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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70화 (170/202)

170화 시선을 분산시키려고요

"뭐죠?"

공허진이 중얼거렸다. 강주혁이 알아차린 기척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지평선으로 옮겨갔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평야는 몬스터들의 시체로 덮여 있었다.

헌터들이 끼니까지 거르면서 쌓은 결과였다. 성공적으로 방어선을 지켜냈으나 그로 인해 다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린스킨이군요."

지평선에서부터 암녹색의 파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 고블린, 오거, 트롤이 한 데 뒤섞인 채 질주하고 있었다. 암녹색 물결이 평야에 널려있는 시체들을 덮어버렸다.

하늘에는 와이번과 하피가 괴성을 지르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숫자가……."

주선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넋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오늘 처음으로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경험한 유한공략의 헌터들은 완전히 질려버렸다.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헌터들이 내공과 마나를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걸 보충할 수 있는 수단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첫 번째 웨이브의 끝이 보일 때쯤 빠르고 안전한 마무리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전투기술과 마법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쿵! 쿵!

지평선에게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머리통이 나타났다. 혼자서 원근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인들이었다.

그것들은 한참 뒤쳐져 있었지만 큰 보폭을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수천, 아니, 최소 만 단위군요."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선우는 아연실색했다.

"2차 웨이브군요.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지."

크리스 바셋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상황이 급변한 터라 강주혁에게 시비를 걸던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흔하긴 뭐가 흔해요. 10년에 한 번꼴밖에 안 되는데."

"그 정도면 흔한 거지."

안다정의 지적에 크리스 바셋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맘때쯤 2차 웨이브가 있었다면 업계 전체에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주혁도 알았을 것이다.

‘나로 인해 뭔가가 달라졌다.’

강주혁이 바꿔버린 미래가 너무 많아서 원인을 찾는 게 어려웠다. 마석 매장지를 발견한 것도 너무 빨랐고, 헌터 관리국과 한준공략이 몰락한 것보다 몇 년 더 빨랐다.

‘이럴 때가 아니지.’

하지만 원인을 찾는 건 나중의 일이다. 답도 안 나오는 문제로 고민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선우 씨."

"네. 팀장님."

"사령부로 복귀해서 지금 상황 보고해요. 당장 이곳에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른 방어선 상황도 좀 알아보고, 정리가 된 곳이 있다면 헌터들 모두 빼내서 이쪽으로 보내라고 해요."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 인근에는 헌터 관리국의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들이 전체 헌터들을 지휘하는 사령부다.

헌터 관리국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긴 했지만, 그 역할을 할 집단은 여전히 헌터 관리국밖에 없었다. 헌터 관리국 대신에 특정 공략회사가 사령부 역할을 하려고 하면 나머지 회사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김철수 주무관에게 당장 이쪽으로 오라고 해요. 만약 토를 달면 제 이름을 팔아요."

헌터 관리국의 헌터 전력은 공략회사의 방어선에 문제가 생길 경우 투입되는 예비대다.

다른 곳에 지원을 하러 간 게 아니라면 곧장 달려올 것이다. 김철수가 있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네. 팀장님."

"어서 가요."

"알겠습니다. 모두 몸조심하세요.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강주혁은 주선우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주선우는 황급히 웨이포인트를 향해 달려갔다.

"신광 쪽은 신경 안 써도 됩니까?"

강주혁이 크리스 바셋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돌아갈 생각입니다."

"서두르는 게 좋겠군요."

"끝나고 나랑 싸우는 거 잊지 마시오."

"그럴 체력이나 있으면 좋겠군요."

"저런 잔챙이들 가지고 겁먹기는."

크리스 바셋은 노골적인 비웃음을 흘리면서 신광의 방어선 쪽으로 걸어갔다. 상황이 급박한 데도 여유를 부리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멍청해질 수 있죠?"

안다정이 고개를 저었다.

"허세가 뇌를 지배하면 저렇게 되겠죠."

아무리 강한 헌터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병력 차이가 백배가 넘으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을 모두 합쳐도 50명이 안 된다. 이 인원으로 막을 수 있는 몬스터는 많아야 5천 마리. 그리고 헌터들은 체력적으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크리스 바셋은 잔챙이들이라고 했지만 트롤이나 오거부터는 결코 잔챙이가 아니다. 거인은 일반 던전에서는 보스로 취급되는 몬스터고. 게다가 비행 몬스터도 있었다.

지원군이 제때 오지 않는다면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크리스 바셋은 허세를 부렸지만 다른 헌터들의 얼굴에는 진한 절망감이 묻어났다.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모두 주목."

강주혁이 목청을 돋웠다. 헌터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모두 각자의 위치를 고수합니다. 명령 없이 위치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잘리기 전에 제 손에 죽을 겁니다."

헌터들 중에는 강주혁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강주혁은 공식적으로 여기에 있는 모든 헌터들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태원공략의 헌터들뿐만이 아니라 지원을 나온 유한공략의 헌터들 역시 강주혁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유한공략은 이번에 광야에 들어온 회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들은 강주혁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형 공략회사든 아니든 헌터 업계에 있는 사람치고 강주혁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끼리 저놈들을 모두 잡는 게 아닙니다. 웨이포인트를 통해 지원군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입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팀장님!"

"그리고 제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여러분은 각자의 위치를 고수해 주세요."

강주혁의 발언에 태원공략의 동료들이 불길한 시선을 보냈다.

"어쩌려고요?"

안다정이 물었다.

"시선을 분산시키려고요."

"옵니다!"

평야를 질주하던 몬스터들이 방어선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퇴근 시간까지 잘 버텨봅시다. 준비된 사람부터 쏴요."

