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비서의 생활이란.....(2) >
키보드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전화벨이 계속해서 울린다.
이곳은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 중에 지역구에 상주하며 지역민의 민원을 담당하는 보좌관은 매우 다급한 표정이다.
“우리 의원님 입장도 있으니까 사장님이 욕먹지 않을 선에서 살짝만 치고 빠질 게요. 그러니까 이해 좀 해줘요. 의원님이 청문회 스타되면 보답은 확실히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때 또 다른 전화기가 벨을 울린다.
보좌관이 슬쩍 옆을 보자 손톱을 정리하는 비서는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
벨은 계속 울리는데 손톱만 만지작만지작.
그래, 이해는 한다.
이곳은 의원 사무실이고 그녀는 지방 전문대를 졸업한 후 할 일 없이 놀다가 단지 박대철 의원의 조카라는 이유로 9급 보좌관이 된 사람이니까.
다이렉트로 걸려오는 전화를 그녀가 이해할 수는 없을 거다.
보좌관은 그녀의 의자를 툭 치며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전화를 받는다.
“네, 박대철 국회의원 사무실입니다. 네? 네?”
하지만 역시 이해하지 못하나 보다.
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꾹 물고 있다.
그때, 그녀가 든 수화기를 누군가가 확 빼앗아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얼마 전 수행 비서로 들어온 성윤이었다.
“저기, 그거 중요한 전화 같은데......”
그녀가 전화기를 뺏기 위해 다시 손을 뻗었지만 성윤은 상관않고 통화를 시작한다.
“네, 수행비서 이성윤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아, 그건 저희 의원님의 상임위와 관련이 없는 것인데요. 그래도 저희 의원님이 관련된 의원님이랑 가까운 사이니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술술 이어지는 대화에 박대철 의원의 조카는 눈만 깜빡이고 있다.
그리고 탁.
수화기를 내려놓은 성윤은 메모지를 꺼내 방금 온 전화의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보좌관의 통화가 끝났을 때 슥 내밀었다.
“뭐야?”
“민원 들어왔어요. 박종진 대의원님이라고 하시는데요. 국토교통위원회 쪽에 민원이 있으세요.”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보던 보좌관이 조금은 놀란 얼굴로 성윤을 본다.
“이 일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
“며칠간 다른 분들 하는 걸 지켜봤어요.”
“제법이네?”
“감사합니다.”
꿈에서 지겹게 봤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보좌관의 시선이 박대철 의원의 조카에게 향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 한심함이 가득 담겨 있다.
다시 사무실의 벨이 울렸다.
박대철 의원의 조카가 재빨리 수화기를 든다.
이번에는 자기도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
“네, 국회의원 박대철....... 외숙모, 아니 사모님?”
오늘 동창회가 있다고 4시까지 차 좀 보내 달라는 전화다.
별 것도 아닌 통화였지만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내용을 전달한 후 다시 손톱을 만져 댄다.
빨간 매니큐어에 큐빅이 빡빡하게 박혀 있는데 하얗고 작은 손과 곧잘 어울리긴 한다.
잠시 그녀를 보던 성윤이 보좌관에게 고개를 틀었다.
이제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를 모실 시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성윤은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다.
즉,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뜻.
그런데 국민의 세금을 의원의 마누라가 멋대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그래왔고 당연한 일이니까.
성윤이 키를 갖고 나가는데 보좌관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 비서, 사모님 모셔다 드린 후에 다시 사무실로 와. 오늘 의원님이 지역 당원들을 만나는 날이니까.”
“네.”
성윤은 시원하게 대답한 후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보좌관이 작게 입을 연다.
“일 잘하네.”
수행비서는 국회의원의 운전기사이며 매니저고 그림자다.
다방면으로 출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사적인 전화 통화까지 모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충성심이 높아야 한다.
여의도에는 국회의원을 잡는 것은 운전기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수행비서로 성윤을 뽑으며 조금 걱정했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마음에 든다.
보좌관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
박대철 의원의 마누라를 동창회에 넣어 놓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시간은 오후 5시 30분.
180cm가 넘는 키에 120kg이 넘는 근육 돼지 박대철이 뒷좌석에 앉아 거만하게 말한다.
“가지.”
도착한 곳은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풍진 가든이란 이름의 삼계탕 집이다.
그곳에 박대철 의원이 탄 승용차가 들어서자 주차장에 모여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든다.
그 숫자가 약 이십 명.
어서 차 문이 기다리길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있다.
차를 멈춘 성윤이 재빨리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젖히자 기다리고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박대철 의원이 거만한 표정으로 내린다.
“박대철 의원님 오셨습니까!”
남성 의원들이 외쳤고 여성 의원들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의원님 오늘도 멋지세요.”
되도 않는 인사를 한다.
기초 의원의 공천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은 이들에게 왕이며 신하된 입장으로 아부는 기본 장착되어야 할 필수 스킬이니까.
