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화 (1/300)

< 프롤로그. >

요양원으로 검은색 차량이 들어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가 서둘러 조수석 뒷문으로 달려가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여든이 훌쩍 넘는 노인이 차에서 내렸다.

노인은 주름진 눈으로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간 건물을 바라봤다.

예상보다 낡은 건물에 노인은 고개를 젓는다.

“그놈이 이곳에 있다고?”

“네.”

“그놈이 이 낡은 곳에 있다고?”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들려오는 답은 같다.

“네.”

“곧 죽는다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이 나라를 만든 남자의 최후가 여기라니······.”

잠시 고개를 젓던 노인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운전수는 트렁크를 열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꺼내 들더니 그 뒤를 쫓는다.

노인의 이름은 진기성, 지금은 은퇴했지만 5선 의원까지 해낸 정계의 이무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침대와 테이블만으로 비좁은 방.

진기성의 시선이 침대로 향한다.

그곳엔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이성윤 의원, 오랜만이야.”

“의원님은 원래 노안이어서 그런지 그대롭니다.”

진기성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사람, 하지만 이성윤이라 불린 노인은 그를 옆집 사람처럼 대한다.

이성윤이 상체만 일으켜 앉아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곧 죽을 놈은 왜 찾아 오셨습니까? 죽어서 만나면 될 것 같은데.”

“미안하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미안하다고요? 내가 그 보잘 것 없는 권력 싸움에서 뭘 잃었는지 알잖아요?”

이성윤이 픽 웃으며 자신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리가 있어야 할 부분이 허전하다.

진기성은 그의 시선을 피한다.

“미안하다.”

이성윤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됐습니다.”

분노 가득한 눈빛을 받으며 진기성이 무거운 한숨을 씹었다.

“그때······. 내가 이겼다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이성윤이 싸늘하게 웃는다.

“달라졌겠죠.”

“그래, 달라졌겠지. 난 당 대표가 되어 대권에 도전했을 테고 자넨 내 다음을 이었을 테니까.”

이성윤이 무릎까지 치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아직도 정치합니까? 왜 거짓말을 해요? 알잖아요? 내가 의원님의 뒤통수를 씹어 먹고 대통령에 올랐을 겁니다.”

진기성의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자네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난 가장 먼저 자네 목을 쳤을 거야.”

분명 대화의 내용은 정겹지 않다.

하지만 두 노인은 뭐가 웃긴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진기성이 뚝 웃음을 그친 후 이성윤을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았으면 좋겠어......”

오랜 정치 생활 동안 두 사람은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아군으로 있었다.

그리고 인생의 종말이 가까워지자 상대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중이다.

진기성이 운전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운전수는 들고 있던 상자를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 뒀다.

“뭡니까?”

“자네가 날 아는 만큼, 나도 자네를 많이 알고 있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리고 도움을 주고 싶었어.”

“도움이라고요?”

“선택은 자네가 하는 거야. 자네가 항상 했던 말이 있잖나? 대한민국을 위해 살고 싶다며?”

할 말을 다한 진기성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이제 이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마른 입술을 열었다.

“난 자네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오랜 친구로서 자네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어.”

마지막 인사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이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 문턱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소주나 한 잔 해요.”

“술 끊은지 오래야. 가족들에게도 제사상에 술은 올리지 말라고 일러뒀거든. 하지만 자네가 준다면 한잔 받지.”

“냉면 그릇으로 한잔 드리죠.”

진기성은 돌아갔고 이성윤은 혼자가 되었다.

이성윤은 테이블에 놓인 상자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돈?”

오만 원 권으로 3억, 세지 않아도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있었다.

이성윤의 입에 픽 헛웃음이 실렸다.

“내 인생에 대한 위자료인가?”

그런데, 상자 안에 든 돈을 아무렇게나 주무르던 이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돈 안에서 차가운 금속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마?’

검고 칙칙한 쇳덩이, 권총이다.

이성윤의 눈동자가 점차 싸늘하게 변해갔다.

진기성이 어떤 의미로 돈과 총을 넣어 뒀는지 알 수 있었다.

돈을 쓰며 세상의 마지막을 보내던가 아니면 국가의 반역자이자 인생의 원수 이준대 전 대통령에게 꿈틀 대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떠나라는 거다.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이성윤은 돈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권총의 차가운 금속만 느끼고 있다.

병에 걸린 노인, 그것도 다리도 없는 노인이 권총 하나 손에 들었다고 뛰어난 경호원에게 보호 받는 전 대통령을 죽일 수는 없다.

권총을 꺼내기도 전에 제압당해 바닥이나 박박 길게 분명하다.

어쩌면 경찰들의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 죽어서도 복수할 테다.’라는 걸 똑똑히 보여줄 수 있다.

이성윤의 입에서 한숨이 길게 흘렀다.

최근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느끼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버거웠으며 약을 먹지 않으면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뇌세포까지 울렸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악을 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성윤의 주름진 손에 힘이 들어간다.

꽉 쥔어진 권총이 파르르 떨렸다.

***

끼릭, 끼릭.

이성윤이 탄 휠체어가 병원의 지하 주차장을 지나고 있었다.

이준대 전 대통령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찾아 온 거다.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이성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신이시여······. 모든 것을 잃은 노인의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이성윤은 VIP실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기 위해선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하지만 이성윤은 거침없이 번호를 누른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끼릭, 끼릭. 휠체어가 안으로 올랐다.

이성윤 무심한 눈빛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이준대의 모든 것을 빼앗아 주소서......’

엘리베이터가 저승의 문처럼 스르륵 문이 닫혔다.

그리고.......

탕!

[어젯밤, 새벽 두 시. 성종 병원에서 이준대 전 대통령을 살해하려던 이성윤 전 국회의원이 현장에서 사살되었습니다. 이성윤 전 국회의원은······.]

***

“악!”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식은땀이 주르르륵 흘렀다.

미칠 것처럼 생생한 꿈.

그런데.....

한 평생을 다 꾸는 꿈도 있나?

< 프롤로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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