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화 (16/300)

< 공천. - (1) >

***

대한당 당대표는 넥타이를 풀어 헤친 후 소파에 누워 버렸다.

피곤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눈을 감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댄다.

“이제야 끝낼 수 있겠어.”

몇 달 동안 이어진 계파 싸움의 끝이 보였다.

원내 대표 측은 머릿수만 믿고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지만 언제나 변수가 있는 법.

당대표는 원내 대표의 비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도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폭탄이다.

‘저격수를 골라야 하는데......’

저격수란 상대의 비리를 폭로하는 역할.

단 번에 국민의 눈에 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저격당한 측에게 보복 당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독하고 거친 이미지는 덤이다.

그래서 저격수를 고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누가 좋을까.......’

현재 원내 대표의 비리는 비례대표 윤채아가 들고 있다.

운반책이 바로 탄을 장착하고 사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순수함이다.

저격수로 쓰기엔 적당하지 않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갈 때, 그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누워 있던 당대표는 서둘러 일어나 통화 버튼을 누른다.

걸려온 전화는 안재열 전 대통령이었다.

당대표의 눈은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는가?

“아, 네. 잘 지내셨습니까?”

-할 말이 있어 전화했어. 내가 자네의 비리와 원내 대표의 비리를 얻었는데......

“네?”

-누구 손을 들어 줄까?

안재열 전 대통령은 원내 대표의 비리만 갖고 있다.

하지만 당대표의 비리도 갖고 있는 척 거짓말한다.

이유는 대한당의 계파 싸움이 끝난 후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당 간부들은 갈등의 잔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고 내부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공격 대상을 찾을 거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사냥감으로 최적이었다.

상징성도 존재했고 얄미운 민국당의 수장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안재열 전 대통령은 당대표의 비리를 갖고 있다는 말로 그들의 공격을 사전에 막으려 한다.

정치에도 뻥카는 필요했고 상대가 믿게 만드는 것은 능력이다.

당대표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자 안재열 전 대통령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왜 모르는 척 하나? 원내 대표 그 친구 딸이 프리하게 지낸다는 것 모르나? 그거 내 손에서 털어주지. 난 자네 손을 들어 주고 싶거든.

당대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원내 대표의 비리를 정확히 짚었다.

‘젠장, 진짜 내 비리도 갖고 있는 거야?’

당대표는 찌푸려진 미간과 달리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내가 남의 당에 훈수 두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딱 하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무엇입니까?”

-공천권 한 장만 줘.

“네?”

-다음 보궐선거 자리가 확정되면 그 중 딱 하나만 내가 쓰겠네.

뚝, 전화가 끊겼다.

당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보궐선거 공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라면 더 큰 것을 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공천이라니.

그것도 다음 보궐 선거는 임기 1년짜리다.

당선된다 해도 몇 개월 후에 다시 선거전에 나가야 하는 곳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걸 왜?’

***

“존경하는 진학선 의장님 그리고 선배, 후배 동료 의원 여러 분, 민국당 이현형 의원입니다.”

국회 본회의, 5분 자유 발언에 민국당 의원이 섰다.

그의 손에는 성윤이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건넨 자료가 들려 있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자리에 앉은 의원들의 표정이 묘하다.

시작될 폭로를 알고 있는 민국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심각하게 앉아 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걸 예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모르는 대한당 의원들은 평소처럼 지루해 보였다.

그중에는 대한당 원내 대표 김재하도 있었다.

김재하 원내 대표는 핸드폰을 들고 인터넷 쇼핑에 여념이 없다.

민국당 의원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최근 공직자들의 불법 유학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국민은 한숨을 내쉽니다. 고위 공직자의 자식은 미국 유학을 가고 서민은 교육 정책의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말이다.

대한당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저는 오늘 지난 십 년간 유학비만 10억 원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당 김재하 원내 대표에 관한 단서를 공개하면서 의원직 사임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회의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하던 김재하 원내 대표의 불편한 시선이 천천히 민국당 의원을 향했다.

“이런 개새끼가.”

김재하 원내 대표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지만 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첫 번째 단서는......”

“지금 뭐하는 짓이야!”

급기야 대한당 의원이 핏발선 눈동자로 벌떡 일어섰다.

김재하 원내 대표의 측근이다.

뒤이어 다른 의원들도 벌떡벌떡 일어선다.

“안 닥쳐!”

