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저놈을 잡아야죠
파지지지직!
셀레스티얼이 창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퍼벅!
다섯 개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대형 공략회사에서 부장 정도는 했을 실력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마치 벌레처럼 쉽사리 짓이겨졌다.
그들이 두르고 있는 호신강기와 강체(剛體)는 번개를 머금은 창날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잘려나갔다.
"공격해!"
블랙 헌터들은 셀레스티얼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내공을 머금은 검격과 화살이 빗발치고 화염과 얼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셀레스티얼은 엄청난 맷집으로 그 공격들을 모두 견뎌냈다. 애초에 방어력이 워낙 뛰어나서 제대로 피해를 주는 공격은 극히 일부였다.
서걱! 스걱!
셀레스티얼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 공격을 당하는 순간, 즉사했기 때문이다.
콰지직!
대기를 찢어발기는 벼락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으아아악!"
벼락이 떨어질 때마다 블랙 헌터들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벼락을 직격으로 맞은 이는 즉사했고, 근처에 있던 이들은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들은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무시무시하군.’
한 걸음 뒤로 빠져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강주혁이 생각했다.
회귀 전이나 후에나 저 황금 기사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셀레스티얼이 블랙 헌터들을 모두 죽이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블랙 헌터들의 공격은 전혀 안 통하는데 셀레스티얼이 공격을 할 때마다 최소 세 명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그만큼 머릿수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블랙 헌터들이 셀레스티얼을 포위하고 있지만 전투양상만 놓고 보면 셀레스티얼이 블랙 헌터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블랙 헌터 중에 셀레스티얼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강자가 있지 않는 이상, 승산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 정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셀레스티얼은 벼락을 이용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버릴 것이다.
파지직!
정수리의 머리털이 주뼛 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쳇!"
강주혁은 반쯤은 벼락을 받아내면서 몸을 뒤로 뺐다. 호신강기를 이용해 피해를 상당 부분 상쇄했는데도 피부가 타는 듯이 아파왔다.
편하게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늘 위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 아래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다.
‘정석 씨가 무사해야 할 텐데.’
강주혁은 상의 안으로 늘어뜨려 놓은 목걸이의 감촉을 인지하면서 생각했다.
셀레스티얼이 블랙 헌터들을 학살하는 건 좋지만 윤정석이 죽어서는 안 된다. 블랙 헌터들이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으면 곧장 개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강주혁은 제단을 향해 달려갔다. 벼락이 떨어질 조짐을 보일 때마다 보법을 펼치면서 빠져나갔다.
"쫓아라!"
블랙 헌터들이 달아나는 강주혁을 보면서 외쳤다. 그들은 우회해서 강주혁을 노리려고 했지만 셀레스티얼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강 팀장님!"
강주혁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제단에 먼저 다녀온 일행이 그를 반겼다.
셀레스티얼이 앉아있던 왕좌 근처여서 그런지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물론입니다."
"당신 계획이 먹혔군요."
크리스 바셋은 블랙 헌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셀레스티얼을 보면서 말했다. 몬스터를 이용해 블랙 헌터들을 떨쳐낸다는 계획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이제 블랙 헌터들은 초식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는 셀레스티얼에게 매달려서 놈을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의 격차 때문에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셀레스티얼이 마(魔)를 적대하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강주혁 일행이 먼저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제단은 만지고 왔죠?"
"네. 근데 이걸로 뭐가 달라질까요?"
신유정은 손을 내밀면서 물었다.
파직. 파지직.
황금색의 전격이 신유정의 팔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저 벼락을 견딜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요?"
강주혁은 답했다.
지금까지 제단의 힘이 전투에 도움이 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다들 의아해했다.
"확실히 몸 안에 뇌기가 감도는 게 느껴져요."
이 제단의 힘을 빌리지 않는 자에게 셀레스티얼은 무적에 가깝다.
