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화 (22/300)

<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 (1) >

***

5선 의원 박광택, 마지막으로 치렀던 선거에서 대한당의 대권 주자 백형욱을 만나지 않았다면 6선에 성공했을 거물이다.

몇 년 간 재야에 숨어 있던 그가 임기 1년짜리 보궐 선거에 등장하며 세상은 떠들썩해졌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다음에 있을 총선의 모의고사라 불렸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단 하나였다.

거물 박광택이 피라미 이성윤을 어떤 식으로 자근자근 짓밟을까.

얼마나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될 수 있을까!

물론 몇몇은 피라미가 거물을 씹어 먹는 이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지만 생각으로 끝낼 뿐이다.

그만큼 체급차가 워낙 컸다.

대한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조차 마찬가지였다.

“서른도 안 된 애새끼를 보낸 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 아무나 내보내도 당연히 당선될 줄 아는 거지. 개새끼들.”

“그러니까 이번은 무조건 박광택을 뽑아야해. 대한당은 우리가 잡은 물고기인 줄 알아. 그러니까 룸살롱 매니아 같은 새끼가 거들먹거렸잖아? 씨발.”

“그래서 나도 이번엔 박광택 뽑으려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것도 아니고. 괜찮을 것 같아.”

성윤의 지지율이 휘청하고 있을 때 언론이 기름을 부었다.

[박광택 후보, 정치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 서안시 노인을 위한 정책 완벽 준비.]

[이성윤 후보,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

댓글 역시 가관이 아니다.

-박광택 상대가 스물 몇 살이라고 하던데 ㅋㅋㅋㅋ

-박광택 개꿀. 6선 가즈아아아!

-이게 덮어놓고 대한당 찍는 사람들 때문이지. 우리 집 뽀삐를 후보로 올려도 찍을 걸?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모두 박광택만 나온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휴대폰으로 기사를 읽던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재밌네.”

운전을 하던 정우가 입을 연다.

“신인 가수 데뷔하는 날 서태지와 아이들이 다시 뭉쳐 컴백하는 꼴이네요.”

애써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분위기는 더 묵직해진다.

그만큼 박광택의 존재감은 컸다.

“그 정도 차인가?”

“더 하면 더 하지 덜하지는 않을 걸요? 그래도 여기서 이기면 단번에 전국구로 이름을 떨치는 거죠. 박광택을 잡아먹은 겁 없는 신인이니까요.”

성윤이 픽 웃었다.

“겁 없는 신인이라...... 그건 마음에 드네.”

성윤은 휴대폰을 내려두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잠시 생각에 빠진다.

‘꿈속에서 박광택이 어떻게 됐더라......’

박광택은 다음 총선이 열리기 전에 갑질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다.

어떤 이유였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백화점 여성 종업원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종업원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 두 손까지 올렸었고 그 모습은 CCTV에 녹화되어 각 방송사의 뉴스에 장식되었다.

박광택은 구구절절한 이유를 대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싸늘한 민심에 총선 출마는 접어야 했다.

거기서 정치 생명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갑질 사건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싹 사라졌고 박광택은 지방선거에 출마해 시장이 되었다.

해피엔딩이다.

‘갑질......’

생각해 보면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평생 대접받고 살아왔으니 일반 국민은 노예처럼 보였을 거다.

‘갑질을 유도하면......’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성윤이 고개를 틀어 정우를 향했다.

“공략법 생각해 둔 것 있지? 말해봐.”

정우가 핸들을 틀며 답한다.

“공략법이라...... 예상 밖에 워낙 센 캐릭터가 떠서 고민 중이기는 한데요. 지금까지 고민한 것을 말씀드리면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조조 군을 대파해 천하를 삼분하는 삼국시대가 열렸잖아요?”

난데없는 삼국지.

하지만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에서 답을 찾는 것은 언제나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고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정우가 계속 말한다.

“그래서 저도 천하를 삼분하려고요.”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헛소리를 하는 정우를 보며 성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지금까지 생각한 거야?”

“네.”

“그래, 내가 제갈공명 같은 대단한 분을 보좌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그러니까 운전이나 똑바로 하렴.”

이 두 사람은 박광택이라는 상대가 거대한 것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강점은 젊음, 열세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성윤의 목표는 거대하다.

고작 5선 의원에 막혀 멈춰 설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5선 의원이 나와서 정말 고마웠다.

정우가 했던 말처럼 박광택을 잡아먹을 수만 있다면 단번에 전국구로 이름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차가 멈춰 선 곳은 서안 보육원이었다.

성윤과 정우는 차에서 내려 보육원 건물로 향했다.

작은 텃밭을 지날 때......

“어? 여기서 또 보네요? 봉사 중인가 봐요.”

보육원의 마당을 쓸고 있던 여자, 가수 지망생이며 성윤과 같은 건물에 사는 여자, 이름은 아직 모른다.

그녀가 빗자루를 들고 눈을 깜빡이며 성윤을 본다.

그러더니 그녀의 허리가 갑자기 폴더처럼 접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뜬금없이 받은 감사 인사와 사과.

성윤이 황당한 표정으로 보자 그녀가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니까 보육원 도와주신 거요. 원장님께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피해 다닌 거 죄송합니다.”

“피해 다녔어요? 왜?”

그녀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연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으시잖아요. 그리고 매일 반짝 거리는 좋은 차타고 다니셨고. 그래서...깡...패 같은 직업으로 생각해서......”

