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 그리고... - (2) >
박광택 후보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정치판에 몸을 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손이 가늘게 떨려왔고 스스로가 호랑이 앞에 선 토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젠장! 내가 이까짓 보궐 선거에서......’
박광택 후보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상념을 떨쳐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가 고개를 들어 성윤을 바라본다.
어린놈의 새끼가 여유를 부리며 준비한 자료를 살랑살랑 넘기고 있다.
박광택 후보의 눈에 불이 번쩍했다.
‘나도 네가 준비한 질문을 모두 답변해주지. 그리고 다시는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죽여주마. 나 5선 의원 박광택이야!’
잠시 성윤의 기세에 밀렸던 박광택 후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근 갑질이란 이름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통계를 보면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의 갑질이 전체의 31%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며 해결책을 듣고 싶습니다.“
박광택 후보는 픽 웃었다.
‘그럼, 그렇지.’
성윤은 박광택 후보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질문 수준은 형편없다.
‘대학교 동아리 회장을 뽑는 것도 아니고 갑질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박광택 후보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이득과 자본이 우선된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있지요. 상대가 조금이라도 아래로 보이면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며 하인 부리듯 대하는 일,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가 특히 기업이나 회사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들었는데요.”
단상 아래서 토론을 지켜보던 정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공개처형.......’
정우가 박광택 후보의 갑질 영상을 가져왔을 때 성윤은 공개처형 하겠다고 말했었다.
이 토론 장소는 공개처형 장소로 딱이다.
그리고 박광택 후보의 말을 듣던 성윤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며 차가운 표정으로 변해간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박광택 후보님,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네.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박광택 후보는 눈을 깜박 거린다.
그의 속마음이 성윤에게 들려왔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말을 빙빙 돌리는 거야? 그냥 말 해, 새끼야.
원한다면 해줘야 한다.
성윤이 테이블에 놓았던 테블릿 PC를 손에 들었다.
“얼마 전에 들어온 영상입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백화점의 CCTV 영상이 재생된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무릎 꿇고 손까지 들고 있는 점원을 향해 삿대질하는 박광택 후보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박광택 후보 맞지?”
“씨발, 서민을 위한다면서 착한 척은 다 하고 다니더니......”
박광택 후보의 얼굴 근육은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웃을 수도 없고 인상을 찌푸릴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그는 5선까지 해낸 프로 정치인이다.
“지, 지금 그게 뭡니까? 당선되고 싶어서 합성까지 한 겁니까?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당장 영상 끄고 사과하세요!”
벼락같은 호통, 하지만 성윤의 얼굴이 더 무섭게 일그러진다.
“법적 책임? 하......”
성윤의 깊은 한숨.
이 토론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은 성윤의 한숨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토론이 아니었으면 쌍욕을 했겠구나!’
성윤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박광택 후보님...... 반성부터 하세요. 카메라 향해 얼굴 똑바로 들고 백화점 점원 분께 사과하세요.”
“뭐, 뭐?”
“그리고 그 백화점 경영진 여러분, 박광택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좋은 관계로 지내야 하니까 피해 사실을 숨기려고 했죠? 그런데, 만약에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기대하세요. 진짜 갑질이 뭔지 보여줄게요.”
성윤은 무서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덕에 청문회장보다 더 최악의 분위기가 토론회장을 채우고 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켰고 박광택 후보는 입만 뻥긋 거릴 뿐 목소리를 내뱉지 못한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사회자다.
“3분 지났습니다. 다음은 복지에 관한 후보자 토론입니다. 먼저 박광택 후보님부터......”
박광택 후보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광택 후보님?”
사회자가 다시 물었지만 박광택 후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박광택 후보님?”
박광택 후보는 창백해진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더듬더듬 질문했다.
“도, 독거 노인이 즈, 증가세를 보이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성윤 후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성윤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공유의 복지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시간 및 방법을 몰라.......”
이런 공방이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졌다.
똑부러지게 답하는 성윤에 비해 박광택 후보는 어버버하는 모습만 보인다.
그리고 토론이 끝났다.
성윤과 박광택 후보는 서로 악수조차 하지 않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분위기 어때?”
성윤은 정우가 앞에 서자마자 물었다.
토론 내용으로만 따지면 압승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에서 토론으로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중도표가 움직일 뿐이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정우는 웃음을 꾹 참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성윤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실검 순위가 보인다.
5위. 선거 토론.
4위. 박광택 제종 백화점 여직원.
3위. 박광택 갑질.
2위. 박광택 동영상.
그리고 1위.
-이성윤 갑질남.
“이게 뭐야? 갑질남?”
정우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배를 잡고 웃는다.
“형님, 이제 갑질남이에요. 으핫핫핫!”
성윤은 정우를 살짝 째려본 후 기사를 찾아 확인했다.
대부분은 박광택 후보의 백화점 갑질이 올라와 있지만 그 중 몇 개가 성윤의 기사다.
하지만 제목이......
[이성윤 후보. 진짜 갑질이 뭔지 보여주겠다. 선언.]
“아오.”
기자들은 자극적인 제목을 좋아한다.
그래도 댓글은 우호적이다.
-이성윤 후보 시원했음.
-갑질이 기대됨.
-이성윤을 국회로!
성윤이 정우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홍보 위원장님께 연락해서 오늘 토론으로 도배하라고 해. 갑질남은 빼고.”
정우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하며 말한다.
“이미 했어요. 삼십 분 안에 쫙 깔릴 거예요.”
“내용은?”
“갑질남이요. 그걸 뺄 수는 없더라고요.”
“야......”
꿈속의 성윤은 여의도 또는 국회의 미친개라 불렸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갑질남이라니......
