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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68화 (168/202)

168화 조심하셔야겠어요

강주혁은 오랜만에 남궁천 사장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공략회사들 간의 관계가 껄끄러울 때라서 거절하려다가 그간 쌓은 정도 있고 해서 승낙하고 말았다.

연락을 받은 후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윤철 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윤철은 남궁천 사장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자기도 궁금하다면서 강주혁에게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약속장소는 남궁천 사장과 처음으로 만났던 호텔의 식당이었다.

"음?"

예약된 룸으로 들어가려는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기운이 하나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게 문제였다.

‘또 나를 난처하게 하시는군.’

강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천 사장과 함께 왔으며 이 정도 기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강주혁은 안내해 준 직원에게 인사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남궁천의 옆자리에는 금발에 푸른 눈의 서양인이 앉아 있었다. 강한 느낌을 주는 턱이 상당히 두드러져 보였다.

나이는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고, 앉아 있는데도 키가 상당히 커 보였다. 양복차림이었지만 남궁천처럼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게. 따로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

"처음 뵙는 분도 계시군요."

강주혁이 힐난조로 말했다.

"미리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강 팀장을 워낙 보고 싶어 해서 말이지."

남궁천이 웃으면서 변명했다.

"괜찮습니다."

강주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궁천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뜬금없이 밥을 먹자고 해서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설마 크리스 바셋을 데리고 나올 줄을 몰랐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헌터스의 크리스 바셋입니다."

크리스 바셋이 한국어로 인사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조는 어눌했지만 표현은 정확했다. 공부를 꽤 많이 한 것 같았다.

"태원공략의 강주혁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주혁은 여유 있게 웃어 보이면서 손을 잡았다.

‘음?’

크리스 바셋이 강주혁의 손을 으스러뜨릴 듯이 꽉 잡았다. 강주혁은 피식 웃으면서 손에 힘을 줬다.

크리스 바셋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황급히 손에 힘을 뺐다. 강주혁도 힘을 풀었다. 크리스 바셋의 손에 진한 손자국이 남았다.

남궁천 사장은 이 미묘한 신경전을 보면서 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둘이 충돌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남궁천 사장님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에 대해서요?"

"네. 한국 최고의 헌터가 될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과장해서 말씀하신 겁니다."

강주혁은 남궁천을 보면서 살짝 인상을 썼다.

"크리스 헌터의 한국어에 대해서 안 물어보는군."

"한국어를 잘하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진짜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크리스 바셋이 강주혁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인터넷에서 들은 것 같네요."

"찾아본 건가요?"

"헌터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신광 쪽 헌터가 올린 모양입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셰프가 들어와 설명과 함께 음식을 서빙했다.

"어떻습니까?"

남궁천이 크리스 바셋에게 물었다.

"나쁘진 않군요."

크리스 바셋은 건성으로 답했다. 신경이 온통 강주혁에게 쏠려 있었다.

"이번에 우승한 거 축하하네."

음식을 한 입씩 먹은 후 남궁천이 운을 띄었다.

"경기도 아닌데요. 우승이라뇨."

"그래도 경쟁에서 1등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런 기록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강주혁은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는 크리스 바셋을 보면서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겠지.’

한국의 헌터들이 당연히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충격이 컸을 것이다.

여기에 나온 것도 분명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서일 테고. 하지만 강주혁에게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의무는 없었다.

"전부 뛰어난 동료들 덕분이었죠. 저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강주혁은 교과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제 팀원들도 결코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크리스 바셋이 말했다.

"근소하게 이쪽 팀원들이 더 뛰어났던 모양이군요."

"그런 것치고는 차이가 많이 났죠."

강주혁은 내심 크리스 바셋의 한국어 실력에 감탄했다. 말투는 이상했지만, 표현력만큼은 결코 원어민에 뒤지지 않았다.

"이 정도 대접으로는 강 팀장의 영업비밀을 캐기 어려운 모양이군."

