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시험은 환영. - (2) >
미리 주문해뒀던 아메리카노를 박강중의 앞으로 밀어 넣으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무관님이 도시계획과에 있잖아요?”
“아, 네. 미관 개선 팀에 있습니다만......”
“서안 보육원 알죠?”
박강중은 명치에 밥덩이가 박힌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아...... 서안 보육원은 또 왜? 그거 건들면 골치 아파지는데.
속마음의 목소리를 들으니 분명 뭔가 알고 있는 눈치다.
그래서 조금 더 강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해 보세요.”
“네?”
“다 알고 왔어요,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육하원칙으로 말하세요.”
이 말을 끝으로 성윤은 정말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박강중을 노려봤다.
그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연다.
서안 보육원은 서안시 동구 구청의 골칫덩이였다.
그리고 보육원과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은 철거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구청장이 연임하기 위해선 표를 얻어야 하는데, 근처 주민 몇 천 명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는 머릿수를 따라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동구 구청장은 서안 보육원이 조용히 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까지 말한 박강중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은 알고 있는 모든 걸 자백했다는 표정이다.
“끝?”
“네.”
“진짜 끝?”
박강중의 이야기를 듣던 성윤에겐 의문이 하나 있었다.
동구 구청장은 민국당 소속.
보육원이 철거된다는 것은 대한당 소속의 구의원들에게 기회다.
약자를 모른 척 한 구청장이라며 손가락질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병신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럼, 대한당 소속 기초의원들은 축제일 텐데......
왜 안 하는 거지?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다 알고 있다니까요. 빨리 말씀해 보세요. 더 있잖아요?”
박강중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속마음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씨발, 진짜 다 알고 있는 거야?
성윤은 고개를 끄덕.
“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해 보세요.”
“거, 거기 땅 있잖아요. 낙찰자가 임중배인데, 그 사람이 단독으로 들어간 거 아니에요. 수십 억짜리 땅을 혼자 들어가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요?”
“기초의원들하고 구청 과장들하고 돈을 모았어요. 그쪽 그린벨트가 곧 풀린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그러니까, 돈은 벌고 싶은데 자기들 이름으로 낙찰 받기는 좀 그래서 임중배를 대표로 세운 거고요.”
하, 씨발.
더러운 새끼들.
대한당과 민국당, 평소엔 서로를 개처럼 보고 싸우는 사이인데 돈 앞에선 친해지나 보다.
어쨌든, 해결 점이 보인다.
“증거 가져다 줄 수 있어요?”
“네?”
박강중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친절히 다시 설명해줬다.
“지금 말씀하신 것, 구의원, 시의원, 과장 급 들이 돈 모았다는 증거요. 가져다 줄 수 있냐고요.”
“그, 그걸 어떻게......”
“삼일 드리죠.”
“네?”
“가지고 오세요.”
성윤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강중은 당황한 표정으로 성윤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그러다 저 짤려요. 라는 표정으로.
그럼,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시계 비싸 보이네요?”
박강중의 시계는 뒷돈으로 받은 것, 성윤은 그가 자백한 녹음 파일을 갖고 있다.
약점이 있는 이상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박강중은 툭 건들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이지만 운다고 봐주지 않는다.
뒷돈을 받은 공무원이면 철저히 혼나야지.
박강중이 푹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도대체 뭐하는 분이세요?”
“비밀.”
***
며칠 후 밤.
성윤은 다시 박강중과 만났다.
구청 길 건너편에 있는 한정식 집이었다.
커피숍에서 만나도 되는데 박강중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애원하는 탓에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성윤의 앞에 앉은 박강중은 키가 작은 편이다.
그런데,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더 작아 보인다.
“가져 왔나요?”
박강중은 푹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건넸다.
휴대폰 화면엔 메신저 단체 채팅방을 스캔한 사진이 보인다.
고아원 부지를 낙찰 받은 임중배와 기초 의원들의 대화 내용.
임중배 : 강 의원님 2억 잘 받았습니다.
강 의원 : 20% 보고 들어간 거야. 잘 해.
임중배 : 네, 네. 의원님들은 철거만 해결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 과장 : 경매일이 언제지? 낙찰 받을 수 있는 거지?
임중배 : 첩보로 들었는데, 유찰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우리 단독 입찰일 것 같습니다.
몇 천만 원에서 2억까지 투자한 사람들.
한두 놈이 아니다.
성윤이 테블릿 PC를 내려두며 박강중을 향했다.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우리 과장님도 여기 투자했거든요. 그래서......”
몰래 휴대폰을 확인했다는 뜻.
성윤은 스캔한 사진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송하며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요.”
“그, 그런데요......”
박강중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표정이다.
“말씀하세요.”
“이제 그만 전화하시면 안 될까요? 이정도면 저도 목숨 걸고 한 거고.......”
하긴 채찍질만 해서는 사람을 쓸 수 없지.
당근도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며칠 전에 제가 누구인지 물었죠?”
“네? 네.”
“그때 제가 대답 안 했죠?”
“네.”
“지금 제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조만간 주무관님께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박강중은 그 말을 들으며 조심스레 성윤을 살폈다.
‘신분?’
그러고 보니 처음 구청에서 성윤을 봤을 때부터 거침이 없었다.
그정도로 막 행동할 정도면 고위직인데......
‘설마 중앙부처?’
그쯤 되지 않고는 이런 기세를 보일 수는 없다.
