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 잡는 아저씨. - (3) >
***
새벽 2시.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는 직장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이지만 강남의 밤은 화려했다.
특히 회원제 룸살롱은 대한당 국회의원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의원들의 벨트는 풀어져 있고 와이셔츠의 단추는 모두 뜯어져 있다.
테이블에 올라간 원내 대표 김재하가 수백만 원짜리 양주를 들고 쓰레기통에 붓고 있다.
그러자 의원들이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하하하하하!”
그렇게 ‘똑’ 양주 한 병이 쓰레기통에 모두 쏟아졌다.
김재하 원내 대표가 외친다.
“마실 사람!”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수석 보좌관이 테이블 위에 오만 원권을 탁탁탁 놓기 시작했다.
백 장.
오백만 원이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의원들이 자신의 옆에 앉은 반라의 여성을 바라본다.
“야, 먹어.”
“제, 제가요?”
“처먹으면 오백인데 안 먹어?”
이들은 국회의원이다.
룸살롱의 사장이 조직폭력배와 연결되어 있어도 막아낼 수 없다.
이들은 진정한 괴물, 기분이 나쁘다는 하찮은 이유로 룸살롱 정도야 먼지처럼 없애 버릴 수 있었으니까.
재촉을 이기지 못한 한 여성이 쓰레기통을 손에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망설임으로 가득하다.
“마시라고!”
의원의 거지같은 명령에 그녀는 눈을 꾹 감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여성은 하의 속옷만 입고 있었는데 입에서 흐르는 술이 그녀의 몸을 타고 떨어진다.
그 모습이 섹시해 보였는지 원내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쓰레기통에 담긴 술을 먹으며 울었는지 눈시울이 빨개진 그녀가 원내 대표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동자와 달리 원내 대표의 눈엔 욕망만이 가득하다.
그가 그녀를 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한다.
“들어가.”
가리킨 곳은 화장실.
그녀는 지시를 따랐고 원내 대표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쫓아 들어갔다.
탁. 화장실 문이 닫혔다.
이내 야릇한 소리가 룸살롱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때, 원내 대표의 보좌관이 입을 연다.
“아가씨들은 10분만 나가 있지?”
원내 대표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간 여성을 제외하고 다른 여자들은 룸을 벗어났다.
그 자리엔 술에 취한 의원들만 남았다.
보좌관이 입을 연다.
“먼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 죄송합니다. 맨 정신에 하긴 힘들어서 술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박보 이야기를 안 따른 적 있나? 편히 말해. 하하하.”
박보는 박 씨 성을 가진 보좌관의 줄임말이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그럼, 편히 말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곧 계파 갈등이 끝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승리한 이후에 당대표에게 어떤 처분을 내려야 할지 의견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감옥에 보내면 당 이미지만 나빠지잖아? 요즘 이슈 없나? 책임지고 내려가면 그림이 딱 좋은데.”
이들은 계파 갈등에서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김칫국을 마시는 중이다.
***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의원들은 룸살롱을 벗어났다.
그 자리엔 박대철 의원도 있었다.
차량의 뒤에 탄 그가 넥타이를 풀며 입을 연다.
“가자.”
성윤은 엑셀을 꾹 밟았다.
차가 부드럽게 출발 할 때 박대철 의원이 혀 꼬인 소리로 입을 연다.
“야, 너 한국대 나왔다고 했지?”
“네, 경영학과 졸업했습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네?”
“당대표하고 원내 대표, 누가 이길 것 같냐고.”
“그걸 제가 어떻게.......”
“병신 새끼.”
성윤은 백미러를 통해 박대철 의원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불만족스러워 보인다.
“왜 그러십니까?”
“하 씨발, 원내 대표가 벌써 김칫국을 마시네. 아직 마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당 대표에 붙어야 하나?”
박대철 의원, 실력은 없지만 눈치는 빠르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성윤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미래는 바뀔 거니까.
만취한 박대철 의원을 집에 넣어두고 집에 들어오자 새벽 5시였다.
젖은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온 성윤은 소파에 앉았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잠시 눈을 감았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다음 계획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잘 시간도 부족하다.
인간은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역사는 되풀이된다.
파벌 싸움에서 승리한 쪽은 상대가 못나 이겼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이 잘나 이긴 줄 알고 거만을 떤다.
즉, 눈에 뵈는 것 없이 헛소리를 찍찍하고 다니는 거다.
언제나 그래왔다.
그리고 그 찰나에 민심은 떠나고 빈틈이 생긴다.
성윤은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를 외치며 모든 욕심을 꾹 누른 채.
하지만 이제 천천히를 외칠 필요가 없어졌다.
흐름이 오고 있다.
쏟아지는 물에 강둑이 부서지듯 역사의 물줄기가 크게 틀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폭탄은 성윤이 쥐고 있었다.
원내 대표의 비리.
당 대표의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성윤이 눌러 버릴 생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윤은 창가로 걸어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성윤의 눈에 앞으로의 계획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쁜 놈들을 자근자근 짓이기고 그 위에 서는 계획.
창밖에서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데 어쩐지 그 안에 피 냄새가 스며든 것 같았다.
***
쏴아아아.
파도가 넘실대는 포구였다.
횟집이 늘어선 서해의 한 바다.
갖은 변명을 하며 힘겹게 얻은 휴가, 성윤은 이곳을 찾았다.
