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89화 (189/202)

189화 거의 다 왔습니다

‘제기랄…….’

신대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교주가 시전한 정체불명의 마법으로 육십여 명의 헌터가 일거에 몰살당했다.

교주가 주문을 시전하는 순간,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피는 교주가 만들어낸 붉은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문이 끝나고 남은 건 거죽만 남은 시체들뿐이었다.

헌터들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신대성의 수행원들은 모두 뛰어난 실력자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주문에 저항하지 못했다. 저항은커녕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신대성이 교주가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교주는 사람이 마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강력한 헌터들은 아주 순도가 높은 마석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교주는 사람을 이용해서 봉인을 뚫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신대성은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양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 씨 집안을 망하게 한 후로 신대성은 자신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신대성이 걱정한 것은 그 정도 수의 사람을 죽였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리스크였다. 강 씨 집안의 일이야 내부자를 이용해 사고로 위장할 수 있었지만, 수십 명의 헌터를 제물로 받치면 헌터 관리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신대성이 바라는 건 블랙 헌터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게 아니라, 태원그룹의 총수가 되는 것이었다. 교주가 말한 방법으로 강한 힘을 얻더라도 사람들을 죽인 게 들통나면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주가 제시한 두 가지 차선책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여의치 않았고 결국 최초이자 최후의 수단에 손을 댔다.

‘미안하다. 날 용서해라.’

이곳에 상주하는 헌터들은 아니지만 개인 수행원들은 신대성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신대성이 냉혈한이라도 자신을 수십 년 동안 보필해 온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죽게 만든 것에는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교주에게 육신을 빼앗긴 비서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매번 저런 식으로 빙의를 당하는데 온전한 상태일지 의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다.’

신대성은 자신이 죽더라도 곱게 죽을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앞에 끔찍한 심연이 도사리고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으니까.

"준비가 끝났습니다."

비서의 목에서 쇠를 긁는 것처럼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시작하지."

신대성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언제 저 놈이 자신의 뒤통수를 칠지는 모른다. 절대로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시죠."

교주는 입 꼬리를 올리면서 비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신대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교주가 앞으로 손을 내밀자 그가 만든 핏빛 구체가 앞으로 날아갔다. 구체가 바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파지직!

갑자기 바위에서 스파크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바위의 표면에 좀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쇠사슬이 나타났다.

마치 바위가 쇠사슬에 칭칭 감겨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툭!

쇠사슬이 하나씩 끊어졌다. 오싹한 기운이 엄습했다. 신대성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군요."

교주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경산마존이 단순히 문을 봉하기만 한 게 아닌 모양입니다."

"무슨 말이지?"

"밖으로 유인해야 합니다."

교주는 그렇게 말하게 몸을 돌려 달아났다.

"뭐 하는 짓이냐!"

신대성의 외침에도 교주는 멀어질 뿐이었다. 보법을 펼친 것인지 눈으로 좇기도 어려웠다.

쾅!

그때, 바위가 갑자기 터져나갔다. 신대성은 재빨리 호신강기를 둘렀다.

쿵! 쿵!

"큭!"

몸이 아니라 호신강기를 때리는데도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저벅! 저벅!

짙은 먼지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신대성의 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바위가 부서진 자리에서 도복차림의 노인이 나타났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강주혁을 연상시켰다. 만약 강주혁이 40년 정도 더 살면 딱 저렇게 될 것 같았다.

‘경산마존!’

피부가 잿빛에다가 눈이 흰자만 남아 있었다. 분명 사람이 아니라 언데드였다.

하지만 그 언데드는 아버지에게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강렬한 기세를 뿜어냈다.

계속해서 떨려오던 몸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가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려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면 끝장이다.’

신대성은 자신의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심신을 집어삼키려는 공포를 털어냈다.

그러곤 전력 질주로 달아났다.

* * *

같은 시각.

광야의 공략 불가 지역.

"저 거인에게 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강주혁은 분지의 끝에 있는 거대 브론즈 골렘을 가리켰다. 다른 골렘들보다 수십 배나 큰 덩치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정공법으로는 이 많은 골렘을 제 시간 안에 잡을 수 없다. 둘이서 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악바리 같이 싸워서 천 마리 정도 잡아도 한 달 후면 모두 부활할 테니까.

강주혁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신태양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기에 회의 때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저 정공법으로 부딪혀보자는 말만 했었다. 그렇게 하면서 신태양의 실력과 속내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본 결과 신태양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골렘이요?"

신태양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계기를 마련한 책이 있습니다."

"<용의 길>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 책에서 이 공략과 관련된 파트가 있는데 거기에 저 골렘의 그림이 여러 차례 나오더군요."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룬 문자 지식으로는 <용의 길>의 극히 일부만 해석할 수 있었다.

지금도 연구팀에서 연구 중이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공략에 도움이 되라고 시킨 연구인데 반대로 강주혁이 공략을 해내면 거기 맞춰서 문자를 해석하고 있는 수준이다.

덕분에 강주혁은 의도치 않게 룬 문자 학계에도 기여를 하고 있었다.

글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용의 길>에는 군데군데 삽화가 있었다. 그게 때때로 공략 방법을 암시하기도 했다. 강주혁이 회귀 전 이 지역의 공략 방법을 알아낸 것도 그렇게 해서였다.

"보스라서 그려놓은 게 아닐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특이하게도 설계도 같은 게 있더군요."

"설계도요?"

"네. 그 설계도에 따르면 골렘의 내부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요? 확실히 잡아야 하는 몬스터는 아닌 것 같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달라질까요?"