남궁천 사장이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물었다. 한 끼에 수십만 원짜리 디너코스를 대접하는데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느냐는 투였다.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랑 함께 해야 할 공략이 하나 더 남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남궁천이 웃는 얼굴로 협박을 했다. 그의 말대로 남아 있는 두 개의 제단 중 첫 번째는 신광의 영역 안에 있다.

다음 공략도 신광과의 협력을 통해서만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용광로 때문에 단단히 심술이 나신 모양이군.’

강주혁은 남궁천을 보면서 웃었다.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자비하게 뜯어 가냐고 하면서 툴툴거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광의 영역 안에 작업장을 만든 장철준은 뛰어난 수준의 무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술도 완전히 끊고 건강 관리도 철저하게 한 덕분에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은 것 같았다.

생산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하나 같이 억대의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계약에 따라 고스란히 태원공략의 헌터들에게 주어졌다.

장철준이 자신의 원칙을 조금 양보해 준 덕분에 태원공략의 헌터들은 두각을 드러내기만 해도 그가 만들어준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공허진, 안다정, 유덕현도 장철준이 마련해 준 장비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태원공략에 들어가면 장철준이 만든 장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업계에 알려졌고, 이는 뛰어난 헌터들이 태원공략으로 몰리는 이유가 되었다.

구설수 하나를 덮겠다고 강주혁에게 용광로를 내어준 남궁천은 눈을 뜬 상태로 코를 베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알려드릴 수밖에 없군요."

남궁천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한발 양보하기로 했다.

"지상 1층에 있는 돌다리와 지하 7층에 있는 돌다리가 같은 낭떠러지에 있다는 건 아시죠?"

강주혁은 크리스 바셋에게 물었다.

"설마?"

뛰어난 헌터답게 크리스 바셋은 힌트만 줘도 정답을 알아차렸다.

"네. 마법사의 페더 폴을 이용해 1층에서 지하 7층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보스 룸으로 갔죠."

"여왕 거미를 이용해 다른 거미들을 유인했군요."

"덕분에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죠."

"허……."

남궁천과 크리스 바셋이 탄성을 토했다.

허탈함이 가득한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강주혁은 음식 맛을 음미했다.

"대단하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크리스 바셋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해하는 것 같았다.

"강 팀장의 기지는 언제 봐도 놀랍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세 사람은 한 동안 식사에 집중했다.

크리스 바셋은 생각이 많아서인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뜸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태원공략에 안다정이라는 헌터가 있지 않습니까?"

"안 팀장님이요?"

"벌써 팀장이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혹시 이번 공략에도 참여했습니까?"

"네. 참여했습니다."

"역시나 그랬군요. 혹시 제가 한국에 왔다는 걸 알고 있던가요?"

"……네."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면 초면에 결례가 될 것 같아서 적당히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같은 팀이었다는 것 빼고는."

"그녀랑 무슨 관계죠?"

내용도 무례하고 어조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저 말입니까?"

강주혁이 인상을 썼다.

"네."

"그냥 직장 동료입니다."

"저는 그녀 때문에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뜬금없이 고백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네?"

강주혁은 당황했다. 크리스 바셋이 한국어를 배운 이유가 광야에 대한 관심 때문인 줄 알았으니까. 회귀 전에는 안다정에 관한 얘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호오, 그 한국 여성이 안다정 팀장인 줄은 몰랐군요."

남궁천은 재미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 역시 안다정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강주혁의 존재감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녀 역시 다른 회사에서 탐을 낼 만한 인재다. 신광의 헌터들과 합동 공략도 하기도 했다.

"친밀한 사이였나 봅니다."

강주혁이 말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 바셋은 꼭 좋아하는 여자에게 집착하는 스토커처럼 보였다.

* * *

다음 날.

태원공략 본사 건물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

"진짜요?"

강주혁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들은 안다정은 극도의 혐오감을 내비쳤다. 표정만 보면 점심시간에 먹었던 음식을 게워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네. 좀 이상한 사람 같더군요."

"미쳤어. 진짜."

안다정은 오만상을 썼다.

