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과 다른. - (3) >
김희상 의원의 얼굴은 참 가관이었다.
분노를 참지 못해 시뻘겋게 변했다가도 촬영된 동영상이 어떻게 사용될지를 몰라 퍼렇게 질리기도 한다.
“너, 넌 누구야. 당장 안 지워!”
성윤에게는 쉬지 않고 욕을 내뱉던 김희상 의원, 하지만 정우에게는 큰 소리만 내고 있다.
정우가 싸늘하게 웃는다.
“저기, 이름 모를 의원님.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보는데요. 지금 큰 소리 낼 입장이라고 생각하세요?”
“뭐, 뭐?”
“선택하세요. 1번 기자에게 넘긴다. 2번 유투브에 올린다. 3번 우리의 개가 된다.”
“우리?”
“네.”
김희상 의원의 고개가 성윤을 향해 팩 돌아갔다.
“저, 저 놈이 네 보좌관이야?”
“아직은 친한 동생이지만 제가 당선되면 보좌관이 되겠죠.”
“당장 지우라고 해. 당장!”
김희상 의원은 삿대질까지 했지만 성윤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얼굴 보세요. 말 잘 듣게 생겼나 아니면 안 듣게 생겼나. 제가 말한다고 들을 놈이면 화장실에서 핸드폰 들고 설치겠어요? 화장실에서 동영상 찍는 것은 변태나 하는 짓이잖아요.”
김희상 의원의 시선이 다시 정우에게 향했다.
성윤의 말대로 말 참 안 듣게 생겼다.
정우가 손에 든 휴대폰을 흔들며 말한다.
“빨리 대답하시죠. 대답 없으면 기자에게 넘기고 유투브에 올리겠습니다. 10, 9, 8, 7, 6, 5......”
카운터가 들어가면 초조해지는 법이다.
“자, 잠깐!”
김희상 의원은 다급했는지 한 손을 번쩍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우는 궁지에 몰린 토끼의 반응을 구경하는 사자처럼 느긋하다.
“결정하셨나요?”
“개, 개가 된다는 것은 뭘 하는 거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뭘 시킬 거지?”
“글쎄요. 그건 앞으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못된 놈이 아니니까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결정은? 계속 카운터 들어갑니다. 4, 3, 2.......”
“사, 삼 번......할 게.”
말을 마친 김희상 의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대한당은 원내 대표에 이어 박대철까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중이다.
그런데, 욕설 동영상이 올라가면 어떤 비판을 받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당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일.
그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며 개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성윤이 그의 옆을 스치며 빙긋이 웃는다.
“탁월한 선택하셨습니다. 칭찬해드릴게요.”
“이....익!”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희상 의원은 화를 못 참아 치아를 꽉 다물 뿐 대답은 없었다.
성윤과 정우는 그를 뒤로하고 복도로 나섰다.
인터뷰 약속 시간에 늦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정우가 품에 넣었던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어떻게 쓸까요?”
“선거 시작되면 제대로 굴려.”
김희상 의원의 속마음을 들었을 때, 그는 성윤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려 했다.
하지만 선거 운동을 도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현역 의원의 지지는 큰 힘이 되죠. 김희상 의원은 형님 말대로 그렇게 쓸 게요.”
“그런데, 기자는 만나고 온 거지?”
“아뇨, 소회의실로 가는데 김희상 의원이 형님을 노려보면서 화장실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우린 완전 지각한 거네?”
“그렇죠.”
두 사람의 걸음은 더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복도 끝 소회의실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정우가 행동을 멈추고 성윤을 향한다.
“다 외웠죠?”
인터뷰 전에 질문지를 받았고 정우가 모범 답안을 적어 성윤에게 건넸다.
성윤은 다 외웠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딸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안에는 공보실 당직자와 기자가 보였다.
공보실 당직자는 손목을 틀어 늦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성윤은 곧바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차가 문제가 생겨서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자를 홀대해선 안 된다.
그들은 펜을 휘둘러 정치인의 이름에 흠집을 낼 수도 있고 빛을 낼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여론을 만들어내고 국민의 지지를 모을 수 있다.
모든 정치인이 언론을 손에 쥐고 흔들고 싶어 하는 이유다.
“괜찮아요. 저도 방금 왔어요.”
기자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 기자였다.
사근사근 웃으며 다리를 외로 꼰 그녀가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내려놓고 손에는 수첩을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윤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바로 인터뷰를 시작하죠.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현 국회의 연령대를 보면 삼십 대가 두 분, 이십 대가 대한당의 윤채아 의원님 한 분이죠. 만약 이성윤 후보님이 당선된다면 이십 대 의원이 두 명이나 되는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인데요. 젊은 정치인으로서 이 시대의 청년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네?”
사전에 받았던 질문지에 없던 내용이다.
성윤의 시선이 힐끗 당직자를 향했다.
인상을 구기고 있는 당직자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미친, 또 시작이네.
여 기자는 약속과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녹음기가 플레이된 이상 멈출 수 없다.
‘약속과 다른 대답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 목소리가 녹음될 테니까.
그리고 그게 퍼진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만 할 줄 아는 등신.’이란 소리를 들을 게 100% 확실하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여 기자에게 향했다.
그녀는 어서 대답하라는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생긋생긋 웃고 있다.
하지만 저 미소 속에 숨은 본심은 명백한 적개심이다.
말 한 마디 잘 못하면 병신을 만들고 말겠다는 노골적인 의지.
성윤도 기자도 웃고 있지만 소회의실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들려왔다.