헌터들이 원거리 무기와 마법을 쏟아부었다.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는 공격 한 번에 분쇄되었다. 하지만 오거나 트롤은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돌격했다. 고블린이나 오크도 좀처럼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한준공략이 설치한 방어선은 5미터 정도 높이의 성벽이었다. 헌터들의 화망을 돌파한 몬스터들이 성벽 아래에 다다랐다.

오크들은 끝에 갈고리가 달린 쇠사슬을 던졌고 상대적으로 몸이 날랜 고블린들은 그런 것도 없이 성벽을 타고 올라왔다.

"온다!"

"공격해!"

헌터들이 성벽을 오르려는 몬스터들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강주혁은 근처에 비치해 뒀던 데몬의 흑검을 등에 멨다. 그리고 그 위에 태양의 방패를 둘러멨다. 허리에는 멸마검을 차고 손에는 샐러맨더를 들었다.

"공 대리님."

"네! 팀장님!"

"치료 부탁해요."

"네?"

공허진은 아직 다치지 않은 강주혁이 치유를 부탁하기에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위치 고수해요!"

강주혁은 그 말을 끝으로 석벽의 난간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강 팀장님!"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강주혁은 최고점을 찍은 후 빠르게 하강했다.

크아아아!

오크들이 떨어지는 강주혁을 꿰뚫기 위해서 창을 뻗었다.

화르르!

강주혁이 허공에서 샐러맨더를 휘두르자 창에 불이 붙었다. 넘실대는 화염이 창대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오크들을 불태웠다.

크아아아!

불길에 휩싸인 오크들이 주춤하는 사이 강주혁은 안전하게 하강할 수 있었다. 아직 반쯤 탄 오크의 머리통을 밟은 강주혁은 곧바로 주작비상보를 써서 수직으로 한 번 더 날아올랐다.

강주혁이 디딘 곳을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모두 녹아버리면서 암녹색 파도 한복판에 구멍이 뚫렸다.

척!

강주혁은 그 구멍의 한복판에 착지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지금 서있는 곳과 방어선 사이의 거리는 대략 15미터. 공허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케어를 받을 수 있다.

크아아아!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한복판에 떨어진 인간에게 강렬한 적의를 드러냈다. 강주혁은 데몬의 흑검을 뽑아들었다.

강주혁에게 완전히 굴복하게 된 마검은 정신침해 없이 힘만 더 강화시켜 주었다.

콰지지직!

검은색의 거검이 광풍을 일으키면서 공간 자체를 찢어발겼다.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존재들이 깔끔히 지워졌다.

강주혁은 검을 휘두르면서 생긴 관성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켰다. 사방에서 강주혁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은 믹서에 들어간 과일처럼 갈려나갔다.

* * *

"뭐, 뭐야?"

크리스 바셋의 시선이 태원공략의 방어선으로 향했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자꾸만 태원공략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안다정이 있으니까.

만약 상황이 나빠져서 안다정에게 문제가 생기면 이쪽을 내버려 두고 태원공략 쪽으로 달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저 자식이…….’

계속해서 크리스 바셋의 신경을 긁어놓던 강주혁이 방어벽 밖으로 몸을 날렸다. 처음에는 죽으려고 환장했다고 생각했다.

좀 전에는 안다정의 앞이라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크리스 바셋 역시 이 정도 숫자의 적은 어떤 헌터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크리스 바셋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식이 부정당하는 걸 목도하고 있었다.

‘강하다.’

몬스터들 한복판에 뛰어든 강주혁이 엄청난 무위를 펼치면서 혼자서 암녹색의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고블린과 오크는 물론이거니와 오거와 트롤 역시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색 검 앞에서는 모든 몬스터가 평등했다.

‘검 때문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크리스 바셋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아티팩트도 사용자의 타고난 기량을 초월하는 성능을 낼 수는 없었다.

저 흑검이 대단한 명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로 저 정도 파괴력을 끌어낸 건 순전히 강주혁의 능력이다.

‘숨 좀 돌릴 수 있겠군.’

몬스터들은 자기네들 한복판에서 엄청난 학살극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것들은 성벽에 몰려가기보다는 강주혁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피와 살덩어리로 분해되었다.

시선이 분산된 덕분에 성벽에 위에 있는 헌터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적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강주혁이 지상군의 이목을 끌어준 덕분에 헌터들은 공중에 있는 하피와 와이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성벽은 1차 웨이브 때보다 더 굳건해 보였다.

"조심해!"

"힐 좀 해주세요!"

"살려줘!"

반면에 신광의 방어선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1차 웨이브 때만 해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두 공략회사였으나 지금은 신광 공략 쪽이 구멍으로 보였다. 강주혁 한 사람이 전투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다.

강주혁이 저 상태로 계속 싸워만 준다면 태원공략 쪽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유일한 변수는 후방에 있는 거인들이었는데 공격이 시작되자 아군을 밟지 않기 위해서인지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아마 저것들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때쯤에는 지원군이 도착해있을 것이다.

슉! 슉!

안다정은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대신에 저격으로 강주혁을 지원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머릿수 차이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강주혁의 빈틈을 안다정이 완벽하게 메워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헌터들만 보여줄 수 있는 유기적인 콤비플레이였다.

"뻑(Fuck)."

크리스 바셋은 강주혁의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과 안다정을 끼고 도는 태도가 거슬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는 달리 크리스 바셋은 상황에 따라 냉정한 판단을 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기와 질투, 그리고 욕정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라고 못할 줄 알아.’

크리스 바셋은 자신의 양손대검을 들고는 석벽 밖으로 몸을 날렸다.

"크리스 헌터님!"

당황한 헌터들이 등 뒤에서 외쳤으나 크리스 바셋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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