌다.

“윤, 윤 의원이 뭐라고 하던가요?”

“글쎄요.”

성윤은 시치미를 떼며 종이컵을 들어 입에 댄다.

그녀의 시끄러운 속마음을 듣는 중이다.

-윤채아 그 년이 끝까지!

아쉽게도 속마음을 듣는 것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그녀가 윤채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다는 것만 예상할 뿐,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싫어하게 됐는지 등등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속마음을 듣고 이유를 추론하는 과정은 필수다.

인터뷰를 하던 날 그녀의 뒤를 뒤쫓았던 정우가 성윤에게 했던 말......

“형님 이름이 몇 번 거론됐어요. 그런데, 인터뷰 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았고요. 목소리가 상당히 기분 나쁘게 들렸는데, 거짓말 했냐, 어쨌냐 하면서......”

그 말을 떠올리며 성윤은 다시 김미선 기자를 향했다.

“윤 의원에게 들었어요. 기자님이 저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쓰려 했다고요.”

“걔, 걔가 그런 말을 했어요?”

그녀의 손이 바들 떨리며 분위기가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정치인을 상대로 장난질 하려던 게 알려지면 그녀는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손가락으로 툭 치면 죽는 거다.

성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런데, 전 윤 의원보다 기자님이 더 신뢰가 갔어요. 기사는 인터뷰 했던 대로 나갔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확인하러 온 겁니다. 전 기자님과 친해지고 싶거든요.”

“아...네...”

김미선 기자는 억지로 웃는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윤채아의 부모님 안부를 묻는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쌍욕을 이어가고 있었다.

기자가 이렇게 욕을 잘 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이럴 땐 확인 사살이 필요하다.

“아시겠지만 전 금수저도 아니고요. 누구를 괴롭힌 적도 없어요.”

윤채아가 했던 말이 성윤의 입에서 똑같이 전해져 왔다.

김미선 기자는 성윤이 무슨 말을 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성윤이 커피가 담긴 컵을 놓으며 조용히 말을 잇는다.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윤 의원에게 따지지는 말아 주세요. 이제 막 의원이 됐는데 시작부터 분란에 휩싸이고 싶지는 않아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프로예요.”

대답하는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다.

-그러고 보면, 그년은 살살 웃으면서 날 이용하기만 했어. 난 속은 거고. 기다려, 윤채아. 똑같이 해줄 테니까. 나도 네년 앞에서 살살 웃으면서......

속마음을 들어보면, 김미선 기자는 윤채아와 친하게 지내는 척 미소 지으며 박박 칼을 갈 계획이다.

성윤과 나눴던 대화를 비밀로 하는 것은 당연하고.

성윤은 엷게 웃었다.

이제 떡밥은 던져뒀다.

조만간 윤채아를 박살 낼 때 김미선 기자는 최선봉에 서서 죽창을 들고 달려갈 거다.

친했던 사람이 돌아서면 가장 무서운 법이다.

한 가지 더 반가운 것은 김미선 기자는 정치부 당 출입기자 팀장이라는 거다.

가까이 지내면 무조건 도움이 된다.

***

며칠간 정신없이 바쁜 생활이 이어졌다.

성윤과 정우는 시장 길 건너편에 있는 스무 평 정도의 사무실을 계약했다.

사무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작은 곳은 성윤이 쓰기로 했고 나머지는 싱크대와 주방기기 그리고 소파와 컴퓨터 등의 사무 용품으로 채웠다.

모두 인터넷 최저가다.

그렇게 완성된 사무실, 멋진 그림 등 호화스러운 물건은 없지만 흰색과 검은색이 잘 어우러진 모던한 공간이었다.

사무실을 살피던 정우가 벽지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상주하는 보좌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국회의원 사무실에는 참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

민원을 넣는 사람, 지나가던 당원 등등등.

바쁘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친절한 서비스는 다음 총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무실에 붙어 앉아 커피나 타줄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상주하며 민원을 챙기고 섭섭하지 않게 대할 사람이 필요했다.