게다가 성윤의 큰 키와 덩치 역시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성윤은 멋대로 상상하는 박강중의 마음을 들으며 입을 열었다.
“어려운 일을 하시는데 보상은 당연한 거잖아요. 받으시겠습니까?”
박강중은 갈림 길에 섰다.
보상을 받겠다고 하면 더 지독하게 엮일 수 있다.
하지만 받지 않으면 자유의 몸이다.
물론 박강중 혼자만의 상상이다.
성윤은 박강중을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보상이 뭔지 물어 봐? 물어봐도 대답은 안 해줄 것 같은데......’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자 성윤이 그의 결정을 재촉했다.
“대답하세요.”
“바, 받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할 게요.”
대답이 없다.
그래서......
“대답하세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성윤은 고개 숙인 박강중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박강중이 스스로 결정해서 지옥의 문턱에 발을 들인 거다.
어서 와.
***
놈들의 약점을 손에 넣었다.
물론 법적인 죄는 없다.
정당하게 낙찰을 받았고 문제될 것은 없으니까.
다만 그들은 정치인이고 공무원이다.
정치인이라는 놈들이 자기 뱃속을 채우기 위해 고아들을 상대로 짤짤이를 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대한당이나 민국당의 진짜 괴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생지옥을 보여주며 그들의 인생을 박살내겠지......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보육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민 단체 전화 번호 보냈던 것 받았죠? 연락하셨나요?”
-네, 다섯 개 단체에서 열 명씩, 오십 분이 오기로 했어요.
“기자는요?”
-세 분이 온다고 해요.
보육원 원장과 통화를 종료한 성윤은 곧장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제는 잘 받았습니다.”
-숙제라뇨? 내가 비서님께 숙제를 내 줄 사람은 아닌데요?
노인의 목소리만 들으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말투다.
하지만 이어진 성윤의 말에 그 목소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3일 후에 숙제 검사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3일?
“네.”
-그, 그렇게 빨리?
“어르신, 이런 민원은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빙빙 돌리지 말고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이라면 알아서 해줄 테니 앞으로 머리 채 잡고 휘두를 생각 말라는 뜻.
노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지 대답이 없다.
그럼, 성윤이 말할 차례다.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숙제 들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3일 후.
시청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민단체, 보육원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봉사하던 사람들 등을 포함해 약 이백여 명.
그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두 번 죽이지 마!”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라며!”
시위를 하기는 하지만 돈이 없었기에 스케치북 같은 것을 찢어서 팻말을 만들었다.
그게 좀 없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보육원이라는 상징성과 스케치북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가 더 마음에 드나 보다.
사냥감을 찾은 하이에나의 눈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성윤은 시선을 들어 시청 시의회 의사당 건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기초 의원의 대장인 시의회 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슬슬 끝을 내줄 때다.
-누구시죠?
“혹시 본회의장에 계신가요?”
-누구시죠?
불안에 떠는 목소리를 들으니 본회의장에 있는 게 맞다.
머리를 맞대고 빠져 나갈 구멍을 찾아야 할 테니 찔리는 놈들은 다 모여 있을 거다.
성윤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의사당의 건물을 향했다.
그의 뒤에서는 시위대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살 곳을 보장하라!”
***
“씨발! 실검에 올라갔어. 임중배 그 새끼한테 연락했어? 숨어 있으라고 해!”
“숨어 있기는 왜 숨어 있어? 죄 지었어?”
“그 말이 아니잖아요!”
상당히 다급한 표정으로 싸우고들 있다.
이득 때문에 손을 잡았지만 이들의 본질은 서로 다른 당 소속의 의원들.
섞일 수 없으며 본색이 드러나는 거다.
“모두 조용! 조용!”
의장이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때, 한 사람의 시선이 본회의장의 문으로 향했다.
낯선 남자, 성윤이 보였다.
혹시 기자인가 싶었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누구쇼?”
“공무원입니다.”
별정직이긴 하지만 국회의원의 비서도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그래서 말한 것인데 공무원이라는 단어에 의원들이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지금 회의하는 거 안 보여!”
회의처럼은 안 보이는데......
“어디라고 여기를 와! 나가!”
성윤이 나가지 않자 그들은 점점 더 시끄럽게 짖어 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청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과 기자 때문에 치부가 드러날까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다.
“씨발, 요즘 말 안 듣지? 제대로 털어줄까?”
“나가라니까! 별 거지 같은 새끼가.”
그때, 한 의원이 눈을 깜빡이며 물끄러미 성윤을 보고 있었다.
성윤은 박대철 의원의 아래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몇 없었는데, 이 사람은 성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아, 풍진 가든에서 삼계탕을 먹을 때 테이블 아래로 돈을 밀어 넣었던 사람이다.
“혹시...수행......”
하지만 그의 말은 모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욕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문 닫고 꺼지라고! 좀!”
“말 개같이 안 듣네!”
공무원과 협의해서 좋은 지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기초 의원들.
그런데, 공무원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
도대체 지들이 뭐라고.
그래서 오늘 버릇 좀 고쳐줘야겠다.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문을 닫았다.
물론 나가지는 않았다.
끼이이익. 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음산했는지 시끄럽게 욕이 울리던 본회의장이 한 순간에 조용해진다.
모두의 시선은 성윤에게 집중했고.
‘쇼타임.’
< 이런 시험은 환영.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