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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74화 (174/202)

174화 회의 끝나고 저랑 대련 한번 하시죠

신유정은 강주혁을 탕비실로 데리고 갔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강주혁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크리스 헌터님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달라고 남궁천 사장님께 요청했고 사장님이 그걸 받아들였죠."

신유정은 민망한 듯 웃으면서 답했다. 여기까지 끌고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걸로 봐서 그녀가 신광측 공략팀의 최고책임자인 것 같았다.

"남궁천 사장님께 들은 겁니까?"

"네. 강 팀장님이 크리스 헌터님이랑 트러블이 있었다는 건 저도 알아요."

"단순한 트러블이 아니었죠. 저 사람의 돌발행동이 전선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쳤는지 팀장님도……근데 팀장님이 맞나요?"

"네. 부장에서 좌천당해서 다시 팀장이에요."

"안타깝군요. 근데 남궁천 사장님은 헌터스에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겁니까? 아무리 내로라하는 헌터라지만 그렇게 큰 문제를 저질렀는데도 다시 기용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글쎄요."

신유정은 곤란하다는 듯이 답변을 피했다.

"아니면 크리스 바셋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신광이 헌터스에게 뭔가를 지불한 겁니까?"

신광과 헌터스가 거래를 했다.

처음에는 광야에 가고 싶어 하는 크리스 바셋 때문에 헌터스가 신광에게 뭔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신광이 뭔가를 받는 대신에 크리스 바셋을 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 바셋의 몸값을 생각한다면 반대일 가능성도 있었다. 신광이 크리스 바셋을 데려오는 대신에 뭔가를 지불한 것이다.

자기 회사의 헌터들을 놔두고 굳이 크리스 바셋을 데리고 온 이유는 마석 매장지가 걸려 있는 공략 경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강주혁을 이기기 위한 카드였는지도 모른다.

"크리스 바셋을 그냥 돌려보내기에는 아까운 모양이군요. 분명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왔을 테니까요."

신유정은 쓴웃음을 지을 뿐 말을 아꼈다. 거기까지는 자신의 권한 밖인 것 같았다.

"이건 태원공략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지난번 일을 크리스 헌터님 탓으로만 돌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그 정도 몬스터면…… 피해 없이 막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건 저도 압니다. 그래도 크리스 바셋이 미친 짓만 안 했다면 좀 덜 죽고, 덜 다쳤을지도 모르죠."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이잖아요. 물론, 강 팀장님 같은 분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실수를 해요. 크리스 헌터님의 실수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시는 것 같아요."

"그 실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할 말이 없어진 신유정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잠깐 동안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그냥 정공법으로 부딪혀왔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강주혁이 크리스 바셋과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서 빠져 버리면 합동공략 자체가 어그러진다.

이미 합동공략을 경험해본 신유정은 강주혁이 없이는 공략 불가 지역을 공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주혁도 <용의 길>을 완전히 끝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광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좋습니다. 단, 조건이 있어요."

"공략팀의 리더는 강 팀장님이 맡는다?"

"네."

"크리스 바셋 헌터님은 강 팀장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물론이죠."

"……제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얘기는 해볼게요."

"만약 크리스 바셋 헌터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가 이번 공략에 빠지겠습니다."

"그건 절대 안 되니까 어떻게든 크리스 바셋 헌터를 설득해야겠군요."

"맞습니다."

"후우. 한번 해볼게요."

신유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녀도 크리스 바셋을 다루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근데 크리스 바셋이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진 않던가요?"

"사생활이요?"

"헌터스에서 같이 일했던 안다정 팀장 말로는 지저분한 사생활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신유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직원들에게 추근댔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클럽도 열심히 다니고요. 아직 사고를 치지는 않았지만요."

"아무 일 없기를 바라야죠. 일단, 가시죠."

강주혁은 신유정을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근데 사무실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크리스 바셋이 껄렁한 태도로 말했다.

마치 자기네 사무실인 것처럼 1부 3팀의 파티션에 팔을 걸치고 있었다.

"지금 일하는 거 안 보여요?"

안다정이 정색하면서 말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유명인사인 데다가 다른 회사에서 온 손님. 게다가 엄청난 실력자다. 크리스 바셋이 무례하게 구는데도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강주혁이 크리스 바셋에게 물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냐고 했더니 쌍욕을 하더군요. 협력업체 직원한테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업무랑 관련된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저기 회의실에 가서 기다리시죠."

강주혁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크리스 바셋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강주혁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쳇."

크리스 바셋은 건들거리긴 했지만 강주혁의 말을 따랐다. 김정현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팀원들에게 할 얘기가 있습니다. 신 팀장님도 안에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어요. 저도 크리스 헌터님이랑 얘기 좀 할게요."

신유정은 먼저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 팀장님."

강주혁은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안다정에게 말했다.

회사에서 저렇게 대놓고 아는 척을 했으니 한동안 구설수에 시달릴 것이다.

강주혁이 아는 안다정은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네?"

"불편하시면 빠지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제가 피할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갈게요. 돈 벌어야죠."

