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9화 (19/300)

< 예상과 다른. - (2) >

***

계산대에 앉아 있던 목욕탕 주인은 흠칫 놀랐다.

딱 봐도 십 년 넘게 노숙 생활을 한 것 같은 사람이 들어오고 있어서다.

‘쫓아내야 해.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거야.’

목욕탕은 씻으러 오는 곳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더러운 사람을 받을 수는 없다.

투철한 주인 의식으로 무장한 목용탕 주인이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입을 열지 못한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속에 숨은 눈빛이 워낙 무서워서......

“얼마죠?”

목욕탕 주인은 낮은 음성을 들으며 사내의 모습을 살폈다.

무릎 부분이 툭 튀어나온 파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지만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았다.

목욕탕 주인은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들여보내 주는 거라고 위안을 가지며 입을 열었다.

“5천 원이요.”

사내는 5만 원 권을 내민 후 4만 5천 원을 거슬러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목욕탕 주인은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조금 있으면 손님이 많이 올 시간이다.

그전에 노숙자 같은 사내가 빨리 나갔으면 했는데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때, 남탕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욕탕 주인의 시선은 다급히 문으로 이동한다.

‘어? 저런 손님이 있었나?’

하루 종일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들어가는 손님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처음 본 사람이 나오고 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선이 굵은 잘생긴 얼굴.

하지만 어디선가 낯익은 매서운 눈빛과 파란 트레이닝 복.

정우였다.

목욕탕을 벗어난 정우는 고개를 들어 드넓은 하늘을 본다.

겨울로 다가서는 가을 하늘이 눈에 담겼다.

‘세상을 뒤집어 보자고?’

정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재밌겠네.’

그는 천천히 기지개를 켠다.

팔 근육이 꿈틀 대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은 수십 년간 갇혀 있던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용틀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

며칠 후.

자취방에서 나온 성윤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자신의 준중형 차 앞에 검은 정장을 입은 정우가 보인다.

정우가 손을 내밀자 성윤은 자연스럽게 키를 던졌다.

“머리, 왜 그렇게 짧게 잘랐어?”

“목욕탕에서 잘랐는데요. 이발사 아저씨가 자기는 스포츠 머리 전문이라고 해서요.”

“너도 인상 참 더러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이 그런 말하는 것은 좀 그러네요. 그런데, 어디 가죠?”

“커피숍.”

잠시 후, 두 사람은 서안시 동구 외곽에 있는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성윤은 현재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기초 의원 열네 명이 도와준다는 것과 서안 보육원의 일.

그리고 박 노인에서부터 이덕근 사장 그리고 안재열 전 대통령까지.

“안재열 대통령은 민국당이잖아요. 형님은 대한당이고요. 그런데 형님을 도와주는 거예요?”

“응.”

정우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형님 덕에 웃을 일 많아서 좋아요. 어떻게 예상을 다 빗나갈 수 있죠? 후원자가 전직 대통령인 것도 웃긴데 그게 상대 당이라니. 흐흐흐흐.”

“안재열 대통령님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더 바라다가는 민폐를 끼칠 수 있으니까.”

정우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고 머그잔을 손에 들고 고개를 틀어 창밖을 본다.

지금의 상황을 들었으니 앞으로의 전략을 짜내기 위해서다.

그게 그의 역할이니까.

“박대철이 나가리 되면서 민국당이 나대고 있어요. 서안시 동구는 전통적으로 대한당이 강세였던 지역, 민국당은 이참에 지역을 빼앗을 생각으로 전력을 다하겠죠. 상대의 지역에 깃발을 꼽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으니까요.”

정우는 먼저 정세를 예측한 후 상대의 전략을 예상한다.

“이번 선거에서 민국당의 메인은 ‘대한당에게 지역을 맡겼더니 룸살롱만 다니더라.’가 게 되겠네요. 제가 민국당의 참모라면 ‘박대철 의원을 룸살롱으로 모셨던 운전수! 똑같은 놈.’이라는 걸로 공격할 것 같아요.”

정우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은 형님의 나이에요.”

대한당의 지지층은 오십 대 이후가 많다.

선거에 적극 참여해 표를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우의 말대로 성윤의 나이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어린 새끼가 뭘 안 다고.

장유유서의 단점.

성윤도 예상하던 거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들었고. 지금부터는 널 데려온 보람을 느껴야겠지? 해결 방법을 말해 봐.”

“방법이 있나요? 발로 뛰어야지. 시의회 의장이 연결해주기로 한 지역 유지들, 선거 전날까지 딱 열 번 씩만 만나죠.”

지금부터 사람들을 만나 선거운동을 하자는 말이다.

그런데 선거운동은 선거기간 개시일 부터 선거 전날까지로 그 기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대법원 판결을 보면 ‘저를 꼭 뽑아주세요.’ 등의 목적만 밝히지 않으면 되니까.

사람을 만나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끝?”

“두 가지가 더 있는데 그건 상황 봐서 말씀드릴게요.”

“말해 봐.”

“안 돼요. 형님에 대한 것은 계속 제 예상과 빗나가서......”

***

말 그대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침에는 노인 회관에서 식사하고 점심은 농사를 도운 후 밥 먹고. 저녁은 향우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는 등......

그렇게 일정을 보내다 보면 하루에 다섯 끼를 먹은 적도 있다.

물론 밥만 먹은 것은 아니다.

대한당 당원인 것을 밝힌 후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정리했다.

