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2) >
‘저...저게!’
윤채아가 붉은 입술을 잘근 씹었지만 눈빛의 마주침은 거기까지였다.
성윤을 향해 의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난 처음부터 이성윤 의원이 당선될 줄 알았어.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데뷔전부터 거물을 이기고 올라오다니,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 같아.”
한 사람, 한 사람 성윤의 어깨를 토닥이고 악수하며 칭찬을 이어갔다.
친근한 미소를 짓는 그들.
하지만 속마음과 내뱉는 말은 전혀 달랐다.
-이런 애새끼가 국회의원이라고? 하, 씨발 수준 떨어지게.
-좆같은 새끼.
더러운 속마음이 목소리가 되어 들려왔다.
하지만 성윤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은 원래 가식적인 탈을 쓰고 ‘하하하’ 웃으며 있는 힘껏 뒤통수를 때리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상대할 땐 완벽한 표정관리와 함께 발톱을 숨겨야 한다.
그래야 통수의 통수를 칠 수 있으니까.
당대표와 손을 잡고 만세 삼창을 외치며 공식적인 식순은 끝났다.
성윤의 곁에서 거짓된 덕담을 이어가던 의원들도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친목을 다진다.
성윤은 구석의 창가에 몸을 기대고 의원들을 살펴봤다.
그들은 분명 웃고 있다. 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그 불신의 원인은 계파 갈등.
그리고 공석이 된 원내 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 싸움.
‘이러니까 민심이 떠나지.’
국민을 걱정하는 의원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서로 손을 잡고 민생 안정에 올인해도 떠나간 민심이 돌아올까 말까인데 저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만 염려할 뿐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윤채아였다.
성윤이 슬쩍 웃었다.
‘아, 나도 이 여자는 못 믿는 구나.’
눈이 마주치자 윤채아가 생긋 미소를 그린다.
정말 아름다운 미소.
미모로 먹고 사는 발연기의 여배우를 끌어다 놔도 밀리지 않을 외모다.
하지만 성윤은 그녀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면 뒤에 숨은 추악한 악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
어제의 아군도 오늘의 적이 되면 서슴지 않고 목을 벨 여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녀는 이미 성윤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목이 베어지지 않으려면 경계해야 한다.
성윤은 곧장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윤채아가 창가에 등을 기댔다.
성윤과 나란히 선 모습, 모르고 본다면 두 사람이 참 다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소리없는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위원회 가입한 것 없으시죠? 제가 중앙 청년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있거든요. 이성윤 의원님이 함께 해주신다면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청년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잖아요.”
윤채아는 순정 만화 속의 청순한 주인공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성윤을 바라봤다.
평범한 남자였다면 메두사 같은 눈빛에 넘어가 돌이 되어 버렸겠지만 상대는 성윤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듣는 중이다.
-어서 들어온다고 해. 신고식 해줄 게. 그런데, 그 신고식이 네 정치 인생의 끝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윤채아는 천사같이 웃으며 개 같은 일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함정인 것을 아는데 들어가는 것은 병신이다.
“글쎄요. 전 따로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좋은 제안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네?”
성윤은 혈기왕성한 이십대였고 윤채아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유혹하면 당연히 가입할 줄 알았나 보다.
확고한 거절에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윤채아의 표정을 즐기던 성윤은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당사에서 한동 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날.
그때 그 기자는 누군가의 거짓 정보에 의해 성윤을 오해하고 있었다.
“윤 의원님. 혹시 한동 일보 김미선 기자를 알고 있나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쑤시고 들어오자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떨려왔다.
성윤은 질문을 조금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
“누군가가 제 뒷말을 하고 다녔나 봐요. 저도 첩보로 들은 거라 확실하지는 않은데 우리 당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당혹으로 일그러지고 있었지만 성윤은 끝까지 차분하다.
“그래서 윤 의원님이 그 기자와 친한 사이라면 식사 자리를 좀 부탁하려고요.”
“식사는 왜요?”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나요? 누가 뒷말을 했다고 하면 궁금하잖아요.”
“아, 네... 한 번 알아볼 게요.”
그녀의 눈동자와 목소리 역시 많이 침착해졌다.
하지만 속마음은 태풍 속 바다처럼 흔들리는 중이다.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혹시나 했는데 오해를 만들어 냈던 것은 그녀가 맞았다.
성윤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안 되겠네.’
성윤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는 중이다.
윤채아를 계속 가만히 두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은 살살 신경을 건드리는 중이지만 언제 식칼을 들고 나타나 배를 쑤실지 알 수 없었다.
성윤을 향한 그녀의 적대감은 점점 커지는 중이니까.
‘당하기 전에 박살내야겠어.’
윤채아는 청년 위원회에 가입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성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확실히 위험해, 끝장 낼 방법을 빨리 생각해야 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성윤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저런 생각을 하는 이상 그녀의 정치 생명을 끊어 버리는데 거리낌이나 죄책감은 없을 것 같았다.
혼자가 된 성윤은 회의장을 둘러봤다.
잠시 모습을 보였던 당대표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차기 대권주자라 불리는 백형욱 의원은 처음부터 오지 않았다.
다른 의원들은 성윤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이곳을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성윤은 몸을 돌려 회의실을 벗어났다.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화장실을 스칠 때 누군가가 젖은 손을 와이셔츠에 닦으며 나타났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온 몸에서 알콜 냄새를 뿜어내는 쉰여덟 살 주진만 의원이었다.
“벌써 가나?”