안다정이 함께 하면 시끄러워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 입장에는 안다정이 있는 게 낫다.

"감사합니다. 선우 씨, 회의 준비는 됐나요?"

"네. 팀장님."

"갑시다."

강주혁은 일행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크리스 바셋은 신유정에게 한 소리를 들은 건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정이 들어오자 다시 입꼬리를 씰룩였다.

"다들 구면이어서 좋군요. 저는 이번 공략의 총책임자인 강주혁 팀장입니다."

상석에 앉은 강주혁은 말했다.

"와아아아."

김정현은 혼자서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 하다가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자 멋쩍어하면서 멈췄다.

"호응 좀 해주지 그랬어요."

김정현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신유정을 팔꿈치로 툭 치면서 말했다.

"낙하산이라고 놀릴 때는 언제고요."

"뒤끝이 엄청 기시네요."

"김 팀장님이 죽을 때까지 갈 거예요."

"새겨듣겠습니다."

강주혁은 두 사람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크리스 바셋에게 시선을 옮겼다.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크리스 바셋 헌터님에게 개인적인 제안을 하나 하고 싶군요."

강주혁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제안?"

"회의 끝나고 저랑 대련 한 번 하시죠."

"대련? 갑자기 왜요?"

크리스 바셋은 당황한 것 같았다.

"지난번에 저랑 붙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언제요?"

강주혁은 크리스 바셋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설사 진짜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평소의 성격대로라면 싸움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나 피하는군.’

혼자서 거인을 잡겠다고 튀어나갔을 때 크리스 바셋은 자신의 밑천을 모두 드러냈다.

원래 실력이 좋은 헌터들은 비장의 수를 하나쯤 숨겨두고 있지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까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준 것이다.

그걸 본 강주혁은 크리스 바셋이 자신보다 강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순간적인 전투력은 수준급이지만 체력과 지구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공격을 가해서 적을 제압하는 스타일이 대개 그렇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진다.

강주혁 역시 청룡검만 사용할 경우,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지만 다른 선택지도 많았다. 그리고 순간적인 공격력만 놓고 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크리스 바셋도 강주혁이 싸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으니 자신이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웨이브 데이 때였죠. 1차 웨이브가 끝나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아요. 분명히 그랬어요."

안다정이 거들었다. 좀 전까지는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지금은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 기억납니다."

크리스 바셋은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그렇군요. 무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대련할 때는 원래 공용장비를 쓰지 않나요? 미국에서도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도 헌터님도 공용장비를 쓰면 공정하지 않을까요?"

"여기에 있는 공용장비들 중에 내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군요."

"태원공략의 공용장비는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장인이 제작했습니다. 한때는 미국의 유명 헌터들이 제작을 의뢰하던 분이기도 하죠."

강주혁은 거짓말을 했다. 장철준은 절대 훈련장에 있는 공용장비 따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크리스 바셋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강주혁의 거짓말에 지적하지 않았다.

크리스 바셋이 어떻게 나올지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웁니다. 난 오늘 회의를 하러 온 거요."

크리스 바셋이 언성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무례한 제안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꼭 한번 겨뤄봤으면 좋겠군요."

"나 역시 마찬가지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크리스 바셋이 싸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죠."

* * *

크리스 바셋은 공략 당일이 될 때까지 강주혁과 싸우지 않았다.

강주혁은 틈만 나면 대련을 제안했지만, 크리스 바셋은 공략 전 컨디션 관리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다.

강주혁은 의도적으로 크리스 바셋이 겁을 집어먹었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렸다. 가십과 담을 쌓고 살던 그로서는 예외적인 행동이었다.

며칠 정도 지나자 크리스 바셋이 강주혁과의 대련을 피하고 있다는 소문이 태원공략 내에 쫙 퍼졌다. 업계 특성상 헌터끼리 교류가 잦으니까 다른 회사에도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될 것이다. 크리스 바셋이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시기니까.

공략 당일.

크리스 바셋은 상당히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크리스 바셋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강주혁과 인사를 나눴다.

신유정이 전해준 말에 따르면 강주혁이 크리스 바셋을 도발했다는 얘기가 신광에도 퍼진 것 같았다.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크리스 바셋에게 강주혁과 한판 붙어보라고 부추겼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 바셋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모두 빠져나갔다. 아마 절대 싸우지 못할 것이다. 싸워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으니까.

강주혁은 한국에서나 유명한 사람이지만 크리스 바셋은 세계적인 명사다. 크리스 바셋이 한국의 이름 모를 헌터에게 박살났다고 하면 전 세계 헌터 업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다.

"꼭 공략전에 헌터님과 싸우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끝나고는 시간 되시죠?"

"……아마 그럴 겁니다."

크리스 바셋은 이번에도 확답을 피했다.

싸우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크리스 바셋의 기를 죽이는 데에는 성공했다.

안다정이 있는데도 크리스 바셋은 집적거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강주혁의 눈치만 봤다.

"그럼 출발할까요?"

강주혁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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