성윤의 준중형 차가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린 그는 차량의 문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어.’
앞에 보이는 바다처럼, 걷잡을 수 없이 파도가 몰아칠 것이다.
성윤의 인생 역시 파도를 탄 것처럼 어떻게 흔들릴지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지 않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니까.
잠시 그렇게 있던 중 작은 고기잡이 배 하나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성윤은 그 앞으로 걸어가 선다.
잠시 후, 밀짚모자를 쓰고 검은색 가슴 장화를 입은 사람이 내린다.
성윤이 그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성윤을 알아봤는지 ‘허허’ 웃는다.
지금은 어부가 되었다고 선언한 안재열 전 대통령이었다.
물론 진짜 어부가 된 것은 아니고 퇴임 후 자택으로 돌아와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먼 길 왔구만.”
“안녕하셨습니까?”
“밥은? 먹었는가? 식전이면 올라오게.”
안재열 전 대통령은 몸을 돌려 다시 배로 향했다.
성윤도 그 뒤를 쫓았다.
뱃머리에 앉아 있는데 안재열 전 대통령이 광어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자연산이라 맛이 기가 막힐 거야.”
안재열 전 대통령은 회를 뜨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이 자연스럽다.
신선한 회가 놓였고 이어서 소주를 들어 뚜껑을 뜯는다.
“그거 아나? 배도 음주 단속에 걸리면 골치 아파.”
“여기도 그런 게 있나요?”
“있지. 그래서 정박한 후 한잔 하는 거지. 배 위에서 먹는 회가 기가 막히거든.”
회를 초장에 찍어 성윤의 앞 접시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성윤이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어떤 가?”
“맛있습니다.”
“내 말이 맞지? 기가 막히지? 하하하하.”
안재열 전 대통령의 얼굴에 맺힌 미소는 처음만남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기쁜 것인지 아니면 정치인의 얼굴인지는 아직 모른다.
소주가 한잔 들어간 후 안재열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어. 이덕근이가 부탁하면 날 독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니,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사람의 욕망은 재력 – 권력 – 명예로 이어진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명예를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타날 다음 세대 인재를 고민하던 중이다.
그게 대한당이든 민국당이든 상관없이.
그러니, 대한당의 수행 비서가 만나자고 하니 호기심이 솟구쳐 올랐을 거다.
꿈속을 기억해도 각 당의 젊은 인재들을 알음알음 만나고 다녔으니까.
안재열 전 대통령이 계속 말한다.
“그런데, 난 퇴임과 동시에 정계에서 떠났는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가?”
“먼저 선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선물?”
성윤이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
윤채아의 트렁크에서 찾아 낸 대한당 원내 대표를 날려 버릴 폭탄이다.
서류를 넘겨보던 안재열 대통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인상이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웃는 상이다.
“이걸 내게 주는 이유가 뭔가? 자네 대한당이잖아?”
“대한당의 계파 갈등은 곧 끝날 겁니다.”
“그렇겠지.”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전쟁이 끝나 왕권이 결정되면 민심의 집중을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한당은 대통령님을 겨눌 것 같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 같은 퇴물을 공격해서 남을 게 뭐가 있다고?”
“상징성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라?”
“네.”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다시 성윤을 바라봤다.
“좋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고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민국당에 꽂아 달라는 건가?”
성윤은 다시 가방을 들어 무엇인가를 꺼내 건넸다.
받은 서류를 넘겨보던 안재열 전 대통령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건 뭐지?”
“박대철 의원과 그 아내의 취미 생활입니다.”
박대철 의원과 그 마누라가 룸살롱, 모텔, 호텔을 드나들었던 사진이었다.
“자네 박대철의 수행비서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목을 물려고 해?”
“주인이 아니라 부패한 국회의원이죠. 하지만 저 같은 놈이 국회의원을 건들 수는 없어서 대통령님의 손을 빌리려 합니다.”
성윤이 모습을 드러내고 박대철 의원의 목을 치면 정계에 붙어 있을 수 없게 된다.
가장 입이 무거워야 할 수행 비서가 배신을 한 것이니까.
대한당은 물론 민국당도 성윤과 함께 하려 하지 않을 거다.
박대철 의원의 사진을 바라보던 안재열 전 대통령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향했다.
“그래서 자네가 얻는 것은?”
“6개월 후에 재보궐 선거가 있습니다. 박대철 의원이 쫓겨나면 그 자리는 비겠죠. 그 자리, 제가 앉고 싶습니다.”
“으핫핫핫핫핫!”
안재열 전 대통령은 무릎까지 치며 웃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수행 비서가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을 끌어 내리고 그 자리에 앉겠다니.
안재열 대통령은 눈물까지 흘렸는지 눈가를 닦으며 묻는다.
“자네 돈 많나?”
“아뇨.”
“당 간부와 끈이 닿아 있나?”
“아뇨.”
“그럼, 아는 사람은 이덕근 뿐인가?”
“네.”
“그럼? 가진 게 뭔데?”
성윤은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건넸다.
폐쇄 위기에 처 했던 서안 보육원의 기사가 보였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눈에 힘이 들어갔고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뒤엔 국민이 있습니다.”
“...자네가 해결했나?”
성윤은 대답대신 잔잔히 미소를 그렸고 안재열 전 대통령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쏴아아아 바다소리만 들려온다.
< 고기 잡는 아저씨.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