하지만 제단의 힘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셀레스티얼과 동류가 되어 벼락을 맞을 때마다 오히려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게 해서 지구전으로 끌고 가는 게 셀레스티얼을 무너뜨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회귀 전, 강주혁이 제단의 힘을 이용하는 전략을 찾아내기 전까지 공략팀은 끔찍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때는 블랙 헌터가 난입하지 않았기에 셀레스티얼이 제단을 가는 걸 훼방까지 했다. 오히려 상황이 지금보다 나빴다.
"저도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싸움에 개입하지 말고요."
일행이 왕좌 근처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강주혁은 제단의 힘을 받고 왔다.
"블랙 헌터들이 밀리고 있어요."
안다정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블랙 헌터들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블랙 헌터가 전멸하면 저 괴물과 싸우는 건 우리가 될 거라는 불안감이 퍼져가고 있었다.
"지금 들어가죠."
"지금? 둘 중 하나가 완전히 끝장이 난 다음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강주혁의 말에 크리스 바셋이 따졌다.
"블랙 헌터들 중에 정석 씨가 있어요."
"네?"
강주혁의 말에 태원공략 헌터들이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은 윤정석이 누구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정석 씨가 누구예요?"
"우리 팀 직원이었어요. 합동공략 안 데리고 간 것 때문에 삐쳐서 최근에 퇴사했어요."
공허진이 신유정의 질문에 답했다.
"앙심을 품고 블랙 헌터가 된 거예요?"
"겉보기에는 그렇죠. 사실 제가 시킨 겁니다."
강주혁의 충격 발언에 모든 사람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심어놓은 거예요. 처음부터 저렇게 하려고 내보낸 거예요."
"……."
"……왜 우리한테 얘기 안 해줬어요?"
공허진과 주선우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강주혁은 그들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석 씨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했어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들어가죠. 저대로 있다가 정석 씨까지 죽을 수도 있어요."
강주혁을 일행을 이끌고 다시 싸움터로 향했다.
"으아악!"
블랙 헌터들은 이제 거의 4분의 1만 남아 있었다. 숫자가 적어질수록 상황은 더 불리해졌다.
셀레스티얼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생존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강주혁은 블랙 헌터들 중에 윤정석을 찾았다.
어두운 데다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특유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회귀 전까지 합치면 20여 년을 함께 해온 사람이다. 강주혁은 윤정석의 끈질긴 생명력을 잘 알고 있었다. 블랙 헌터들이 전멸하더라도 내심 윤정석이 가장 마지막에 죽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정도 숫자면 우리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몬스터부터 잡죠. 선우 씨, 후방지원을 부탁합니다. 공 대리님은 선우 씨를 지켜줘요."
"네. 팀장님."
"갑시다."
일행은 블랙 헌터와 셀레스티얼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으익!"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신유정을 때렸다.
옆으로 피하면서 빗겨 맞기는 했지만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어? 진짜 괜찮아요!"
"네?"
"벼락을 맞아도 괜찮다고요!"
아직은 모르겠지만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벼락을 맞으면 상처가 회복될 것이다.
위험 요소 하나가 제거되자 일행은 용기를 얻고 전장으로 짓쳐들었다.
"우오오오!"
크리스 바셋이 셀레스티얼의 등을 노리고 대검을 휘둘렀다. 셀레스티얼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뒤차기를 해서 크리스 바셋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정현의 공격, 안다정의 화살을 맞고 비틀거렸다.
"죽어!"
셀레스티얼이 비틀거리자 윤정석을 포함한 블랙 헌터들도 달려들었다.
파지직!
셀레스티얼이 창을 광포하게 휘둘렀다. 대부분의 블랙 헌터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윤정석은 곡예를 하듯 몸을 비틀어서 창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빈틈을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셀레스티얼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크억!"
윤정석이 날아가서 바닥에 처박혔다. 피해가 큰지 일어날 생각을 못 했다.