정우가 안티다.
그리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서안시 동구 이성윤 후보의 지지율이 40.1%로 토론회 전에 비해 약 4% 상승했습니다. 이에 반해 박광택 후보는 45.2%로 2% 하락해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토론회가 2차 3차 있었다면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론회는 단 한 번, 본 사람보다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젠장.”
지지율을 확인한 정우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역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해 짜증이 난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런 사람을 왜 지지하는 거죠?”
문제는 지금부터 여론 조사 공표 금지 기간인 깜깜이 선거.
지지율이 앞서는 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밴드웨건 효과’ 2위나 3위 후보가 동정표를 받는 ‘언더독 효과’ 등을 차단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골든 크로스를 노리는 성윤의 선거 캠프에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정우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성윤을 향했다.
그런데, 성윤은 생각과 달리 여유롭다.
“기다려봐.”
성윤은 책상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젖혔다.
세상의 민심이 그의 귀에 들려온다.
-박광택은 아니야.
-이번은 젊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봐야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던 성윤은 잠시 눈을 감는다.
세상의 목소리를 더 듣기 위해.
그러던 성윤은 휴대폰의 진동을 느꼈다.
“아, 어머니.”
-밥은 먹고 하는 거야?
“그럼요. 잘 먹고 다녀요.”
선거 운동을 하며 하루에 다섯 끼는 기본.
늘어난 뱃살을 어떻게 빼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그런데 잠시 성윤의 안부를 묻던 어머니가 박광택 후보를 욕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 진짜 나쁜 사람이더라. 어떻게 국회의원까지 했던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국민의 표로 당선된 사람이......
박광택 후보의 욕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말씀은 성윤에 대한 걱정으로 끝난다.
-넌 국회의원 되도 절대 그러지마.
“안 그럴 거예요.”
성윤은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 시각, 박광택 후보의 선거 캠프.
박광택 후보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선대위원장이 섰다.
“후보님.”
“왜? 유세할 시간 됐어?”
“그게 아니고 기자들이......”
선대위원장은 침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창밖을 바라봤다.
건물 밖에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박광택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이나 돼?”
“스무 명 정도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좆나 많이 와 있네.”
박광택 후보가 책상에서 일어섰다.
선대위원장이 그를 말리고 선다.
“후문으로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죄졌어? 왜 뒷문으로 도망쳐?”
박광택 후보는 선대위원장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박광택 이 개새끼야!”
팍!
박광택 후보의 가슴팍에 계란이 맞고 떨어진다.
주르륵 흐르는 계란을 보던 박광택 후보가 멍한 눈으로 앞을 향했다.
선대위원장의 말대로 기자들은 스무 명 정도다.
하지만 시위대가 있었다.
한 쪽에서 무릎을 꿇고 갑질 퍼포먼스 시위를 하는 대학생 들이 약 열 명.
저 쪽에서 ‘박광택 물러나라.’ 피켓 시위를 하는 인원이 한 오십 명.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약 이십여 명.
그리고 그들과 몸싸움을 하는 자신의 지지자 오십 여 명......
기자들은 그런 싸움을 꿀잼이란 표정으로 찍고 있고.
말 그대로 개판.
“박광택! 이 뻔뻔한 새끼야! 점원 찾아가서 사과해!”
“너같은 놈이 국회의원이 된다고? 씨발, 나라 꼴 잘 돌아간다!”
박광택 후보의 미간은 휴지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그가 몸을 돌리며 선대위원장에게 말한다.
“후문으로 가지.”
선대위원장은 한숨을 내뱉으며 앞장 섰다.
“아직 우리가 앞서고 있습니다. 우리 핵심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당선만 되면 다 끝납니다.”
“알고 있어.”
뒤에서는 시위대의 욕설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 이 개새끼야!”
성윤의 꿈속에서 박광택 후보는 갑질 사건이 터지며 곧바로 사임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버티고 있다.
성윤의 네임벨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권자 중에는 사소한 비리는 집어 치우고 파워 있는 후보가 지역구에 앉는 것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정치 싸움은 인격이 아니라 파워니까.
그래서 박광택 후보는 덮어 놓고 자신을 찍어주는 그들을 믿고 아직 당선을 기대한다.
갖은 모욕을 받더라도 당선되면 끝.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라는 의식이다.
그리고 선거 날이 되었다.
-‘갑질 논란’으로 얼룩졌던 서안시 동구 선거 출구조사 결과에 대한당 이성윤 후보와 민국당 박광택 후보 캠프의 분위기는 정반대였습니다.
출구조사 결과 이성윤 후보의 지지율이 42.6%, 박광택 후보는 44.1%로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민국당 박광택 후보의 관계자는 출구조사 결과에 만족한다며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이성윤 후보 측은 예상 밖의 결과에 아쉬움을 표현하면서도 실제 투표 결과에서 더 많은 득표율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우의 눈에 짜증이 가득했다.
“망할 새끼들. 저런 것도 출구조사라고......”
정우의 옆으로 홍보 위원장이 선다.
“출구 조사지 결과가 아니잖아요. 기분 좋게 기다립시다. 원래 짜릿한 역전승이 기쁜 거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홍보 위원장의 표정 역시 굳어 있다.
출구 조사가 뒤집어 지기를 바랄 뿐......
이 자리에서 느긋한 것은 코코아가 든 머그잔을 쥐고 앉아 있는 성윤 뿐, 그는 슬쩍 웃으며 머그잔을 입에 댄다.
그리고 개표 방송이 시작됐다.
성윤은 정우 그리고 선거 캠프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화면에 집중했다.
< 토론 그리고...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