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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77화 (177/202)

177화 후퇴해요!

강주혁과 크리스 바셋은 숨을 죽인 채 어둠 속에 가려진 존재들을 내려다보았다.

밤인 데다가 탑의 정상 바로 아래에는 두꺼운 구름이 깔려 있었다. 하늘의 별빛만으로는 상대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몬스터는 아니군.’

하지만 기척을 통해서 적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몬스터 특유의 맹목적인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좀 더 다듬어진 기운이 미미하게 느껴졌다.

‘블랙 헌터다.’

몬스터가 아니면 사람이다. 사람 중에 이 밤중에 여기까지 올라올 만한 인간은 블랙 헌터들뿐이다.

"한둘이 아니군요."

크리스 바셋이 인상을 썼다. 강주혁도 넓게 퍼진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쪽 면에 붙어있는 사람만 해도 그 수가 열 명이 넘었다. 이쪽으로만 올라오지는 않을 테니 최소 수십 명, 많게는 백 명쯤 될 것이다.

‘음?’

적들 역시 강주혁과 크리스 바셋이 자신을 주시한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움직임을 멈췄다. 이것만 봐도 적들의 수준이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주혁은 몸을 뒤로 뺐다. 크리스 바셋도 그렇게 했다.

"뭐하는 놈들인지 짚이는 데라도 있습니까?"

크리스 바셋이 목소리를 낮춘 채 물었다.

"블랙 헌터들일 겁니다."

"블랙 헌터요? 아직도 그런 놈들이 있습니까?"

크리스 바셋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미국인들은 블랙 헌터를 제 3세계에서나 활개를 치는 테러리스트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처럼 정치적으로 안정화된 국가에서 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무법지대입니다. 범죄자들이 숨어들기에 딱 좋죠."

"여기에 뭐가 있다고……."

범죄자들도 사람이니까 문명의 이기가 필요하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무한한 자유가 있다.

"감옥에서 평생 썩는 것보다 낫겠죠."

"작전은 있습니까? 숫자가 제법 되는 것 같은데."

강주혁이 상대했던 블랙 헌터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리고 그 수가 수십에 이른다면 설사 승리하더라도 사망자가 나올 것이다.

"저 다리를 건넌다면 끊어 버리죠."

강주혁은 부유하는 땅덩어리와 탑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를 가리켰다.

"우리가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하고요?"

"마석만 있으면 웨이포인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선우 씨가 기술을 마스터했습니다."

"마석이 충분할까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크리스 바셋은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제가 일행을 깨우겠습니다. 헌터님은 모서리를 돌면서 적들이 몇 명쯤 되는지 대충이라도 확인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강주혁은 머릿속으로 세부적인 작전을 세우면서 야영지를 향해 달려갔다.

크리스 바셋은 모서리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일어나요!"

강주혁의 외침에 일행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면서 무기부터 챙겼다. 움직임이 굼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몬스터에요?"

안다정이 물었다.

"블랙 헌터입니다. 우리를 따라온 것 같아요."

"수는?"

"정확하게 새어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수십은 되는 것 같았다."

"이길 수 있을까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싸우면 불리할 것 같은데요."

탑의 꼭대기는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평지.

다수가 소수를 포위섬멸하기에 딱 좋은 지형이다.

"여기서 빠져나가야합니다. 짐 챙겨요."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아공간 보관함에 침낭을 쑤셔 넣었다.

떠날 준비를 끝냈을 때쯤, 크리스 바셋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시간상 탑을 전부 다 돈 것 같지는 않았다.

"사방에 쫙 깔린 것 같습니다. 없는 곳이 없어요."

크리스 바셋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남아 있던 잠기운이 확 달아난 것 같았다.

"숫자는 어느 정도입니까?"

"제가 확인한 것만 해도 40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한쪽을 막더라도 다른 쪽이 뚫리겠군요."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은 블랙 헌터들이 나온 겁니까?"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세를 넓혀온 것 같습니다. 선우 씨 조명 좀 밝혀줘요."

주선우가 조명 마법을 사용했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별빛이 있어서 완전히 깜깜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멀리 있는 어둠까지 밝혀야 할 때다.

"갑시다."

강주혁이 일행을 이끌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신유정이 물었다.

"구름다리를 넘을 겁니다."

"넘으려다가 다리를 공격당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 전에 넘어야죠."

일행은 쉬지 않고 달렸다.

"먼저 가요."

구름다리에 도착한 강주혁은 일행을 앞서가게 했다.

휘이잉.

날카로운 바람이 쉴 새 없이 다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철판과 쇠사슬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녹슨 곳이 많아서 상당히 불안정해 보였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아마 시체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얗게 질린 일행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어서!"

강주혁이 재촉하자 김정현이 선두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용기를 내고 그들을 따랐다.

척! 척!

그때, 근처의 모서리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슉!

"컥!"

블랙 헌터들이 품에서 단검을 던지기도 전에 안다정의 화살 하나가 그들을 꿰뚫었다.

척! 척!

하지만 쓰러진 자들보다 많은 인원이 탑의 꼭대기로 올라왔다. 그리고 쓰러진 자들도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어서 가요!"

"조심해요!"

강주혁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안다정을 재촉했다. 그녀는 다리를 건너면서도 상체만 돌려 화살을 계속해서 쐈다.

화살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적들을 꿰뚫었다.

"쫓아라!"

적들이 다리 쪽으로 몰려왔다. 강주혁은 혼자서 적들을 마주했다.

서걱!

"으악!"

멸마검에 베인 블랙 헌터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힘을 들이지 않고 베었는데도 살이 터져나갔다.

적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놈들이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공격해라!"

블랙 헌터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화르르! 콰지직!