강주혁과 블랙 헌터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동시에 달려갔다. 셀레스티얼을 우회해서 가야 하는 강주혁보다 블랙 헌터가 더 빨랐다.
"정신 차려!"
강주혁은 윤정석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블랙 헌터에게 다가갔다.
블랙 헌터는 강주혁의 접근을 모르는 것 같았다. 블랙 헌터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샤아악!
윤정석에게 정신이 팔린 척하던 블랙 헌터가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강주혁에 검을 휘둘렀다.
"이런 게 통할 줄 알았나?"
미리 예상을 하고 있던 강주혁은 공격을 가볍게 피하면서 검으로 머리를 찍어 버렸다.
콰직!
블랙 헌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제단의 힘으로 공격이 더 강해진 기분이었다.
강주혁은 윤정석에게 다가가기 전에 주변부터 살폈다. 블랙 헌터와 일행들 모두 셀레스티얼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블랙 헌터들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행을 공격하지 않고 셀레스티얼만 노리고 있었다.
"정석 씨, 정신 차려요."
강주혁은 내상까지 치료해 줄 수 있는 최상급 물약을 윤정석의 입에 부었다.
"쿨럭!"
잠시 후, 윤정석이 기침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동자는 여전히 붉었다.
"네 놈이!"
윤정석은 강주혁을 알아보자마자 원수를 보듯이 살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강주혁은 미리 빼놓은 목걸이를 들이밀면서 말했다.
"엑시움 라 키르베."
목걸이의 기운이 윤정석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던 윤정석이 멈춰 섰다.
"지금부터 내 명령을 따른다."
붉게 물든 눈동자 역시 원래의 빛을 되찾아갔다.
‘어?’
강주혁은 처음부터 세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블랙 헌터들은 길거리에서 사람을 모은다. 그렇게 모은 사람들을 조직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충성하게 만들려면 세뇌는 필수다.
강주혁은 어떤 방식으로 세뇌를 했든, 목걸이가 가진 힘이 세뇌의 힘보다 강할 거라고 짐작했다. 목걸이가 가진 힘은 상대의 자유의지 전체를 박탈해 버리는 식으로 작동하니까. 목걸이 쪽이 지배의 강도가 훨씬 더 강했다.
윤정석이 세뇌를 당하면 일단 목걸이를 이용해서 우호적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 세뇌상태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목걸이의 힘이 너무 강해서 원래 있던 정신지배를 밀어내 버린 건가?’
눈동자의 색이 바뀐 걸로 봐서 마법이나 약물을 사용한 것 같았다.
다시 눈동자의 색이 돌아왔다는 건 세뇌상태가 풀렸다는 얘기일 것이다.
"티, 팀장님?"
윤정석이 인상을 쓰면서 말을 붙였다.
‘……정신지배도 안 먹혔군.’
세뇌가 풀렸을 뿐만이 아니라 정신지배도 안 먹혔다.
제대로 먹혔다면 이렇게 강주혁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게 아니라 멍한 상태에서 명령을 기다렸을 것이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정신지배와 세뇌가 충돌을 일으켜서 둘 다 상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윤정석에게 정신지배를 사용하는 게 꺼림칙했던 강주혁에게는 오히려 이쪽이 나았다.
"괜찮아요?"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기억은 나요?"
"제, 제가……팀장님을 죽이려고 했네요."
다행히 기억을 잃지 않은 것 같았다. 그동안 블랙 헌터들과 붙어 다니면서 알게 된 것들이 머릿속에 고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강주혁이 원하는 건 바로 이 정도였다.
"세뇌를 당해서 그런 겁니다."
"아오, 개자식들. 저한테 뭘 한 거죠? 진짜 더럽게 아프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여기서 벗어나서 잠시 쉬고 있어요. 멀리 가지는 말고요."
강주혁은 윤정석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에 말했다.
"팀장님은요?"
"저놈을 잡아야죠."
강주혁은 셀레스티얼을 보면서 말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