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화 (2/300)

< 수행비서의 생활이란.....(1) >

***

-대리는 왜 이렇게 안 와?

-취한 척 하고 술 값 내지 말아야지.

성윤은 책상에 앉아 박대철 의원 사무실에서 올 합격 여부 문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던 성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라는 메시지는 오지 않고 환청만 들렸기 때문이다.

‘미쳤나?’

그때.

지이이이잉.

진동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가자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사정없이 진동하고 있다.

성윤은 떨리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쥐었다.

-합격. 국회의원 박대철 사무실. 수요일 8시 50분까지 출근하세요.

주소 : 서안시 동구......

‘됐어!’

합격이다.

긴장된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집의 길 건너편은 번화가, 평소엔 삼겹살 냄새가 진동했는데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시원한 공기가 느껴진다.

‘이제 시작이야.’

창틀에 손을 대고 밖을 보는 성윤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지금은 꾸지 않지만 며칠 전까지, 성윤은 1년간 매일같이 똑같은 꿈을 꿨다.

학교를 졸업하고 정계에 들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비극적인 이야기.

그 이야기가 50여년의 방대한 인생이라 정확한 날짜와 자잘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굵직한 것은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처음엔 정계에 입문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 강해서 그런 꿈을 꾸는가 싶었다.

그런데 꿈에서 봤던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걸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예지몽이구나!’

아직 그 꿈이 완벽한 예지몽인지는 100% 확신하지 못한다.

의원 사무실에 들어가 조금 더 확인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그 꿈대로라면 성윤은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에서 개같이 구른다.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쓰레기 같은 박대철 의원은 성윤을 운전기사로만 부려 먹는다.

그것도 십년 동안.

본격적인 정계 진출은 그 뒤 박대철 의원의 손에서 벗어나면서 부터다.

창밖을 보던 성윤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그 꿈대로라면 앞으로의 인생은 비극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물어 볼 수 있다.

정계에 왜 들어가려 하며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은 또 왜?

답은 간단하다.

정계는 꿈이었으니까 그리고 미래는 바뀔 수 있으며 성윤은 박대철 의원이 어떤 기회를 잡았고 놓쳤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답을 알고 있는데 다른 시험을 치르는 것은 미친놈이고 멍청한 놈이지.

정계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박대철 의원을 이용하다가 필요 없어질 때 짓밟으면 되는 일이다.

성윤은 쭉 기지개를 켰다.

‘좋아. 고민 끝.’

잠시 맑게 미소 짓던 성윤은 귀를 후볐다.

‘그런데, 이 환청은 뭐야?’

분명 이 방에는 성윤 혼자만 있다.

길 건너편에 번화가가 있다고 해도......

-아오, 취하네.

-김 부장 이 미친 새끼.

-대리 진짜 안 오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갖가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뭐야?’

생각하고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밥 먹어야지?”

어머니가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계신다.

성윤이 어머니를 보며 씩 웃었다.

“합격했어요.”

“정말?”

“네.”

어머니가 휴대폰에 찍힌 메시지를 보더니 정말 기뻐하신다.

***

성윤은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마주 앉은 조용한 식탁.

반찬은 미역국과 계란 후라이 그리고 김치와 나물 몇 가지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국을 뜨던 아버지가 성윤을 향한다.

“합격했다고?”

“네? 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 끄덕.

성윤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묵묵함의 표상이다.

하지만 실업자의 숫자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험난한 취업 전쟁에서 국회의원 사무실에 들어간 아들의 모습이 기쁘셨나 보다.

오늘따라 말씀이 많으시다.

“7급? 수행비서야?”

“네? 네.”

“조금 알아봤는데 인턴이나 9급부터 시작하지 않나?”

“운이 좋았나 봐요.”

“이왕 시작한 것 열심히 해. 배지는 못 달아도 보좌관은 해야지.”

어머니가 아버지를 흘겨본다.

“성윤이가 국회의원 못 하라는 법 있어요? 우리 아들이 얼마나 잘났는데. 얼굴 잘 생겼지, 키 크지. 덩치 좋지. 학교도 좋은 데 졸업했지.”

“나도 성윤이는 믿지. 그런데, 내가 가끔 국회의원을 보잖아? 그거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야.”

아버지는 민국당 당대표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를 서신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자주 드나드는데 거만한 눈빛이 꼭 마약을 먹은 것 같다고 한다.

말을 듣던 성윤이 쿡쿡 웃었다.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꿈에서 국회의원들을 지켜봐 왔다.

거만한 사람들, 국민 앞에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인간들.

점잖은 척 하면서 딸 같은 여자를 두고 벨트를 풀어 헤치는 쓰레기들.

그들은 권력이라는 마약을 한 움큼 집어 먹은 자들이다.