“아, 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주진만 의원이 휴게실을 가리킨다.
“잠깐 얘기 좀 하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술 취한 남자의 과거 영웅담이다.
군부 시절이 어땠고 민주화 운동이 저랬으며 지금 청년들은 이렇다는 이야기.
최루탄을 피해 도망친 것을 시작으로 이어지던 그의 말은 뜬금없이.......
“자네, 점을 믿나?”
“네? 점이요?”
갑자기 점이라니.
다시 봐도 주진만 의원은 상당히 취해 있다.
지금 시간이 오후 다섯 시.
회의실에 술이 준비되지는 않았으니까 어제 마셨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퍼마셔야 지금까지 취해 있는지 예측하기 힘들다.
주진만 의원이 무척 중요한 정보를 전하는 것처럼 속삭인다.
“쉿, 목소리 작게 하고. 경기도 안산에 용한 점쟁이가 있어. 같이 점집에 다니는 의원들이 몇 있는데, 같이 가보겠나?”
‘어라?’
성윤은 천천히 주진만 의원의 얼굴을 살폈다.
술 냄새는 여전하지만 그의 눈빛은 처음과 달리 번뜩이고 있다.
‘이거 스카우트야?’
국회의원들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경제, 복지 등 민생을 위한 공부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당내 입지를 위해 세력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주진만 의원의 말은 지금 성윤을 자신들의 모임에 가입해 세력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좀 특이했다.
‘점집을 찾아다니는 모임?’
용한 점집을 찾아다니는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임으로 만들어 내세우는 것은 처음봤다.
그때, 주진만 의원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우리도 원내 대표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여기 있는 개새끼들은 너무 썩었어.
지금 대한당 원내 대표는 공석이었고 곧 당내 선거가 시작된다.
대한당 모든 사람의 시선은 원내 대표의 자리에 집중되어 있다.
단번에 권력을 거머쥘 수 있으니까.
주진만 의원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비주류 의원인 그는 원내 대표를 만들어 단번에 주류로 올라서길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주진만 의원이 아무리 칼을 간다고 해도 세력의 차이는 비할 수 없이 크다.
‘원내 대표가 될 수 있다고 점쟁이가 바람을 넣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주 의원님 뭐하세요?”
다른 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진만 의원은 성윤을 보며 재빨리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눈빛을 숨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친숙한 동네 아저씨처럼 웃고 있다.
“아오, 술이 안 깨. 미치겠어. 흐흐흐.”
“조금만 드시지 그랬어요.”
주진만 의원은 속마음을 숨기고 어설픈 취객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주진만 의원의 뒷모습을 보며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마피아 게임 같네. 다들 속이고 또 속이고. 눈 뜨고 목을 베이고.’
잠시 후, 성윤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량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정우가 들고 있던 테블릿 PC를 내려두며 묻는다.
“오늘 술자리까지 예약된 것 아니었어요?”
“나 없어도 되겠더라.”
성윤이 안전벨트를 매자 정우가 묻는다.
“분위기 어땠어요?”
“가면무도회 같았어.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의 파티.”
“재밌었겠네요. 제가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칼 들고 있는 것이요. 그러다가 빡! 뒤통수에 칼을 꽂으면.... 흐흐.”
“그런 말 할 때 눈에 힘주지 마. 무서워.”
차가 이동하며 성윤은 원내 대표를 노리는 주진만 의원을 떠올렸다.
원내 대표를 노리는 사람들.
당대표는 자신의 라인을 원내 대표에 올리고자 애를 쓸 거다.
차기 대권주자라 불리는 백형욱 의원 역시 마찬가지고.
그곳에 비주류인 주진만 의원이 투입된다면?
‘말 그대로 대한당 삼분지계네.’
성윤이 운전을 하는 정우에게 시선을 옮겼다.
“보좌관 아저씨, 질문이 있는데.”
“말씀하세요.”
“대한당이 세 조각으로 쪼개지면 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마침 차가 신호에 걸렸고 정우는 머리를 쓸어 넘긴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연다.
“대한당이 세 조각으로 쪼개진다면 당대표 라인과 백형욱 라인 그리고 비주류 모임인가요? 이 사람들이 원내 대표 선거에서 붙게 되나요?”
정우는 성윤의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하고 있다.
독심술이 있나 의심될 정도다.
“뭐, 그렇다 치고. 계속 말해 봐.”
“답은 하나예요.”
“뭔데?”
“의원님이 중심에 서는 것. 세 개의 세력을 세 발 자전거의 바퀴로 만들고 의원님은 그걸 운전하는 꼬마가 되는 거죠.”
“꼬마?”
“네.”
“세 발 자전거?”
“네.”
“그래, 운전이나 해.”
“어? 지금 제 말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성윤은 손을 절래 저었다.
“믿어. 걱정하지 마.”
건조한 음성이었지만 정우는 자신을 생각하는 성윤의 믿음을 확실히 전달 받았다.
정우가 슬쩍 웃는다.
“지금부터 세 개의 세력을 조물조물 요리할 레시피 한 번 생각해 볼 게요.”
세 개 세력의 중심에 선다면 당내 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될 수 있다.
단숨에 권력의 중앙으로 들어가는 거다.
성윤이 자신의 뒷목을 꾹꾹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차 돌려. 서울 온 김에 한동 일보 좀 들렀다 가자.”
“한동 일보요?”
“여우 사냥도 준비해야겠어.”
그 전에 윤채아를 어떻게 해야겠다.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