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화 (23/300)

<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 (2) >

***

다음 날.

성윤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을 떴다.

선거 운동으로 인한 강행군 때문에 두 눈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피곤하다.

탁상시계를 손에 들어 시간을 확인한 후 언제나처럼 가벼운 운동을 마치고 신문을 손에 들었다.

하나씩 펼쳐 보는데 성윤과 박광택 의원이 악수 하는 장면이 한동 신문 1면에 보인다.

타이틀은 ‘서안시를 우습게 본 대한당의 실수.’다.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니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도 뜨는 중이다.

성윤의 이름이 뜬 것은 아니고.

-박광택 의원의 포용력.

도대체 악수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 포용력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윤은 되도 않는 내용이 적힌 신문을 옆으로 던진 후 다른 신문을 손에 들었다.

그렇게 모든 신문을 읽은 후엔 금요일에 예정된 후보자 토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을 빠져 나간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다.

집 앞에 정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좀 주무셨어요?”

“두 시간 잔 것 같아. 넌?”

“저는 삼십 분?”

야간에도 할 일이 많다.

민원 들어온 것 확인해야지 고생한 봉사자들 다독여야지 이것 챙기고 저것 확인하면 새벽이다.

차가 이동하며 정우가 입을 열었다.

“메시지 내용 변경했어요. 공약은 핵심적인 것만 넣었고 나머지는 오늘의 날씨, 건강 정보 같은 것으로 대신하도록 했어요.”

각 후보는 선거 유세 메시지를 보낸다.

자신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알리려는 노력이지만 시민들에겐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조금 더 부드럽게 접근하기 위해 고민하는 중이다.

“오늘 첫 출근은 어디로 하지?”

“풍진 사거리요.”

그때, 지이이이잉.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린다.

발신번호는 대한당 당사.

“네, 이성윤입니다.”

-당대표 비서실 최문율이라고 합니다.

“비서실이요?”

정우는 살짝 고개를 틀어 성윤을 향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성윤이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누를 때 정우가 묻는다.

“무슨 일 있어요?”

“오전 스케줄 취소해. 당사로 출근해야겠어.”

정우가 미간을 콱 찌푸린다.

“당사요? 왜?”

“모르겠네, 그냥 오라네.”

“이 미친 새끼들, 지금 선거 운동 기간인거 모른데요?”

그 시각, 대한당의 간부들이 우르르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당대표를 향한 간부들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살인이 날것처럼 살벌하다.

성윤으로 인해 대한당은 조롱거리가 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성윤을 밀어 붙인 게 모두 당대표의 불도저 같은 지시.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은 모든 책임을 묻는 중이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질 때, ‘딸칵’ 문이 열리고 성윤이 들어왔다.

성윤이 간부들을 향해 예의 있게 허리를 굽혔다.

“서안시 동구 후보 이성윤입니다.”

“앉아.”

낮은 목소리에 성윤은 가장 구석에 있는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그 순간 최고 위원이 벌떡 일어나 신문을 내던지듯 내려놓는다.

타이틀 ‘서안시를 우습게 본 대한당의 실수.’가 보이는 한동 신문의 1면이다.

“무슨 생각으로 박대철의 비서를 공천한 겁니까! 민국당이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어요!”

다음으로 대한당 전략기획위원장이 일어섰다.

“이성윤 후보와 당대표 사이에 커미션이 있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당대표는 낮은 한숨을 내쉴 뿐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성윤은 고개를 숙였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서다.

이들은 지금 서안시 동구를 민국당에 뺏기면 어떻게 하냐며 징징거리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텃밭을 뺏긴 책임을 당대표에게 묻고 쫓아내기 위해서다.

이유는 끝나지 않은 계파 갈등 때문이다.

꿈속에서 본 대로라면 대한당은 원내 대표가 사라진 후 곧바로 안재열 전 대통령을 공격하며 대동단결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법.

당대표는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약점을 잡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의 불만이 쌓여 가는 걸 보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모든 불만은 당대표에게 향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성윤은 이 상황이 가소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첫째로 국회의원이라는 양반들이 위기 상황에 힘을 합칠 생각은 하지 않고 남 탓하며 자빠져 있는 모습이 웃겼다.

둘째로 성윤은 이들의 미래를 알고 있다.

이 중 몇몇은 음주운전에 연예계 스폰, 섹스 스캔들과 갑질, 뇌물 등등등 추악한 짓이 드러나며 정치 인생을 마감한다.

이런 놈들이 성윤을 보며 비웃는 게 어이없는 거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들은 성윤의 낙선을 확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상대가 거물이긴 하지만 싸워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인데......

기적이 일어나도 당선되는 일은 없다며 밥을 짓기도 전에 침부터 뱉고 있다.

그래서 웃기다.

당선됐을 경우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칠 정도로 기대되니까.

당대표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자 그들의 화살은 성윤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 후보, 자네가 대답해 봐. 어떻게 박대철의 가방을 들던 자네가 공천된 거지?”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서늘한 시선으로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눈빛과 달리 정말 예의가 바랐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어떤 걱정을 하고 계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리고 경험도 없는 제가 당에 누를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반드시 당선되어 보겠습니다. 이런저런 말보다 결과로 인정받겠습니다.”

