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6화 (6/300)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2) >

보좌관의 입 모양과 다른 이야기가 들리다니.

환청......이다.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예지몽을 꾼 것도 얼떨떨한데 환청까지......병원에 한 번 가봐?’

내일은 새벽부터 운전해야 하는 스케줄이라 일찍 퇴근할 수 있다.

그래서 퇴근 후 이비인후과에 들렸는데......

“정상이에요.”

“정상이요? 환청이 들리는데요?”

“네, 불안이나 우울,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에 일시적으로 환청이 들릴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하시고......”

뭐만 하면 우울이고 스트레스란다.

이런 식의 상담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주일 후에도 계속해서 들리면 다시 한 번 오세요. 그때는 정밀 검사를 해볼 테니까요.”

의사의 말에 성윤이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 뿐이다.

그런데, 문득 호기심이 인다.

‘이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까 이런 의문을 가졌을 때 환청을 들었는데.

생각하자마자.

-배고파. 퇴근하면 뭘 먹을까?

의사는 분명 입을 닫고 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성윤은 의사를 빤히 바라봤다.

모니터를 보던 의사가 성윤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튼다.

“왜요?”

“아니에요.”

역시 입 모양과 상관없이 상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배고파.

***

성윤은 커피숍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해질 때가지 스트로우만 휘젓고 있었다.

처음은 환청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초능력? 무서운 얼굴로 상대의 앞에 앉아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사?’

영화나 만화를 보면 보통 악당으로 출연하는 게 독심술사다.

되게 음흉하게 생긴 놈이 주인공 앞에 나타나서.

“네 마음을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거만하게 웃다가 두들겨 맞는 역할.

뭐, 그건 영화나 만화의 이야기고 이건 현실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이 독심술까지 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무적.

‘일단 확인해 볼까?’

성윤은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을 죽 둘러봤다.

그리고 한 여성에게서 시선을 멈춘다.

그러자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이렇게 안 와? 미친 거야?

여성의 목소리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렇게 삼십 분 후, 커피숍에 들어온 한 남자가 여성을 향해 걸어간다.

“미안, 늦었지.”

“미안하다면 다야? 한 시간이나 늦었어. 전화도 안 받고 왜이래?”

“아니, 퇴근하려는데 부장님이 잡아서......”

“그럼, 전화라도 해줘야지!”

“그러려고 했는데.......”

남자가 늘어놓는 변명을 들으며 성윤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맞는 거지? 이거 독심술이 맞는 거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려던 머릿속은 난리가 났다.

그렇게 끓어오르던 흥분은 십여 분이 지나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그러자 새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그건 뭐였지?’

박대철 의원 사무실에서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불특정 다수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그 소리 때문에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게 기억난다.

그럼,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걸까?

성윤은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그러자 들린다.

-아...힘들어.

-나한테 이런 남자를 소개하고 있어? 나를 우습게 보는 거 아냐?

-공무원 경쟁률이.......

-치킨 시켜 먹을까?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시끄럽게 울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듣고 싶으면 듣고, 말고 싶으면 말고.

소리는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 같다.

‘편리하네.’

성윤은 잠시 더 이것저것 확인해 봤다.

그렇게 확인한 것.

예상하건데 목소리가 들리는 반경은 약 50m.

그리고 속으로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게 아니라 본심을 문장으로 풀어주는 것 같았다.

그때......

“이성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학 동기가 빤히 보고 있다.

친하지는 않았고 그냥 인사나 하던 사이.

그런데, 녀석이 반가운 척 웃는다.

“여기서 뭐해?”

“퇴근해서 잠시 쉬고 있지.”

“맞다. 너 국회의원 운전한다며? 대학 나와서 그게 뭐냐?”

한껏 비웃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옆에는 꽤 예쁘장한 여자가 붙어 있다.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

놈이 여자를 보며 성윤을 소개한다.

“여기는 내 여자 친구. 오빠 한국대 나온 거 알지? 같이 학교 다녔던 친구야. 지금은 국회의원 밑에서 일한대.”

“안녕하세요.”

여자는 고개를 숙였고 성윤도 까딱 인사했다.

그러자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성윤을 낮추어 자신을 높이는 더러운 스킬과 함께.

그러니까 자기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성윤은 운전을 하고 있다는 등.

그러게 정신 차리고 회사에 들어갔으면 좋지 않았겠냐는 등.

등등등.

여자 친구와 왔으면 커피나 처마시지 부모님도 아닌데 인생 걱정을 해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성윤은 녀석의 옆에 있는 여자의 마음을 읽어 보기로 했다.

-아, 지겨워. 가방이나 사주지. 뭐하는 거야? 빨리 끝내고 지훈이 오빠나 만나러 가야겠다.

“혹시 지훈이 알아요?”

“네? 아, 아세요?”

여자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 간다.

꼭 도둑질하다 걸린 것처럼.

여자의 표정을 본 녀석도 마찬가지.

성윤을 삐뚜름히 보며 묻는다.

“지훈이가 누구야? 너 얘 알아?”

물론 누군지 모른다.

