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교주가 죽었다!
‘변신 능력인가?’
강주혁은 분명 김동훈을 죽였다. 그런데 교주는 김동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관없지.’
강주혁은 김동훈이 블랙 헌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저 교주라는 작자는 블랙 헌터들의 수장. 강 씨 집안의 불행은 바로 저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죽어라!"
강주혁은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화아악!
교주는 강주혁을 향해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손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일어났다. 생겨날 때는 연기였는데 펼쳐지는 순간, 액체처럼 변했다.
카아아앙!
그리고는 고체처럼 딱딱해져서 강주혁이 전력으로 휘두른 대검을 튕겨냈다.
‘뭐지?’
강주혁은 일단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투기술이었다. 비슷한 것조차 보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아주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 대검을 막으려면 그에 준하는 힘과 내공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주는 고작 손짓 한 번으로 검을 튕겨내 버렸다.
"오랜만이구나."
교주가 말했다.
"난 당신이 처음인데?"
"난 항상 너를 보고 있었지."
"그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알겠군."
"네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저들이 너를 신뢰할 것 같은가?"
김동훈의 얼굴을 한 교주가 웃었다.
마치 강주혁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놈을 죽이면 신뢰할 것 같은데."
"늑대는 개들 속에서 살 수는 없는 법. 넌 늑대로 태어난 주제에 개 흉내를 내고 있지.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저놈들은 네 목덜미를 물어뜯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늑대 무리로 돌아와라."
"우리 집안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또 그딴 얼굴을 하고는 한배를 타자고? 네놈은 생각이란 게 있는 거냐?"
강주혁은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였지만 교주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좀 전부터 땅에서 사이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회유를 하려는 게 아니라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네가 우리로 인해 잃은 것이 많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와 손을 잡는다면 그 이상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날 적대하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톨이가 되겠지. 네게 찍혀있는 낙인 때문에 너는 절대로 저들과 하나가 될 수 없다."
강주혁의 생각은 달랐다.
블랙 헌터들과의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강주혁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유덕현, 안다정, 공허진, 주선우, 윤정석처럼 강주혁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쟁을 경험했음에도 강주혁을 편견 없이 대해주는 이윤철과 남궁천도 있었고.
지금은 아니지만 블랙 헌터들을 완전히 소통하고 시간이 흐른다면 모두 강주혁을 믿어줄 것이다.
속으론 그렇게 생각했지만 강주혁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서 일부러 생각이 많은 것처럼 굴었다. 예상대로 교주는 마각을 드러냈다.
촤아악!
교주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로브 속에 있어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강주혁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땅에서 예의 그 검은 물질이 솟구쳐 강주혁의 몸을 휘감으려고 했다.
미리 예상하고 있던 강주혁은 뒤로 몸을 빼서 검은 물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강주혁을 완전히 뒤덮어 버리고도 남을 만큼 물질의 양이 많았다. 그리고 마치 거인의 손처럼 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붕!
강주혁은 그 손을 잘라버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휙!
‘어?’
단단한 고체처럼 보였던 손이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검이 지나간 후에 다시 액체처럼 모여들어 형체를 잡아갔다.
"네 실력으로는 날 이길 수 없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강주혁은 이를 갈면서 교주에게 쇄도했다.
파자지직!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간 강주혁은 대검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서 교주를 찔렀다. 검에 불어넣은 뇌기가 공기를 찢어놓았다.
교주가 손을 휘젓자 손 근처에서 또다시 검은색 물질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넓은 보호막 같은 느낌이라면서 이번에는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카아앙!
날카로운 금속성의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교주의 검은 칼날은 데몬의 흑검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으아아아!"
캉! 캉!
강주혁은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면서 교주를 몰아세웠다. 교주는 뒷걸음질을 쳤지만 손짓 한 번으로 여유 있게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강주혁은 전력을 다해 공격했지만 교주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뇌기를 잔뜩 끌어내고 있는데도 검은 물질에 흠집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청룡검의 특징상 체력과 내공 소모가 심하다. 더 불리해지기 전까지 방법을 찾아야했다.
푹!
"큭!"
강주혁이 힘과 속도가 살짝 떨어지는 순간, 전갈의 꼬리처럼 변한 검은 물질이 강주혁의 어깨를 찍었다. 호신강기와 강체를 단숨에 찢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강주혁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휙! 휙!
강주혁이 빈틈을 보이자 공세가 쏟아졌다. 뾰족하게 변한 검은 물질이 수십 개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캉! 캉!
강주혁은 넓은 검면을 이용해서 공격들을 막았으나 한계가 있었다.
붕!
강주혁이 대검으로 검은 칼날들을 한 번에 쳐내려고 했지만 그것들은 다시 한번 공기처럼 변해서 대검을 통과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빈틈을 보인 강주혁에게 쏟아졌다.
푹! 푹! 푹!
"으악!"
교주의 검은 칼날은 강주혁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와 강체를 난도질했다. 강주혁은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여물지 못한 상태로 어리석은 길을 택한 대가다."
교주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팔을 크게 휘저었다. 수십 개의 작은 칼날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거대한 낫의 형태로 바뀌었다.
촤아악!
낫이 강주혁의 목을 노렸다.
탁!
강주혁은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펴면서 앞으로 튀어 나갔고 낫을 등 뒤로 흘려보내면서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어림없다!"
교주는 다시 검은 물질을 회수해서 전방에 전개했다. 강주혁은 교주의 검은 방패를 향해 검이 아니라 주먹을 내질렀다.
‘귀멸파공권!’