성윤의 표정은 더욱 당황스럽게 물들어 갔고 옆에 서 있던 정우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박광택 때문에 웃을 일 없었는데 이렇게 웃네요. 미치겠다. 형님, 아니 후보님 얼굴, 으핫핫핫핫!”

사실 성윤의 얼굴이 험악한 인상은 아니다.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덩치가 꽤 좋아서 그런 오해를 가끔 받을 뿐이다.

어쨌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우가 삿대질까지 하며 웃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저놈은 진짜 미치광이의 눈빛을 갖고 있었으니까.

성윤은 정우를 살짝 째려본 후 다시 여자를 향했다.

“제 직업이 법적으로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고 있어요. 서안시 동구 대한당 후보시잖아요. 다시 한 번 그동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꼭 투표하러 갈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때, 옥상에서 들었던 노래요. 자작곡인가요? 듣기 좋았어요.”

“아.......”

그녀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해버렸다.

잠시 후, 성윤과 정우는 원장실에 앉았다.

원장이 두 사람의 앞에 찻잔을 내려둔 후 자리에 앉으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보육원 운영자 감옥에 보낸 게 후보님이시죠?”

“네?”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인데......

성윤의 표정을 본 원장이 입을 연다.

“그 룸살롱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우리 보육원 출신이 있어요. 그 날의 일을 말하면서 키 크고 덩치 좋은 분이 들어와서 박살냈다고 하더라고요. 전 자연스레 이성윤 후보님을 떠올렸을 뿐이고요. 비밀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제야 원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성윤이 조금 민망한 미소를 그렸다.

“그 날 그 분들 장사 망치셨을 텐데 죄송하네요.”

“아뇨, 오히려 좋아했어요. 그 인간들은 진상이라는 수준을 넘어 섰었나 봐요. 그리고 그 덕에 우리 보육원도 좋은 후원자님 만나서 정상화될 수 있었고요.”

좋은 후원자는 박 노인이다.

성윤이 보육원의 문제를 해결한 후 박 노인이 후원자로 적극 나서고 있었다.

성윤과 원장 사이에 잠시 이런 저런 말이 흘렀다.

그리고 원장이 찻잔을 내려두며 성윤을 빤히 본다.

“그런데, 오늘 오신 이유가......”

대답은 정우가 했다.

“선대위원장을 맡은 박정우라고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자칫 곤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녀는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죠.”

성윤과 정우가 동시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거 준비는 이제 끝났다.

그리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며 14일간의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

-서안시 동구 보궐 선거 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 민국당 박광철 후보가 61.6% 지지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대한당 이성윤 후보가 21.7%, 진보당 이선경 후보는 13.2%의 지지율을 받았습니다.

성윤은 선거 운동을 치르며 대책 없이 정신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최대한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야 했고 사거리에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존경하는 서안시 동구 시민 여러분, 기호 1번 이성윤입니다.”

성윤은 네거티브 선거를 하지 않고 오로지 시민들의 불편사항에 대한 공약만 내세웠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1주일만 참자는 정우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의 장점으로는 더러운 입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단점으로는 자극성이 적었다.

미주알고주알 욕을 내뱉어야 듣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게 없으니 시민들은 그냥 지나치고 선거 캠프에 나온 봉사자들이나 박수를 치고 있다.

하지만 박광택 후보 측은 달랐다.

적극적으로 성윤을 욕한다.

“박대철이 뇌물 먹고 구속됐으면 대단한 후보를 내세워도 용서를 받을까 말까인데, 되도 않는 후보를 던져 놓고 뽑아 달라고 하다니, 이게 도대체 뭡니까! 이건 대놓고 무시하는 거예요! 이번 선거에서 대한당을 심판해야 합니다. 국민을 깔 본 죄가 무엇인지 단단히 느껴야 합니다. 계속 대한당에 서안시 동구를 맞기겠습니까?”

봉사자들이 적극적으로 그의 이름을 외친다.

“박광택! 박광택!”

그 시각, 성윤은 차량에서 와이셔츠를 갈아입고 있었다.

“다음 향할 곳은?”

“시장이요. 상인 대표가 파전 가게 사장님인 것 아시죠? 거기서 정말 맛있게 드셔야 해요.”

성윤이 자신의 배를 슬 매만졌다.

“오케이, 아직 들어갈 공간 많아. 봉사자 분들한테 상인분들 장사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고 전했지?”

“당연하죠.”

시장에 도착했다.

성윤은 십여 명의 봉사자를 대동하고 입구에서부터 상인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기호 1번 이성윤입니다.”

지역구 선거의 경우 인터넷 민심보다 이런 상권 민심이 중요하다.

인터넷은 서안시에 살지 않는 사람도 정치 전문가가 되어 온갖 훈수를 두는 곳,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박광택의 이름이 들려온다.

“박광택! 박광택! 기호2번 박광택!”

성윤과 달리 서른 명의 봉사자를 끌고 나타난 박광택.

성윤과 그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다윗과 골리앗.

먼저 움직인 것은 박광택이다.

그가 성윤을 향해 기름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쑥 악수를 권한다.

정치인의 선빵, 먼저 악수를 권할 만큼 포용력이 넘친다는 모습.

성윤이 손을 들어 그의 악수를 받는다.

꽉 힘이 들어간 서로의 손.

입은 웃고 있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악수 장면을 기자들이 찰칵찰칵 찍고 있을 때, 박광택의 선대위원장이 정우의 옆으로 슥 다가왔다.

그리고 명함을 건넨다.

“저녁에 술이나 한잔 했으면 좋겠는데.....”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바지에 쑤셔 넣었다.

<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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