분명 예의 있게 말했는데 고귀하신 의원님들 귀에는 건방지게 들렸나 보다.

분위기가 얼어붙고 있었다.

어떤 의원은 욕을 준비하는지 입술을 씰룩씰룩 거리기까지 한다.

그때 어디선가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간다.

차기 대권 주자라 불리는 백형욱 의원이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을 웃던 그가 느긋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렇지, 당선되면 되는 거지. 그럼, 다 해결인 거야. 그런데, 이성윤 후보. 박광택은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길 수 있겠나?”

“네.”

자신감 넘치는 대답.

백형욱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러자 지금껏 시끄럽게 굴던 의원들은 입을 꾹 닫고 더는 태클을 걸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백형욱 의원의 인품과 덕망이 좋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이들이 어떤 놈들인데 사람의 인품을 보고 몸을 사릴까......

그만 나가보라는 말에 성윤은 다시 한 번 회의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분한 듯 주먹만 꽉 쥐고 있는 당대표.

나른한 표정으로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백형욱 의원.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백형욱 의원의 권력은 당대표와 비등비등한 것 같았다.

‘백형욱 의원에게 권력이 쏠렸나?’

성윤에겐 나름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는 백형욱 의원의 미래를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지금 이걸 신경 써서 뭐해?’

정세 읽기 놀이는 당선된 뒤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선거만 생각해야 한다.

박광택만 해도 버거운 상태니까.

성윤은 회의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의원들이 모두 성윤을 쏘아보는 거다.

굳이 그들의 마음을 듣지 않아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예상된다.

-떨어져라, 떨어져라, 떨어져라.

그들은 성윤이 낙선하기만을 기다린다.

그래야 당대표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다.

‘아, 또 한 번 웃겨주네.’

같은 당에 있는 놈들끼리도 죽자 사자 서로를 미워하면서 국민을 향해 ‘갈등을 씻어내자’ 등의 개소리를 하는 정치인들......

정말 웃기다.

성윤은 회의실에서 나와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운전석을 보니 정우가 쪽잠을 자고 있다.

‘불쌍한 놈.’

정우는 어젯밤에 겨우 삼십 분을 잤다고 했다.

불쌍하긴 하지만 깨워야 한다.

당사에서 허비한 시간이 컸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성윤은 운전석으로 가서 정우를 깨웠다.

“아, 끝나셨어요?”

“내가 운전할 게.”

“아뇨, 제가 할 게요.”

“너 조금만 더 있으면 눈에서 피눈물 나올 것 같아.”

“그런가요? 그럼, 운전은 후보님께 맡길게요. 피눈물 흘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정우는 팔을 쭉 펴서 기지개를 켠 후 운전석에서 나와 조수석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정우가 네비게이션에 스케줄 장소를 입력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밤에 약속이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일찍 퇴근할 게요.”

“응. 몇시?”

“한 아홉시? 그런데, 누구 만나는지 안 궁금하세요?”

“아, 그건 궁금하다. 너 친구 없잖아. 누구 만나?”

“박광태 후보 선대위원장 만나기로 했어요.”

“누구?”

성윤은 황당한 눈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후보님에 관한 안 좋은 소리를 할 테니까, 저만 믿으세요. 그러니까 내일부터 박광택 측에서 쏟아져 나올 네거티브를 기대하셔도 좋고요.”

“야, 그건 아니잖아.”

“좀 자겠습니다.”

정우는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눈을 감는다.

성윤은 더 묻지 않았다.

같이 일하기로 했으면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우의 숨 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많이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든 것 같다.

정우는 후보를 운전 시키고 자기는 잠을 자는 멋진 선대위원장이었다.

그렇게 성윤이 운전한 차는 서안원이라는 이름의 장애인 학교 앞에 멈춰 섰다.

기다리고 있던 선거 캠프 봉사자들과 함께 아이들을 목욕 시키고 빨래를 한다.

그걸 사진 찍어 언론사에 보낸다.

옳은 말을 하고 좋은 공약을 내놓는다고 전부가 아니다.

정치란 이미지도 중요한 법이다.

빨래를 하느라 아픈 팔을 꾹꾹 주무르며 이동한 곳은 양로원이었다.

“여기도 빨래?”

정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빨래하고 할머니들 안마 해주셔야 해요.”

이후엔 농사를 짓는 밭으로 이동했다.

땅을 갈고 거름을 뿌린다.

기계로 하면 되는 일인데 곡괭이를 들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며 삽과 곡괭이를 준다.

성윤은 이번에도 열심히 팔을 휘둘렀다.

중간에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반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하다가는 팔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매일 운동을 하는데도 쉽지 않은 강행군.

팔을 계속 주무르며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나 당대표야.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떤가? 선거에 대해 도움을 주지.

지금 성윤만큼 급한 사람이 당대표였다.

당에서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