-부모 잘 만나 성공해 놓고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하겠지?
‘이건 또 뭔 소리야?’
나이만 보고 ‘어린 새끼가 뭘 알아?’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이 봤다.
그런데, 부모 잘 만나 성공했다니......
어린 나이에 그것도 경선 없이 공천을 받은 게 부모의 재력이나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 기자는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계속 들려왔다.
-대답은 왜 안 해? 청년을 위해 기득권을 깨겠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해야지?
어쩐지 이상했다.
성윤이 무슨 말을 해도 다른 관점의 제목으로 장난질을 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윤 후보, 청년들만 중요해. 장년층과 노인층은 관심 없어. 이런 식의 제목을 쓰려나?’
잠시 고민하던 성윤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여 기자의 눈이 반짝인다.
“...뭐하시는 거죠?”
“기자님이 제 인터뷰를 갖고 이상한 내용을 쓸 것 같다고 의심해서 녹음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오늘이 제 첫 인터뷰라 집에 가서 복습하려고요. 괜찮을까요?”
성윤은 그녀의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녹음 버튼을 꾹 눌렀다.
만약에 여 기자가 지랄 맞은 내용의 기사를 썼을 경우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
성윤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술이 잘근 씹히는 걸 즐기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원하시는 답이 제가 청년들을 위해 기득권을 깨겠다는 상투적인 것은 아니죠?”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들킨 게 당황스러웠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위로 솟구쳤다가 내려온다.
성윤의 페이스에 완벽히 말려 버린 거다.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을 읽으며 말을 이어갔다.
“표정 보니까 정말 그런 답을 기다리셨나 보네요. 그런데 저는 ‘누군가를 위해 다른 사람을 깬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부패한 인물이라면 다르겠지만요.”
“그럼, 청년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생각해두고 있던 것은 있어요. 국가 정책과 예산안을 보면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이미 많이 준비되어있지만 홍보가 되지 않아 일부만 혜택을 보고 눈 먼 돈이 되는 경우가 존재하잖아요. 그래서......”
이 기자가 속한 한동 일보는 대한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이다.
그래서 성윤의 생각보다 당의 뜻을 따르겠다는 포지션을 취하는 게 선거에 도움이 된다.
성윤은 신인이었고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선거 전 튀는 행동은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에게 까분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터뷰는 막힘없이 진행됐다.
그녀의 의도를 파악한 성윤은 압도적인 자신감으로 모든 함정을 피해갔다.
적어도 악의적인 기사는 쓸 수 없을 거다.
“고생하셨습니다.”
성윤은 여 기자와 악수를 했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과 함께 그녀는 소회의실을 떠난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윤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사라졌다.
‘도대체 뭐지?’
그녀가 성윤에게 보여준 것은 부모 잘 만나 성공했다는 착각과 명백한 적개심이다.
‘누가 내 뒷말을 하고 다니나?’
***
여 기자가 떠난 소회의실, 정우도 화장실을 간다며 나갔고 그 자리엔 성윤과 당직자만 남아 있었다.
당직자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솟은 땀을 닦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후보님.”
“아뇨, 괜찮아요. 생각해서 해주신 건데요.”
공보실은 어린 성윤을 위해 일부러 인터뷰를 잡았다.
선거 전에 이름이라도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 거다.
하지만 여 기자가 약속과 다른 행동을 할 줄은 예상 못했다.
당직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 기자가 금수저 출신을 엄청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의원님과는 잘 맞을 거로 생각했는데.......”
“저는 금수저가 아니라서요?”
“네, 흐흐. 어쨌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동 일보에 전화해서 강하게 따질 테니까요.”
“아,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아뇨, 그렇게 해야죠. 어쨌든, 인터뷰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 너무 잘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당직자가 인터뷰 내내 들고 있던 파일철을 성윤에게 건네며 계속 말했다.
“조직국 당직자가 전해 준 거예요. 다른 후보들은 경선 중이라 오픈 할 수 없고 후보님께만 몰래 보여주는 거라면서요.”
“저한 테만요?”
“당직자 중에는 후보님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요.”
성윤은 고개를 틀어 ‘왜 나를?’ 이라는 눈빛과 함께 당직자를 향했다.
그들 중에도 공천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공천을 바라고 수십 년 씩 당직자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성윤은 툭 튀어 나와 공천을 받은 사람.
당연히 자신을 좋아할 당직자는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당직자가 슬쩍 웃는다.
“후보님은 흙수저니까요. 요즘 개천물이 다 말라서 개룡남 보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꼭 당선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윤은 시선을 옮겨 파일철로 향했다.
굵은 글씨로 ‘조직국’이라 적혀 있다.
조직국은 당의 전반적인 계획과 시행을 담당하는 곳이며 선거 때는 조직 활동 지원 업무를 수향한다.
성윤이 파일 내용을 읽어 내려가자 당직자가 부가 설명을 시작했다.
“후보님의 젊은 이미지를 극대화할 계획으로 선거 캠프에 대학생 당원들을 대거 투입할 거예요. 물론 캠프 인원 전부가 대학생은 아니에요. 자칫 학생회장 뽑냐면서 욕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성윤은 그의 설명을 들으며 파일을 몇 장 더 넘겼다.
한국 대학교는 물론 수도권의 각 대학 그리고 학생들의 이름과 사진이 붙어 있었다.
툭, 툭 가볍게 종이를 넘기며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는데......
‘어라?’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하얀 얼굴과 조용한 미소.
꿈속에서 성윤의 아내였던 사람이다.
< 예상과 다른.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