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7화 (27/300)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1) >

초반은 성윤과 박광택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양상이다.

누구 하나 확 치고 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선거 캠프에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울릴 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미안한 분위기.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보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벗어났다.

건물 밖으로 나온 홍보위원장이 입에 담배를 문다.

잿빛 연기가 답답한 한숨처럼 흐른다.

‘하아......’

아무리 상대가 5선 출신이라 해도 대한당의 텃밭에서 이런 혼전을 보이는 것이 꼭 자신의 잘못처럼 여겨졌다.

그때 그의 옆으로 정우가 섰다.

“이길 거예요. 방송국 새끼들이 출구조사를 개떡처럼 해서 그렇지 반드시 이길 겁니다.”

정우의 말에 홍보 위원장이 슬쩍 웃는다.

연장자인 자신이 다독여줘야 하는데 정우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 채 위로하자 웃음만 나왔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죠. 그동안 겪어 본 선거를 기억하면 민심을 이긴 경우는 못 봤어요. 지금 민심 역시 이성윤 후보님께 틀어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불안하기는 하네요.”

“아,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길 거예요.”

“네?”

홍보 위원장이 눈을 깜빡이며 정우를 바라봤다.

출구조사는 물론이고 초반 형세 역시 진흙탕 싸움이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니.

잠시 생각에 빠졌던 홍보 위원장이 슬쩍 웃었다.

성윤이나 정우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마흔이 넘은 그의 눈으로 보기엔 아직 미숙하다.

경험이 중요시되는 정치판에서는 애송이일 뿐이다.

‘이런 자신감도 나쁘지 않지.’

그 순간......

“와!”

월드컵에서 결승 골을 넣은 것처럼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홍보 위원장은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개표 결과를 확인한다.

‘뭐, 뭐야?’

개표 4.3% 만에 이성윤 당선 유력.

출구 조사가 완벽하게 뒤집혔다.

홍보 위원장의 시선이 천천히 정우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정우는 정말 예상했다는 듯 표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냉정함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그 시각, 박광택 후보 캠프.

박광택 후보는 느긋하게 앉아 개표 방송을 보고 있었다.

출구 조사도 이겼고 깜깜이 전 마지막 지지율 역시 높았기 때문이다.

피라미를 상대로 겨우 승리한 꼴이 될 것 같은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기면 장땡, 선거란 승자만 기억한다.

개표방송을 보던 그가 선대위원장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선대위원장이 쪼르르 달려온다.

“네, 후보님.”

“1년 후에 있을 총선에서는 이런 꼴 보이지 않게 단단히 준비하도록 해. 쪽팔리게 이게 뭐야? 애새끼랑 엎치락뒤치락 체면 안 서게.”

“알겠습니다. 단단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제종 백화점에 그 여직원, 한 일주일 후에 끌고 와.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흐흐, 알겠습니다.”

선대위원장의 표정 역시 밝았다.

하지만 잠시다.

그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득표율이 점차 벌어지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이성윤 후보 당선 유력’이라는 자막이 쾅! 떠오른다.

“씨...씨발.”

박광택 후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셔터를 눌러댄다.

‘고개 숙인 박광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의 침울한 표정이 신문에 담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박광택 후보는 기자들의 카메라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지옥 같은 상황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있어서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선거 캠프를 울렸다.

-현재 서안시 동구 선거에서 이성윤 후보가 52.1%의 득표율로 31%를 득표한 박광택 민국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이성윤 후보가 당선될 경우, 현 국회에서 가장 어린 지역구 국회의원이 됩니다.

박광택 후보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급기야 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 가득한 신음을 흘린다.

“끄으으읍. 끄으으......”

게임은 끝났다.

박광택 후보의 선거를 도왔던 사람들은 태풍 맞은 갈대처럼 흔들흔들 쓰러질 같이 휘청거렸다.

5선 출신이 20대 무명의 청년에게 박살난 상황.

그것도 20%가 넘게 차이 났던 지지율이 그 이상으로 뒤집힌 말도 안 되는 현장.

누구도 예상 못한 반전은 민심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뛴 결과였다.

***

[이성윤 압도적 승리로 당선!

이성윤 대한당 경기 서안 동구 국회의원 후보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이성윤 당선인은 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한다며 약속한 공약을 지키고 항상 국민의 편에 서는 진실 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흐흐흐.”

성윤의 아버지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아들의 기사를 찾아 읽고 있었다.

