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3화 (13/300)

< 고기 잡는 아저씨. - (1) >

집에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를 때,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비오는 날 커피 한잔 마시며 듣고 싶은 기타 소리.

처음 듣는 음악인데 허밍으로 따라 부를 정도로 익숙하다.

그럼, 꿈속에서 들었다는 건데......

‘뭐지?’

집에 들어가려던 계획을 잠시 멈추고 기타 소리가 들려오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평상에 앉아 기타를 치는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성윤이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연주에 집중했고 성윤 역시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있었다.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런데, 자세히 들으면 기억하던 음과 조금 차이가 있다.

아직 만들어지는 중인가 보다.

그때, 드르릉.....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이 멈췄다.

“여기가 마음에 안 드네.”

잠시 더 기타를 만져보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평상에서 내려와 벗어뒀던 슬리퍼를 신는다.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성윤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다.

“어...어...”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기타를 들고 서둘러 다리를 움직이다가.

“아얏!”

방수 페인트가 된 옥상을 온 몸으로 쓸어버리며 정말 아파보이게 넘어졌다.

개구리처럼 찰파닥.

하지만 곧 발딱 일어서서 홍당무가 된 얼굴로 무릎을 만지작댄다.

“괜찮아요? 아파 보이는데.”

“괜찮아요. 안 아파요.”

그녀는 정말 아파 보이는데 괜찮다는 말과 함께 성윤을 스쳐 옥상 계단을 내려갔다.

성윤도 바로 내려갈까 하다가 잠시 옥상에 있기로 했다.

홍당무가 될 정도로 부끄러워하는데 쫓아 내려가면 더 민망해할 것 같아서.

그래서 잠시 옥상에 있기로 했다.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성윤이 갑자기 픽 웃었다.

기타를 치던 사람, 알고 있는 얼굴이다.

처음 보육원에 갔을 때 원장실까지 안내해줬던 사람으로 미래의 연예인.

배우인지 가수인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가수인 것 같다.

아니, 아직은 가수 지망생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방금 그녀가 연주한 노래는 꿈속의 성윤이 좋아하던 곡이다.

하지만 가수의 얼굴까지는 몰랐다.

바쁜 일정 탓에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여기 사는 건가?’

괜히 반갑다.

그때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던 성윤의 얼굴이 점차 진지해졌다.

꿈속의 성윤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있을 정도라면 유명하다는 거다.

‘가수라......’

연예인이 선거 운동을 도와주면 큰 힘이 된다.

그것도 어린 가수가 도와준다면 정치인의 딱딱한 이미지를 벗을 수 있고 젊은 층에게 큰 어필을 할 수 있다.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성윤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가 망가진 연예인이 한 둘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 때문에 남의 인생길에 지뢰 놓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옥상에서 나와 막 집에 들어가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날세.

박 노인이었다.

어느새 자연스레 말을 놓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에 차라리 이게 편하다.

-내 친구를 보고 싶다 했지? 보지.

“언제가 괜찮으신가요?”

-우리 같은 노인네가 약속을 정할 수 있나? 바쁜 젊은이가 정해야지.

테이블에 놓인 스케줄 표를 들어 확인했다.

“전 주말에 괜찮은데요.”

-좋아.

성윤은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내려둔 후 창으로 걸음을 옮겼다.

텁텁한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어 젖혔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치며 낙엽이 물들더니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따스한 봄을 기다린다.

그게 이치다.

성윤은 자신이 그 따스한 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

그리고 주말.

박 노인과 이덕근 사장은 호수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박 노인이 시간을 확인하며 입을 연다.

“자네 마음에도 들 거야.”

“그건 봐야 아는 거지.”

이덕근 사장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박 노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희미하게 웃는다.

이덕근 사장이나 박 노인이나 맨 땅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덕근 사장은 이 나라에 지은 죄가 크다는 것.

그는 위로 오르기 위해 많은 사람의 것을 빼앗고 부쉈으며 짓밟았다.

그런데, 일흔 살이 넘으니 후회가 되는가 보다.

최근 입에 달고 사는 소리가 ‘후회돼.’라는 말이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망가뜨린 곳을 고쳐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지이이잉.

