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천. - (2) >
어금니를 꽉 씹은 박대철 의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험악한 눈으로 쏘아보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성윤의 덩치도 좋지만 박대철 의원은 말 그대로 근육 돼지.
보통 사람이라면 위압감을 느낄 정도, 하지만 성윤은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박대철 의원이 성윤의 앞에 섰다.
코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
박대철 의원의 낮은 목소리가 살벌하게 흘러나왔다.
“네가 한 짓이냐?”
“네.”
박대철 의원이 픽 웃는다.
참 가소롭게 보이는 모양이다.
“야, 룸살롱에서 계집질 한 게 무슨 죄야. 말해 봐.”
“성매매.”
“증거 있어? 없잖아! 이따위 기사 우습지도 않아.”
“뒷돈 받은 건?”
“뒷돈? 그래, 받았다고 치자. 증거 있어? 있냐고!”
박대철 의원이 손바닥으로 성윤의 가슴을 ‘팍!’ 밀친다.
잘 못을 저지르다 걸렸으면서도 한 없이 거만한 태도.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믿고 있어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 하지만 국회의원은 다르다.
체포되지 않는다.
아니, 체포된다 해도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 요구에 의해 석방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자주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지만 참 개같이 이용되는 중이다.
성윤이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의혹만 있어도 질질 끌려가서 영혼까지 털렸을 텐데, 국회의원이라 상관없다는 것인 가요? 참, 더럽네.”
박대철 의원의 입에 비웃음이 걸린다.
“그게 권력이야. 억울하면 배지 달던가?”
박대철 의원의 낮은 웃음소리에 수석 보좌관과 보육원 운영자도 같이 킬킬대고 있다.
똑같은 놈들이다.
성윤은 씹어 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서류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박대철 의원의 시선이 서류로 향한다.
“읽어 보세요.”
수석 보좌관이 서류를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서류를 넘기던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의, 의원님.”
불길한 목소리.
박대철 의원이 서둘러 서류를 건네받았다.
서류에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젊은 여성이 박대철 의원의 차에 오르는 장면과 같이 호텔에 들어가는 장면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여성의 주민등록 등본이었다.
미성년자.
박대철 의원의 얼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씨, 씨발......이게 무슨......”
대한민국은 성에 대해 엄격하다.
특히 국회의원이라면 그것도 상대가 미성년자라면 세상 모든 사람은 박대철 의원을 갈기갈기 물어 뜯을 거다.
성윤의 느긋한 목소리가 룸을 채웠다.
“의원님이 스폰해주던 대학생 있잖아요? 사실은 가출청소년이었네요. 하도 어려 보여서 확인해 봤는데, 어쩝니까? 원조교제도 하셨어요.”
박대철 의원은 다급히 휴대폰을 손에 들더니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쪽팔린 것은 아는지 원조교제에 관한 기사가 올라갔는지 확인하는 거다.
그리고 아직 없다는 걸 확인한 그가 막혀 있던 숨을 내뱉는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원조교제는 기사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의원님 딸이 걱정 됐거든요. 한창 자라날 나이에 자기 아빠가 원조교제나 했던 쓰레기라는 걸 알면 얼마나 충격 받겠어요?”
박대철 의원은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한 눈으로 가출 청소년의 주민등록 등본만 보고 있을 뿐이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기사로 나가지 않을 뿐이지 조사 받고 벌은 받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증거 없다고 지랄하지 마세요. 털면 다 나온다는 거 알잖아요?”
박대철 의원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손에 들고 있던 미성년자의 등본이 투투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성윤을 본다.
“나, 나한테 왜? 내가 잘 해줬잖아? 혹시, 내 자리를 노리는 거야? 그런데, 너 잘 못 생각하는 거야. 내가 입만 뻥끗하면 공천은커녕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 배신자를 받아 줄 당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궁지에 몰린 박대철 의원은 횡설수설 말하고 있다.
성윤이 아랫사람을 대하듯 그의 어깨를 꽉 쥐며 말했다.
“내 이름을 밝히겠다고요?”
“그, 그래.”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하세요. 내가 아무 대비도 안 했을 것 같습니까? 난 그동안 준비했고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소 후 밥이라도 먹으려면 입 닥치고 있으세요.”
룸의 공기는 얼어붙고 있었다.
성윤을 제외한 세 사람의 마른 침 넘기는 소리만 착잡하게 들릴 뿐이다.
박대철 의원은 힐끗 성윤을 본다.
그가 알기로 성윤은 그저 운전기사일 뿐이다.
그런데,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를 움직이는 것을 물론 국회의원인 자신 앞에서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하다.
그렇다는 것은.......
박대철 의원이 상당히 누그러진 말투로 묻는다.
“자네 뒤에 누가 있는 거지? 이정락이야? 아니면......”