시 의원들에게 왕이면 보좌진에게는 뭐냐고?
신이다.
박대철 의원은 시의원과 지역 당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풍진 가든으로 들어갔다.
긴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시의원들은 박대철 의원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어 잘 보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쓴다.
지역 당원들은 상대 당을 욕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윤은 가장 구석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했다.
그때, 그의 옆으로 시의원 한 명이 다가온다.
조금은 비굴한 표정으로.
“새로 오신 수행비서님이라고요?”
“아, 네.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한 잔 받으시죠. 하하.”
시의원은 술잔을 내려두는 척 테이블 아래로 슥 흰 봉투를 건넨다.
권력은 없지만 수행비서도 이런 식으로 뒷돈이나 선물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국회의원과 달라붙어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한 마디라도 잘 전해달라는 뜻이다.
“홍길동 시의원이 괜찮던데요?”
이런 식으로.
이런 말 한 마디가 시의원에게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걸 바라고 돈을 주는 거고.
성윤이 봤던 꿈에서 그러니까 처음 수행비서가 되었을 때를 기억하면......
갑자기 꼬리치는 여자들이나 들어오는 뒷돈에 국회의원 권력이 자신의 권력인 줄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착각일 뿐이었다.
적절한 선 긋기가 오히려 편하다.
“죄송합니다. 운전을 해야 해서요.”
성윤은 테이블 아래에 있는 봉투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시의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사라진다.
그때.
“이 보좌관, 잠깐 이리 와봐.”
박대철 의원이 부른다.
주변의 시의원들이 열심히 손바닥을 비볐는지 박대철 의원의 기분은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당원 분들이 하시는 말씀 잘 적어 뒀다가 내일 바로 확인해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성윤은 바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그러자 당원들이 다가와 자신들의 민원을 이야기한다.
진중한 얼굴로 들어주기는 하지만 뭐.......
이 지역에 체육관이 건립되는데 자기 집 앞에 해 달라......
유치원을 확충해 달라......
선거 기간이었다면 ‘네! 당선만 된다면 추진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선거 기간이 아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 말로 충분하다.
그걸 박대철 의원도 잘 알고 있고.
***
밤 8시 50분.
당원들은 얼큰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갔고 박대철 의원과 남자 시의원 몇몇은 회원제 룸살롱을 찾아 들어갔다.
룸살롱의 비용은 모두 시의원이 낼 거다.
박대철 의원에게 처바른 돈만큼 다음 선거에서 공천 받을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차에 앉아 있던 성윤은 휴대폰을 꺼내 그들의 들어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언제가 다 쓸모가 있을 거니까.
그 후엔 할 일이 없었다.
이제 가만히 앉아 만취되어 나올 박대철 의원을 기다려야 한다.
입에서 하품이 흘러나왔다.
지겨워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하지만 지금은 견뎌야 한다.
언젠가 발톱을 드러낼 때까지.
그렇게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박대철 의원의 취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성윤, 올라 와.
룸살롱 안은 가관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뒹구는 반라의 여성들.
술에 취해 여자의 몸을 더듬는 배 나온 시의원 아저씨.
이어지는 야릇한 신음 소리.
‘그런데, 저 아저씨 대학생인 딸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박대철 의원이 성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다가가 앉자 잔뜩 혀 꼬인 목소리로.
“2주 됐나?”
“네.”
“어때?”
“즐겁습니다.”
정말 즐겁다.
꿈에서 봤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10년 동안 개같이 굴렀는데, 차곡차곡 상대의 비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게 꼭 박대철 의원의 대가리에 쑤셔 넣을 총알처럼 여겨진다.
“열심히 해. 그렇게만 하면 자네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야.”
저 말이 거짓인 것을 안다.
대한민국에 국회의원의 자리는 300석.
그런데 그 자리를 노리는 보좌진이 2700명이다.
각 당의 당직자까지 하면 그 숫자는 더 올라갈 거고.
재계나 학계, 방송계, 전문직, 시민 단체, 여러 단체 등등등에서 국회 입성을 노리는 사람들까지.
젠장, 셀 수도 없다.
그런데, 열심히 하면 자리를 준다고?
그것도 이제 막 들어온 운전기사에게?
개소리.
성윤은 박대철 의원이 한 말 중 딱 하나만 기억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라고? 그래, 그 자리 내가 앉을 거야. 내 힘으로.’
쓰레기가 달고 있을 배지가 아니다.
꼭 뺏을 거다.
조만간.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다.
“감사합니다!”
그때가지 그 자리 잘 보존하라는 의미의 인사인데, 박대철 의원은 기분 좋게 웃는다.
“젊은 사람이 기분 맞출 줄도 알아? 그래, 노래나 하나 해봐.”
툭.
성윤의 앞으로 마이크가 던져졌다.
발라드? 팝송? 아니면 댄스 음악?
아저씨 앞에서는 트로트지.
< 수행비서의 생활이란.....(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