“당장 내려와!”

민국당 역시 질세라 곧바로 일어섰다.

“자유 발언이잖아! 끼어들면 안 돼지!”

“씨발! 지금 개소리를 하는데 안 끼어들 게 생겼어?”

“너희들은 안 했냐? 안 대통령 시기에 물러나라고 했었잖아! 기억 안나? 뇌가 비었어?”

“안 대통령? 몇 년전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싸늘하게 마주 붙는 시선.

하지만 모든 대한당 의원들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당대표의 손을 잡은 의원들은 아직 자리에 앉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내 대표가 당하고 있는데 사이다를 한통을 들이킨 것 같이 상기된 표정이다.

욕설이 난무하는 개판.

하지만 자유 발언은 이어진다.

“다음은 김재하 원내 대표의 딸 김보라 양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파티를 하는 사진입니다.”

사진에 나타난 것은 전라의 남녀들, 마약을 했는지 눈동자의 초점은 없고 사진에 보이는 술 중 가장 저렴한 것이 수십만 원 대다.

“씨발 꺼!”

“이 개새끼야! 너 지금 그거 불법이야, 불법!”

대한당 의원들의 험악한 욕설이 이어질 때 김재하 원내 대표의 입술은 파르르르 떨리고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의 그가 눈을 감는다.

모두 끝났다는 것을 예상한 거다.

***

[시민 단체는 대한당 당사 앞에서 김재하 원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삑.

박대철 의원이 텔레비전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의 입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다.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며칠 전, 박대철 의원은 당대표로 노선을 갈아탔다.

그 덕에 앞으로 불어 올 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중이다.

옆에 서 있던 수석 보좌관이 허리를 굽혔다.

“이렇게 흘러갈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대한당의 계파 싸움에 민국당의 난데없는 개입과 김재하 원내 대표의 몰락.

이것은 정치 전문가들조차 예상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수행 비서 이성윤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른다.

박대철 의원이 일어나자 수석 보좌관이 재킷을 가져다준다.

재킷을 걸치던 박대철 의원이 말한다.

“가방 모찌, 바꿔야 할 것 같아.”

가방 모찌는 수행 비서, 그러니까 성윤을 의미한다.

계파 갈등으로 정치판이 제 멋대로 흔들리는 중인데 며칠 전 멋대로 휴가를 다녀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국회의원에겐 24시간 자신의 옆을 보좌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비서가 필요한 법이니까.

보좌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알아보겠습니다.”

박대철 의원이 수석 보좌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옆을 스친다.

“새로운 놈 구하기 전까지는 열심히 해야 하니까 은밀히 진행해. 마지막에 뒤통수 맞으면 안 되니까 잘 해주고.”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기다리고 있던 성윤이 인사 후 뒷문을 열었다.

차량에 오르던 박대철 의원이 멈칫 하더니 묻는다.

“야, 요즘 세진이 엄마 뭐하고 돌아다녀?”

“네?”

박대철 의원의 갑작스러운 질문.

보통 사람이라면 의도를 알 수 없었겠지만 성윤은 그의 마음을 듣는 중이었다.

-개새끼가 잘렸다고 지랄하면 안 되지. 혹시 쓸데없는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겠어.

‘솔직히 말해? 매일 호스트바에서 만난 남자와 모텔에 갑니다. 라고?’

하지만 참아야 했다.

사실 지금 밝혀도 상관은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이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미사일 버튼을 눌렀고 곧 박대철 의원의 머리 위로 떨어질 거니까.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동창회 자주 나가시는 것 같습니다.”

“동창회? 씨발, 아줌마들끼리 가방 자랑하는 곳?”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화점 들어가면 가방 좀 그만 사라고 말해.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어.”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는 가방 사는 게 취미다.

한 달에 두세 번은 몇 백만 원짜리 가방을 산다.

그런데, 그 가방의 용도는 어깨에 걸치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중고로 팔아 현금을 손에 쥐기 위해서다.

그 돈으로 호스트바에 가야 하니까.

최근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는 다른 제비에게 빠졌는데 그 사람은 혼혈이다.

흑인과 동양인의 절묘한 만남.

슈퍼 코리안.

“잘 해라. 쓸데없는 짓 하면 너도 죽는 것 알지?”

박대철 의원이 차에 오르며 던진 마지막 말.