"많이 싫으신 모양입니다."

"상종도 하기 싫은 인간이에요. 아니, 인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헌터로서는 괜찮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일터에서는 괜찮은 편이죠. 하지만 사적으로는 최악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저분한 사생활로 악명이 높았었죠. 헌터스 내에서 외모가 괜찮은 여성 헌터들 중에 안 건드린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바람둥이였군요."

"그 정도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거예요.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이 하나씩은 있으니까요. 문제는 단순히 난봉꾼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끝나지 않았다는 게 무슨 말이죠?"

"크리스 바셋이 건드린 여자들 중에 두 사람이 자살했어요."

"그건 좀……."

"물론,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영향이 아주 없진 않았겠죠. 그리고 여자들을 폭행해서 입건된 적도 몇 번 있어요. 돈으로 전부 무마시키고 넘어갔죠. 듣기로는 마약도 엄청 해대고 사귀는 여자들에게도 권했다고 하더군요."

어제는 한국에 온 이유가 광야가 아니라 안다정 때문인 것처럼 굴었다.

그것만 보고 대단한 순정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헌터스도 참 한심한 회사군요."

"그렇죠. 회사를 대표하는 헌터라는 이유로 크리스 바셋이 무슨 짓을 하든 싸고도니까요. 그 인간은 그런 상황을 적극 이용해서 희생자를 찾아다니는 쓰레기고요."

"한 편으로는 헌터스의 힘이 대단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는데도 아직도 이슈가 안 되었으니까요."

회귀 전에도 크리스 바셋의 사생활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평판은 있었으나 그로 인해 비난을 받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돈을 엄청 뿌려댔을 거예요. 물론, 크리스 바셋이 그 이상으로 벌어오니까 그렇게 해주는 거지만."

"근데 안 팀장님한테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겁니까? 팀장님 때문에 한국어도 배웠다고 하던데요."

"그거야 모르죠. 이상한 정복욕이 발동했을 수도 있고요."

"정복욕이요?"

"데이트 신청하는 걸 제가 여러 차례 거절했거든요. 한 번은 하도 귀찮게 해서 칼을 휘두른 적도 있었어요."

"……네?"

"아, 그냥 겁만 준 거예요."

안다정은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어쨌든 껄끄러운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군요."

강주혁이 보기에 아주 작정을 하고 한국에 온 사람처럼 보였다.

"사실, 최근에 저한테 연락을 하기는 했어요.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 연락처를 알고 있더군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한 번만 더 연락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어요. 그 이후로 몇 번 더 연락이 왔는데 그냥 차단해 버렸죠."

"조심하셔야겠어요. 제가 보기에도 좀 이상한 사람 같았습니다."

강주혁이 알고 있는 크리스 바셋은 오만하지만 인사이더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적어도 언론을 통해 노출된 이미지는 그랬다.

하지만 직접 만난 크리스 바셋은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고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였다.

"되도록 안 엮이도록 노력해야죠. 알려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

"근데 남궁천 사장님이랑은 친한 사이에요? 따로 식사도 하고."

안다정은 어째서인지 추궁하는 투로 물었다.

"예전에 이직 제안을 받았을 때 면을 텄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뵌 적은 있는데 딱히 친한 건 아닙니다."

강주혁도 어째서인지 변명조로 답했다.

"신광으로 가면 배신이에요."

"부장님이랑 공 대리, 그리고 안 팀장님이 여기에 있는데 제가 어디를 갑니까."

강주혁은 말에 안다정은 배시시 웃어보였다.

"이제 올라갈까요?"

"네. 가시죠."

두 사람은 남아 있는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봐요."

사무실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다.

"웨이브 데이 배치표가 나왔어요."

공허진이 이유를 알려줬다.

"2팀이랑 3팀은 신규 지역에 투입된대요."

그녀가 덧붙였다.

"한준공략한테 넘겨받은 지역 말이죠?"

"네. 신광공략이랑 같이 방어하기로 했어요."

"……."

"……."

강주혁과 안다정은 불길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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