아래쪽에서 솟구친 화염과 전격이 다리를 때렸다.

펑!

하지만 다리를 둘러싼 반투명한 막에 막혀 버렸다.

"팀장님! 어서 오세요!"

공허진이 다리에 보호막을 씌운 것이다.

"괜찮으니까 어서 가요!"

공허진은 머뭇거리다가 안다정에게 끌려서 반대편으로 향했다.

강주혁은 일행이 안전하게 건널 때까지 자리를 지킬 생각이었다.

서걱! 스걱!

강주혁은 적들을 베는 동시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탑의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벽에 밀착해 있던 줄기들이 강주혁의 명령에 따라 뜯겨져 나왔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넘실거렸다.

"으으, 으아아악!"

줄기에 매달려 있던 블랙 헌터들이 버티지 못하고 추락했다.

"다 건넜어요!"

반대편에서 일행의 외침이 들렸다. 강주혁은 그제야 전력 질주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쫓아라!"

뒤쪽에서 살기를 감지한 강주혁이 고개를 숙였다.

휙!

날카로운 투창이 머리 위를 스치고 갔다.

슉!

저 멀리서 안다정이 활을 쏘는 게 보였다.

"큭!"

화살은 공중에서 방향이 꺾이더니 강주혁을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 적을 꿰뚫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틀거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는 않았다.

"쫓아라!"

강주혁의 예상대로 블랙 헌터들은 일행이 건너고 난 후에는 다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다리를 파괴하면 강주혁을 떨어뜨려서 죽이는 동시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강주혁이 살아남아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더라도 다리를 파괴하면 공중에 떠 있는 섬에 갇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기에 고립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강주혁 일행이 탈출할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공략회사에서 구조팀을 파견할 수도 있고.

저들은 되도록 강주혁과 일행의 목을 직접 베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위에서 목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는지도 몰랐다.

"돌격!"

수십 명의 블랙 헌터들이 탱커로 보이는 거한을 앞세우고 다리를 넘으려고 했다.

"다리를 끊어요!"

강주혁이 다리를 넘자마자 명령했다.

"돌아가는 건 어떻게 하고요?"

"방법이 있어요. 걱정 말고 끊어요!"

일행에게는 아직 이곳에 마석 매장지가 있다는 확신이 없지만 강주혁에게는 있었다.

크리스 바셋이 자신의 대검을 번쩍 들어서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쇠사슬을 끊으려고 했다.

푹!

바로 그 순간, 반대편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크리스 바셋의 가슴팍에 박혔다. 두터운 오러스킨을 단숨에 뚫을 만큼 강력한 일격이었다.

"컥!"

크리스 바셋이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공 대리님!"

"제가 갈게요!"

공허진은 주저앉은 크리스 바셋을 후방으로 끌고 갔다. 그녀가 있으니 회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누구지?’

강주혁은 반대편을 보았다. 밤인 데다가 똑같은 복장을 한 인간이 백여 명이나 모여 있으니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그때 그놈이군.’

헌터 관리국과 귀화초를 조사하러 갔을 때 만났던 저격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무시무시한 실력으로 강주혁과 김철수를 위협했던 고수였다. 아무리 블랙 헌터라도 그 정도의 실력자가 많지는 않을 테니 분명 같은 사람일 것이다.

슉! 슉!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블랙 헌터들도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댔다. 공격은 강주혁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챙! 캉!

강주혁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고 쳐내느라 다리를 파괴할 틈이 없었다.

"돌격!"

후방의 지원으로 여유를 얻은 블랙 헌터들은 어느 틈엔가 다리를 거의 다 건넜다.

일행은 활과 마법을 퍼부으면서 적들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선두에 선 탱커가 몸 전체를 가릴 만큼 거대한 방패를 이용해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냈다.

다리의 폭이 사람 한 명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서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일행은 옆으로 산개해 측면을 노렸지만 뒤에 있는 블랙 헌터들 역시 만만치 않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오오오!"

탱커가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강주혁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기술을 사용한 건지 속도와 기세가 흉흉했다.

"어딜!"

화살을 막아내느라 칼을 휘두를 여유가 없었던 강주혁은 급한 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쾅!

방패 정중앙이 움푹 들어가면서 돌진이 중단되었다. 단순히 멈춰선 게 아니라 비틀거리면서 뒤로 밀려 나가기까지 했다.

거한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제법이군.’

당황한 건 강주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예상한 그림은 거한이 뒤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내공이 실었다. 하지만 거한은 그걸 견뎌낸 것이다.

"가라!"

거한이 멈춰선 사이 등 뒤에 있던 블랙 헌터들이 보법을 펼치면서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들은 강주혁과 거한을 뛰어넘어서 일행들을 덮쳤다.

"후퇴해요!"

블랙 헌터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공략회사의 부장급. 그들을 여유 있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크리스 바셋, 안다정, 김정현 정도뿐이다.

크리스 바셋은 지금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주선우는 타깃이 되는 순간 사망할 정도로 약했다.

게다가 강주혁은 졸지에 앞뒤로 포위된 꼴이 되고 말았다.

"저놈이 타락한 마존의 후예다! 죽여라!"

사방에서 적들이 짓쳐들어왔다.

‘백호지진보!’

강주혁이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대지가 진동하면서 적들이 비틀거렸다.

"으아아악!"

가까이에 있는 적들은 눈과 코, 그리고 입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쓰러졌다. 진동으로 인한 내상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리가 고정되어 있는 지반 역시 불안정해졌다. 강주혁은 그 틈을 이용해 다리를 끊으려고 했다.

캉!

하지만 하늘에서 검은색 인영 하나가 강주혁을 덮쳐오면서 검을 막아냈다.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붉은 눈의 윤정석이 씩 웃어 보였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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