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비서의 생활이란.....(3) >
***
34평이면서 20억대 아파트, 이곳은 박대철 의원의 집.
그런데 이놈의 집은 서안시가 아니라 서울이다.
선거를 위해 주소지는 서안시에 박아두고 삶은 서울에서 영위하는 거다.
이러니 서안시가 발전되기는 힘들지.
게다가 선거철이 되면 그 아파트에 살지도 않으면서, 자기는 허물어져 가는 25평에 사니까 서민이라고 외치는데 정말 가증스럽다.
딩동.
만취한 박대철 의원을 부축한 채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고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가 하품을 하며 나온다.
그녀 역시 지금 들어왔는지 쉰 살의 주름을 가리기 위한 화장이 지워지지 않았다.
반바지에 가벼운 티를 입었는데 처진 뱃살이 노골적으로 보인다.
그녀는 성윤의 어깨에 붙어 기절한 것처럼 보이는 박대철 의원을 한심하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
그녀의 입에서 담배와 알콜이 섞인 역한 냄새가 났다.
성윤은 그녀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수 없이 드나들던 집인데 현실에서 밟아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역시 그 꿈은 정말 미래를 반영해 주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가 소파를 가리켰다.
그쪽에 던져두라는 뜻.
그래서 그 뜻에 따라 조심스레 박대철 의원을 소파에 뉘였다.
시끄럽게 코를 고는 박대철 의원을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보던 마누라가 성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고생했어.”
“그럼, 가보겠습니다.”
현관으로 향하던 성윤은 닫힌 방문 하나를 바라봤다.
박대철 의원의 딸 세진이의 방이다.
‘지금은 일곱 살 쯤 됐나?’
꿈을 기억하면, 박대철 의원과 함께했던 시간 중 유일하게 즐거웠던 게 세진이와 지냈던 일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박대철 의원은 세진이의 과외를 지시했었고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처음엔 박대철 의원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이었지만 나중엔 진심으로.
그래서 그런지 세진이는 성윤을 참 잘 따랐다.
모은 용돈으로 생일 선물이라며 넥타이핀을 사주던 게 기억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슬쩍 웃고 있는데......
“이 비서?”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가 흰 봉투를 내밀고 있다.
성윤이 물끄러미 보자 어서 받으라고 턱짓한다.
“받아.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이야. 비밀유지.”
“네?”
“앞으로 알게 될 거야.”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성윤의 자켓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 넣었다.
집을 빠져 나온 성윤은 자동차의 운전석 문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준 봉투를 열어봤다.
십만 원.
픽 웃음이 흘렀다.
‘이게 비밀유지의 대가라고?’
그녀의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했지만 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비밀유지는 박대철 의원에 관한 게 아니다.
오로지 자신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취미는 바람이니까.
이 남자, 저 남자 바꿔 만나고 다니는 바람.
성윤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눈치 보며 조심하는 중이지만 점차 본색을 드러낼 거다.
아주 더럽게.
사람들은 박대철 의원과 그 마누라를 가리키며 진정한 원앙 부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박대철 의원은 룸살롱 중독자였고 그 아내는 허구헛날 젊은 남자를 찾아다닌다.
이런 놈이 국회의원이다.
차에 오른 성윤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새벽 1시.
그래도 어제는 새벽 4시에 들어갔으니까 오늘은 일찍 끝난 편이다.
피곤한 뒷목을 꾹꾹 주무르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을 울린다.
보좌관에게 온 메시지다.
이 사람 역시 잠을 못 자고 있나 보다.
어떤 메시지인가 확인하는데.
-내일 오전 6시까지 사무실로 오도록.
서안시에 있는 고시원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다.
그런데 씻고 뭐하면 또 한 시간.
그럼, 이불에 들어가는 시간은 세 시가 될 거다.
깨어나서 출근 준비를 생각하면......
‘와, 두 시간이나 잘 수 있겠네.’
버티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
그렇게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에 드나든 지 한 달이 지났다.
통장에 월급이 꽂혔다.
아버지가 주신 돈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았던 돈 거기에 이번에 받은 월급을 합치니 육백만 원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고시원을 탈출하기 위해 시간만 되면 부동산을 찾아가 집을 보러 다녔다.
꿈속을 기억하면 그때도 이 시기에 고시원을 탈출했다.
그리고 계약해서 살던 집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집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곰팡이가 심했고 같은 층에 살던 아저씨가 알콜중독자라 정말 시끄러웠다.
밤만 되면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나 잘 부르면 몰라, 꿈속이었지만 정말 끔찍했다.
