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5화 (25/300)

< 토론 그리고... - (1) >

정우의 입가에 서린 살기가 더 깊이 담기는 것 같았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공개 처형이라...... 교수형으로 갈까요? 아니면 단두대?”

확실히 미친놈이다.

성윤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됐고, 어떻게 입수했는지 말해봐.”

“어제 그쪽 선대위원장이랑 술 먹었잖아요? 그놈 비위맞춰주면서 계속 술을 마셨죠. 결국 그쪽의 필름이 먼저 나갔고......”

정우는 술에 취한 상대가 테이블에 엎어지자 품을 뒤져 휴대폰을 꺼내 이것저것 확인했다고 한다.

“백화점에 걸었던 전화가 꽤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놈을 흔들어서 살짝 깨운 후 백화점에 자주 가냐고 물어 보니까......”

“물어 보니까?”

“2차를 가자네요? 물 죽이는데 있다고......”

“딴 말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아, 네.”

정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는 박광택의 선대위원장이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도 백화점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돌리는 게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백화점으로 외근 갔다가 왔죠. 명품 사는 게 취민가 해서 서민 코스프레하냐고 공격하려 했는데, 대어가 걸린 거예요. 흐흐.”

“백화점에서 순순히 cctv영상을 넘겼어?”

“아, 그건 대한당 당대표님 이름 좀 팔았어요. 일사천리로 주던데요?”

“그래, 장하다.”

대통령의 이름을 팔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 사이 새로 주문했던 국밥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수저도 들지 않고 정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쨌든, 박광택 그 새끼, 진짜 못된 놈이더라고요. 점원 만나서 이야기 들어봤는데 행여나 이 영상이 퍼지면 대한민국에서 살 생각하지 말라는 협박을 했대요. 개새끼...... 그런 새끼가 지금 서민을 위한답시고 쌩쇼하는 걸 보면......”

그런데 꿈속에서는 1년 후, 총선이 있을 때 이 사건이 터진다.

알고 있던 미래와 달라 의아했는데 정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가지 톱니바퀴가 맞춰졌다.

이 사건은 몇 달 전에 일어난 게 맞다.

점원은 박광택 후보의 권력이 두려워 쥐죽은 듯 있었던 것이다.

백화점은 고작 점원 하나 때문에 박광택 후보와 척을 지고 살 필요가 없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입 다물고 있던 것이고.

그런데 이 사건이 1년이 지난 후에 드러나게 된 이유를 예상해 보면, 대한당에서 박광택을 죽이기 위해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까지 조사하다가 찾아냈을 것이다.

정우가 입을 연다.

“그런데, 어제 후보님도 당대표가 만났잖아요? 뭐래요?”

“공약 하나 추가됐어.”

“공약이요?”

정우는 대수롭지 않게 들으며 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성윤의 말이 이어졌다.

“서안시 동구에 성종 쇼핑 본사 이전.”

정우의 숟가락이 뚝 멎었다.

그가 눈동자만으로 성윤을 본다.

“...그건 대박이잖아요?”

“응.”

“그럼, 지금 제가 해장국 처먹고 있을 시간이 없는 거잖아요?”

“그렇지.”

“에이!”

정우가 숟가락을 테이블에 놓으며 일어섰다.

그가 식당의 밖으로 나가며 머리를 헝큰 정우는 담배를 입에 물며 휴대폰을 귀에 댄다.

“이성윤 후보 선거 캠프 선대위원장 박정우라고 합니다. 공약이 추가된 게 있어서요.”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6.2%였던 지지율이 쭉쭉 올라가더니 30%를 넘어섰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유권자 역시 마찬가지.

성종 쇼핑 본사가 들어오면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대규모 투자로 인해 서안시 전체의 경제 활성화도 노려볼 수 있다.

그럼, 유권자의 선택은 바뀐다.