“파트 타임 한 명 고용하자.”

“네? 파트 타임이요?”

“단순 업무잖아. 세금 낭비하지 말고 파트타임할 사람 찾아봐. 나이는 조금 있었으면 좋겠고 주민들이 찾아왔을 때 사근사근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

“아르바이트 비는 어디서 나와요? 그냥 속 편히 인턴 하나 고용하죠.”

“나 돈 많이 받잖아? 거기서 떼면 되지.”

국회의원은 평균 천만 원 정도의 세비를 받는다. 거기에 특수 활동비를 더하면 약 2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 돈은 자신의 생활비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런데 직원을 고용하겠다니......

정우가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런대요. 중요한 전화 오면 어떻게 하려고요. 파트 타임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면요?”

“네 핸드폰으로 전화 돌려 놔. 됐지?”

“운전도 하고 전화도 받고 홍보도 하고?”

“참 든든해. 최고야.”

정우가 머리를 잡아 뜯는다.

“제가 죽으면 묘비에 과로사라고 적고 원인 제공자에 악덕고용주 이성윤이라고 적어주세요.”

그런데, 정우의 불만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성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성윤은 입으로만 새로운 정치를 떠벌리지 않는다.

행동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탁상공론을 경계한다.

책상 밖에는 이론과 다른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윤은 직접 경험하고 실현하며 바꿔 나갈 생각이었다.

그 첫 번째가 보좌진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많은 보좌진을 손에 넣고 있다.

지난번에도 설명했지만 대한민국보다 많은 보좌진이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많은 보좌진이 필요한지 직접 확인해보는 중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고생은 할 거다.

하지만 몸 편하고 거들먹거리려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아니었다.

정우가 짝 손뼉을 쳤다.

“사무실 완성됐는데 고사나 지낼까요? 제가 시장가서 머리고기 사올 게요. 고사 지낸 다음에 소주 한잔 딱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고사는 핑계고 술이나 한잔 하자는 거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걸리로 가져 와.”

“옙!”

잠시 후, 다시 사무실에 돌아온 정우는 책상 위에 머리고기를 올렸다.

돼지 머리 대신이다.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놓는다.

향을 대신하는 거다.

“완성!”

성윤이 그 옆에 오만 원을 놓았다.

“그런데, 돈은 손님이 놓는 거 아닌가?”

“몰라요. 의미만 있으면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손님 없잖아요. 흐흐.”

두 사람은 책상 앞에 섰다.

이제 절을 하면 되는데, 성윤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을 울린다.

“잠깐만.”

성윤은 핸드폰을 귀에 댔다.

“네, 국회의원 이성윤입니다.”

-한동 일보 김미선이에요.

힐끗 시간을 확인했다.

밤 8시.

성윤과 김미선 기자는 아직 애매한 사이다.

그러니까 이 시간에 술 먹자고 전화할 일은 없다.

“무슨 일이시죠?”

-아직 라인 탄 것 없으시죠? 있나요? 아, 당대표님 라인인가?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다급해 보였다.

“아뇨, 아직 없어요. 그런데, 그건 왜?”

-백형욱 의원님이요. 스캔들 터질 것 같아요. 첩보로 들어온 내용이지만 지라시도 돌고 있고 꽤 신빙성이 높아요. 그러니까 혹시 백형욱 의원님 라인 쪽 친한 사람 있으면 손절하세요. 정치란 휘말리면 휩쓸려 버리니까요.

성윤은 주먹을 콱 쥐었다.

‘드디어 터졌구나.’

대한당의 차기 대권주자,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던 백형욱 의원, 꿈속에서는 사채업자의 뒤를 봐줬다는 스캔들과 함께 정계를 떠났다.

하지만 그것은 꿈.

현실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성윤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머리고기를 손으로 집어 씹는다.

“의원님? 그거 고사 지낼 고기예요.”

“시간 없어. 가자.”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요?”

“세발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으러.”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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