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2화 (12/300)

< 이런 시험은 환영. - (3) >

성윤은 계단을 내려왔다.

본회의장에는 그의 발소리만 뚜벅뚜벅 들리고 있었다.

모두는 조용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성윤을 바라볼 뿐이다,

모두의 마음이 들려왔다.

-정말, 그냥 공무원이야?

길들여지지 않은 눈빛과 행동.

월급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포식자.

그래, 백두산의 호랑이!

그렇게 생각할 때, 성윤은 의장석에 섰다.

의장석은 시의회를 대표하는 자리.

마음만 먹으면 시장의 추진 사업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각 당은 의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를 쓰고 싸운다.

기선 제압이고 의회의 상징이니까.

그만큼 중요한 자리, 그런데 성윤은 그 자리에 서슴없이 서버린다.

그제야 기초 의원들이 정신을 차렸다.

“뭐, 뭐하는 거야! 내려와 이 새끼야!”

“미친 새끼!”

성윤은 욕을 내뱉는 의원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PC방 사장님도 있고 체육관 관장님도 있다.

시민들 앞에서는 친절함을 가장한 가식적인 열네 명.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리에 없는 나머지 기초 의원은 보육원 땅에 침을 흘리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성윤을 알아 본 시의원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 저 사람운 박대철 의원의 수행 비서예요!”

“수행 비서? 이번에 들어왔다는 운전사?”

욕을 쏘아 뱉어내던 모두는 다시 얼음.

시의원들에게 국회의원은 왕이다.

그래서 수행 비서가 저 자리에 마음대로 올랐을 땐, 박대철 의원의 어떤 말을 전하러 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성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여기 온 것은 의원님의 뜻이 아니에요. 이런 시위가 있다는 것도 모르시고요. 아시다시피 계파 갈등 때문에 바쁘셔서.”

“그, 그럼?”

“잠깐만요. 보여드릴 게 있어서요.”

성윤은 빔과 연결된 노트북에 가져 온 USB를 꽂았다.

그러자 대형 스크린에 그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했던 대화가 나타난다.

모두 경악.

본회의장은 얼음이 쏟아져 내렸는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해진다.

다시 의장석으로 돌아온 성윤이 기초 의원들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톡톡 의장석을 두들겼다.

얼어붙은 기초 의원들을 보고 있으니 성윤의 머릿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드는 중이다.

이놈들에게 어떻게 벌을 줘야 하나 하는 생각.

엎드려뻗쳐를 시킬까?

아니면 딱 열 대씩만 맞자고 할까?

무슨 짓을 시켜도 상관은 없을 거다.

군소리 없이 따를 거고.

왜냐하면 이들은 말단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보육원을 상대로 장난질을 했다는 것이 여의도의 괴물들에게 들키면 단번에 목이 꺾여 죽고 말 거다.

‘그러니까, 살려주는 대가로 팔굽혀 펴기 정도는 시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되도 않는 장난을 떠올리다니, 성윤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었다.

꿈에서 국회의 미친개로 불렸었는데 어쩐지 현실에서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자, 생각은 여기까지.

성윤은 손가락으로 두들기던 의장석을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얼어 있던 기초 의원들이 깜작 놀랐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낮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에 모두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하긴 이들의 처지에서 방법을 말하는 게 이상한 거다.

처분을 내려주면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친히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화면을 보세요. 지도가 보이죠? 이곳이 이십년 동안 방치된 시청 부지인데, 이곳을 보육원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성윤은 그동안 이 보육원의 문제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 부지를 찾았다.

외지지는 않았지만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

그래서 주민 반발은 크지 않을 거다.

게다가 주변에 산과 하천이 있으니 아이들이 지내기에도 괜찮고 학교도 가깝다.