이덕근 사장의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번호를 본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썩을 놈들.”

그는 휴대폰을 뒤집어 버렸다.

그러자 박 노인이 묻는다.

“누군데?”

“누구겠어? 뒷방에 앉은 늙은이 주머니를 털고 싶은 놈들이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정치인들이다.

이덕근 사장이 박노인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땐 그 이성윤이란 비서 놈도 똑같아. 내 돈 또는 내 인맥을 통해 팔자 펴 볼 생각이나 하는 놈이야. 그럴 생각이면 로또나 살 일이지. 에잉.”

이번엔 박 노인이 이덕근 사장이 했던 말을 따라한다.

“그건 봐야 아는 거지.”

“그래, 한번 보러 가자고.”

두 노인은 커피숍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잠시 후, 성윤은 순대국밥 집 앞에 섰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다.

그런데, 규모가 큰 곳도 아니고 테이블이 네 개 있는 작은 가게.

이덕근 사장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식사할 줄은 몰랐다.

그는 성종 물산의 사장이었고 몇 백억의 자산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니까.

‘신기한 사람이네.’

성윤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속 시간보다 5분 먼저 왔는데 안에는 이미 박 노인과 이덕근 사장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성윤은 허리를 굽혔다.

그건 그렇고 박 노인과 이덕근 사장의 분위기는 참 다르다.

박 노인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인자한 할아버지라면 이덕근 사장은 “젊은 것들이 쯧쯧쯧.” 할 것 같은 이미지다.

그러니까, 참 꼬장꼬장하게 생겼다.

광대가 튀어나올 정도로 깡 마른 얼굴도 그렇고.

성윤이 자리에 앉자 박 노인이 입을 연다.

“순대 국밥 좋아하나?”

“없어서 못 먹죠. 말씀드렸었잖아요?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요.”

“고추기름을 넣어 먹으면 맛있어. 흐흐흐.”

성윤과 박 노인은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덕근 사장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표정이다.

그가 조금 쌀쌀 맞은 투로 입을 열었다.

“소주 하나 시키지?”

“아, 네.”

성윤은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시킬 수도 있지만 손님이 없어 그런지 카운터에 있는 사장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래서 조용히 소주 한 병을 들고 공손히 두 노인의 잔을 채웠다.

이번엔 성윤의 잔을 채울 차례.

그런데, 이덕근 사장은 잔이 아닌 물 컵에 소주를 채운다.

그러면서 묻는다.

“고향은?”

“본적은 충청도입니다. 살기는 서울에서 살았고요.”

“어머니는?”

“어머니도 충청도입니다.”

“그래,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성윤은 이덕근 사장의 눈을 살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윤의 영혼까지 꿰뚫어 볼 생각이다.

박 노인은 모든 것을 이덕근 사장에게 맡겼다는 듯 조용히 있고.

“제가 되고 싶은 정치인은요.”

성윤은 젓가락을 포개어 십자가를 만들었다.

위, 아래, 좌, 우의 길이가 모두 같은 십자가.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느 곳에도 치우치고 않는 사람이요. 이쪽에도 장점이 있고 저쪽에도 장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 쪽에 서서 다른 쪽의 장점을 놓치고 싶지는 않거든요. 단점도 마찬가지고요.”

솔직히 말 한 거다.

하지만 이덕근 사장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회색? 우리 정치사에서 회색이 이긴 경우가 있나?”

“제가 알기로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이유는 알지? 회색은 흑과 백, 모두에게 욕을 먹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기고 싶다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해. 애매한 포지션은 존재감을 나타내기 어려워.”

성윤은 이덕근 사장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그의 속마음도 듣고 있었다.

그는 성윤을 가르치려 하고 있으며 나아가 깔보고 있다.

-어린 놈이 뭘 안다고.

그리고 그는 성윤에게 도움을 줄 마음이 없다.

자신이 깔보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계속해서 예의와 겸손을 차릴 필요는 없다.

“사장님, 제 나이에 이상을 생각하지 않으면 언제 생각해야 하나요? 힘을 가진 뒤에 이상을 펼치라는 말도 있지만 가진 게 많을수록 선택의 자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덕근 사장이 픽 웃는다.