그리고 스승에게 배운 권법을 사용했다. 주먹이 검은 물질의 표면이 아니라 바로 앞의 공기를 때렸다.
촤아악!
검은 표면 위에 잔물결이 일어났다.
파아악!
‘됐다!’
강주혁의 희망대로 검은 물질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당황한 교주의 얼굴이 드러났다.
귀멸파공권은 상대의 육체가 아니라 그 앞의 공기를 타격함으로써 호신강기를 해체시켜 버리는 권법.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서 고체와 기체로 자유롭게 변할 수 있는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귀멸파공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강주혁은 검은 물질이 일종의 호신강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봤고 귀멸파공권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리고 그 카드는 필승의 선택이었다.
촤아악!
교주가 손을 휘젓자 낫으로 변했던 물질이 다시 교주에게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주 짧은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강주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콰지직!
데몬의 흑검이 천둥소리를 내면서 대기를 갈랐다.
서걱!
그리고 그 끝에는 교주의 머리가 있었다.
툭!
교주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어?’
회귀 후 실전에서 강주혁을 이 정도로 몰아세운 사람은 없었다.
엄청난 강자인 만큼 검은 물질이 사라지더라도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검은 물질이 파훼당하는 즉시, 교주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무너져 버렸다.
‘뭐야?’
떨어진 교주의 목에서 얼굴이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김동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타났다. 강주혁은 블랙 헌터 근거지에서 봤던 인피면구 제작 현장을 떠올렸다.
잠시 후, 교주의 얼굴이 완전히 변화를 멈췄다. 마지막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뭔가 찝찝한데…….’
이겼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싸움이 이걸로 끝나지 않을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강주혁은 교주의 목을 들었다. 무너져 내린 몸뚱이도 옷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뒤섞인 채 난전을 벌이고 있는 공략회사 헌터들과 블랙 헌터들에게 외쳤다.
"교주가 죽었다!"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전투의 소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블랙 헌터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항복해라! 교주가 죽었다!"
강주혁은 다시 한번 외쳤다.
챙!
한 명의 블랙 헌터가 검을 떨어뜨리고 손을 들었다.
툭!
또 다른 블랙 헌터가 무기를 내려놓았다.
세뇌가 풀린 것인지 아니면 교주가 죽은 마당에 더 싸우는 게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더 이상 이 자리에서 누구도 죽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이겼다!"
"만세!"
헌터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부상자들 치료부터!"
"도와줘요!"
전투 중이어서 치료를 받지 못한 부상자들이 많았다. 살아남은 헌터들이 부산스러워졌다.
"무릎 꿇고 머리 들어!"
"꿇으라고! 새끼들아!"
블랙 헌터들은 참담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헌터들이 블랙 헌터들에게 다가가서 땅에 떨어뜨린 무기를 챙겼다.
강주혁은 교주의 몸뚱이는 내버려 두고 머리만 들고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몇몇 블랙 헌터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강주혁을 노려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팀장님!"
"주혁아!"
공략 1부 동료들이 강주혁에게 달려왔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주혁을 끌어안았다. 강주혁도 그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다들 괜찮아요?"
강주혁은 한 명씩 얼굴을 살폈다.
유덕현, 안다정, 공허진, 주선우, 윤정석.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후우, 다행입니다."
강주혁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 처해있던 상황을 생각하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근처에서 싸우고 있으면 지켜줄 수 있을 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사히 살아남아 줘서 고마웠다.
"팀장님!"
강주혁을 끌어안고 있던 안다정이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왜 이렇게 다쳤어요?"
안다정이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강주혁의 피를 보면서 물었다.
"우두머리답게 엄청 강하더군요. 고생 좀 했습니다."
강주혁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긴장이 풀리자 통증이 몰려왔다. 그의 몸에는 수많은 자상이 남겨져 있었다. 어떤 것들은 꽤 깊었고 출혈도 심했다.
"아이고, 야단났네. 허진아!"
일행은 강주혁의 몸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강주혁이 지금까지 이 정도로 다쳤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치료해드릴게요! 잠깐 앉아보세요."
공허진의 손이 하얗게 빛났다. 강주혁은 앉은 채로 묵묵히 치료를 받았다. 상처가 깊어서 완치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강주혁 팀장."
치료가 끝날 때쯤, 신태원 회장이 다가왔다. 이윤철 사장이 다른 회장들도 함께였다.
"회장님."
강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숙인 후 뒤로 물러났다.
"애썼네."
"감사합니다."
강주혁은 자신을 바라보는 회장들의 시선에서 약간의 호의를 읽을 수 있었다. 박종근 회장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잠깐 그놈 얼굴 좀 봐도 되겠나?"
신태원 회장이 눈짓으로 강주혁이 들고 있는 머리통을 가리켰다. 강주혁은 잘려 나간 머리를 신태원에게 내밀었다.
"이놈은!"
"역시 살아 있었군."
같이 얼굴을 확인한 회장들이 웅성거렸다. 강주혁은 묻는 얼굴로 신태원을 쳐다보았다.
"블랙 헌터들의 수장이었던 마석훈이네."
신태원이 답했다.
"예전에 죽지 않았나요?"
"……그랬었지.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역시나 살아 있었군."
신태원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얼굴이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얼굴이?"
"네. 변신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마석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놈이 저놈들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네."
신태원은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윤정석을 바라보았다.
"윤정석 사원."
"네. 회장님."
"자네는 오늘부터 과장이네."
"네? 아, 네."
윤정석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승진이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주혁 팀장."
"네. 회장님."
"이사가 된 걸 축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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