사유지가 아니니 쫓겨날 위험도 없고 보육원이 있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그런데, 기초 의원들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성윤이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여러 분의 단체 채팅방 대화 내용. 지금 어떤 기자분이 가지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 같이 삼겹살을 먹었는데 익지 않은 걸 그냥 드실 정도로 성격이 급한 분이더라고요. 그 분이 4시 30분까지 전화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뿌리기로 했는데 지금이 4시 20분이네요. 그 분 성격 급한데......”

“하겠습니다! 바로 시장님과 구청장 불러서 건의하고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기자는 성윤의 주변에 없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의장은 재빨리 대답했고 성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자세, 아주 마음에 드네요. 그럼, 다음 안건. 새로운 건물이 건축될 때까지 여러 분의 땅에서 보육원을 쫓아내겠습니까?”

“아뇨, 기다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또 다음 안건.”

보육원에 관한 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되고 있었다.

뭐, 성윤이 말하면 의장이 대표로 ‘그렇게 할 게요.’ 대답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렇게 모든 게 끝났다.

하지만 성윤은 이들을 보내주지 않고 다시 툭툭 의장석을 손가락으로 두들기기 시작한다.

워낙 조용한 분위기였기에 성윤이 두들기는 툭툭 소리가 살벌하게 들릴 정도였다.

의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남았나요?”

“제가 존경하는 의원님들과 정답게 의정활동을 했다는 걸 박대철 의원님이 알면 어떻게 될까요?”

정다운 의정활동은 개뿔.

협박이었으면서......

하지만 그 진실을 입에 담는 기초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의장이 반쯤 벗겨진 넓은 이마의 땀을 닦고 억지로 미소 지으며 입을 연다.

“이곳엔 우리들만 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제가 여기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라서요.”

“네, 아무도 모릅니다.”

“아, 그런데, 제가 전화를 걸면 벨이 몇 번 울리기 전에 받으실 거죠?”

“빨리 받겠습니다.”

“세 번.”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겠습니다.”

의장은 물론 다른 기초의원들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자신들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워졌고 앞으로 질질 끌고 다닐 예정이란 걸 확실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게 싫으면 기초 의원직을 내려두거나 성윤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권력의 단맛을 봤으니 기초 의원직을 그만둘 수는 없고 높은 곳으로 올라갈 깜냥은 없으니 영원히 굽실대며 사는 수밖에......

성윤은 느긋하게 의장석에서 내려와 본회의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빨리 나갔으면 좋겠는데 문앞에서 멈춰선다.

그리고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봬요.”

탁, 본회의 장의 문이 닫힌다.

성윤이 사라진 본회의장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의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 댄다.

“씨발......”

작게 시작된 욕설은 급기야 벼락처럼 울렸다.

“씨발!”

***

밖으로 나온 성윤은 시위를 하던 보육원 원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 기다리면 해결점이 나올 것이라고.

원장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백여 번은 한 것 같다.

그것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의장은 약속했던 대로 시장과 구청장을 만나 보육원 부지사용을 요청했고 시장은 차기 지방 선거와 자신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허락했다.

그리고 그날 밤.

“숙제 검사 받으러 왔습니다.”

성윤은 노인을 찾았다.

노인이 사는 곳은 어울리지 않게 주상복합 아파트.

이곳은 그 2층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노인의 이름은 박중근, 나이는 일흔 넷.

돈 많은 사람이 왜 공장 점퍼를 입고 다니는지는 모르겠다.

서민 코스프레? 아니면 절약 정신?

그 박 노인이 조금 놀란 눈빛을 짓더니 크게 웃기 시작한다.

“대단해, 대단해. 정말 대단해요.”

박 노인은 분명 웃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성윤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관찰하는 듯 소름끼치게 날카롭다.

마주치면 마주할수록 느끼지만 확실히 예사로운 노인은 아니다.

한참을 웃던 그가 뚝 웃음을 그치며 몸을 끌어 당겨 앉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장현 의원과 이성윤 비서님을 비교하고 있었어요. 웃기지 않나요? 국회의원과 수행 비서를 비교하고 있었다는 게?”

