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0화 (10/300)

< 이런 시험은 환영. - (1) >

그저 좋은 정치인이 되어 달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은 성윤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다.

뭐, 시험 받는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인이 성윤의 꿈이니까.

그러니 이런 민원과 시험이면 언제든 환영이지.

성윤이 고개를 틀어 원장을 향했다.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토지분쟁 때문이다.

보육원 전체 중 약 절반의 토지가 타인의 명의였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대부분 역시 타인의 토지 위에 지어져 있다.

타인, 그래 A씨라 하자.

그간 A씨는 ‘좋은 일에 쓰세요.’라며 토지의 사용을 허락했다.

하지만 몇 년 전 A씨는 사망.

토지의 소유권은 자연스레 A씨의 자식들에게 넘어갔고 형제간의 분쟁을 원치 않은 이들은 토지를 경매에 넘겼다.

이 땅을 낙찰 받은 사람, 그래 이번엔 B씨라 하자.

토지를 소유하게 된 B씨는 보육원 측에 연 8천만 원의 토지 임대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수익사업이 없는 보육원에서 그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자 B씨는 퇴거를 요구하며 토지반환소송을 걸어 버린 것이다.

B씨를 욕하지는 말자.

그간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던 A씨가 대단한 사람인 것이지 B씨가 나쁜놈은 아니다.

B씨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토지를 낙찰 받았고 대출까지 받아 이자를 내고 있다.

게다가 토지를 소유하는 과정에서 법에 어긋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정당한 재산권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 투자에 갈 곳 없는 고아들이 걸려 있다는 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

원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보육원에 대한 기억이 왜 없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박대철 의원이 착한 인간 코스프레를 했던 보육원이 다른 지역이었던 이유.

결국 이 보육원이 철거될 것이라는 거다.

그것도 가까운 시일 내에......

성윤의 시선이 살짝 열린 문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는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깔깔 웃으며 장난치는 아이들.

“아이들도 알고 있나요?”

“아뇨.”

그녀의 심연이 들려온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아이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녀가 성윤에게 말을 꺼낸 이유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윤은 다시 복도로 시선을 옮겼다.

보육원이 철거된 후 저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졌을 것은 분명하다.

한 번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또 아픔을 갖게 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성윤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보육원의 문제는 노인이 가진 돈의 힘으로 무마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근원적인 해결이 없다면 언젠가 다시 일어날 문제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흠......’

낙찰자와 보육원 모두가 만족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을 이어갔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이렇게 하면 낙찰자가 불만을 갖고 저렇게 하면 보육원의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

분명, 어려운 일.

하지만 해결만 한다면 훗날 성윤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육원 철거를 막은 이성윤!’이라는 타이틀은 엄청난 이미지를 가져다 줄 거니까.

물론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얻는 게 있다면 좋은 거다.

노인이 여기까지 생각했을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노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잠시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성윤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보육원의 역사가 길다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이곳에서 양육되었던 분들의 명단을 얻고 싶어요.”

“명단이요? 그건.......”

개인정보다.

함부로 넘길 수는 없는 거지.

하지만 원장이 망설이는 이유는 그런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지?

지금까지 보육원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줄 말했으면서 아직 성윤의 정체도 모른다니.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아직 제 소개를 못했네요.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 어느 국회의원분의 아래에서 비서를 하고 있습니다.”

“구, 국회의원이요?”

“비서입니다.”

성윤은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이야기한 후 말을 이었다.

“아, 제가 국회의원의 비서라는 것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해요. 의원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원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조심스레 묻는다.

“그런데,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네, 일단 명단을 주세요. 공론화 시키는 게 우선이니까요.”

지금껏 이 보육원에서 양육된 사람의 숫자는 약 2천여 명.

하지만 사망한 사람과 연락이 두절된 사람 등을 제외하면 보유한 연락처는 절반도 되지 않는 칠백여 명이었다.

성윤이 명단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에게 보육원이 철거 위기라는 메시지를 보내세요.”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렵게 살고 있다.

그래서 메시지를 보내봤자 도움 받기는 힘들다.

오히려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거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성윤이 입을 열었다.

“그 분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려는 게 아니에요. 공론화하는 것만 생각하세요. 그리고 아이들만 생각하세요. 이런 싸움은 머릿수 많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니까요.”

성윤은 국회의원의 비서.