“여기가 끝이야.”
예순이 조금 넘어 보이는 부동산 사장님은 잔뜩 귀찮은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지금 보는 집은 3층, 옥탑 방은 아니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보인다.
“담배는 옥상에서 피우면 돼.”
실 평수가 10평정도 되는데 작은 방 하나에 거실이 따로 있어 살기는 괜찮아 보였다.
공용주차장은 물론 사무실도 가깝고.
성윤이 마음에 드는 눈빛을 보내자.......
“건물 청소 관리비 2만 원. 수도세, 전기세 따로. 집 주인은 서울에 살고. 옥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부동산 사장은 빠르게 말하며 성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몰아넣는 스킬이다.
“이만한 집 없어. 공실이라 바로 입주 가능하고. 그러니까 계약 해.”
단점은 3층에 두 세대가 더 살고 있다는 것.
이웃 주민이 누구냐에 따라 삶의 쾌적함이 달라지지만 이정도면 뭐......
“네, 계약할 게요. 그런데, 혹시 앞집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부모님과 살던 집은 건너편에 번화가가 있었고 꿈속에서 살던 집은 알콜중독자가 있어서 시끄러웠다.
그래서 이번엔 제발 조용한 곳을 원한다.
최근에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그런데 부동산 사장은 자신 있게 답한다.
“앞집은 대학생, 여학생이라 아주 조용해. 그리고 옆집은 공실. 괜찮지?”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동산 사장의 입에 미소가 한가득 담겼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이런 집 없어.”
***
해가 떨어져 어둑해진 밤.
짐 정리를 끝낸 성윤은 책상에 앉아 펜을 핑그르르 돌렸다.
그동안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꿈과 현실이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성윤이 1년간 똑같은 꿈을 반복했다고 해도 50여 년의 방대한 내용이다.
정확한 날짜는 물론이고 전부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굵직한 것은 기억한다.
그래서 그 꿈의 정확도가 어떤지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미래에 영향이 주는 일은 최소하하며 수행비서의 일과 주변 관찰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결과는?
‘기억하는 것은 100% 일치.’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쥐고 있던 펜이 부러질 것 같았다.
100%일치한다는 것은......
‘그럼, 앞으로 내 인생은 지랄 맞아진다는 거네?’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의원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도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확신이 되어가고 있다.
성윤은 공책을 펴고 슥슥 자신의 인생을 간략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1. 대한당 박대철 밑에서 10년간 운전.
2. 민국당 진기성 의원에게 스카웃되어 보좌관이 됨.
3. 2년 후 공천을 받아 초선 의원. 39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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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총 맞아 죽음.
한 때는 정상까지 바라봤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쓸쓸히 죽어갈 인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성윤을 이기고 정상에 선 사람은 이준대라는 사람이다.
싸이코 패스이며 소시오 패스.
천사의 코스프레를 하는 악마 같은 놈이다.
이대로 인생이 진행된다면 그런 놈이 대한민국의 최정상에 서서 나라를 망쳐 먹는다.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성윤은 발판으로 삼기 위해 박대철 의원의 비리를 모으는 중이다.
국회의원은 성 스캔들에 취약한 법인데, 박대철 의원은 질질 흘리고 다닌다.
그 마누라도 곧 그럴 것 같고.
감사할 뿐이다.
‘박대철 의원의 스캔들을 민국당에 넘겨?’
고개를 저었다.
인생을 정리하다보니 나락으로 떨어진 삶이 기억나 버렸고 그 때문에 갑자기 초조해져서 성급한 마음이 생기는 거다.
하지만 성급하게 움직이면 될 일도 망친다.
힘은 물론 존재감도 없는 성윤이 스캔들을 들고 나서 봤자 어떤 자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푼돈이나 받을 게 뻔하다.
아니, 푼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이용이나 당하다가 팽 당할 게 분명하다.
성윤은 공책에 적어 둔 민국당의 이름에 엑스 표시를 하며 그곳을 찾아가는 일은 보류했다.
‘천천히, 천천히.’
마음을 진정 시켰다.
역시 처음 계획했던 대로 박대철 의원의 아래에서 최대한 꿀을 뽑아 먹는데 주력해야 한다.
은밀하고 더 은밀하게.
가능한 일이다.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성윤의 나이는 스물일곱,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이야. 그럼 첫 번째는......’
성윤의 눈빛이 번뜩였다.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에서 보이던 충성심 높고 착한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굶주린 맹수일 뿐이다.
< 수행비서의 생활이란.....(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