잘리더라도 듣고 본 것을 잊으라는 협박, 해고 통지를 내뱉기 전부터 포석을 까는 중이다.

그 말을 끝으로 차에 오른 박대철 의원은 더 묻지 않고 뒷좌석에 몸을 파묻으며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서안시의 유일한 회원제 룸살롱이었다.

평소라면 기다리라고 할 박대철 의원인데 오늘은 다르다.

“야, 먼저 퇴근 해. 알아서 갈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수행 비서의 덕목은 묻지 않고 지시에 따르는 것.

성윤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수석 보좌관과 함께 들어가는 박대철 의원의 뒷모습을 날카롭게 바라본다.

오는 동안 들었던 박대철 의원의 속마음.

-용돈 좀 받겠네.

오늘 뭔가 있다.

***

“애기들 부르기 전에 사업 이야기부터 할까요?”

박대철 의원의 앞에는 서안 보육원의 운영자가 있었다.

불뚝한 배를 비비며 웃고 있는 오십 대 남자.

원장은 아니다.

원장은 고용된 입장이고 이 사람은 자금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를 한다.

이름은 김정수, 그가 입을 연다.

“이번 기회로 없애 버리려고 했는데 참 아쉬워요.”

“왜? 횡령한 게 들킬까 봐요?”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게 세상이니까요.”

김정수는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오백만 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흐흐흐.”

이 돈은 아동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 수급 수당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생계비와 수당, 어린 삶의 최소한을 보장 받기 위해 나온 돈!

그게 이딴 식으로 쓰이고 있다.

자신들의 비리를 입막음하기 위해......

돈은 수석 보좌관이 잡았다.

국회의원 사무실의 자금 관리는 수석 보좌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촤르르륵 돈을 넘기던 수석 보좌관의 시선이 김정수를 향한다.

“조금 모자라지 않나요?”

“모자라다니요?”

“석 달 전의 일. 벌써 잊으셨나요? 그럼, 죽은 애만 불쌍한데요.”

석 달 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장애아동이 방치되어 말라 죽었다.

언론에서 다가서려 했지만 박대철 의원이 쿨하게 막아줬다.

“아......”

김정수는 이제 기억난다는 듯 이백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린다.

수석 보좌관이 돈을 쥐며 입을 연다.

“사업 적인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아들과 따님이 있으시죠?”

“둘 다 대학 다니고 있어요.”

“좋네요. 자제분들을 보육원에 근무하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세요.”

“잉? 그러다가 사회복지과에서 나오면요?”

“단속 못 나가게 막아드리죠.”

“흐흐흐.”

김정수는 삼백을 더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금까지 나온 돈이 총 천만 원.

단 천만 원 때문에 보육원의 아이들은 거지 같이 살아야 한다.

박대철 의원이 기름기 낀 얼굴로 수석 보좌관을 향했다.

“끝났나?”

“네,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놀아야지? 가서 마담한테 애기들 넣으라고 해.”

수석 보좌관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그런데......

“너 이 새끼, 여기 왜 왔어? 퇴근하라고 했잖아.”

굶주린 호랑이 같은 모습의 성윤이 서 있었다.

성윤이 뚜벅 한 걸음 걸어간다.

그의 살벌한 눈빛에 수석 보좌관은 자신도 모르게 물러났다.

“왜, 왜 이 새끼야!”

성윤은 대답 대신 ‘탁.’ 문을 닫았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김정수와 박대철 의원의 얼굴을 노려봤다.

김정수는 갑작스레 들어온 성윤이 누군지 몰라 당황한 표정.

반대로 박대철 의원의 얼굴은 도깨비처럼 일그러지고 있었다.

“뭐야, 이 개새끼야! 안 꺼져!”

욕이 시끄럽게 들려오지만 성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툭 던진다.

박대철 의원과 수석 보좌관의 시선이 핸드폰 화면으로 향했다.

[<단독> 대한당 박대철 의원, 룸살롱 중독! 아내는 호스트바 중독! 세금이 이런 곳에 나간다.]

가슴이 철렁한 박대철 의원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이, 이거 뭐야? 누가 제보한 거야! 설마 너, 너야? 너냐고 이 개새끼야!”

박대철 의원의 호통 소리가 룸을 울렸지만 성윤은 전혀 동요 없는 표정으로 싸늘하게 말한다.

“의원님, 이제 그만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겠습니다.”

< 공천. -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