오장현 의원은 성윤의 꿈에서 노인이 돈을 전달해 줬던 사람이다.

더럽던 깨끗하던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수행 비서에 비하면 하늘과 같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

하지만 성윤은 웃지 않았다.

오장현 의원은 그 자리가 끝이지만 성윤은 그 위를 보고 있으니까.

언젠가 그 머리를 짓밟고 설 거니까.

박 노인이 말을 잇는다.

“이제 숙제 검사를 시작해 볼까요? 왜 언론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습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껴두려고요. 지금 알려봤자 견제만 받을 테고 나중에 제가 출마할 때 나와야 극적이니까요. 그 정도는 보육원 원장이 도와줄 것 같고요.”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권력자는 없다.

성윤의 이름이 기사로 나오면 박대철 의원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할 수도 있다.

그건 좀 조심해야지.

박 노인은 몇 가지를 더 질문했고 성윤은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답했다.

박 노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일흔이 넘은 노인.

어마어마한 재산을 손에 넣기까지 악전고투한 경험이 그의 눈에 생생하게 박혀 있다.

그런 그에게 마주 앉은 성윤은 귀여울 수밖에 없다.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계속 지켜보고 싶을 정도로.

“숙제를 잘 끝냈으니 필요한 것을 드리죠. 내 친구 중에 덕근이란 놈이 있다고 했죠? 그놈에게 비서님의 이야기를 했더니 이게 필요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툭.

현금이 든 검은 비닐봉지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크기로 봤을 때 만 원 권이면 천만 원.

오만 원 권이면 오천만 원.

딱, 그 정도의 돈.

뭐,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성윤에겐 필요 없는 일이다.

검은 비닐봉지를 다시 노인에게 밀어 넣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아직 전 검은 게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도 웬만하면 검은 걸 받지 않을 생각이고요.”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풀어보지도 않고요?”

“네, 필요 없습니다.”

“허허, 그럼, 이 늙은이가 해줄 게 없는데......”

“숙제를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시는 거라면, 어르신의 친구 분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친구?”

“덕근이란 분이요.”

성윤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노인조차 마른 침을 삼킬 정도로.

***

잠시 후, 커피숍.

성윤은 떠났다.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박 노인인 뿐이다.

창밖을 보며 굳은 얼굴로 있던 그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재밌어, 정말 재밌어......”

그는 휴대폰을 귀에 댄다.

그러자 통화 연결 음이 울리더니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덕근이, 나야.”

박 노인이 전화를 건 사람은 이덕근, 성종 물산 전 사장이다.

“지난 번 내가 이야기했던 비서 있잖나? 숙제를 끝냈어.”

-벌써?

이덕근 사장 역시 많이 놀란 눈치다.

박 노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미안한데 자네가 틀렸나 봐. 난 오장현 보다 이놈을 택할 거야. 손에 장 지지는 것은 봐줄 테니까, 녀석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도록 해.”

-에잉, 뭔 이 나이에 어린 놈 만나서 날개를 달아줘? 귀찮으니까 돈이나 줘.

“줬지. 그런데, 안 받더라고.”

이덕근 사장의 목소리가 한 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안 받았다고?

“풀어보지도 않더라니까?”

-허허, 그 낯짝 한 번 보고 싶네?

두 노인의 전화 통화는 조금 더 더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각, 성윤은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이번 보육원 사건으로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서안시 기초 의원 열네 명에게 목줄을 건 것.

열네 명이면 의회를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 마음만 먹으면 시정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재벌이라기엔 조금 아쉽지만 준재벌이며 각 당의 고위직과 끈이 닿은 이덕근 사장.

박 노인이 추진해 준다면 만날 수 있다.

성윤의 주먹이 꽉 쥐어진다.

국회 입성의 발걸음이 세워뒀던 계획보다 빨라지고 있었다.

‘좋아.’

< 이런 시험은 환영. - (3)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