“성윤이 너는 혹시나 국회의원이 되도 그놈들처럼은 되지 마. 진짜 국민을 위한 사람이 돼야 해. 국민이 뒤에 있으면 든든한 법이니까.”

아버지도 은근히 성윤이 배지 달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아직 출근도 하지 않았는데......

다시 조용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

그날 밤.

성윤은 잠에 들 수 없었다.

합격한 기쁨에 잠을 설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

-내일 출근하기 싫다.

-아, 택시. 택시.

몇 번을 확인했지만 창문은 꽉 닫혀 있다.

아니, 이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게 아니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다.

‘아, 제발! 조용히 해!!’

성윤은 귀를 꽉 막고 외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소리만 들릴 정도로.

그러니까 무서워진다.

상체를 일으켜 침대에 앉은 성윤의 눈동자는 멍했다.

‘진짜 미친 거야? 조용해지라고 하니까 조용해지는 것은 또 뭐야?’

***

다음 날.

성윤은 박대철 의원의 사무실이 있는 서안시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트렁크 가방을 열고 속옷과 개인 물품을 넣는다.

일단 자취방을 구하기 전까지는 고시원에서 묵을 생각이다.

핸드폰 충전기를 넣던 성윤의 손이 멈칫 거렸다.

‘왜 한동안 예지몽을 꿨던 걸까?’

그것도 1년 간.

문득 궁금해진다.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어 아름답게 만들어 보라고?

아니면 미래에 생길 원한을 미리 풀어보라고?

결론은 빠르게 내렸다.

둘 다 하면 되지 뭐.

원한도 풀고 제대로 된 정치도 해보고.

정치는 오랜 시간 희망하던 꿈이다.

텔레비전 등 언론에서 국회의원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났고 그런 인간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게 꼴 보기 싫었으니까.

선거철만 되면 시장을 도는 후보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뻣뻣이 세우는 의원들.

앞에서는 사람 좋은 척 웃으며 뒤에서는 검은 돈을 받고 룸살롱에 들어가 여자의 어깨를 감싸는 이중인격자들!

성윤은 조용히 웃으며 트렁크 가방을 덮었다.

지금부터 다 박살 낼 거니까.

완전히.

***

출가 전 마지막 저녁 식사.

아버지가 야간 근무라 조금 일찍 시작했다.

한동안 세 식구가 모여 옹기종기 식사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특별히 마련된 식탁이다.

반찬은 어제와 다르게 고기반찬.

맛있게 식사를 하는 성윤을 보며 어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계신다.

“윗사람들 말 잘 듣고. 항상 운전 조심하고.”

“네.”

“밥은 꼭 챙겨 먹고. 귀찮아도 해 먹어.”

“그럴게요.”

“라면만 먹지 말고.”

“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어머니는 김치와 반찬을 싼 비닐봉지를 건넨다.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손에 쥐었다.

“잘 먹을 게요.”

성윤의 나이 스물일곱.

군대를 제외하고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성윤이 차에 가방을 실을 때 까지 어머니의 잔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가 이제 그만하라고 핀잔을 줬지만 끊이지 않는다.

신호 잘 지켜라, 항상 인사하고 다녀라. 겸손해라.

유치원생이 아니지만 어머니의 눈에 아들은 항상 어린 법이다.

그렇게 성윤은 자동차의 뒷 트렁크를 닫고 부모님 앞에 섰다.

차는 8년된 준중형이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할 때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인데 아직은 쌩쌩하다.

아, 아버지는 새 차를 타고 다니신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효도할 게요.”

“어?”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만약 성윤이 꿈에서 본 것처럼 산다면 효도란 없는 단어다.

바쁘다는 핑계로 흔한 전화 한통 하지 못했으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렇게 서럽게 울던 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은 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절대로.

이미 봤는데, 그걸로 후회했는데, 또 후회하면 그건 머저리지.

갑작스러운 아들의 말에 두 분은 조금 당황하셨지만 성윤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폼 나게 말하고 차에 올라타려 했는데, 아버지가 성윤을 붙잡았다.

“가져 가.”

성윤의 주머니에 억지로 흰 봉투를 집어넣으신다.

“괜찮아요.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아 둔 것 있어요.”

“그래도 가져 가. 아빠가 줄 수 있을 때 받아.”

만류하던 성윤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주름진 손.

말했지만, 아버지는 경비를 서 신다.

월급도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꽁꽁 싸 두었던 돈을 주시는 거다.

잘 쓰겠습니다.

***

차에 오른 성윤은 엑셀을 밟았다.

고속도로로 접어들며 꿈에서 봤던 첫 출근 날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잔뜩 긴장하던 시간.

그때는 박대철 의원을 잘 보좌해서 재선, 삼선 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공천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럼, 언젠가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용만 당했지.......

지금은 다르다.

박대철 의원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러 간다.

꿀꺽.

< 수행비서의 생활이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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