얼굴을 알리는 한 편 가장 많이 중첩된 민원을 공약으로 삼기 위해서다.

그리고 재보궐선거 지역이 최종 확정됐다.

대한당은 각 지역에 출마할 후보를 뽑기 위해 경선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서안시 동구는 경선 없이 성윤의 공천이 결정됐다.

“피곤하네.”

대한당 당사로 가는 길, 조수석에 앉은 성윤은 뒷목을 꾹꾹 눌렀다.

운전을 하던 정우가 뒷좌석을 가리키며 말한다.

“가방에 마스크 팩 있거든요. 좀 하세요.”

“어차피 망가진 얼굴 지금 투자한다고 안 바뀌어.”

“그거라도 안 하면 못 봐줄 정도라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당사로 가는 이유는 갑자기 잡힌 인터뷰 때문이다.

2,30대 지지율이 처참한 대한당은 성윤을 통해 젊은 이미지를 얻고 싶었나 보다.

‘이름을 알리려면 언론이 최고예요.’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멋대로 인터뷰를 잡아버렸다.

하지만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

지금의 갑은 당이니까.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성윤이 복도의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끝에 있는 소회의실이야. 난 손 좀 씻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나 기다리는 동안 기자님이 심심해 보이면 농담 좀 해주고.”

“농담이요? 왕이 넘어지면, 킹콩. 이런 거?”

“미안, 하지 마.”

“신발이 화나면? 신 발끈.”

“절대 하지 마.”

정우는 ‘칼이 정색하면 검정색.’이라는 말을 중얼중얼 대며 소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성윤은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 앞에 섰다.

오면서 체력 회복을 위해 초콜릿을 먹었는데 손에 묻었는지 끈적거린다.

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야.”

누군가의 목소리.

하지만 그게 성윤을 부르는 소린지는 몰랐다.

“야! 주인 잡아 먹은 개새끼!”

비누 거품을 내고 손을 씻던 성윤의 동작이 뚝 멎었다.

뒤를 돌아보자 메기같이 생긴 오십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김희성 의원, 박대철 의원과 형 동생 하던 사이.

끼리끼리 논다고 당연히 양아치다.

꿈속을 기억하면 어떤 업적도 남기지 못한 채 다음 총선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

“저요?”

“그래, 너 이 새끼야. 이 안에 너 말고 누가 있다고.”

박대철 의원과 친했던 사람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비는 당황스러웠다.

동네 깡패도 아니고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욕하는 장소도 동네 양아치의 주 무대인 화장실.

“집에서 키우는 똥개도 주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식음을 전폐한다는데, 비서라는 새끼가 절에 들어가서 기도는 못할망정 그 자리를 홀라당 차지하려고 해?”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듣기 시작했다.

일단 그는 박대철을 씹어 먹은 사람이 성윤이라는 것을 모른다.

약점을 잡힌 박대철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었을 리도 없다.

그런데 시비를 거는 이유는 단 하나.

운전이나 하던 새끼가 공천을 받았다는 게 기분 나쁘기 때문인 거다.

성윤이 당선이 된다면 운전 기사였던 놈이 그들과 똑같은 자리에 앉게 되는 거니까.

국회의원은 특별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빌어먹을 특권 의식.

“네가 어떤 식으로 손바닥을 비벼서 공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안 돼.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막을 거야.”

“가진 모든 힘이요? 어떻게요?”

“왜 궁금해? 기대해 새끼야.”

비열한 웃음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그는 박대철과 친했던 의원들을 불러 모아 성윤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을 계획하고 있다.

인생을 오십 년이나 살아 놓고 치졸한 생각이나 하는 중이다.

“저기요, 의원님. 제가 지금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뭐? 병신같이 욕 처먹었다고 이르게? 아니면 시간 없으니까 빨리 보내달라고?”

“그게 아니고요. 제가 말 주변이 없어서 기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의원님을 만나서 이야기 거리가 하나 떠올랐네요. 감사합니다.”

“뭐?”

김희성 의원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성윤의 침착함 속에 날카로운 발톱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제가 박대철 의원의 운전 기사였잖아요. 그래서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고 있고 사모님이 누구와 친했는지도 알고 있거든요.”

“그, 그래서 뭐 이 새끼야!”

“김희상 의원님의 사모님과 자주 어울렸던 것 같던데요. 밤에 술도 자주 마셨고요.”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는 호스트바 중독자로 성 스캔들에 휘말린 상태다.

그런데, 김희성 의원의 아내가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와 가깝게 지냈다는 말을 기자가 듣는다면 아주 괜찮은 관능 소설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김희성 의원의 입에서 분노의 욕이 터져 나온다.

“이 또라이 새끼가!”

김희상 의원은 팔까지 걷어붙이고 한 3분정도 쉬지 않고 욕을 내뱉었다.

그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더러운 단어가 양념처럼 섞여 있었고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문장도 존재했다.

하지만 성윤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여유롭다.

“웃어? 너 지금 내 말이 웃겨?”

“아, 죄송해요. 웃긴 게 생각나서요.”

“이 새끼 진짜 또라이네. 뭐가 웃긴데? 뭐가 생각났는데!”

“의원님의 5초 뒤 표정이요.”

김희성 의원은 성윤의 말을 해석하느라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성윤이 손가락을 들어 김희성 의원의 뒤를 가리켰다.

“보세요.”

성윤의 말투와 태도, 김희상 의원은 뭔가 잘 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정우가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동영상 촬영 중입니다.”

< 예상과 다른.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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