박광택에서 이성윤으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선거 운동이 중반에 들어서며 민국당 박광택 후보가 50.1%, 대한당 이성윤 후보가 31.7%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에 40%가까이 차이 나던 지지율은 단 며칠 사이에 18%까지 좁혀졌습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성윤 후보의 성종 쇼핑 본사 이전 공약의 기대감으로 인해 대한당 지지자들이 다시 뭉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쾅!

박광택 후보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이곳은 박광택 후보의 사무실, 그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하다.

“18%라고?”

박광택 후보의 선대위원장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끄며 대답했다.

“네.”

“성종 쇼핑 본사가 여기 들어온다는 것은 무슨 개소리야!”

“성종 쇼핑에 문의해 봤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박광택 후보가 거칠게 머리를 헝클었다.

“저 새끼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쫓아올 경우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말해 봐.”

“오차 범위 내 접전을 예상합니다. 하지만 미세한 차로 우리가 승리할 것 같습니다.”

박광택 후보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사실 대한당의 텃밭에서 민국당이 깃발을 꼽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박광택 후보는 지금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초반 60%가 넘던 지지율과 상대는 피라미라는 것.

‘씨발, 쪽팔려......’

간단히 밟아 죽여도 모자랄 판인데 쫓기고 있다니, 그것도 선거 날까지 가면 접전이 예상된다니......

박광택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 민국당의 당권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을 보여줘야 하는데 피라미와 멱살을 잡고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으니 면이 살지 않았다.

박광택 후보의 날카로운 시선이 선대위원장에게 향했다.

“지지율을 벌릴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토론뿐입니다.”

“놈의 무능을 까발릴 자료를 준비해. 입 한번 뻥긋 못 하고 어버버 거리다가 뒈질 수 있게 만들어!”

“알겠습니다.”

박광택 후보의 선대위원장, 그는 박광택이 5선을 이어갈 동안 보좌관으로서 그 자리를 지켰으며 모사꾼이란 별명까지 갖고 있었다.

성윤의 무능을 까발리겠다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박광택 후보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선대위원장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 시각, 성윤의 선거 캠프.

방으로 들어온 정우가 성윤의 책상 위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올렸다.

“추가했어요.”

그간 토론을 준비하며 삼백 장은 외운 것 같다.

그런데 또 추가되다니.

성윤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준비는 철저해야죠.”

성윤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서류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들은 박광택 후보를 무너뜨릴 갑질 사건의 정보를 손에 들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거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걷는 것과 같다.

갑질 사건이 터진다고 해도 토론에서 병신 같은 모습을 보이면 유권자들은 등을 돌릴 수 있다.

자신들의 지역을 멍청한 놈에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락, 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만 사무실에 들려왔다.

정우는 그런 성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방을 벗어났다.

사무실 밖에는 이십 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아직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성윤의 당선을 돕기 위해 당에서 파견된 사람들.

직함은 조직총괄 위원장, 미디어홍보 위원장, 종합상황실장 등등이다.

정우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토론 전에 지지율을 10% 이내로 좁혀야겠어요. 대한당 지지자 분들 중에 우리 후보님의 당선 가능성이 적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미디어홍보 위원장님, 서안 보육원에 인터뷰 좀 잡아 주세요. 타이틀은 남모르게 보육원을 도왔던 선행, 우리 후보님은 그런 것은 밝히지 말라고 했지만 보육원장이 나서서 밝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네요.”

“알겠어요.”

미디어홍보 위원장이 수첩을 꺼내 적는다.

정우의 시선은 대외협력 위원장에게 옮겨졌다.

“내일 쯤 시장 상인 회에서 후보님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면 좋겠는데요. 이성윤 후보가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어려움을 아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상인들을 위한다는 게 선언문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연락할 게요.”

대외협력 위원장이 가볍게 답한다.

보육원 원장의 인터뷰와 각 단체의 지지 선언으로 인해 성윤의 지지율은 35.4%까지 치솟았다.

박광택 후보는 47.2%,

정우가 기대했던 10%는 아니지만 11.8%의 차이.