이미 일주일 전의 기사였고 웃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입술이 실룩이고 웃음이 새어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어느 아파트의 후문 초소.

성윤의 아버지가 경비를 서는 곳이었다.

똑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윤의 아버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문으로 고개를 틀었다.

동료 경비가 보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경비가 묻는다.

“뭘 그렇게 재밌게 봐?”

“보기는 뭘 봐? 그냥 앉아 있었지.”

성윤의 아버지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자식 자랑을 늘어놓으면 상대에게 불편함을 안 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윤의 아버지가 휴대폰을 슬쩍 덮어 두자 동료 경비는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 동 몇 호가 부부싸움을 했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동료 경비는 ‘이제 가봐야지.’라는 말을 남긴 채 초소를 떠났다.

성윤의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휴대폰을 들고 성윤의 이름을 검색한다.

물론 이미 모두 읽었던 기사다.

하지만 성윤의 아버지는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하나 하나 읽어간다.

그러다가 이번엔 댓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댓글은 몇 개 없었고 역시 이미 읽어봤던 것이지만 처음 보는 것처럼 꼼꼼히 보고 있다.

보고 또 읽어도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이성윤 지켜보겠음.

-힘내라 갑질남.

-비록 지지 정당은 아니지만 젊은 만큼 기존 정치와 다른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댓글이 하나 더 달려 있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 이성윤도 똑같은 놈이야. 서른도 안 된 놈이 국개의원이 됐으면 금수저 출신이지. 이놈도 서민은 몰라.

성윤의 아버지는 눈을 번쩍이며 ‘싫어요’ 버튼을 꾹 누른다.

그때, 똑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윤의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틀며 말한다.

“아무것도 안 본다니까!”

그런데, 동료 경비가 아니라 아들 성윤이다.

성윤이 슬쩍 웃으며 초소로 들어온다.

“안 바빠?”

“앞으로 바빠지겠죠.”

성윤은 준비해온 치킨을 뜯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엄마는 보고 왔어?”

“네, 지금 집에 갔다가 오는 길이에요.”

“너 국회의원 됐다고 엄마가 정말 좋아하더라. 개표 방송까지 녹화해 뒀어.”

성윤의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쏙 빼고 성윤의 어머니 이야기만 하고 있다.

성윤이 품에서 통장을 꺼내 아버지 앞에 뒀다.

“잘 썼어요.”

선거에 나가려면 돈이 든다.

일단 입후보자의 기탁금 천오백만 원을 시작으로 포스터와 현수막 심지어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모두 돈이다.

돈, 돈, 돈.

돈 없는 사람은 선거도 나가지 못한다.

물론 가난하지만 유능한 인재를 위해 선거비용 보전 제도라는 게 존재한다.

15% 이상 득표율을 받으면 선거 비용의 전부를 돌려받을 수 있고 10% 이상의 득표율을 받으면 비용의 절반을 보전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제도다.

문제는 선거 후에 준다는 것.

선거 전에 돈이 없으면 나갈 수 없다는 것.

성윤은 이 돈을 아버지에게서 빌렸다.

아버지는 집 담보 대출을 받으셨고......

불효자다. 불효자.

만약 일이 잘 못되어 선거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이 돈을 갚을 수는 있었다.

성윤의 머릿속에는 꿈속을 통해 본 미래의 지식이 담겨 있으니까.

아버지가 통장을 서랍에 넣으며 말씀하셨다.

“엄마한테는 말 안 했지?”

“네, 비밀로 했어요.”

“잘했어. 집 담보 잡고 선거 나갔다는 거 알았으면 잠 못 잤을 거야. 그런데, 모자라지는 않았어?”

“네.”

우리나라는 각 선거구의 인구 수 등에 따라 선거 비용의 한계가 제한되어 있다.

사용 금액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 돈 많은 후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보통 1억 8천이 평균.

물론 아직도 법을 어기고 암암리에 검은 돈이 오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성윤은 딱 정해진 금액만 사용했다.

아버지가 성윤의 어깨를 토닥인다.

“항상 겸손해야 해. 국회의원이 된 것, 잘나서가 아니야. 어깨에 힘주라고 뽑아준 것도 아니고. 항상 고개 숙이고 다녀.”

“명심할 게요.”

아버지는 성윤을 보며 따스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아파트를 벗어난 성윤은 차에 올랐다.

정우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치킨은 맛있으셨습니까?”

“응.”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정우는 능숙하게 핸들을 틀었다.

당사로 향하는 거다.