“가져 본 적이 없는 놈이 가진 이후를 생각해? 웃기는 소리야. 현실이나 직시해.”

“현실만 보고 살아온 세상, 참 팍팍하지 않나요?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사람 중 하나가 어르신이라고 알고 있고요.”

“뭐라?”

“전 어르신이 만든 현실을 즐거운 세상으로 바꿔 보고 싶습니다.”

조용히 앉아 소주를 홀짝이던 박 노인은 순간 아찔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덕근이 어떤 친구인가, 불같은 성격만으로 성종 물산의 사장까지 오른 사람이다.

가로 막는 사람은 자근자근 짓밟고 걷는다 해서 별명은 거인이다.

그런데, 도발을 하고 있다니......

박 노인의 시선이 다급히 이덕근 사장을 향했다.

예상대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럼, 이성윤은?

이덕근 사장의 무서운 눈빛을 받아내고 있지만 움츠린 기색은 없다.

오히려 이덕근 사장의 전부를 집어 삼키려는 듯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툭 끊겼다.

“푸하하하하하!”

이덕근 사장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크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던 순대국밥 주인이 깜짝 놀라 깼을 정도다.

한참이나 이어진 이덕근 사장의 웃음소리가 점차 잦아질 때, 그는 뚝 웃음을 멈추더니 소주가 가득 든 컵을 성윤의 앞으로 밀어 넣었다.

“마셔.”

여전히 딱딱한 말투.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술을 받아 들어 입으로 넘긴다.

그리고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손으로 덥석 집어 먹는다.

“저도 한잔 드려도 되겠습니까?”

성윤은 잔을 치우더니 자신이 마셨던 컵에 술을 따른다.

그 모습을 보던 박 노인은 눈을 콱 감아버렸다.

이제 이덕근 사장의 불같은 분노가 터질 타이밍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술은 자네가 사나?”

“밥도 제가 사겠습니다.”

“바람직한 자세야. 은퇴해서 땡 전 한 푼 못 버는 우리한테 얻어먹으려는 새끼들이 참 많거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뭔가 이상하다.

박 노인은 슬쩍 눈을 떠봤다.

예상과 달리 이덕근 사장의 표정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마치 내기 바둑에서 극적으로 이겼을 때 같다.

이덕근 사장이 말을 잇는다.

“다음번 식사도 자네가 살 수 있도록 해. 그런데, 그놈들은 허세가 끼어서 비싼 걸 좋아하지.”

“어떤 분들인가요?”

“당대표와 원내대표, 둘 중의 하나를 골라봐.”

두 사람은 지금 대한당 계파 싸움의 원흉들이다.

그러니까 이덕근 사장이 준 선택지는 계파 싸움에서 어느 쪽이 이길지 예상해 보라는 뜻이다.

이덕근 사장이 흥미로운 눈으로 성윤을 보며 계속 말했다.

“정치인에게 통찰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

햇병아리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줄’을 보는 능력이다.

썩은 줄과 동아줄을 구별해 낼 줄 아는 통찰력.

그 능력을 보기에 이번 계파 싸움은 최적이었다.

당 대표와 원내 대표 둘 중의 하나는 나가리가 될 것이니까.

그래서 이덕근 사장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성윤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제가 만나고 싶은 분은 다른 분인데요.”

“뭐라?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은 권력자들이야. 자네 한 사람 정도는 바로 국회의원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

“그건 그렇죠.”

“그런데?”

성윤은 미래를 알고 있다.

이 계파 싸움은 누가 이기든 상처뿐인 승리다.

국민은 등을 돌리고 결국, 당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고 만다.

그러니 그들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이력서에 똥을 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말고 다른 분은 안 되나요?”

“누구?”

“안재열 전 대통령이요.”

“뭐?”

잘 못 들은 것 같아서 또박또박 일러줬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요.”

“안 대통령은 민국당이잖아?”

“네.”

“자네는 대한당이고.”

“그렇죠.”

“그런데, 만나고 싶다고?”

“팬이라서요.”

이덕근 사장의 얼굴은 참 묘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 고기 잡는 아저씨.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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