그녀의 속마음을 듣고 물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녀석과 여자의 사이엔 불신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이 났으면 부채질을 해주는 게 예의.

“네 여자 친구, 핸드폰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알지?”

“뭐? 두 개?”

“하나는 너 같은 호구용. 하나는 내 사랑 지훈이용.”

여자는 바위처럼 굳어 버렸고 녀석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녀석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국회의원 비서잖아. 국가 일 하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돼지.”

성윤이 여자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얘 돈 없어요. 차가 리스거든요. 돈이 있어서 리스한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리스한 놈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죠? 한 달에 백오십만 원씩 나가는 것 같은데, 신입 사원이 감당하기는 힘들죠. 그런데, 이런 놈한테 가방을 받아 낸다고요? 그러지 마세요. 이 놈 거지돼요.”

“내, 내 차가 리스인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녀석은 발끈했지만 성윤은 느긋하다.

“국회의원 비서는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된다고 말 했잖아. 그러니까 내 인생 훈계질하지 말고 네 인생이나 신경 써. 뜨겁게 사랑하고 가방은 사주지 말고 지훈이한테 안부 전해주고.”

성윤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의 옆을 스쳤다.

녀석과 여자는 싸우기 시작한다.

“핸드폰 두 개 있어? 지훈이가 누구야!”

“오빠부터 말해 봐. 돈 많은 척 하더니 아니었어?”

커피숍의 문을 닫으며 성윤은 슬쩍 웃었다.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진짜 큰 무기다.

***

집에 온 성윤은 창가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엿들었다.

변태 같은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 얻은 지 얼마 안 된 능력이라 신기해서.

하지만 삼십 분쯤 그러고 있으니 지겨워진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출근하기 싫어.

-족발? 보쌈? 아니면 둘 다?

이런 거니까.

속마음이라고 하지만 대단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노트북을 펼치고 앉는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에 접속해 동호회를 검색했다.

출마를 노리는 사람들은 지역 유지가 많은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한다.

유지와 친해지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 유지가 지지를 선언하는 순간 표가 몰리기도 하고 후원도 받을 수 있으니까.

일단 골프 동호회가 보인다.

‘골프?’

국회의원 비서를 준비하며 간단히 배워본 적은 있다.

하지만 아직은 무리다.

한 번 필드에 나가면 수십만 원, 이후에 술을 먹고 어쩌고 하면 약 백만 원.

수행비서로 있는 성윤의 월급에선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지역유지를 만나도 그들의 문화에 녹아들기는 쉽지 않을 거다.

나이가 어리니까.

지금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성윤이 찾는 것은.......

‘찾았다.’

목공 동호회였다.

동구에 있는 공방에서 책상 등을 만들며 활동하는 곳인데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벤처 사업가 신중석이 있었다.

아직 빌빌대며 국가 지원비만 처묵처묵하지만 조만간 확 뜰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 투자하면 크게 뽑아낼 수 있다.

뭐, 투자라고 해봤자 성윤이 가진 돈은 처음 받은 월급에서 카드 값 등 이것저것 빠지고 몇 십만 원뿐이 남지 않았지만......

‘투자금은 지금부터 마련하면 되는 거고.’

가입 후 인사를 남겼다.

이제 등업을 기다리면 된다.

카페에 가입하지 않고 신중석을 직접 찾아가서 “너한테 투자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투자하고 이득 보는 건조한 사이로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적인 만남은 사라지는 거지.

성윤이 기대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조금은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다.

‘일단은 천천히......’

급할 필요는 없다.

한 명씩, 한 명씩 내 사람으로 만들면 되는 거다.

***

다음 날.

아침부터 참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에는 인천, 점심에는 여의도, 오후에는 천안에 갔다가 일곱 시가 다 되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내일은 충청도와 강원도를 누벼야 한다.

젠장.

이렇게 전국을 누비는 것은 대한당 내부의 계파 갈등 때문이다.

미래의 결과를 아는 성윤은 시큰둥했지만 박대철 의원은 아니다.

어디에 붙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박쥐처럼......

뭐, 그 박쥐같은 정신이 성윤의 꿈속에서 3선까지 성공할 수 있던 능력이지만.

물론 현실에서는 3선까지 가지 않을 거다.

박살낼 생각이니까.

“하, 씨발. 보좌관, 비서관 다 들어와.”

박대철 의원이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방으로 향했다.

그 뒤를 보좌관과 비서관이 굳은 표정으로 따라 간다.

어느 계파에 붙어야 하는지 결정내리는 게 힘든 모양이다.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비서들뿐.

다들 각자 업무를 시작할 때 성윤은 노트북을 열어 어제 가입했던 동호회를 들어갔다.

‘정회원 됐네.’

게시글을 읽어보려 하는데 ‘딸랑’ 문이 열렸다.

공장 점퍼를 입은 노인이 들어오더니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여기가 박대철 의원님 사무실 맞죠?”

문과 가까이 앉아 있던 성윤이 노인을 맞이했다.

“네, 맞습니다. 어쩐 일로......”

국회의원 사무실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민원은 물론이고 청탁 그리고 지나가던 당원들이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그런데, 노인을 본 성윤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 할아버지는?’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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