고무적인 것은 성윤의 지지율이 쭉쭉 오르는 것과 달리 박광택 후보의 지지율은 썰물처럼 빠지고 있었다.

진보당 의원이 중간 후보 사퇴를 하며 토론회에는 성윤과 박광택 후보만 서게 되었다.

그리고 토론회 당일.

사회자가 입을 연다.

“박광택 후보가 이성윤 후보에게 자유 질문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질문 시간은 3분 드리겠습니다.”

박광택 후보가 준비한 서류를 넘기며 시선을 성윤에게 향했다.

“이성윤 후보는 공약으로 성종 쇼핑 본사 이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라면 국민이 정말 불편해 하는 것을 찾아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얼마 전에 주차 문제로 칼부림 예고장 사건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교통문제의 85.9%가 불법 주차 문제에서 발생하는 만큼 우리 서안시도 주차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는 않은데요.”

퍼센트를 사용하는 질문은 객관적이고 팩트 위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 서안시의 자가 주차장 확보 비율을 알고 계십니까?”

단상 아래에서 토론회를 지켜보던 정우는 인상을 콱 찌푸렸다.

‘젠장.’

세상 쓸데없는 통계와 문제까지 다 찾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주차 문제로 훅 들어올 줄은 몰랐다.

사실 이런 세세한 퍼센트까지 몰라도 되지만 이곳은 토론장.

모르면 병신이 된다.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을 때 박광택 의원의 선대위원장은 치솟는 광대를 애써 참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정치판이 만만해 보였어요? 지금부터 긴장 좀 해야 할 거예요.”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성윤이 현명하게 넘기길 바라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할 뿐이다.

그런데, 성윤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76.05%죠. 부족한 주차 시설에 비해 가구당 차량 보유수가 증가되는 중입니다. 서안시의 공영주차장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준비된 것 같은 답변.

‘어, 어떻게......’

박광택 후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알, 알고 계셨군요. 그럼, 다음 질문을 하죠.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어요. 문제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4인 가족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1인 가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박광택 후보가 번뜩 눈을 뜨며 묻는다.

“이성윤 후보, 서안시에 1인 가구가 몇 이나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성윤은 물끄러미 박광택 후보를 바라봤다.

그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여성 인구 3810명 남성 인구 5241명. 이건 못 맞출 걸?

그는 속마음으로 답을 다 알려주고 있었다.

“여성 인구 3810명, 남성 인구 5241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대 후보의 눈을 보며 바로 한 대답.

객석에서 ‘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광택 후보가 홱 고개를 돌려 자신의 선대위원장을 노려봤다.

‘씨발, 모를 거라며!’

선대위원장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저, 저도 미치겠어요. 일단 계속 공격하세요. 하나라도 대답 못하면 그걸 물고 늘어지면 되니까요.’

박광택 후보의 시선이 다시 성윤을 향했다.

느긋한 태도로 서 있는 성윤이 몹시 얄밉게 느껴진다.

“그럼 그 중에 65세 이상 1인 가구가 몇 이죠?”

“4427가구요.”

“노령화 지수는?”

“61.55%.”

“자가 주택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40.06%.”

마치 퀴즈쇼 같았다.

객석에서는 환호성마저 터져 나온다.

“대박.......”

“진짜 똑똑하다.”

“저러니까 어린 나이에 후보가 됐나 봐.”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던 박광택 후보는 다시 자신의 선대위원장을 노려봤다.

선대위원장은 그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저 새끼는 저런 걸 왜 외우고 다니는 거야!’

선대위원장은 성윤의 무능한 모습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난해한 토론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당한 것은 박광택 의원이었다.

지금의 질문은 오히려 성윤에게 도움이 되는 중이다.

그리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이성윤 후보가 박광택 후보에게 자유 질문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질문 시간은 똑같이 3분 드리겠습니다.”

성윤이 나른한 표정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공수 교대. 야구는 1회 말이 끝이라고 했던 가?’

< 토론 그리고...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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