이들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에 도가 튼 자들이다.

잠시 생각하던 원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렇게 할 게요.”

***

보육원에서 나온 성윤은 박대철 의원을 태워 집에 던져뒀다.

다시 서안시에 도착한 것은 오후 여덟 시.

집으로 가지 않고 사무실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사무실 도착했습니다.”

-퇴근하지 왜 들어왔어?

지역 상주 보좌관이다.

그는 수석 보좌관과 달리 성윤의 일처리를 꽤 인정한다.

“커피 한 잔씩 돌리고 들어갈 게요. 퇴근 안 하신 분이 몇 분이세요?”

보좌관은 거절하는 성격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커피 마실 거냐고 물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메리카노 하나, 라떼 하나, 그린티.......

잠시 후, 커피를 손에 들고 사무실에 올라갔다.

일에 열중하는 보좌관과 몇몇 비서가 보였다.

그들의 책상 위에 커피를 내려둔다.

“마시면서 하세요.”

“고마워요.”

모든 사람에게 커피를 전달한 성윤은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연락처가 든 파일철 하나를 슥 꺼내 소파에 앉았다.

‘기자, 시민단체.......’

꿈속의 기억을 되살리며 최대한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간추렸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그들의 전화번호를 사진 찍었다.

‘그러고 보니까......’

꿈속에서 봤던 미래.

성윤의 별명은 ‘국회의 미친개’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당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한다는 점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썩어빠진 당대표의 차에 가래침을 뱉은 적이 있어서 그렇다.

사실, 오줌을 싸려 했는데 성윤의 보좌관이 간절히 말려서 가래침으로 끝났었던 거다.

그런데, 꿈속에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도 제 멋대로 하고 있다.

보육원을 돕기 위해 연락처를 열람해서 주머니에 넣는 중이니까.

연락처를 열람하는 게 죄는 아니지만 허락받고 하는 일은 아니니 멋대로 하는 거지.

현실에서도 미친개가 되려나? 하는 생각에 픽 웃음이 흘렀다.

하지만 박대철 의원에게 말 할 수는 없다.

바쁜 일도 많은 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할 테니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안정이 아니라 어느 계파에 붙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리고 보고하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이미지는 혼자 다 먹어야 한다.

연락처를 얻은 성윤은 보좌관과 비서들에게 인사한 후 사무실을 벗어났다.

차에 앉은 성윤은 손에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꾹꾹.

얼마 전 만났던 구청 공무원 박강중에게 보내는 거다.

-내일 점심 어때요?

약속이 있어도 만날 거다.

약점이 잡혀 있으니까.

그리고 곧 예상대로 메시지가 왔다.

-좋습니다.

***

다음 날, 성윤은 구청 앞 커피숍에 앉아 박강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까지는 아직 삼십 분.

그동안 노인을 만나고 보육원에 갔던 일까지 정리하는 중이다.

그런데, 팔짱을 끼고 앉은 그의 표정이 심각하다.

‘어쩌면......’

성윤은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의도에 입성하는 계획을 세워뒀었다.

그런데 계획보다 더 빨리 국회에 입성할 지도 모른다는 좋은 예감이 든다.

물론,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것일 수도 있지만......

먼저 노인의 존재.

아직 노인이 어느 정도의 배경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는 모른다.

하지만 이덕근 사장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대치가 확 올라간다.

여기서 최소한의 인맥은 해결이다.

다음은 돈.

목공 동호회에서 앞으로 뜰 벤처 기업가를 만나 투자할 생각이다.

꿈과 현실이 100%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볼 때, 물론 미래는 성윤이 계속 바꿔 나가고 있지만......

어쨌든, 99%의 확률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예상하는 금액은 5억 원 정도다.

마지막으로 이미지.

보육원 철거를 막아내기만 한다면 그 상징성은 크다.

단번에 고위 간부의 눈에 들 기회가 될 수 있다.

‘욕심이 나네.’

그때, 커피숍으로 박강중이 들어왔다.

다급히 성윤 앞에 선 그가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다.

“기, 기다리셨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왜 불렀는지 이유를 모르는 박강중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눈만 껌뻑껌뻑 뜨고 있다.

왜 불렀냐고? 이제부터 보육원의 미래를 이야기 해야 하거든.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내 미래도 행복해지지.’

< 이런 시험은 환영.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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