성윤은 당선된 이후 정말 바쁘게 지냈다.

지역구를 돌며 감사 인사를 드렸고 특히 각 단체와 지역 당원들에게는 식사까지 대접했다.

그리고 오늘은 당 간부들에게 허리를 굽히는 날이다.

아마 술도 진탕 마실 거다.

하지만 성윤이 기대하는 것은 술이나 칭찬이 아니었다.

성윤이 당선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간부들, 그들의 가증스러운 미소를 즐기며 볼 생각에 벌써부터 구역질난다.

“비서 뽑아야죠?”

이동하던 중 정우가 툭 물었다.

“비서?”

“네, 보좌진이 총 아홉이죠? 대외 업무는 제가 맡을 거니까 지역구에 있을 사람 하나, 행정 업무 그리고 홍보, 수행......”

“잠깐만, 난 일단 둘이서만 일할 생각인데?”

“네?”

정우가 놀란 눈으로 성윤을 본다.

성윤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나라보다 보좌관이 많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어. 일본도 두 명인가 세 명이고. 유럽에는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더라. 이런 것은 좀 배워야 하지 않겠어?”

“의원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시 치킨 드시면서 맥주 한잔 하셨어요?”

정우가 눈을 반짝이며 째려봤지만 성윤은 외면했다.

“지금 그 말씀은 저보고 퇴근하지 말고 서울과 서안시를 오가라는 것이죠?”

“아니, 퇴근은 해야지.”

“와, 행복해라. 그러니까 정책, 홍보, 행정, 지역 관리, 수행, 그리고 운전까지 하면서 참 즐겁게 퇴근할 수 있겠어요. 새벽 일찍 퇴근하는 즐거운 생활. 벌써 기대되는데요?”

“운전은 번갈아 하자.”

“의원님?”

“일단은 둘이 하자. 난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같이 일하고 싶어. 나머지는 천천히 찾을 거야. 그때까지는 고생 좀 해.”

“절 믿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했지만 정우는 더 불만을 토해내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

큰일을 하려면 신뢰 가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사람을 뽑았다가 잘 못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전까지 잠시 고생하기로 했다.

그 시각.

콱!

하얗고 고운 손에 의해 신문이 구겨졌다.

비례대표 윤채아였다.

그녀가 구긴 신문에는 ‘청년 대표 이성윤’이라는 타이틀이 보인다.

“청년 대표?”

그녀는 구긴 것이 모자랐는지 신문을 꾹꾹 누른 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하!”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까지 청년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그녀였다.

비록 비례대표였지만 청년 국회의원이라는 칭호는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성윤이란 놈이 지역구를 먹어 버렸다.

게다가 상대였던 사람은 거물 박광택.

초선에 1년 임기인 병신 같은 이성윤이 그녀가 가졌던 칭호를 하나하나 빼앗아 가고 있다.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달동네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기어왔는데.”

그녀가 붉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잠시 화를 참아 내던 그녀는 시선을 거울로 돌렸다.

주름진 미간을 펴고 생긋 웃어 보인다.

언제 화를 내고 있었는지 모를 아름다운 미소가 거울 속에 보인다.

완벽한 표정 관리.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회의실로 갈 시간이었다.

책상과 의자로 가득 차 있던 회의실은 긴 테이블에 간단한 다과가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이미 와 있던 당 간부들 그리고 수도권 지역의 의원들이 보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눈 그녀는 구석의 자리로 이동해 창가에 몸을 기댔다.

손에 든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의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성윤이라고? 박광택 잡았다고 기고만장 한 거 아냐?”

“젊은 놈은 길들여야 제 맛이지. 흐흐흐.”

“그 새끼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밥 맛 없게 생겼던데.”

윤채아는 살짝 웃었다.

아무래도 이성윤에 대한 의원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살짝 양념만 쳐 주면 자연스레 이성윤의 존재감 역시 사라질 것 같다.

그녀는 성윤을 흔적도 없이 작살 내 버린 뒤 지금까지 빼앗긴 몇 가지를 모두 되돌려 받아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한다.

그녀의 큰 눈 역시 마찬가지.

나타난 사람은 이성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의 큰 목소리가 회의실에 있는 모두를 압도한다.

윤채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

‘저 새끼는 존재감이 없어질 놈이 아니야. 반드시 죽여 버려야겠어.’

그런데, 그때.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들은 것처럼 성윤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 향한다.

그러더니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 눈 뜨고 목 베이는 곳.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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