"여기에 있는 골렘들을 일일이 잡지 않더라도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겠군요. 솔직히 이 골렘들을 모두 잡는 건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태양의 시선이 거대 골렘에게로 옮겨갔다.

주변의 산세를 보건대, 산을 타고 돌아서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이놈들을 뚫고 가야겠군요."

신태양은 분지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브론즈 골렘을 보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두 사람은 브론즈 골렘보다 빠르다. 게다가 일시적으로 저것들을 무력화시킬 수단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골렘에게는 그런 장점을 모두 상쇄할 만큼 압도적인 머릿수가 있다.

"갔다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신태양이 보여준 실력이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사님은 굉장히 준비성이 철저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모험을 즐기시는 것 같군요."

"필요할 때는 도박을 하는 편이죠."

"……잘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도록 하죠."

결심을 굳힌 신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골렘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끼익. 끼이익.

섬뜩한 금속성을 내면서 주변의 골렘들이 두 사람을 향해 몸을 틀었다.

쿵! 쿵!

골렘들이 몰려들었다.

"잡지 말고 그냥 지나가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앞을 막아서는 골렘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갔다.

쾅!

골렘이 침입자들을 짓밟으려고 땅을 찍었으나 두 사람이 조금 더 빨랐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아서 금방 포위당했다.

파지직!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에는 제단의 힘으로 골렘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골렘들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몸을 혹사한 상태였다. 멈추는 순간 긴장이 풀려 완전히 주저앉을 것 같았다.

"헉! 헉!"

숨 돌릴 틈도 없이 몸을 움직이던 끝에 두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보니 거대 골렘은 산을 의자 삼아서 앉아 있었다. 멀리서 볼 때마다 덩치가 더 컸던 것이다.

천만다행인 점은 다른 브론즈 골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냥 평범한 청동거상처럼 보였다.

"저기 좀 보십시오."

거대 골렘 옆에 아주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의 끝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다.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군요."

신태양은 체력이 한계치에 도달한 것인지 숨을 헐떡였다.

계단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작았다. 브론즈 골렘은 절대로 오르지 못할 것이다.

쿵! 쿵!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수십여 마리의 브론즈 골렘이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진을 친 것이다.

등 뒤에서 수만 마리의 브론즈 골렘이 두 사람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강주혁은 데몬의 흑검을 고쳐 잡고 앞으로 돌진했다. 신태양이 강주혁을 따라 달렸다.

콰지직!

데몬의 흑검을 청룡의 뇌기가 감쌌다.

끼익! 쿵!

선두에 선 골렘이 양팔을 들어서 자신에게 돌진하는 강주혁을 찍었다. 강주혁은 피하지 않고 검을 마주 휘둘렀다.

쾅!

섬광이 번뜩이더니 골렘의 두 팔이 잘려 나갔다. 팔을 잃은 골렘은 등 뒤에 있는 동료를 깔아뭉개면서 나자빠졌다.

"뒤처지면 안 됩니다!"

강주혁은 쓰러진 골렘의 몸을 밟으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옆에 있던 골렘들이 손을 뻗었다. 강주혁은 쓰러진 골렘의 머리통을 밟으면서 높게 도약했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콰지직!

몰려드는 손들이 한 번에 잘려 나갔다.

브론즈 골렘 역시 아이언 골렘과 마찬가지로 뇌기에 취약하다. 데몬의 흑검 특유의 공격력과 극대화된 청룡검의 힘이 더해지자 브론즈 골렘의 장갑도 쉽게 잘려 나갔다.

탁!

자신을 잡으려던 손을 잘라낸 강주혁은 뒤에 있던 골렘의 머리에 착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골렘의 머리통을 징검다리처럼 밟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골렘 특유의 우둔한 움직임 탓에 머리를 넘나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손을 뻗어서 낚아채려고 하면 공중에서 검을 휘둘러서 팔을 날려 버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신태양 정도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뿐. 강주혁이 앞장서서 가면서 골렘의 팔을 날려 버렸기 때문에 어렵진 않을 것이다.

탁!

마침내 강주혁은 골렘의 밭을 지나 계단에 착지했다.

"으아아!"

등 뒤에서 신태양이 비명을 지르면서 날아왔다. 골렘의 공격을 피하느라 마지막 점프가 불안정했던 것이다. 체공시간이 짧아서 계단에 닿지 못할 것 같았다.

"손잡아요!"

강주혁은 팔을 뻗어서 추락하려는 신태양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골렘의 팔이 닿지 않는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가, 감사합니다."

신태양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발아래로 좀비 떼처럼 아우성치는 골렘들이 보였다. 좀비들이 저만큼 있어도 위협적일 텐데 무려 브론즈 골렘이다.

여기서 떨어졌다면 제단의 힘이 있다고 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가, 강 이사님은 정말, 후아."

신태양은 계단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진즉 체력의 한계가 온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틴 것이다.

"정말 괴물이시군요. 후, 아, 좋은 뜻입니다."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공격력은 좋아도 체력은 별로군.’

예전의 강주혁이라면 그냥 죽게 내버려 뒀을 것이다. 아들이 죽으면 신대성이 고통을 받을 거라는 사실만으로도 신태양을 죽게 했을 것이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완전 범죄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태양에게 아버지의 죄를 묻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태양이 죽으면 강주혁의 빛나는 커리어에 오점이 생긴다. 아무리 원수의 아들이라고 해도 커리어를 망쳐가면서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힘내시죠."

강주혁의 말에 신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