박대철 의원의 입에서 국회의원의 이름이 줄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의원들, 최근 계파를 옮기며 적대적으로 바뀐 사람이 많은지 나오는 이름이 많다.
그의 말을 들으며 성윤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느긋하게 양 팔을 걸친 후 입을 연다.
“죗값이나 받으세요.”
***
[서안시 서안 보육원의 운영자 김 모씨가 그동안 아동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 수급 수당 3억여 원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안 보육원의 운영자 김 모씨는 박대철 의원에게 수차례 뇌물을 건넨 것으로......]
[시민 단체는 대한당 당사 앞에서 박대철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며......]
[성 스캔들과 뇌물 수수 등으로 얼룩진 박대철 의원이 오늘 의원직을 사임했습니다.]
[박대철 전 의원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공중파 뉴스는 물론이고 인터넷 기사까지 박대철 의원에 관한 일로 도배되었다.
그리고 서안시 동구는 보궐 선거 지역으로 확정되었다.
그 시각 동네 치킨 집, 시의원 및 구의원 열네 명이 앉아 있었다.
보육원의 땅으로 투기를 하려다 성윤에게 걸려 노예가 된 자들이다.
테이블 위에는 양념치킨이 불그스름한 빛을 내고 있다.
참 먹음직스럽지만 처음 나온 그대로다.
차갑게 식은 지금까지 누구도 손대지 않았다.
모두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던 중 한 시의원이 의장에게 입을 열었다.
“의장님! 박대철 의원도 없는데 우리가 그 놈 말을 따를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가 그놈 말을 따르는 게 박대철 의원 때문이 아니잖아! 하, 씨발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의장의 말에 모두는 한숨을 내쉰다.
최근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보육원 운영자가 아동들의 기초생활 수급 수당을 횡령해서 뇌물을 먹인 게 알려지며 서안 보육원은 도마 위에 올랐다.
각 방송사의 모든 시사 프로그램이 찾아 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정당한 투자를 했소!”라고 외친다면 박대철 의원과 같은 취급을 당할 뿐이다.
믿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검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한 구의원이 강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어린 새끼한테 계속 당하고 살 겁니까!”
“방법이 있으면 말해봐! 나도 이러기 싫어!”
“우리끼리 언성 높이면 안 되잖아요! 참아요. 참아!”
치킨집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갈 것처럼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때,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일찍 오셨네요.”
굳은 표정의 기초의원들과 달리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온 사람, 그들의 철천지원수 성윤이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있다는 데 이들에겐 성윤이 딱 그렇다.
하지만 내색은 못한다.
지금 그들에게 성윤은 갑 오브 갑이니까.
성윤이 자연스레 상석에 섰다.
그러자 의장은 꾸물꾸물 옆으로 이동하며 상석을 내준다.
성윤이 느긋한 태도로 상석에 앉으며 다시 방긋 웃는다.
“그간 별 일 없으셨죠?”
“아, 네.”
“다행이네요.”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성윤은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팔짱을 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뭔가 연락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으니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모든 의원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성윤의 말을 기다릴 뿐이다.
힐긋 힐끗 곁눈질로 성윤의 표정을 살피면서......
‘흠......’
성윤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공천을 받고 선거에 나가면 적이 많아질 거야.’
박대철과 친했던 의원들이 그 첫 번째다.
그들은 박대철이 떠난 자리에 운전기사 따위가 앉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주인 잡아 먹은 개로 취급하며 무시할 게 당연하다.
성윤을 길들이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공격할 게 뻔히 예상된다.
성윤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며 평소의 성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성윤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것도 당선된 후에 생각할 일이지, 아니 공천부터 받아야 할 일이지.’
성윤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공천에 관한 확답을 7시까지 주기로 했다.
그런데 9시가 다 되도록 연락이 오지 않는다.
한참 전부터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고장이라도 났는지 미동조차 없다.
‘무슨 일이 있나?’
어쩐지 불안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길한 생각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저기 수행 비서님?”
“네?”
고개를 돌리자 의장이 보고 있다.
연락이 오지 않아 초조한 것은 성윤인데 의장은 더 심각한 얼굴이다.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주섬주섬 흰 봉투를 꺼내 건넨다.
“약소하지만.......”
“이게 뭐예요?”
“그거죠.”
“그거라뇨?”
“돈.......”
성윤은 두 시간 가까이 어떤 말도 없이 가끔 미간만 찌푸리며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돈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서 이들은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았고 하얀 봉투에 담았다.
“아, 필요 없는데요.”
단호한 거절에 의장은 정말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죄송하지만 혹시 두께가 얇아서 그런 가요? 조금 더 두껍게 만들까요?”
“아뇨.”
“그럼,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도대체 뭐예요! 두 시간 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때, 지이이이잉.
성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번호는 기다리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다.
성윤이 의장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전화를 손에 쥐었다.
“네, 이성윤입니다.”
< 공천.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